도서 소개
미제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김수남의 여정은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겹겹이 얽힌 사실을 따라가며, 이 소설은 우리 시대에 횡행하는 괴물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구조 속에서 태어났음을 드러낸다.
작가 조중연은 두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에서 괴물의 기원을 대한민국의 정치 구조와 일그러진 현대사로 확장한다. 베트남전쟁 참전과 그 속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군사독재 권력의 탐욕과 출세 욕망이 제주도라는 지역 공동체의 권력 구조로 침투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여기에 일제 식민 지배의 흔적과 제주도를 둘러싼 군사 전략, 병적인 반공주의가 형성한 종교 권력까지 교차한다. 괴물은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고, 그 위에서 개인의 삶이 영위된다는 냉정한 통찰이 소설 전반을 관통한다.
출판사 리뷰
괴물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장편소설의 ‘진실 말하기’
미제 사건이 되고 만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김수남은 여러 과정과 복잡한 미로를 거쳐 뜻밖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소설은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가 누구냐에 맞춰져 있지만 않다. 겹겹이 쌓인 사실의 가닥을 헤쳐나가면서 우리 시대에 횡횅하는 괴물의 기원이 사회 역사적으로 복잡한 구조 속에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작가 조중연이 이 두 권짜리 장편소설에서 밝혀낸 괴물은 가까이에는 대한민국의 정치 구조, 그에 의해서 파생된 불구를 닮은 정치권력에서 배태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는 일그러진 현대사가 원인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괴물이 탄생한 지점은 베트남전쟁이고, 구체적인 사건으로는 베트남전쟁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다.
베트남전쟁 참전이 군사독재 권력의 비도덕적 판단에서 비롯되었듯이, 그 전쟁의 복판에서 벌이는 온갖 탐욕과 비정함, 타인을 짓밟고 출세하려는 인물들의 욕망, 그리고 그것이 다시 제주도라는 지역 공동체의 권력 구조에 침입하는 과정들 속에서 괴물은 점점 평범한 생활 속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미제의 살인 사건을 소재로 택했다. 그런데 괴물을 탄생시킨 직접 서사는 이것이지만 이 서사에 또다른 서사가 횡으로 걸쳐져 있다. 그것 또한 우리의 어두운 근대사 자체인데, 그것은 바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 특히 제주도를 본토 사수의 핵심 기지로 사용하려 했던 일제의 전략과 병적인 반공주의의 의해 조형된 기독교에 대한 것이다.
특히 일제가 가미카제를 위해 만들려다 중단한 제주도의 비행장을 군사독재 권력과 매판 자본이 재사용하려 했다는 사실 혹은 설정은 괴물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역사에 의해 탄생한다는 깊은 통찰에 의해 배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개인들의 삶이 영위된다는 작가의 판단은 섬ㅤㅉㅣㅅ하다.
“박흥식이 알지? 화신백화점. 조선 제일의 갑부 화신백화점 박흥식 말이야. 그자가 가시리에 목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쪽 재정 상황이 안 좋아. 내가 제주도 목장에 관심 있는 걸 경제 부총리도 알고 있거든. 그거 때문에 내가 천하에 쓰레기 같은 정부 항공공사를 떠안게 된 거고. 박흥식은 최종 부도처리 될 거야. 그거 나한테 올 건데, 나도 그러려면 실탄이 꽤 필요하다구.”
“제주도에서 큰 사업을 하시려는 모양입니다.”
“천리마항공을 세워 김포, 제주 간 독점 노선을 띄울 거야. 목장 부지 안에 옛날 가미카제 띄우려고 만들어놓은 활주로가 있는데, 그거 정비해서 비행사들 훈련시키고. 호텔 하나 지어서 제주도를 신혼여행의 메카로 만들어 볼까 구상 중이야. 이제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결혼하면 비행기 타고 제주도 신혼여행 정도는 가야 하지 않겠나?”
과연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왠지 그가 밀어붙이는 방향으로 제주도가 바뀔 것만 같았다.(2권, 550쪽)
이 소설에는 여러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거미줄처럼 엮여 있기에 인용한 부분이 크게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이 역사가 만든 괴물들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잔인한 지적은 어쩌면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진실 말하기’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장편소설이 말이다.
