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파친코>의 독자들이라면 반드시 사랑할 작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리사 시 K-콘텐츠 시장을 다시 깨우는 조선인 소녀의 서사시전 세계를 강타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남긴 것은 귓가에 맴도는 사운드트랙 외에도 K-콘텐츠가 이미 거대한 문화현상이며, 순수한 ‘재미’만 따져도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여기 한국 근현대사 속 이야기로 영미 독자들을 사로잡고 2만 개에 달하는 서평을 받은 데뷔소설이 있다. 서삼독에서 출간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디아스포라 소설 《화이트 멀버리》다. 무명 작가의 데뷔소설아지만 출간 후 아마존 역사소설과 여성소설을 비롯해 3개 분야에서 1위에 올랐으며, 아마존 퍼스트 리즈 에디터 추천작과 〈북리스트〉 외 유수의 매체가 꼽은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아시아의 국지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북미와 유럽의 4개 언어로 번역 수출된 바 있다.
‘이 소설은 나의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K-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이정표 작가는 이 소설의 단초를 자신의 할머니가 가족에게도 꽁꽁 숨겨왔던 젊은 시절에서 찾았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조선인의 몸으로 간호사이자 산파가 되고, 전쟁 속에서 바다를 건너 탈출한 할머니의 역사를 실화와 상상력, 그리고 마찬가지로 미국 이민자였던 자신의 경험과 뒤섞어 환상적인 이야기로 빚어냈다. 덕분에 소설에는 시대와 인물의 다양한 층위가 생생하게 담겼다. 여성 인권이 나날이 커가던 시대에 맞춰 하루하루 달라지는 꿈과 사랑이 설득력 있게 그려질 뿐 아니라, 거시적 역사 속의 미시적 인간이 삶을 얼마만큼 이기적으로, 또 이타적으로 꾸려가야 할지 갈등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소설을 읽노라면 질문하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을 사는 우리는 어찌 살았을 것인가? 개인으로서 이보다 떳떳한 삶을 장담할 수 있는가? 역사도 전쟁도 아랑곳없이, 한 인간의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미영의 삶은 독자를 때로 웃음 짓고 눈물짓게 만들며, 끝내 겸허하게 만든다.
미영, 미요코, 미영을 둘러싼 메아리 “네가 어디서 왔는지, 절대로 잊지 마.” 조선인들이 일제 치하에서 논밭을 빼앗기고 소작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신세로 전락한 1928년, 소설은 평양 근처 시골 맹정리에 사는 과부의 막내딸이 품은 맹랑한 꿈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미영’의 어머니는 과부였다가 부인이 있는 남자와 재혼한 첩실이다. 만주로 시집간 첫째 언니는 만주로 생사도 알 수 없고, 이젠 둘째 언니마저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여자에게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라곤 흰쌀밥을 먹인다는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뿐. 하지만 똑똑한 미영은 다르다. 학교를 계속 다니고 선생님이 되어서 누구에게도 시집가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꿈을 꾸는 중이다. 미영은 교토에 사는 둘째 언니 집에 얹혀살며 중학교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삶은 빠르게 뒤바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그로부터 15년, 삶은 미영에게 외로움도 자존심도 억눌러야만 하는 무엇이었다.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사랑은 속수무책으로 찾아오고, 태평양전쟁의 기운이 감돌면서 미영은 운명을 영원히 바꿔놓을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생존, 그리고 때로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 상흔처럼 새겨진 트라우마와 정체성에 대한 우아하고도 강렬한 소설 “이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바로 우리의 이야기(history)다”_ 작가의 말“이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바로 ‘우리의 이야기(history)다. 한번은 친구가 내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냐고 물어서, 그 이야기는 나의 첫 책에 담겨 있다고 말해주었다. 《화이트 멀버리》는 나의 할머니가 일제강점기에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자 내 데뷔작이다.
‘로사’는 나의 첫 이름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을 때 내 이름은 ‘해원’이었는데, ‘우아한 공주’라는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그 이름은 사라졌다. 부모님은 내가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를 바라셨고, 이방인이었던 나 역시 소속감을 간절히 바랐다. ‘권’조차 태어났을 때의 성이 아니다. (중략)
가족은 우리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형성한다. 지금 내가 꾸린 가족은 나의 원가족과는 외모, 생각, 감정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르고, 내 미래의 가족들도 아마 다를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곳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지, 가족과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다.”
