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세기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혁신적인 음악가로 평가받는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의 유일한 자서전. 타계 한 해 전인 1990년 아메리칸북어워드를 수상한 이후 지금껏 전 세계 수백만 독자를 사로잡은 불멸의 이 음악 자서전이 새로운 번역, 마일스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낸 생생한 편집으로 마일스 탄생 100주년에 맞춰 한국 독자 앞에 도착했다.
출판사 리뷰
“까딱도 안 하면서 안전빵으로 가는 건 비밥이 아니야. 누구라도 계속 창조하고 싶다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해. 삶은 모험이고 도전이야. 나한테 와서 “「마이퍼니 밸런타인 」 좀 연주해주세요” 하는 놈들이 있어. (…) 그건 좋다 이거야, 그럼 난 뭐라 대답하냐면, 가서 음반을 사라고 일러주지. 더 이상 내가 그 자리에 있지를 않는단 말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야지 뭐 하러 지들 좋으라고 살아?”
마일스 탄생 100주년, 재즈의 제왕이 직접 말하는 삶과 음악의 모든 것
20세기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혁신적인 음악가로 평가받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이 유일한 자서전은, 1989년 사이먼 앤드 슈스터(Simon & Schuster)에서 초간된 직후 90년 어메리칸북어워드를 수상, 이후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즈 문헌의 정전이자 음악 자서전의 최고봉, 재즈계를 그려낸 완벽한 지도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퀸시 트루프(Quincy Troupe)가 마일스와 수년에 걸쳐 심층 대화하며 녹음하고 이를 문자로 옮겨낸 작업으로 마일스 특유의 거침없고 직설적인 어투를 텍스트 전편에 생생하게 살려냈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웨인 숄터, 허비 행콕 등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과의 일화, 수많은 밴드의 결성과 해체, 그들의 기복과 기벽, 그리고 마일스의 가족과 사랑 얘기, 더불어 인종차별 속 투쟁, 마약 중독과 극복의 과정, 후반기 5년간의 침묵기 등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대체 불가능한 1인칭 증언
비밥에서 쿨 재즈, 모달 재즈, 재즈-록 퓨전에 이르기까지(1940년대 비밥의 탄생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마일스 데이비스는 40여 년의 활동 기간 동안 적어도 다섯 차례 이상 재즈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십대였던 어린 시절 세인트루이스에서 에디 랜들과 첫 밴드를 결성한 이래 열여덟의 나이로 44년 9월 뉴욕에 입성해 버드(찰리 파커)와 만나며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한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음반으로 오늘날까지도 매주 수천 장이 판매되고 있는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 1959)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마일스의 경력과 음악 여정은 이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민턴스와 할렘, 빌리지, 52번가 사이를 밤새 떠돌며 버드와 디지를 찾아 헤매던 자신이 어떻게 찰리 파커 멤버로 합류하는지, 디지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열아홉의 나이로 찰리 파커의 리드 아래 사보이 레코드의 제안으로 첫 앨범을 어떻게 녹음하는지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레코딩을 마치는 일이 수월치는 않았어. 버드가 나더러 「코-코 」Ko-Ko를 연주하라고 했던 기억이 나. 이 곡은 「체로키 」의 선율에 기반을 두고 있었어. 당시 버드는 이미 내가 「체로키 」를 연주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가 이 곡을 하라고 했을 때 나는 싫다고 했어. 그 곡들을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이 판의 「코-코 」와 「워밍업 어리프 」Warmin’ Up a Riff, 그리고 「미앤더링 」Meandering에서는 디지길레스피가 트럼펫을 불게 된 거야. 나는 그 곡들 때문에 당황하고 싶지 않았어. 「체로키 」 정도 되는 템포의 곡을 연주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그 곡들을 거리낌 없이 연주할 수 없었어.”(103쪽)
『쿨의 탄생』이 탄생하다
그로부터 2년여 후 마일스는 스승 격인 찰리 파커를 세션으로 두고(계약 문제) 리더로서 멤버들을 결성하는 단계에 이르지만(존 루이스, 넬슨 보이드, 맥스 로치 참여), 본격적인 마일스 밴드의 첫 결과물로는 역시 『쿨의 탄생』을 들 수 있다. 마일스의 회고에 따르면, 『쿨의 탄생』은 여러 차례 세션을 통해 형상화되었는데 길 에반스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리 코니츠, 게리 멀리건, 케니 클라크 등 소프라노, 알토, 바리톤, 그리고 베이스를 둔 기본적으로 4성부의 합창단과 같은 보이싱을 기획했다고 한다(165~166쪽). 결국 비밥과 구분되는 마일스 본인만의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한 것으로, 이 앨범은 이후로 여러 차례 결성되고 변모되며 이어지는 마일스 밴드의 출발점이 된다.
