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미하이 스파리오수는 놀이를 서구 지적 전통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론적 구조로 재해석하면서, 니체·하이데거·핑크로 이어지는 철학적 계보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놀이의 존재론적 개방성과 문화정치학적 의미를 확장했다. 경쟁과 우월성 중심으로 굳어진 서구 지식 체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놀이를 철학·문학·문화비평 전반의 거시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그의 작업은 지금 우리에게 긴급히 필요한 통찰이었다.
심리적 접근을 대표한 브라이언 서튼-스미스조차 스파리오수를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대규모의 비판 연구”의 저자로 평가했다. 관점은 다르지만, 서튼-스미스가 스파리오수를 ‘놀이 담론을 가장 급진적으로 확장한 학자’로 인정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이론적 무게를 더욱 분명히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유아교육 연구자들에게도, 철학적 토대 위에서 놀이를 다시 사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가장 적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놀이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아울러 그 본질과 기능을 설명하려는 무수한 시도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놀이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2,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포착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다. 우리 모두 놀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이를 개념화하려 할 때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다시 말해, 놀이는 독일어에서 ‘das stumme Wissen’(암묵적 지식)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속하며, 이는 이성적 사고보다는 직관과 관련된다. 놀이에 대한 정의는 수백 가지에 이르지만,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특히 과학 분야의 일부 현대 이론가들로 하여금 놀이의 정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도록 만들거나, 놀이를 하나의 역설로 간주하도록 이끌었다. 한편, 문화이론 및 문화인류학 분야의 일부 학자들은 놀이와 게임을 구별하는 방식을 선호하며, paidia와 ludus를 구분하기도 한다. 이 구분에서는 paidia가 정의될 수 없는 개념으로 남아 있는 반면, ludus는 규칙에 의해 제한된 자유, 즉 제도화된 놀이로 정의된다.
이 책은 철학적 담론과 과학적 담론 속에서 놀이 개념의 역사가 보여주는 내적 운동에 집중한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 역동성이 각 분야에서 서로 다른 경로를 따른다는 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각 학문 분야가 문화적 권위를 놓고 투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놀이 개념들 간의 동일 학문 내 투쟁뿐 아니라, 학문 간 투쟁 또한 반드시 고려해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이 투쟁 과정에서, 놀이 개념들은 의도적으로 서로로부터 물러나거나 공격하며, 동맹을 형성하거나 해체하고, 친연성을 주장하거나 거부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점에서, 놀이 개념들의 정체성은 차이의 놀이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지, 차이가 정체성 속에서 환원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아곤(투쟁, agon)을 설명할 수 있는 역사적 모델 역시 투쟁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다양한 놀이 개념들 간의 차이를 정체성의 틀 안에서 해석하려는 헤겔적 모델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대신, 그들의 정체성을 기능적 차이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비코적(Viconian) 혹은 니체적 모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놀이 또한 낭만주의 형이상학에 유용한 개념이 된다. 낭만주의 형이상학은 이성과 욕망 또는 의지, 즉 정신의 이상 세계와 감각의 물질 세계 사이를 매개하려고 시도한다. 놀이 역시 예술과 마찬가지로 양면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이러한 매개적 역할에 이상적으로 적합하며, 19세기 관념론 철학 전반에서 이러한 목적을 위해 활용된다. 비록 초기에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놀이 역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였으며, 그 이유 역시 동일했다. 즉 놀이가 지나치게 분명히 전(前)이성적 혹은 원시적 사고방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차 놀이 개념에서 전이성적이고 폭력적이며 임의적인 의미가 제거되며, 철학의 존재론적 및 윤리적 허구를 떠받치는 유용한 도구로 전환된다. 다시 한번, 놀이를 플라톤적 및 신플라톤주의적 형태로서 진지한 철학적 주제로 정립한 인물은 실러였다. 그 이후 놀이의 형이상학적 지위는 빠르게 상승하여, 젊은 헤겔은 심지어 놀이가 가장 가볍게 보이는 순간에도 “가장 고귀하며 유일하게 참된 진지함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문구는 이후 놀이 이론가들이 끊임없이 인용해 온 말이 되었다. 그러나 칸트와 실러로 대표되는 독일 관념론 철학 속에서 놀이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 개념이 모순과 애매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곧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과 애매성은 놀이 개념이, 서양 사상의 다른 여러 핵심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성과 전(前)이성 사이에 분열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미하이 스파리오수
미국 조지아 대학교 비교문학 및 문화간 연구과의 학과장을 역임한 학자로, 놀이 철학과 아곤(agon) 연구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니체·하이데거·핑크의 전통을 토대로 경쟁·투쟁·놀이의 문화정치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며, 비아고니즘적·비경쟁적 문화 모델과 세계-형성의 놀이적 역동을 제시하였다. 『Dionysus Reborn』, 『The Wreath of Wild Olive』 등 주요 저작을 통해 놀이를 상징적·초문화적 상호작용의 장으로 규정하며 새로운 문화적 지성의 방향을 열었다. 브라이언 서튼-스미스로부터 “가장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비평적 놀이 이론가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2021년 타계하였다.
목차
역자 서문
서문
서론: 놀이, 힘, 그리고 서구적 사고방식
제1부 놀이와 근현대 철학 담론
제1장 독일 관념론에서의 놀이와 미학적 전환
1.1 임마누엘 칸트: 철학 그리고/혹은 놀이?
1.2 프리드리히 실러: 이성의 놀이
제2장 억압된 것의 귀환: 놀이와 힘 철학
2.1 놀이와 니체의 힘에로의 의지
2.2 니체 이후: 마르틴 하이데거와 대존재의 놀이
제3장 놀이와 예술-형이상학자들
3.1 오이겐 핑크와 세계의 놀이
3.2 놀이와 존재론적 해석학: 한스-게오르그 가다머
3.3 질 들뢰즈: 시뮬라크르의 놀이
3.4 글쓰기와 놀이: 자크 데리다
제2부 놀이와 근현대 과학 담론
제1장 놀이와 인간 진화
1.1 스펜서, 그로스, 그리고 인간의 놀이
1.2 놀이와 정신분석 이론
1.3 피아제, 베이트슨, 그리고 현대 놀이 이론
제2장 놀이와 자연선택
2.1 놀이, 생존 투쟁, 그리고 적자생존
2.2 우연과 필연
2.3 르네 톰과 생물학적 놀이
제3장 현대 과학에서의 놀이와 미학적 전환
3.1 한스 바이힝거의 마치 ~인 것처럼의 철학
3.2 놀이와 신물리학자들
3.3 현대 과학철학에서의 놀이와 무정부주의 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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