_작가 인터뷰
로사 권 이스턴은 일곱 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그녀와 가족의 역사는 복잡한 근현대사 그 자체다. 작가의 할머니는 소설 속 미영처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떠났고, 태평양전쟁의 참혹함을 피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남북이 분단된 뒤에는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하지만 3대에 걸친 이주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작가가 일곱 살 되던 해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떠난다. 이주는 항상 살아남기 위해, 지금보다 잘살기 위해 결정되었지만 생존이 꼭 행복을 뜻하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끊임없는 외로움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화이트 멀버리》에서 일본인들이 재일조선인에게 가하는 차별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그 단어조차 무색할 정도다. 제대로 된 집 없이 판자촌에 살고, 조선인 구역 주소지만으로 일자리가 제한되며, 육체노동밖에는 허락되지 않는 현실. 모든 모임이 감시당하는 한편, 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인이 가장 먼저 징집된다. 이중에서 미영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흔들리는 자기 정체성과 외로움이다. 살아남기 위해 출신을 숨기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를 선택한 미영은 자신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타국의 풍요로운 타자들과 절박한 동포들, 두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죄책감을 감내하는 것 자체가 미영에게는 형벌이었음을, 소설은 ‘미요코’로 불리는 문장 마디마디마다 일깨우고 있다.
이름과 꿈을 누일 단 하나의 ‘집’을 찾아서 시대와 싸워 한 타래 운명을 움켜쥔 한 여성의 오디세이 《화이트 멀버리》가 디아스포라 소설로서 특별한 점은 역사적 사실에 천착하기보다 그 시대 재일조선인들이 보편적으로 느꼈을 ‘영원한 이방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과 조선인 모두에게 거리를 두는 미영에게,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면서도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삶을 개척하는 미영은 그 끈질긴 생명력이 한국인을 똑 빼닮았다. 《작은 땅의 야수들》로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 작가는 이를 두고 “ 미영의 회복력과 자기결정 의지가 한국이 걸어온 궤적을 생생하게 비춘다”고 평하기도 했다.
또한《화이트 멀버리》는 현실적이고 정직한 여성 소설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에서 미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돈’이다. 미영은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어 어머니의 치료비를 대고, 기모노가 아닌 양장을 사 입으면서 자존감이 올라가는 경험을 한다. 아들의 양육비를 돈을 벌고, 여비를 모아 조선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꾼다. 엄마와 거리감을 느끼던 아들도 미영의 직업을 보며 어렴풋이 그 강인함을 깨닫는다. 미영에게 여성의 인권이 표현되는 무대는 오롯이 ‘돈’이었다. 돈이 여성을 자립하게 하고, 누군가를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할 자유를 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서미영의 이야기는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과 꿈을 누일 단 하나의 집’을 찾아가는, 험난하지만 가치 있는 오디세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결혼 준비가 착착 진행되면서 보배 언니를 붙들어둘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도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언니마저 순순히 가기로 마음먹은 마당이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 와중에도 미영은 자신이 양일수에게 시집간다는 사실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 뾰족한 수가 도통 떠오르지 않지만, 어떻게든 그 팔자는 벗어날 것이다.
“어머니 말씀이 옳아. 일본으로 시집가면 더 잘살게 되겠지.” 보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게 뭐니? 내가 진짜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 사랑이 뭔진 몰라도, 있는 거라고 믿을래.”
미영은 언니의 말을 곱씹어보았지만, 이내 사랑 따위 알 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배 언니는 언제나 세상만사에서 밝은 면을 찾아내고 너무 빨리 자신의 팔자를 받아들이는 쪽이다.
미영은 중얼거렸다. “나는 절대 양일수를 사랑하지 않을걸.”
아예 결혼을 안 할 수는 없을까? 김 선생님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 읍내에서 하숙집을 드나드는 김 선생님을 본 것도 여러 번이었다. 토요일이면 선생님은 혼자 시장에 나와 학생들에게 나눠줄 연필을 사기도 했다. 보통 김 선생님 나이의 여자들에게는 대부분 남편이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되고, 스스로 돈을 벌면 남편이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새 옷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살 때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어머니와 달리,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