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페더럴리스트와 안티페더럴리스트 간의 논쟁은 한편으로는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를 설계하기 위한 엄밀하면서도 차가운 논리였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뜨거운 열정과 정신을 그 안에 살려 두기 위한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그리고 상대방을 제거해야 할 절대 악으로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펜과 말로써 치르는 경합, 상대방을 절멸하기보다 설득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두는 정치의 생생한 생명력을 보여 준 모범적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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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농부들이 쏘아 올린 총성이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콩코드 찬가」
올해는 미국 독립 선언 250주년이다. 미국의 계관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1837년 미국 독립 전쟁의 시작을 알린 렉싱턴-콩코드 전투를 기념해 발표한 시에서 1775년 그날 “농부들이 쏘아 올린 총성이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고 묘사했다.
미국인들만의 혹은 계관시인의 공치사만은 아니다. 미국 독립 혁명이 초래한 변화는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사회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간 미국 혁명은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처럼, 전제군주의 폭정에 휘둘리며 비참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민중들이 왕의 목을 베는 장면보다 드라마틱한 이야깃거리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연히 떨쳐 일어나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고, ‘모든 권력을 인민에게 돌려주자.’고 외쳤던, 두 혁명이 남긴 사회 변화와 드라마틱한 구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구히 잊히지 않을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다면 미국 혁명은?
왜 지금 미국 혁명인가?
미국 혁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미국 독립 혁명이 전 세계에 쏘아 올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그것은 ‘정치’와 ‘민주주의’다.
“정치란, 복수의 사람들이 모여 말과 행위를 통해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 해나 아렌트
“정치는 말로써 서로를 달래어 조정해 자유와 질서를 보존하려는 인간의 개명된 행위이다.”
- 버나드 크릭
정치사상가 아렌트에 따르면, 우리가 무엇보다 미국 혁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것이 이른바 ‘말들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미국 혁명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전쟁으로 시작되었지만, 전쟁이 끝나 갈 무렵부터는 장차 ‘우리 아메리카 인민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건설해야 할 공화국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두고 무력 충돌보다 공적 토론과 합의를 통해 그 과정을 이끌어 나갔다. 즉, 미국 혁명은 근대를 열었던 다른 혁명 모델들과는 달리, 혁명 과업을 그리고 정치를 적과 아의 생사를 둘러싼 전쟁,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대의에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을 제거해야 할 절대 악으로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펜과 말로써 치르는 경합, 상대방을 절멸하기보다 설득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두는 정치의 생생한 생명력을 보여 준 모범적 사례였다.
이 점에서 미국 혁명은 시민적 권리와 자유, 제한 정부를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변질되어 갔던 다른 혁명들과는 다르게, 이를 제도적으로 명문화함으로써, 시민이 통치에 참여하는 안정적인 제도를 만드는 데 성공한 유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에서 시작된 독립 전쟁은 아메리카 식민지들의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우리, 아메리카의 인민들’은 장차 어떤 정부 아래에서 살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질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남겨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법 비준 논쟁과 ‘말로 하는 전쟁’
미국 독립 전쟁의 승리 이후에도 13개 주는 여전히 전쟁 수행을 위해 잠정적으로 맺어진 ‘연합규약’(또는 ‘연합헌장’)이라는 느슨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는 국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취약했다. 별도의 중앙 집행부도 없었고, 독립적인 사법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무엇보다 세금을 거둘 수도, 군대를 동원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각 주는 서로 다른 화폐를 발행해 사용했고 통상 분쟁으로 갈등이 극에 달한 실정이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연합규약을 수정하기 위해 1787년 필라델피아에 모인 일단의 주 대표들은 애초 자신들의 임무였던 기존의 규약을 수선하는 대신, 이를 전면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연방 헌법’ 초안을 제정해 발표했다. 혁명적, 초헌법적 조치였던 것이다.