마라톤 세션, 프레스티지 세 앨범
『쿠킹 』Cookin’,『워킹 』Workin’ 그리고 『릴랙싱 』Relaxin’을 둘러싼 전설은 식지 않는 뜨거운 재밋거리다. 1955년 가을 마일스 밴드에 존 콜트레인이 본격 합류하며 공연도 음반 녹음도 투어도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데, 이 시기 프레스티지와 계약을 이어가던 마일스는 컬럼비아에서 제시한 놀라운 음반 선인세와 로열티 금액에 프레스티지와의 계약을 하루빨리 종료해야겠다 마음을 먹는다.
“컬럼비아에서 내 첫 음반에 대해 선인세로 4,000달러를 지급하고, 매년 30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거. 그런데 또 프레스티지도 날 놓치길 싫어했어.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았을 때 날 받아줬다 이거지. 한 1년 프레스티지와의 계약이 남아 있었는데, 컬럼비아는 바로 녹음에 들어가길 원했어. 그런데 조지 애버키언이 밥 와인스톡을 어떻게 구워 삶았는지는 모르겠는데, 6개월 후에 내 음악을 녹음하기로 했어. 프레스티지와의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 음반을 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사이에 내가 프레스티지에서 녹음해야 할 앨범이 네 장이었어(결국 다섯 장 반의 앨범을 녹음하긴 했지만).”(285쪽)
미국의 음악 신에서 “백인들한테 돈을 못 벌어다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 메인스트림은 컬럼비아잖아. 프레스티지는 아니고 말야”라는 마일스의 회상에 반기를 들 듯 단 이틀 만에 리허설도 없이 거의 원테이크로 녹음된 이 신들린 3장의 앨범은 밴드의 완벽한 호흡, 라이브와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재즈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명반, 전설로 추앙받는다.
전설의 탄생 『카인드 오브 블루』
컬럼비아 이적 후 『마일스톤스』(Milestones, 1958)의 타이틀곡에서 이미 코드 진행 대신 스케일(모드)에 기반한 즉흥연주를 실험한 마일스는, 그 방향을 앨범 전체로 확장할 구상을 품고 있었다. 결정적인 촉매는 빌 에반스였다. 조지 러셀의 리디안 크로매틱 이론에 정통했던 이 백인 피아니스트를 밴드에 합류시키면서 마일스는 새로운 사운드의 윤곽을 잡아갔다.
“빌은 클래식 음악,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나 모리스 라벨 같은 사람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어. 나에게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인 아르투로 미켈란젤리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했던 사람이 빌이었어. 그 연주를 듣고 나는 사랑에 빠졌어. 빌은 아주 조용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내가 피아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했어. 빌은 수정 같은 음색과 마치 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톡톡 튀는 물방울 같은 음색을 가졌어. 나는 밴드의 사운드를 우선 빌의 스타일에 맞춰 더 부드럽게 바꿔야 했어.”(323쪽)
마일스는 이 앨범을 빌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설계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힌다. 1959년 3월 2일과 4월 22일, 단 이틀의 세션으로 컬럼비아 30번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 앨범은 거의 모든 곡이 첫 번째 완전한 테이크로 완성되었다. 연주자들에게는 세션 불과 몇 시간 전에 스케치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리허설도, 수정도, 재녹음도 없었다.
“나는 항상 내 밴드의 뮤지션들에게 ‘아는 것’을 연주한 다음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연주하라고 했어. 그러면 어떤 일이든 가능하게 되고, 그게 바로 위대한 예술과 음악이 탄생하는 순간이거든.”(315쪽)
존 콜트레인과 캐넌볼 애덜리의 색소폰, 빌 에반스의 피아노, 폴 챔버스의 베이스, 지미 콥의 드럼―이 여섯 명이 코드 진행의 속박에서 벗어나 스케일 위를 자유롭게 항해하며 만들어낸 다섯 곡은, 재즈의 어법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흥미롭게도 마일스 자신은 자서전에서 이 앨범을 머릿속에서 들렸던 소리를 완전히 실현하지 못한 “실패한 실험”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한 인터뷰에서 『카인드 오브 블루』가 거의 모든 재즈 비평가의 목록에서 1위를 차지한다는 말을 듣고는 짧게 답했다. “대단하지 않아?”
“변화하지 않은 건 음악이 아니야. 거기 그대로 있지 말라고.”