피해와 가해가 함께 만든 괴물과 싸우는 방법
작가의 페르소나인 것처럼 읽히는 주인공 김수남은 제주도에 살면서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는 캐릭터다. 대학 동창이자 《삼다일보》 편집국장인 송재홍의 추천으로 제주도에 내려온 김수남 기자의 눈에는 제주도 사람들이 내부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시하지 않고 외부 탓만 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거기에 친구인 송재홍이 정치권에 줄을 대는 선택을 하자 격렬하게 충돌하고 만다. 송재홍과의 갈등은 제주도 내부의 폐쇄적인 문화와 갈등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서 김수남은 제주도 지역 정치의 모순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며 베트남전쟁에서 발아한 괴물의 씨앗이 정치권력을 둘러싼 쟁투 속에서 성장했음을 작가는 그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김수남이 기계적 객관주의자이거나 무책임한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제주도를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진실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진술 속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잔인한 괴물로 그려지는 손정엽의 전처인 현세희에 대한 감정으로도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김수남과 현세희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관계는 철저하게 역사적 진실에 구부러지거나 은폐되는데, 실제로 현세희 또한 역사의 자식이면서 큰 상처를 입은 존재이다. 소설 속 인물이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지지 않게 작가가 문학적 절제를 잘 수행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죄송합니다만, 할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제 주도에서 뀌년까지 건너왔습니다.”
현세희의 느닷없는 등장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제 어머니도 탁 중위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바로 통역이 따라붙었다. 방송 도중 게스트가 폭탄선언 한 것처럼 카메라와 사람들의 이목이 한꺼번에 현세희에게로 몰려들었다.
“제가 그 탁 중위의 딸입니다.”
자원봉사자가 통역하다가 말을 중단했다. 허수정이 손짓하자 통역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2권, 592쪽)
학살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 현장에서 터져 나온 현세희의 느닷없는 고백은 지금껏 가해자 중 한 명인 손정엽의 아내로서 또는 자신을 위해 손정엽을 살해하는 현영학의 결단 등을 통해 보호받는 존재로 그려지다가 최종적으로는 이 소설의 마지막 비밀 열쇠로 탈바꿈한다. 작가는 이미 앞부분에서 현세희의 보호자인 현영학 주변에 음험한 독재 권력의 그림자들을 배치해놨다. 그런데 그것들이 모두 현세희를 옭아매는 괴물들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즉 현세희에게 드리워진 괴물들이 죄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탄생시킨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일방적인 피해의 역사 때문인 걸까? 작가는 피해와 가해가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낸 괴물을 말하고 있으며 주인공 김수남이 제주도 기득권 세력과 줄곧 갈등하는 소설 내의 구조도 결국은 ‘우리 안의 괴물’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으로 해석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벌이는 김수남과 현세희의 정사는 그래서 일반적인 에로스를 넘어서는 상징을 갖는다. 선 굵은 조중연 작가의 이 장편소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만하다.
“나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강경식이 바로 대답했다.
“왜 범죄자들은 기가 막히게 범행 대상이나 장소를 찾아내잖아. 후각 같은 촉이 발달한 거겠지. 오줌으로 자기 영역 표시를 해뒀다가 냄새로 나중에 찾아내는 개들처럼 말이지. 다른 맹수들은 주로 똥 냄새를 통해 상대방을 파악하고. 유영철은 정남규가 싸놓은 똥 냄새를 맡고 자신보다 강하다고 인식했던 거야.”
“결론적으로 프로는 프로를 알아본다는 말이죠. 그래서 유영철이나 정남규 같은 연쇄살인범들은 자기 나와바리에서만 범행을 했어요. 새로운 구역에 가면 거기를 거점으로 움직이는 범죄자의 미세한 똥 냄새를 감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절대로 남의 구역에 침범하거나 발을 들이지 않았죠.”
“자기보다 더 세거나 적어도 비슷한 괴물이 있다고 생각 하니 두려웠겠지.”
