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적게 먹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도미니크 로로가 전하는 소식(小食)의 미학최근 식문화는 더 빠르고 자극적으로 변하고, 국경이나 전통의 한계마저도 뛰어넘은 듯하다. SNS와 방송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에서는 ‘먹방’이나 이색 요리로 소비를 부추긴다. 메뉴 하나가 유행하면 오픈런, 사재기 등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마치 게임이나 스포츠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음식은 삶의 근본적이며 일상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무엇보다 편안하고 안심하며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도미니크 로로는 더 적게, 더 즐겁게, 더 건강하게 먹는 문화를 강력히 권장한다. 소식(小食)이 단순히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을 뛰어넘어 배고픔과 공허함을 구분하는 감각을 되살리는 등 내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본질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 배가 고픈가?”
내 몸이 원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을 알아채기이 책은 ‘소식’을 주제로 다룬 여느 책들과 다르다. 적게 먹는 것이 몸에 좋으니 실천해 보라는 선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식이 몸뿐 아니라 마음도 성장시켜 인생 전반을 바꾸어 놓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설득한다. 우리를 “끊임없이 배를 채워야 하는 소비 기계로 전락시켜 병들게 하는 사회”를 지적하며, “소비 중독이 자신을 상업적 투기와 이윤 추구의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고서, 소비의 유혹에 넘어가고 이용당하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소식을 해야 할까. 저자는 “지나치게 많이 먹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식품회사들에 있다. 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우리 위보다 많은 음식을 먹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식은 원래의 몸으로 회복하는 방법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소식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덮어 놓고 양을 줄이라고 하지 않는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하라 한다. 요즘 우리는 시간에 쫓기며 허겁지겁 대충 끼니를 때운다. 비록 식사 시간이더라도 먹는다는 행위에 온전히 마음을 쏟지 못한다. 일을 하면서 먹거나 넋을 놓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씹는 둥 마는 둥 하기 일쑤다. 그 바람에 타고난 몸 안의 리듬이 깨져, 마음도 흐트러진 채 살아가고 있다. 삶이 고되고 공허한 이유다. 소식은 이렇게 어그러진 몸과 마음의 균형을 다시 잡아 준다. 이 균형이 평정심, 인간이 도달하려는 궁극의 상태다.
“접시의 크기에 따라서 먹을 것이 아니라, 포만감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요리를 담아낸 사람은 그날 우리가 느끼는 공복감의 정도를 알 리 없기 때문이다. ‘남기지 말고 먹어라.’ 어릴 적 수없이 듣던 말은 이제 잊어라!” ― 아리앙 그랭바시(영양학자)
건강법에 정답이 없다는 것만 사실이다. 몸에 좋다는 것은 유행처럼 좇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식(小食)의 경우도 그렇다. 누구에겐 소식이나 ‘1일 1식’이 효과가 있어도, 누구에겐 영양 결핍만 초래하는 위험하고 무모한 시도일 수 있다. 그러므로 건강법을 적용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금 자신의 상태를 바로 아는 것이다. 이 책이 ‘몸과 대화하기’로 시작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나도 모르게 다 먹었다”
소식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현대 소비사회는 우리를 끊임없이 배를 채워야 하는 소비 기계로 전락시켰다. 식품 회사들은 이윤을 위해 포장 단위를 키우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지친 하루 끝에 습관적으로 찾는 배달 음식이나 가공식품은 진정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몸에 독소를 쌓이게 할 뿐이다. 이제 외부의 유행을 따르는 대신, 자신만의 ‘황금률’을 세워야 할 때이다. 직접 요리하는 시간은 독립성을 되찾고 인생을 음미하는 과정이며,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을 선택할 자유를 행사하는 일이다. 만약 과식을 했다면 ‘이틀의 일탈은 이틀의 만회로’라는 규칙을 적용해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만드는 과정은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하여 두 배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예전에는 아이들 간식으로 바나나 한 개면 충분했지만, 오늘날에는 빅맥 세트, 샌드위치, 푸딩, 냉동식품, 초콜릿바, 설탕이 든 음료수 캔 등을 정상적인 양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그 ‘단위’로 제시된 양을 전부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식품회사는 우리 위장이 그것을 다 소화할 수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욕구에 대한 조정권을 그들에게 내맡긴다. 아무 생각 없이 단지 ‘한’ 개를 먹는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양을 누가 정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비스킷이나 크루아상 한 개의 크기를 정했을까? 식품회사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자신들의 이익이다. ―53쪽
그러므로 소식은 원래 몸을 회복하는 방법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소식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덮어 놓고 양을 줄이라고 하지 않는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하라 한다. 요즘 우리는 시간에 쫓기며 허겁지겁 대충 끼니를 때운다. 비록 식사 시간이더라도 먹는다는 행위에 온전히 마음을 쏟지 못한다. 일을 하면서 먹거나 넋을 놓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씹는 둥 마는 둥 하기 일쑤다. 그 바람에 타고난 몸 안의 리듬이 깨져, 마음도 흐트러진 채 살아가고 있다. 삶이 고되고 공허한 이유다. 소식은 이렇게 어그러진 몸과 마음의 균형을 다시 잡아 준다. 이 균형이 평정심, 인간이 도달하려는 궁극의 상태다.
“요리하는 나, 너무 기특해”
제철음식, 예쁜 그릇, 빗소리…
오감을 깨우는 시간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오감을 깨우는 축제이자 영혼을 살찌우는 예술이어야 한다. 제철 식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가장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영양을 섭취하며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또한, 식사 후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은 면역력을 강화하고 소화를 도우며,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선사한다.
특히 작은 그릇과 아름다운 식기를 사용하는 것은 시각적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식사량을 조절하게 도와준다. 요리의 색감과 질감, 씹을 때의 소리,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기를 음미하며 천천히 먹을 때, 평범한 한 끼는 ‘한 편의 시(詩)’가 된다. 이처럼 오감을 활용해 식사하는 것은 뇌세포를 활성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강력한 방법이다. 소박하지만 품질 좋은 재료로 정성껏 차린 식탁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며, 직접 만든 요리는 그 어떤 보약보다 몸과 마음에 강력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소식을 하긴 하는데, 아무 곳에서 대충 아무 음식으로 때우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그런 기계적인 실천은 오래가지 못하거니와 정신 건강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가장 좋은 음식은 자신이 요리한 것이며, 요리가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수련법임을 알려 준다.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을 요리하는 데 쓰는 10, 15분이 전혀 다른 인생길을 열어 준다. 요리한 음식은 가장 우아한 곳에서, 가장 세련되고 예쁜 그릇 혹은 접시에 담아 먹어야 제격이다. 우아한 곳이란 비싼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흩뿌리는 비를 감상할 수 있는 창문가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영화가 막 시작된 티브이 앞 혹은 햇살이 쏟아지는 발코니일 수도 있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허겁지겁 걸신들린 듯 먹지 말자는 것이다. 매번 식사가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단조로움을 거부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을 찬란하게 만드는 비법이니 말이다.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면서 소박하게 자신이 선택한 요리를 한 입씩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터득해야 하거나 다시 배워야 할 일일 뿐이다.
공복감과 포만감이라는 감각에 귀를 기울이려면, 먼저 배고픈 상태와 배부른 상태를 구분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 말은 아침이든 점심이든 식사 시간이 되었더라도, 허기지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뜻이다. 허기지지 않을 때 먹는 건 언제든 과식이며, 즐거움이 없는 무덤덤한 식사가 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