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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물 이야기 1) 이태영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아이세움 | 3-4학년 | 200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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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이태영 박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에요. 이태영 박사는 어려서부터 언젠가는 변호사가 되어서 억울한 여성을 돕겠다고 생각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을 했답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된 뒤에는 평생 동안 우리 나라의 여성들을 위해 일을 했어요.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여성이 절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갖고 싶으세요? 이태영 박사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해 보세요.

  출판사 리뷰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 이태영
2001년 12월 17일 한국 가정 법률 사무소에서 이태영 선생님의 3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그의 이름 앞에 늘 따라다니는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그를 추모할 만하다. 지금이야 여성들의 법조계 진출이 활발해졌지만 이태영이 변호사의 꿈을 꾼 일제 시대에는 여자는 그저 시집가서 애만 잘 낳으면 최고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었다. 하긴 일제시대에도 서구 풍조의 영향을 받아 남녀 평등을 주장한 신여성들은 있었지만 이태영같이 온갖 고난을 뚫고 자신의 뜻을 이룬 사례는 찾기 어렵다. 당시에는 여자가 법학을 공부하려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돈이 없는 그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정일형을 만나 혼인했지만, 그것은 고난의 시발점이었다.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으로 정일형은 5년 가까이 징역살이를 해야 했고, 이미 삼남매의 어머니였던 이태영은 혼자의 힘으로 자식들과 늙은 시어머니를 건사해야 했고, 남편의 옥바라지까지 해야 했다. 누비이불 장사로 연명하던 이태영에게 남편의 출소와 해방은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그는 비로소 제대로 된 법률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서울 대학교 법대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나이도 문제였지만, 지금도 애 엄마가 공부를 하려면 어려운데 당시에는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쉬는 시간이면 남의 눈길을 피해 아이의 젖을 먹이고 다시 수업에 들어가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한 끝에 졸업을 할 수 있었고, 그런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고등 고시 사법과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그의 합격 뒤에는 여자 아이라도 공부를 하고 싶어하면 끝까지 공부를 시킨 어머니, 꿈을 심어 준 큰오빠, 아내의 공부를 위해 방까지 따로 마련해 준 남편 정일형이 있었지만 고난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 것은 전적으로 이태영의 투혼이었다.

변호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넌, 변호사가 되어야겠구나.'라고 던진 오빠의 말 한 마디를 꿈으로 간직하고 모든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이를 실현해 낸 것은 이태영이 선구자다운 품새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직업을 평생 꿈으로 간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호사는 이태영에게 천대받고 억압받는 여성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태영에게 중요한 것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아니라 변호사가 되어 할 수 있는 일, 여성을 봉건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숱한 사람들이 이태영을 제일 먼저 변호사가 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일을 처음 시작한 특별한 변호사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돈 한 푼 없이 쫓겨났어요.' '남편한테 수없이 매를 맞지만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어요.' '집에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살림을 차리는 거예요.' 이런 하소연을 하는 여성들을 위해 이태형은 무료 법률 상담소를 열었다. 책상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사무실과 이동 사무실에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혼자 뛰어다니며 법률 상담을 했다. 그가 그나마 안정을 찾은 것은 그의 제안으로 천칠백여 명의 여성들이 조금씩 정성을 모아 1976년에 \'\'\'\'\'\'\'\'\'\'\'\'\'\'\'\'여성백인회관\'\'\'\'\'\'\'\'\'\'\'\'\'\'\'\'을 짓고 난 뒤였다.

그러나 이태영이 아무리 법률 상담을 한다고 해도 법이 이것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 한계는 명백하다. 1950년대의 가족법은 헌법의 남녀평등 조항을 무색하게 했다. 집안의 주인은 아버지나 아들이어야 하고, 부모가 돌아가셔서 재산을 나눠도 딸보다 아들이 훨씬 많이 가졌고, 이혼을 하면 재산은 모두 남편의 것이 되었으며,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고 싶어도 권리가 전혀 없었다. 이태영은 가족법 개정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남녀가 평등하다고? 조상들이 저승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법을 움직이는 사회에서 그의 노력은 지난할 수밖에 없었다. 1989년 12월 세 번째로 가족법이 개정되어 그나마 민주적인 꼴을 갖춘 오늘의 가족법이 되기까지 37년 동안 이태영은 굴하지 않고 가족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태영은 이처럼 여성의 아픔을 들어 주고 위로해 주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법률적 제도도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여성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나라가 독재 치하에 있으면 어찌 여성인들 해방될 수 있을까? 그는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1976년, 명동 사건 즉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까지 했다.

  작가 소개

저자 : 박정희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소비자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어린이 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세 아이, 지원, 지인, 윤재를 키우는 엄마이며, 모든 어린이들이 세상을 좀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자라나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쓴 책으로는 그림책 <거미의 거미줄은 고기잡이 그물> <호박이랑 박치기를 했어요> <티타늄 다리의 천사 애덤 킹> 들이 있다.

그림 : 오영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의류학과와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공부했다. 어린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면서 어린이들의 생각, 고민, 주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린이가 어른이 된 뒤에도 마음에 남는 그림을 꼭 한 장쯤 그리고 싶은 것이 그의 소망이다. 작품으로는 <딱지, 딱지, 코딱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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