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기명진의 첫 소설집 『지키는 사람』이 걷는사람 소설 23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집에는 202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유명한 기름집」부터 등단 이후 집필한 미발표작까지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명진은 외로운 곳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 끊임없이 자기 탓을 하며 미안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땅히 흘려야 할 눈물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의 곁에서 나란히 걷다가 그들을 소설 속으로 호명한다. 『지키는 사람』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의 ‘지킴’을 수행한다. 자신과 놀랍도록 닮은 타인을 마주하며 고독의 실체를 확인하는 아버지(「이웃의 닮은 사람」), 유년의 결핍을 ‘서울 맛’이라는 감각으로 기억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남매(「아는 맛 조금만 더」), 그리고 투병 중인 친구와 함께 맑은 기름을 짜내며 삶의 찌꺼기를 걸러 내려는 이들(「유명한 기름집」)까지. 이들은 모두 누군가를, 혹은 어떤 기억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표제작 「지키는 사람」은 이 소설집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아픈 전처의 새 남편을 마주해야 하는 비참하고도 복잡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 성배가 병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낭만적인 의리나 거창한 사랑의 결실이 아니다. “정말 그렇게 사랑한다면 영화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라고 묻던 과거의 열정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는 상대방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겠다는 단단한 ‘지킴’의 의지가 남는다.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소설 23
기명진 소설 『지키는 사람』 출간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지, 묻는 대신
기어이 서로의 곁을 지키는 마음으로―.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지키게 돼. 자리를 떠날 수가 없어.”
기명진의 첫 소설집 『지키는 사람』이 걷는사람 소설 23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집에는 202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유명한 기름집」부터 등단 이후 집필한 미발표작까지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명진은 외로운 곳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 끊임없이 자기 탓을 하며 미안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땅히 흘려야 할 눈물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의 곁에서 나란히 걷다가 그들을 소설 속으로 호명한다. 『지키는 사람』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의 ‘지킴’을 수행한다. 자신과 놀랍도록 닮은 타인을 마주하며 고독의 실체를 확인하는 아버지(「이웃의 닮은 사람」), 유년의 결핍을 ‘서울 맛’이라는 감각으로 기억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남매(「아는 맛 조금만 더」), 그리고 투병 중인 친구와 함께 맑은 기름을 짜내며 삶의 찌꺼기를 걸러 내려는 이들(「유명한 기름집」)까지. 이들은 모두 누군가를, 혹은 어떤 기억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표제작 「지키는 사람」은 이 소설집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아픈 전처의 새 남편을 마주해야 하는 비참하고도 복잡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 성배가 병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낭만적인 의리나 거창한 사랑의 결실이 아니다. “정말 그렇게 사랑한다면 영화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라고 묻던 과거의 열정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는 상대방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겠다는 단단한 ‘지킴’의 의지가 남는다. 김미정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기명진은 “지금 내가 건넨 손은, 어제 잡은 누군가의 손”이라는 사실을 아는 작가다. 그의 소설 속에서 손을 잡는 행위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돌봄, 그리고 미래의 연결을 하나로 묶는 윤리적 결단이 된다. 강변에서 마주했던 새 떼의 날갯짓 소리를 행간에 넣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집 곳곳에는 생의 비릿한 바람과 세찬 날갯짓 소리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춘천의 안개 속에서 연결의 감각을 회복하는 「다시, 춘천」, 제주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 오히려 안심을 얻는 「보름의 제주」는 고립을 통해 비로소 타인에게 가닿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 소설집을 통과하는 동안 독자들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지켜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누군가를 만났다. 자신과 많은 게 닮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이가 같았다. 생일은 하루 차이가 났다. 태어난 도시가 같았다. 살고 있는 동네도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거의요?
동네가 같지 않고 거의 비슷하다는 말이 이상해서 되물어 보았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올리다 말고 도로 내려놓았다. 대접 안에는 손으로 뜬 납작한 수제비가 국물 안에 가득했다.
―「이웃의 닮은 사람」 부분
아버지는 거실 가운데 앉아 두 병째 소주를 마셨다. 선화는 옆에서 콩잎을 담갔다. 양념장을 커다란 양재기에 담아 놓고 콩잎에 한 장 한 장 양념을 입혔다. 나와 재민은 놀다 말고 거실로 뛰어들어 입을 벌렸다. 벌린 입으로 선화는 콩잎을 넣어 주었다. 큼큼하고 짠 콩잎을 밥도 없이 받아먹었다. 아버지는 콩잎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 밤은 오래오래 지속되었다. 아버지는 잠들지 않았고 양념할 콩잎은 더미로 쌓여 있었다. 아무도 자러 가란 말을 하지 않았다. 나와 재민은 마당을 뛰어놀며 내일을 잊었다. 무서웠던 어제를 잊었고 오지 않는 사람들을 잊어버렸다.
―「아는 맛 조금만 더」 부분
해수는 내 눈앞에 페트병을 바짝 들이밀었다. 맑은 기름이 느리게 흔들렸다.
찌꺼기가, 아니 침전물이 하나도 없지?
과연 병 안에는 가라앉은 게 하나도 없었다. 차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노란 기름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나도 해수도 한참 동안 페트병 안을 들여다보았다. 해수가 병을 흔들어 보였다. 추울렁 추울렁 느리게 흔들리는 기름이 참 맑았다.
우리도 저런 기름집 하나 차려 보려고.
―「유명한 기름집」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기명진
2021년 《진주가을문예》 단편 소설 부문, 202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500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이웃하며 살고 있다.
목차
이웃의 닮은 사람
아는 맛 조금만 더
유명한 기름집
버스데이
살미
지키는 사람
다시, 춘천
보름의 제주
해설
지금 내가 건넨 손은, 어제 잡은 누군가의 손이다
―김미정(문학평론가)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