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역사와 인물에 대한 독특한 해석, 어떤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만화 표현과 파격적인 발상, 보일 듯 말 듯한 깨알 같은 글씨 속에 담긴 위트, 시대를 앞선 연출 등이 살아 는 고우영의 [초한지]는 어느 소설, 어느 만화에서도 볼 수 없는 재미와 현재를 읽게 하는 눈을 갖게 한다. 고전을 몇 번이고 되새기게 하는 그의 해학과 풍자는 [초한지]가 20년 전에 발표된 만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출판사 리뷰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 인후관용(仁厚寬容)의 유방,
천하를 놓고 쟁패하는 인간군상의 희비와 세상의 지혜를 유쾌하게 만난다
동양 고전들을 만화로 독특하게 재해석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고우영 화백이 이번에는 [초한지](전8권, 자음과모음 발행)를 무삭제판으로 출간했다. [삼국지] [가루지기] [수호지]에 이은 고우영 고전극화의 정본화 작업으로, 1984년 1월 5일부터 2년 동안 [일간스포츠]에 연재되었던 당시의 모습으로 20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그동안 [초한지]는 정비석, 김홍신, 이문열 등 국내 작가들이 의역 또는 평역하여 소설 작업을 해왔으며, 또한 일본만화의 번역본부터 단권짜리 아동 만화까지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허허실실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유방과 원리원칙으로 사람을 내치는 항우, 천민 출신 유방과 명문 귀족 출신 항우…. 대조적인 두 지도자와 그 주변인물들의 대립과 처세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의 장세 판단 등은 세월이 지나도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서 중에서 초한지만큼 상큼한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 배경과 사건이 유방과 항우라는 비교적 단순하게 압축된 인물의 맞대결이기 때문일 게다. 또한 짧은 시간 동안에 전개되는 히스토리이며 내용의 흐름이 너무도 시나리오적으로 전개되다가, 그 맺음 역시 장중한 피어리어드를 찍어주고 있는 까닭이다.(작가의 말에서)
역사와 인물에 대한 독특한 해석, 어떤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만화 표현과 파격적인 발상, 보일 듯 말 듯한 깨알 같은 글씨 속에 담긴 위트, 시대를 앞선 연출 등이 살아 는 고우영의 [초한지]는 어느 소설, 어느 만화에서도 볼 수 없는 재미와 현재를 읽게 하는 눈을 갖게 한다. 고전을 몇 번이고 되새기게 하는 그의 해학과 풍자는 [초한지]가 20년 전에 발표된 만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흰머리를 늘게 한 [초한지] 살리기 복원작업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우석, 총 8권)했을 때부터 고우영 [초한지]는 그 원형에 훼손이 가해졌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을 억지로 단행본 판형과 크기에 맞추려다 보니 매 컷마다 자르고 잇고 늘려야 했던 것이다. 거기에 당시 간행물 심의 기준에 입각해(?) 폭력성과 선정성 등의 이유로 한 페이지 전체 혹은 중간중간의 여러 컷들이 삭제되어, 원형을 유지하며 온전히 남아 있는 컷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만들었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초한지]의 복원 작업은 몇 곱절 어려움을 겪어야 했음을 알리고 싶다. 이미 단행본으로 개작했던 일이 있는 까닭에 신문과 책자와의 다른 판형을 꿰어 맞추느라 자르고, 꿰매고, 헤집었던 컷들을 재차 원상태로 환원시키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분실된 원고의 쪽수가 솔찮이 많아서, 트레이싱지를 대고 일일이 새로 그려 넣는 작업으로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 든다. … 또 하나 밝혀야 할 일은 2쪽마다 하단 좌측에 뚫려 있는 공간이 그것인데 당시 신문사 영업국과 광고국의 작업으로 상품광고를 실었던 스페이스다. 신문의 1일 지면이 책으로는 2쪽이 됨으로 1장 건너에 한 칸씩 공백이 생기고 있는 터이다. 독자들의 넓은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작가의 말에서)
그나마 몇 페이지 남지 않은 연재 당시 원고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의 상태였고, 94년 중판본 역시 그 상태가 온전치 않아서 마치 조각그림을 맞추는 듯한 작업이 계속되었다.
결국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뭉개지고 깨진 그림들을 최대한 바로잡았으나 연재 당시 광고가 게재되었던 자리(홀수 페이지 하단 왼쪽)는 부득불 비우게 되었다(빈 컷을 새로 채워넣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연재 당시 원형 그대로 살리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편 현재 한글맞춤법에 맞게 최소한 수정을 하였으며 당시 유행어나 만화의 맛을 더하는 구어체 등은 그대로 살렸다.
맛깔스럽게 살아 있는 고우영 스타일의 캐릭터들
고우영은 고전을 누구보다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능력을 타고난 만화가다. 어떤 고전이든지 그의 손이 닿으면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쉽고 재미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무엇보다 독특한 캐릭터로 표현된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어떤 상황이든지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초한지] 역시 고우영 스타일의 캐릭터들을 따라가는 재미는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다.