일제 강점기에 마태웅은 이대로 해방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반도를 집어삼키고 만주에서 말레이시아, 남양군도까지 대동아공영권의 대업을 이룬 일본이었다. 아버지 마성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표고밭과 밀감 농원의 마름으로 일본인을 주인으로 모셨다. 아버지의 충성 덕분에 일본 일신상업학교(日新商業學校)로 유학을 다녀 왔고, 서귀포 조선인 최고의 파워 엘리트로 자리잡게 되었다. 마태웅의 앞에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열렸지만, 전황은 날로 비극적이었다.
괌과 필리핀이 차례로 함락되고 오키나와마저 풍전등화 신세가 되자 일본은 패전을 예감한 듯했다. 일본은 어떻게 든 유리한 조건에서 종전 협정을 주도하려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미군은 도쿄 대공습을 필두로 전국 대도시를 차례로 폭격하면서 서서히 일본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에선 옥쇄 진지가 구축되고 있었다. 1945년 7월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일본군 65,000명, 민간인 120,000명이 사망했다. 일본군은 미군한테 죽임을 당하느니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지자며 남은 주민에게 자결을 강요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형제가 또 다른 형제를, 이웃이 이웃을 살육해야 했다. 거부하면 학살당했다. 궁지에 몰린 일본은 제주도에도 최후의 저지선을 구축했다.
“그럼 1977년 표고농장 살인 사건은 어떻게 된 거지?” 자꾸만 조바심이 일었다. 김수남은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다. 뺨을 얻어맞을 각오로 한 질문이었다. 현세희가 다시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죠?”
감정의 소용돌이가 여과 없이 실린 목소리였다. 여자가 진드기를 떨구듯 어깨를 툭툭 쓸어내고, 목을 다시 어루만졌다. 이어 옷매무새를 바로잡더니 허리를 반듯이 폈다. 평정심을 찾으려는 모습이었다.
“표고농장 사건은…….”
김수남의 눈동자가 커졌다. 현세희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두 팔로 테이블을 짚었다. 황소처럼 어깨를 불끈 일으킨 모습이었다.
“이봐, 기자 아저씨. 그렇게 초짜 기자 티 팍팍 내지 말고, 이야기 사냥꾼답게 내면의 눈으로 접근해 봐요. 왜 이렇게 서툴고 전투적인 거죠? 불만 보고 질주하는 하루살이처럼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죠? 왜 이 사람이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내면화시켜 보란 말예요. 기자는 사실을 추적하지만, 소설가는 그 사실 속에서 진실을 꿰뚫어 보기도 하잖아요.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구요. 그렇게 여기저기 함부로 스피드건 들이대지 말고 생각이란 걸 좀 하란 말예요. 이번 참에 상대방 존중하는 법도 좀 배우고!”
작가 소개
지은이 : 조중연
충청도 부여에서 태어나 월드컵이 끝나던 해 바람 따라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 「무어의 집」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역사적 팩트(Fact)와 상상력을 결합시킨 작품을 주로 쓰고 있다.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녹담만설(鹿潭晩雪)처럼 고요하고 포근한 삶을 목표로 살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9
1 변절의 계절 / 22
2 신진 사대부의 몰락 / 32
3 심층취재부 / 44
4 관덕정 살인 사건 / 66
5 새벽의 루트 / 81
6 나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 97
7 신탁의 밤 / 112
8 질풍노도 / 121
9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 / 130
10 떠도는 주변인 / 135
11 참회의 밤 / 156
12 갈등과 대립의 섬 / 168
13 독불장군 / 178
14 제주판 3김 시대 / 189
15 마지막 퍼즐 / 198
16 양마단지 / 210
17 샤론농원 / 228
18 물 위에 지은 집 / 250
19 하원리 표고밭 / 263
20 NK재단 / 288
21 표고밭 미스터리 / 297
22 천지연 로즈마린 /310
23 사실과 진실 / 323
24 폐쇄형 매듭 / 335
25 공소시효의 늪 / 350
26 수요일의 여자 / 380
27 칼과 자상 / 400
28 교래리 비밀 비행장 / 413
29 스텔스의 밤 / 431
30 축산 대전성 시대 / 445
31 송당호텔 / 461
32 한반도 최초 계시자 / 486
33 용연 줄다리 / 498
34 도둑고냉이 / 523
35 스티벤 / 541
36 모슬포 무적콜 / 564
37 괴물의 탄생 / 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