초안이 발표되자마자 미국 대륙은 거대한 찬반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연방주의자들은 기존의 연합규약이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연방 정부가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새로운 헌법안을 옹호하는 일련의 주장을 펼쳤다. 존 제이,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을 필두로 헌법안 비준을 주장하는 연방주의자들, 곧 페더럴리스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확대된 공화국이 다수 파벌의 횡포를 상쇄해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삼권분립, 양원제를 통한 경제와 균형으로 어느 한 기관이 권력을 독점할 수 없게 함으로써 강력한 중앙정부라도 그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맞서, 새로운 헌법안을 채택할 경우 주 정부의 권한이 침식되고, 인민들이 주변 동료들이 아닌, ‘멀리 떨어져 있는 엘리트들’에게 통치를 받아 독립 전쟁의 목표였던 진정한 자유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반대하는 일련의 주장들이 등장했다. 브루투스와 연방농부라는 이름의 필진으로 대변되는 반연방주의자들, 곧 안티페더럴리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소규모 정치 공동체에서만 시민의 덕성과 책임성이 유지될 수 있으며, 광대한 영토를 통합하는 공화국은 곧 전제정으로 변질될 것이라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시민과 대표 사이의 거리(지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거리도 포함된다)가 커질수록 정치는 자발적 동의가 아니라 강제력에 의해 유지되며, 이는 공화국의 진정한 정신을 훼손할 것으로 우려했다. 또한 그들은 입법권, 조세권, 징병권이 연방 정부에 집중되면 주 정부는 사실상 그 권한을 상실하고 유명무실해질 것이라 우려했다. 특히, 대통령제, 상원, 연방대법원은 인민들과 동떨어진 엘리트 지배 기구가 될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제안된 헌법안에 대한 비준 반대 운동과 더불어, 비준한다면 적어도 그 조건으로 개인의 표현, 종교, 언론, 재산권 등을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권리장전이 있어야만 연방 정부가 장기적으로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권리장전이 헌법안에 포함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처럼 연방주의자들과 반연방주의자들은 필라델피아 제헌의회(1787년 5월부터 9월까지) 이후, 헌법안이 발효되는 1789년 3월까지 헌법 조항 하나하나를 놓고 비판과 재비판을 거듭하며 지난하게 싸웠던 과정은 권력이 바로 시민들의 논쟁과 동의 속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제도화되는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연방제와 지역 자치, 효율성과 참여, 자유의 균형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은 미국 정치체제의 근간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둘러싼 가장 열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정치적 경합의 풍경을 보여 준다.
헌법 비준 논쟁은 단순한 헌법안을 둘러싼 법률 논쟁이 아니라, “장차 어떤 정부 아래에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말들의 전쟁’”이었다.
왜 안티페더럴리스트들인가?
페더럴리스트들이 민주주의의 몸(제도)를 만들었다면, 안티페더럴리스트들은 그 안에서 숨 쉬어야 할 민주주의의 영혼(정신)을 탐구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헌법 제정 논쟁을 거쳐, 필라델피아 제헌의회에서 제안된 헌법안이 근소한 차이로 비준을 받아, 오늘날 미국의 헌법으로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해서 연방제, 대통령제, 삼권분립, 권력 기관 간 견제와 균형에 기초한 매디슨주의적 대표제(대의제)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분업과 거대한 영토 국가에 기반한 근대국가 미국이 작동할 수 있는 안정과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거대한 근대국가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야심 찬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연방주의자들과 그들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미국 헌법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의 몸체, 곧 제도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반연방주의자들의 활동과 『안티페더럴리스트』(Anti-Federalist Papers)는 미국 헌법에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추가하도록 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실제로, 오늘날 권리장전으로 일컬어지는 수정헌법 제1조에서 제10조까지는 모두 반연방주의자들이 헌법안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민의 권리들, 종교·언론·출판·집회·청원의 자유를 비롯해, 변호인의 조력권과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배심재판 권리를 비롯한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던 국민의 기본권들을 보장하고 있다. 만약 안티페더럴리스트들이 요구한 이 같은 권리장전이 없었다면, 미국 헌법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문서가 아니라 정부의 권한만 규정한 ‘통치 매뉴얼’에 그쳤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 통치하는 일과 통치받는 일을 번갈아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대표자와 피대표자의 동일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반연방주의자들의 활동이 없었더라면, 민주주의는 자치의 원리가 아니라 엘리트 통치 제도로 그 빛이 바랬을 것이다.
