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처절한 삶을 살았던 광해군. 이 책은 광해군에게 씌워진 여러 죄들 중에서 어머니를 쫓아내고 형제 여럿을 죽였다는 폐모살제에 주목한다. 아울러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세운 인조반정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출판사 리뷰
우리의 역사(歷史)를 돌아보면, 비극(悲劇)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고비 중에서도 임진왜란(壬辰倭亂)부터 병자호란(丙子胡亂)까지는 비극을 넘어 굴욕(屈辱)의 역사(歷史)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한 냉철한 반성(反省)을 게을리하고 있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 보이는 모습은 왜곡되고 포장되기 일쑤다. 하지만 그러한 그릇된 역사(歷史)를 뒤늦게라도 바로 잡아내지 않는다면, 그 또한 오늘을 사는 이들이 저지르는 부끄러운 역사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더욱이 현시대에서 또한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매몰돼 이전투구(泥田鬪狗)나 벌이는 꼴불견의 상황이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잘못 기록돼 전해지는 역사(歷史)를 바로잡아야 하는 필요성은 더욱 중차대(重且大)하고 시급하다. 특히 그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처절한 삶을 살았던 광해군(光海君)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되고 있지 않다.
이 책은 광해군(光海君)에게 씌워진 여러 죄들 중에서 어머니를 쫓아내고 형제 여럿을 죽였다는 폐모살제(廢母殺第)에 주목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죄를 광해군(光海君)에게 물어 뒤집어씌울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그 사건들은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이첨(李爾瞻)을 영수로 하는 북인(北人)뿐만 아니라, 남인(南人)과 서인(西人) 등등 권력에 눈이 먼 조정중신(朝廷重臣)들이 서로 정쟁(政爭)을 벌이는 과정에서 꾸미고 저지른 참극(慘劇)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광해군(光海君)을 몰아내고 능양군(綾陽君)을 왕으로 세운 인조반정(仁祖反正)에 대해서도 이의(異意)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 역시 폭군(暴君)을 몰아낸 정의(正義)라는 투의 인식과 평가에는 절대로 동의(同意)할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호시탐탐(虎視眈眈)하던 세력들이 음모(陰謀)를 꾸며 일으킨 반역(叛逆)이었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그렇지 않다면 서인(西人)이 주도한 반정(反正)에, 그 대척점에서 당쟁을 일삼던 남인(南人)과 북인(北人) 그리고 왕족(王族)들까지 가세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책에 나열된 상황들은 저자(著者)가 꾸며낸 상상(想像)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기록된 엄연한 역사적 사실(事實)이다. 역사는 이긴 자들이 기록(記錄)하고 그 후예(後裔)들이 전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록을 진실이라 믿고 배운다. 그런 까닭에 잘못 알고 있는 역사(歷史)가 너무 많다. 비록 그 현장으로 거슬러가지는 못하지만, 당시의 상황(狀況)이 기록된 자료들을 토대로 되짚는 방식으로나마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고 억울하게 누명(陋名) 쓴 부분이 있다면, 그 혼(魂)이라도 불러내어 위로(慰勞)했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을 담아 이 책을 펴낸다.
죄는 사실(事實)에 근거해 묻고 단죄(斷罪)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참으로 억울한 생애(生涯)이고 죽음이지 않겠는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인조반정(仁祖反正) 전후의 기록을 찾아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이 일어난 배경(背景)은 무엇이며, 그 일에 누가 공모(共謀)했는지 등등을 냉정한 눈으로 살펴봤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역사는 이긴 자들이 기록하고 그 후예들이 전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긴 자의 후예들이 남긴 기록을 진실이라 믿고 배운다. 그런 까닭에 잘못 알고 있는 역사가 너무 많다.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고 억울하게 누명 쓴 이가 있다면, 그 혼이라도 불러내어 위로해 보자.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宣祖)는 정비(正妃)인 의인왕후(懿仁王后)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을 보지 못하고, 여러 후궁(後宮)을 들이면서 많은 왕자를 얻는다. 적자(嫡子)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세자(世子)를 세우는 일을 두고 조정(朝廷)에서는 시시때때로 논쟁(論爭)이 발생한다. 그중에서 공빈김씨(恭嬪金氏)의 소생인 임해군(臨海君)과 광해군(光海君),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소생인 신성군(信城君)과 정원군(定遠君)을 중심으로 조정의 중신들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한다.