마일스는 재즈를 재창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백인 클럽 사장한테 주먹을 날리고 백인 평론가 일색이었던 비평계를 욕설로 깔아뭉개던 성격 그대로, 그는 헤로인 중독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음악을 향해 움직였다. 특히『비치스 브루』(Bitches Brew, 1970)는 일렉트로닉 음악과 힙합에까지 영향을 미친 작업으로, 마일스의 음악적 유산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영감의 원천이라는 증거가 되어준다. 퀸시와 마일스의 대화는 1988, 1989년까지 이어진다. 말년의 마일스는 『투투』 이후 존 맥러플린, 프린스, 산타나 등과 록과 재즈를 넘나드는 실험을 이어갔고 여전히 새로운 연주자들, 연주법을 집요하게 찾는 중이었다.
“프린스는 게이들한테는 교회와 같은 존재였어. 밤 10시, 11시가 넘어서 외출하는 사람들의 음악이었지. 그는 비트에서 힘을 발휘하고 비트 위에서 연주해. 내 생각에 프린스는 라벨 대신 드럼을 들으며 사랑을 나눌 거야. 그래서 그는 백인놈이 아니야. 프린스의 음악은 새롭고, 뿌리가 있으며, 1988년과 89년과 90년대를 반영하고 있었어. 내 생각에 프린스가 계속 그렇게 한다면 우리 시대의 새로운 듀크 엘링턴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557쪽)
“최고의 것들은 이제부터 나올 거 같은 기분이야.”
1956년의 후두 수술 이후 휴식 없이 이어간 연주 생활로 마일스는 영원히 예의 그 유명한 ‘쉰 목소리’가 되어버렸고, 버드랜드 클럽 앞에서 백인 경찰에게 구타를 당했던 사건, 그리고 오랜 헤로인 중독으로 인한 고관절 치환 수술, 이어진 간 질환과 폐렴 등은 그의 시간을 예기치 못하게 앞당겨 버렸다.
이 대화는 책이 출간되기 직전인 89년 초반까지 이어졌고, 90년 어메리칸북어워드 수상 이후 91년 8월 퀸시 존스와의 공연이 그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고작 한달 후 91년 9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기에 이 대화의 마지막은 믿기지 않아 독자는 오래도록 책을 덮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샘솟는 창의력, 새로운 음악을 향한 열정과 실험, 도전을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 어느 구석에서도 통증이나 좌절의 희미한 뉘앙스조차 느낄 수가 없다. 여전히 생생한의 마지막 대화는 오늘 다시 새로운 독자를 만난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이 요즘 더 절박하게 다가와. 요즘에는 떠올랐다가 잊어버린 음악이 기억나지 않으면 돌아버려 정말. 자나 깨나 그 생각뿐이야. 계속 골몰해. 아직도 음악이 날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말 난 축복받은 거야. 내 음악을 하나에 맞춰서 밀고 나가려고 노력할 뿐이야. 하나에 맞춰 밀고 나가도록. 나중에 봐.”
흑인 마일스 데이비스
『카인드 오브 블루』가 발매되고 8일 후인 1959년 8월 25일 밤, 버드랜드에서의 공연 휴식 시간에 마일스는 클럽 앞에서 경찰에게 구타당했다.
“가라고, 뭣 때문에? 나는 아래층에서 일하고 있어. 저기 위에 내 이름이 있잖아. 마일스 데이비스.” 그 새끼가 말했어. “네가 어디서 일하는지는 상관없어. 꺼져! 꺼지지 않으면 체포하겠어.” 나는 그냥 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꼼짝 않고 서 있었어. 그러자 그가 “너는 체포됐다!”라고 말했지.”(340쪽)
마일스가 움직이지 않자 경찰은 체포를 시도했고, 뒤이어 달려든 사복형사가 그의 머리를 경봉으로 내리쳤다. 피 묻은 양복 차림으로 연행되는 마일스의 사진은 다음 날 뉴욕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이 이미지는 이후 수십 년간 미국 인종차별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게 된다. 마일스는 두 건의 혐의 모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 밤이 남긴 상처는 판결로 치유되지 않았다.