반연방주의자들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기적인 인간들이 상호 견제와 균형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인민의 덕성과 자유가 양육될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을 추구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치자와 통치자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고 서로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지역 정부의 생명과 활기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중앙정부가 주 정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합규약을 반연방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근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주 정부에 대한 이 같은 중시는 타운홀 미팅이나 마을 공화국 같은 자치 기구들에 대한 강조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었다.
물론, 안티페더럴리스트들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지역사회의 자치 기구들(타운홀 미팅이나 마을 공화국 체제 등)은 헌법에 포함되지 못했고, 결국 미국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 열정은 혁명 전통의 ‘잃어버린 보물’이 되어 버렸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철학자 아렌트는 미국 건국기를 회고하며, 안티페더럴리스트들이 패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가장 찬란한 유산인 타운홀 미팅, 평의회 민주주의 등 ‘직접 참여의 공간’이 제도 밖으로 밀려났음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아렌트의 우려와 달리, 최근 다른 연구자들은 반연방주의자들의 주장과 정신은 헌법 비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살아남아 있으며, 헌법 체제 내에서도 여전히 로컬리즘이라는 또 다른 정신과 기질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여전히 활기차게 유지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나아가 이 같은 정신과 기질은 미국 정치는 물론이고,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인민을 소외시키고 민주주의의 정신을 왜곡하는 모습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큰 것이 역동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외치는 작은 공화국 이론, 인민과 대표의 동질성 및 대표의 계층 간 균형에 대한 강조, 대표에 대한 인민 통제의 중요성, 사법권에 대한 인민의 통제(배심재판을 통한)의 필수성, 통제 없는 권력으로서 사법권의 위험성, 사법부의 헌법 해석권이 초래할 ‘사법 우위 체제’의 위험성, 공화정체에 대한 상비군의 위험성, 중앙정부 권력에 대한 제한과 권리 중심적 사고 등은 민주주의 이론에서도 현재까지 그 생명력과 적실성을 상실하지 않고 여전히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제기하는, 중앙집권적 국민국가 중심의 정치 질서에 대한 회의와 경계의 시선은 국민국가 건설과 부국강병을 목표로 모든 것을 중앙으로 소용돌이치게 했던 한국 사회의 경로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데에도 중요한 성찰을 제공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가 왜 단순히 ‘좋은 제도’를 넘어 ‘시민의 활동’이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후마니타스는 2019년 『페더럴리스트』를 통해, 연방주의자들의 주장을 정확한 번역과 꼼꼼한 주석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미국 독립 혁명 250주년을 맞아, 이번에 국내 최초로 번역되는 『안티페더럴리스트 선집』은 『페더럴리스트』와 함께 미국 혁명을 배경으로 뜨겁게 전개되었던 정치적 논쟁을 생생히 복원하고 있다. 이 논쟁은 한편으로는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를 설계하기 위한 엄밀하면서도 차가운 논리였지만, 또한 그것은 민주주의의 뜨거운 열정과 정신을 그 안에 살려 두기 위한 감동적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개되었지만, 미국을 넘어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현재의 민주주의 모습을 되돌아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총서 소개
정치+철학 총서는 근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정치철학의 고전을 발굴해, 그 저자들의 정치철학이 어떻게 당대의 시대적 배경과 호흡하면서 탄생했고, 그들의 철학 체계 안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고전에 대한 재발굴과 재조명 작업을 통해 철학자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열어 주고, 정치와 정치적인 것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_간행위원을 대표해 조현진
간행위원
김영욱(서울대, 프랑스 계몽주의), 이상명(숭실대, 서양철학),
조현진(단국대, 서양철학), 홍우람(경북대, 서양철학)

“우리가 어떤 정체를 채택하든 그것은 자유 정체여야 하고, 아메리카 시민들의 자유를 보호하도록 만들어져야 하며, 인민의 완전하고 공정하며 동등한 대표를 허용하는 정체가 되어야 한다. ……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전체 합중국처럼 그렇게 거대한 규모의 나라에서는 자유 공화국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민이 선출자일지라도, 그 사회의 자연 계층들 중 어느 한 계층에게 다른 계층에 대한 부당한 지배력을 부여하게끔 대표가 구성된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대표이다. 전자는 점차적으로 주인이 되고 후자는 노예가 될 것이다. 이런 계층들을 각기 적절한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균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입법부 내의 균형, 정부의 각 부(府)들 사이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런 균형을 인민 전체로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