[삼국지] 유비에 느물느물함이 70%쯤 첨가된 듯한 ‘유방’, [수호지] 무송에 냉정함과 저돌성을 100%를 더한 듯한 항우. 일지매에 비장함을 더한 한신 등 주요 인물들은 어느 [초한지]에서도 볼 수 없는 강한 개성들이 잘 살아 있다. 분명 새로운 인물해석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들이 낯설지 않은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고우영 인물들의 원형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 유방의 동서인 개백정 번쾌, 부인인 여후. 특히 유방의 부군사로 등장하는 역이기(그는 주정뱅이에다가 각설이 타령까지 한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귀엽게 느껴질 정도여서 [수호지]의 무대에 버금가는 고우영 캐릭터 표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되돌아 치는 의뭉스러운 고전해석 그리고 에로티시즘
토사구팽, 금의야행, 권토중래 등 많은 고사성어를 남긴 고전, 역발산기개세의 항우와 인후관용의 유방과의 싸움을 다룬 전쟁사인 [초한지]를 고우영은 꺾고, 뒤돌아 치고, 의뭉을 부리다가 어느새 긴박감 속에 빠지게 하는 새로운 [초한지]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초한지]의 첫 장면을 장기판에서 시작한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투를 축소해 놓은 것이 장기판의 유래’라는 1차원적 차용이 아니라 세상과 장기판이 비슷하게 돌아간다는 풍자를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축소판으로써의 [초한지]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 세상살이 바로 장기판과 같나니… 누구는 지는 편 마(馬)가 되어 고단하다네.
이기는 편 차(車)라고 해서 좋을까 보냐? 이기기 위해서는 졸(卒)하고도 바꾼다네…(1권 4쪽)
마지막 장면 역시 항우의 죽음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미친 짓을 하고 다녔던 괴철의 대사로 끝맺는다. 항우가 죽고 유방이 권세를 잡은 후 한신이 토사구팽당하자 괴철의 입을 빌어 “나는 정말 미친 것인가, 알고도 범하는 것이 사람의 실책이며 모르는 듯 누리는 것이 사람의 권세인가” 하는 대사와 함께 작가는 나레이션을 통해 ‘내가 졌다. 장이야, 장 받아라’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고우영 [초한지]에는 그만의 에로티시즘이 유쾌하게 펼쳐지는데, 예는 들면 점령하려는 성(城)을 여자로 비유하면서, 여자 다루는 데 능수능란했던 유방은 애무하듯 서서히 성문을 열고 있는데 반해 항우는 마치 폭력을 행사하듯이 성을 부서뜨리는 표현은 실로 압권이다.
상쾌한 유머와 세상을 보는 지혜 그리고 인생의 비장감까지 느끼게 하는 고우영 [초한지]의 무삭제판의 발간으로 20여 년을 기다려온 독자들은 다시 한 번 ‘고우영표’ 고전 극화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재기발랄한 요즘 세대들에게도 ‘전설의’ [초한지]를 만나는 재미와 감동은 다르지 않으리라.
작가 소개
저자 : 고우영
1938년 만주 본계호에서 태어났으며, 광복 후 귀국하였다.
한국 전쟁 전후에 이름난 아동만화가였던 고상영.일영 두 형의 영향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쥐돌이>를 발표하며 만화계에 데뷔했다. 그의 작품 경향은 몇 가지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초창기의 명랑만화들이다. 이 시기에는 추동성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비교적 당대 명랑만화 문법에 충실했는데, 1958년 둘째형 일영(추동식)이 연재하던 <짱구박사>를 이어 연재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 머물지 않고, 작가는 1972년 일간스포츠에 <임꺽정> 연재를 필두로 성인취향 연재만화의 영역을 개척했다.
1975년 <수호지>, 1978년 <삼국지> 등 중국 고전의 재해석과 <일지매> 등 창작사극을 통해서 고우영식 만화의 개성이 확립됐고, 이후 그의 대표적인 작품색으로 남게 되었다.
성인 연재만화를 대표 장르로 하면서도, 청소년 만화 작업 역시 지속됐다. 1975년 <소년>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이 대표적인데, 한껏 성인만화에서 실험하고 있던 해학이나 농담보다는 우직한 극화 스타일의 전개가 특징이다. 또한 창작만화 작업 이외에도 평소 작가가 여행한 명소들을 중심으로 엮은 기행문 서적, 도서 삽화 작업 등 다방면에 작가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러한 작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유려한 솜씨는, “만화가가 글도 잘 쓴다”는 식의 세간의 편견과 달리 “글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기 때문에 만화가를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가 되어주고 있다.
1994년부터 단행본으로 출시된 <십팔사략>은 이전의 신문연재 사극만화와도 다시금 궤를 달리한다. 이 작품은 단행본 총서류에 적합한 호흡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특유의 해학은 그대로 살아 있다. 그리고 뚜렷한 주인공들보다는 커다란 흐름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해, 드라마와 사서 사이에 있는 영역을 개척하는 일에 성공하며 고우영 만화의 또 다른 도약을 예고했다. 항상 동시대적 호흡을 놓지 않고 현역으로서 진화를 거듭해온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이제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게 된 <한국만화야사> 등이 더욱 아쉽다.
대표 작품으로 <삼국지>, <수호지>, <일지매>, <초한지>, <열국지>, 여행기로 <미국만유기>, <유럽만유기>, <중국만유기>, 수필집으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도깨비 바보> 등이 있다. 1980년대 들어서부터는 <가루지기전> <21세기 아리랑 놀부뎐> 등 우리 고전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200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중예술 부문상, 2003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만화 부문 공로상 등을 받았다. 2005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5년 4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