“여기는 뉴욕이잖아.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힙한 도시 말이야. 하지만, 또다시 백인것들에게 둘러싸여서 이런 일을 겪고 나니 흑인에게는 정의라는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됐지. 절대로.”(342쪽)
이 자서전이 단순히 음악가 회고록을 넘어서는 것은, 이러한 증언들 때문이다. 마일스는 음악 산업에 뿌리 깊이 박힌 인종의 위계를 끊임없이 고발한다. 쿨 재즈가 웨스트코스트의 백인 연주자들을 스타로 만들어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밥의 대안, 아니면 흑인 음악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결국 똑같은 옛날이야기야, 흑인 것을 또 빼앗긴 거지.” 십대 시절 음악 콩쿠르에서 인종 때문에 탈락했던 기억, 말리부 해변가 자택에서 살면서도 되풀이된 경찰의 불심검문, 아내가 옆에 앉아 있는데도 음주운전 혐의를 씌우던 경찰들―마일스의 경력 전체를 관통하는 이 경험들은 자서전 곳곳에 날것 그대로 박혀 있다. 이 증언들이 오늘 한국어로 읽히는 의미는 적지 않다. 마일스가 겪은 것은 한 천재의 불운이 아니라, 재즈라는 음악 자체가 탄생하고 성장한 조건 그 자체였다. 인종차별은 이 음악의 배경이 아니라 질감이며, 그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어쨌든 나는 처음 디즈와 버드의 연주를 들었던 1944년 그날 밤의 느낌에 좀 더 다가가려 해왔지만, 그 느낌에는 결코 이를 수가 없어. 비슷하게는 갔지만 바로 거긴 아냐. 언제나 그 느낌이 어디 있는지 찾아 듣고 느끼고는 있지. 난 연주할 때마다 내 음악 안에서, 또 음악을 통해서 그 느낌을 잡으려 노력하지. 그때 생각이 나. 애송이였던 내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내가 오늘날까지도 내 우상인 그 위대한 뮤지션들과 어울렸던 시간이. 난 뭐든 다 빨아들였어. 참 대단한 시절이었지. _ (프롤로그 중에서)
선생님들은 좋았지만 흑인 학교는 화장실이 새질 않나, 아무튼 존나 후졌었어.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있는 똥구덩이처럼 씨팔 좆같은 냄새가 났다구. 학교에 가면 냄새 땜에 밥을 먹을 수가 없었고 배가 아팠어. 우리 흑인 어린이들은 무슨 가축 떼 취급을 받았어. 같이 학교 다니던 애들 중에는 에이, 그 정도로 나쁘진 않았어, 그러는 애들도 더러 있지만, 내 기억으로는 암튼 그래.
레슨 받기도 전 한 예닐곱 살 때였나, 할아버지가 사시는 아칸소에 방문했을 때, 특히 토요일 밤 예배 때 들리던 음악도 기억나. 존나 뻑가는 음악이었어. 칠흑같은 밤에 시골길을 걸어가다 보면 갑자기 어디선가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는 거야. 다들 유령이 산다고 말하는 으스스하게 생긴 나무 사이로 말이야. 또 삼촌이나 제임스 사촌이나 뭐 그런 친척들과 길을 가다가 보면 한편에서 꼭 비비 킹 식으로 치는 기타 소리도 들었던 거 같아.
작가 소개
지은이 : 마일스 데이비스
20세기 재즈의 흐름을 끊임없이 바꿔온 트럼펫 연주자이자 작곡가, 밴드리더다. 일리노이주 올턴에서 태어나 이스트세인트루이스에서 성장한 그는 1940년대 뉴욕으로 건너가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비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길 에번스와의 협업으로 『쿨의 탄생』(Birth of the Cool)을 발표하며 쿨 재즈를 개척했고, 1950~60년대에는 존 콜트레인, 캐넌볼 애덜리, 허비 행콕, 웨인 쇼터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과 함께 수많은 명반을 남겼다.마일스 데이비스는 하나의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았다. 모달 재즈, 하드 밥, 쿨 재즈를 거쳐 전자 악기와 록·펑크를 결합한 퓨전 재즈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재즈의 경계를 확장했다.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Sketches of Spain), 『비치스 브루』(Bitches Brew) 등 그의 앨범들은 재즈사에서 결정적인 이정표로 평가받는다.평생에 걸쳐 젊은 음악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실험한 그는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시대를 이끈 리더이자 혁신가였다. 음악적 성취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고독과 투쟁, 인종…차별과 사회 현실에 대한 인식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그는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은이 : 퀸시 트루프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 편집자로,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Miles: The Autobiography)을 구술 채록·정리했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오랜 지인이자 인터뷰어로서, 수년에 걸친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대화를 문장으로 옮겼다. 이 책은 재즈와 흑인 문화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목소리와 리듬을 최대한 살린 서술로 평가받는다. 한편, 트루프는 재즈·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를 주제로 한 다수의 시와 평론, 편집 작업을 통해 미국 문학과 문화 비평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목차
프롤로그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퀸시 트루프의 후기
감사의 말
다시, 이 책을 옮기고 나서
마일스 데비이스 스튜디오 녹음 앨범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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