광해군(光海君)은 늘 외로웠다. 아버지인 선조(宣祖)에게조차도 속 시원하게 지지나 성원을 받지 못했던 광해군(光海君)이었으니, 그의 정치적 기반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창대군(永昌大君)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북인(北人)이 천군만마(千軍萬馬)의 역할을 했지만, 사실 속내는 달랐다. 그들이 광해군(光海君)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자신들의 집권(執權)을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었던 광해군(光海君)은 왕위에 오른 뒤에 당파를 초월한 여러 정책을 펼쳐 나가며, 당쟁(黨爭)에만 매몰된 조정(朝廷)을 개혁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쓴다. 그 덕분에 집권 초기에는 대북(大北)·소북(小北)·남인(南人)·북인(北人) 등 여러 당파가 서로 견제하며 그런대로 균형을 잡아간다. 하지만 광해군(光海君)을 등에 업고 조정의 모든 권력(勸力)을 거머쥔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 등을 필두로 한 대북세력이 그런 틈을 허용할 리 없었다. 그들은 사사건건(事事件件) 여론을 빙자(憑藉)해 반대만을 일삼으며 가로막았기 때문에, 광해군(光海君)은 그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작가 소개
저자 : 금수재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든 어느 날, 깊이 들여다 본 족보에서 탁영(濯纓) 선생의 18대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분의 후손(後孫)이라니…. 흔한 의심을 하면서 여러 역사책을 뒤졌고, 큰형의 둘째아들로 후대(後代)를 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책을 덮었다. 거기서 멈췄다면 나는 직장에 그대로 머물렀을 터다. 그런데 어느새 생겨버린 관성(慣性)이 역사 속으로 나를 이끌었고, 더 깊이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결국 23년 동안 잘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지금은 헤지고 낡은 서적을 들여다보면서 깊은 상념에 빠지는 나날을 보내며 늦게나마 이 길에 닿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1964년 용(龍)의 해에 사내로 태어나다1983년 처음 타보는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하다1991년 천상배필을 만나 두 아들의 탄생을 도모하다2017년 소싯적의 생각을 다시 깨워 가정을 힘들게 하다2018년 금수산(錦繡山) 기슭에 서재를 마련하다[저서]경영에세이_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역사를 만든다 (2016)박정희탄생 100돌 헌정서_6737일간의 혁명 (2017)역사추적_광해를 부르다 (2017)역사소설_들꽃을 함부로 꺾지 말라 (2018 예정)
목차
펴내며 4
참상(慘狀)의 그림자가 드리우다 13
소북(小北)과 대북(大北)의 충돌 24
왕권(王權)을 농락하는 신권(臣權) 32
임해군(臨海君)을 사사하라는 상소(上疏)가 빗발치다 37
봉산옥사로 소북(小北)을 궤멸하다 58
영창대군과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치다 67
영창대군을 사사(賜死)하라는 논의가 커지다 73
형제(兄弟)를 죽이고 싶지 않은 광해군 80
종실(宗室)이 피붙이를 죽여야 한다고 나서다 90
영창대군 단죄(斷罪) 논의를 중지하라 97
광해군의 뜻을 지지하는 유림(儒林)의 거목 104
영창대군을 죽여야 한다는 청(請)을 물리치다 119
인목대비와 밀통(密通)한 나인들을 벌하다 123
영창대군이 살해(殺害)되다 128
조정(朝廷)을 발칵 뒤집은 정온(鄭蘊)의 상소 134
의문(疑問)의 죽임을 당한 능창군(綾昌君) 146
권력독점을 노린 충돌, 해주옥사(海州獄事) 159
거침없이 번지는 폐모론(廢母論) 167
폐모론(廢母論)이 두 갈래로 나뉘다 183
의창군을 옹립하려던 허균(許筠)의 역모 192
더한 죄에도 목숨을 부지하는 의창군(義昌君) 201
폐모(廢母)는 할 수 없으니 논의를 그만두라 207
권력(勸力)을 꿈꾸며 모여드는 반정(反正) 세력 215
쫓겨나는 광해군(光海君) 222
능양군(綾陽君) 제16대 왕위(王位)에 오르다 231
죄(罪)를 묻다. 그러나…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