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비꽃 세계 고전문학 16, 17, 18권. 찰스 디킨스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디킨스는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는 등,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느라 정규교육을 받은 기간도 짧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건 2~3년에 불과하다. 이런 과거를 디킨스는 평생 외면하다 마흔을 앞두고 돌아본다. 그러면서 쓰기 시작한 작품이 <데이비드 코퍼필드>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중산층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와 유모와 행복하게 살지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온갖 불행에 처한다. 혼자서 쓸쓸하게 역마차를 타고 찾아간 학교는 폭력이 난무하고,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좌절감에 시달린다.
극한 불행을 겪으면서도 미래를 포기할 수 없어, 코퍼필드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괴짜 고모할머니를 찾아 나서는데, 어렵게 마련한 여행 경비를 도적놈에게 빼앗기니, 옷을 팔고 거지 행각을 하며 머나먼 여행길을 겪어낸다. 극도의 불안감과 고통이 몰려들 때는 환하게 떠오르는 어머니 영상에 의지하며 극복한다.
온갖 고통을 겪으며 찾아간 고모할머니는 괴팍한 성격이지만 원칙이 또렷하고, '데이비드'는 꿈에 그리던 중산층 생활을 시작하며 교육도 받는데, 이번에 들어간 학교는 극히 바람직하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성도 사귀고 실연도 겪으며 성장한다.
출판사 리뷰
1. 찰스 디킨스 개요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다. 이백 년도 넘은 1812년 2월 7일,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일 때, 영국 남부 포츠머스 외곽에서 팔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장남으로 살아간다. 형제 두 명은 어려서 죽는다. 할아버지는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고 할머니는 하녀장으로 일했는데, 찰스 디킨스는 할머니가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 모두를 즐겁게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기억한다. 아버지는 해군 경리국 하급관리로 사교적이고 유머가 풍부하나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어머니는 선량하고 밝은 성격이나 자녀에게 무정하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서 계속 이사 다녔다. 외할아버지 역시 해군 경리국에서 일했으나, 자금을 횡령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디킨스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전근명령을 받아 온 가족이 채텀으로 이사해 5년을 사는데, 도시 남쪽으로는 밀밭이 풍요롭고 북쪽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습지대가 황량하고, 서쪽 2㎞ 거리에는 조용한 대성당도시 로체스터가 있으니, 채텀은 어린 디킨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나중에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다.
디킨스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묘사한 것처럼 어머니에게 글씨를 배우는데 “초보용 교본에 적힌 통통하고 까만 글씨를 보면 아직도 신기하고 재미있으며 O와 Q와 S 같은 글씨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혐오감이나 거부감은 조금도 없었다. 악어에 관한 책을 읽을 때까지는 꽃길을 걷는다는 느낌, 어머니가 옆에서 다정한 목소리와 태도로 끊임없이 격려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디킨스는 “어머니를 통해서 지식욕과 독서욕에 처음 눈떴다. 어머니는 매일 규칙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서 나에게 공부를 가르쳤다”고 말한다.
집에는 유모가 있는데, 살인귀 대위가 아내를 여럿 죽여서 파이로 만들었다든가 무서운 고양이가 밤마다 눈을 번뜩이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어린애를 먹어치운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악마처럼 즐거워”하니,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악몽과 공포에 시달렸다. 나중에 디킨스 자신이 “우리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황당한 공포에 가끔 빠져드는 건 어린 시절에 유모 같은 사람이 무섭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마음속에 깊숙이 틀어박혔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정도였다.
이 시절에 디킨스는 흉내를 잘 내, 유모 앞에서 즉흥 연기도 하고 누나가 연주하는 피아노 가락에 맞춰서 노래도 하니, 아버지는 장녀와 장남을 채텀에서 유명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이중창을 부르게 해서 박수갈채와 함께 다양한 음식을 얻어먹었다. 이 무렵에 굴을 처음 먹고 어린 디킨스는 “마음이 지극히 설다.” 2㎞ 떨어진 로체스터 로열 극장에 가서 다양한 연극도 관람하니, 30년이 지난 다음에 디킨스는 “멋진 소극장에 처음 들어선 황홀한 느낌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녹색 장막이 뚫린 구멍에서 눈빛 하나가 반짝이며 우리를 쳐다본다……. 파란 옷차림에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린 여주인공이 빛을 내뿜자, 모두 무서워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다 환호한다……. 코미디언이 빨간 가발을 쓰고 지하감옥에 갇혀서 재미있게 노래하는데, 나는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사람을 처음 봤다……. 녹색 장막이 내려오니, 등잔 기름 냄새와 오렌지 껍질 냄새가 향긋하다.
어린 디킨스는 아버지를 따라 해군 공창에 가서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도 신나게 구경한다. 톱밥과 뱃밥과 돛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불러대는 노래도 듣고, 죄수들이 묵묵히 끌려가는 장면도 목격하니, 이런 장면은 《위대한 유산》에서 실감 나게 등장하고, 아버지랑 주변 시골을 산책하던 경험은 《위대한 유산》에서 매형과 산책하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얼마 뒤에는 염색가게 위층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무시무시한 노부인이 회초리로 지배하는 세상”을 체험하니,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에서 어린 핍이 다니던 엉터리 학교로 그 분위기를 묘사한다. 아홉 살 때는 정식학교에 잠시 다녀, 공부도 열심히 하고 크리켓 게임 같은 스포츠도 즐겼다.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가 그런 것처럼 “아버지가 이 층 조그만 방에 모아둔 책을 읽으며 ‘로더릭 랜덤’, ‘페레그린 피클’, ‘험프리 클링커’, ‘톰 존스’, ‘웨이크필드에 사는 성직자’, ‘돈키호테’, ‘질 블라스’, ‘로빈슨 크루소’ 같은 훌륭한 주인공을 친구로 사귄” 것도 이즈음이니, 디킨스는 이후로도 평생에 걸쳐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이 늘면서 위기에 처하고, 어린 디킨스는 따로 살다가 혼자서 역마차를 타고 가족을 찾아가는데, 이 경험은 디킨스 뇌리에 평생 틀어박히니, 《올리버 트위스트》와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고통으로 나타난다. 어린 디킨스가 찾아간 가족은 런던 빈민가에서 살았다. 디킨스는 아버지를 “정이 많고 상냥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생활이 어려운 데다 성격까지 물러서 아들을 제대로 공부시킬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았다. 아들에게 제대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책을 읽고, 채텀에서 배운 통속적인 노래를 불러서 박수갈채를 받고, 활기찬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낙으로 삼았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뒷골목이, 싸구려 술집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누추한 건물과 헐벗은 아이로 득시글거리는 거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가난한 분위기, 음식을 구걸하는 장면, 음습한 분위기 등이 터무니없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 나중에 《올리버 트위스트》에 그대로 담는다.
결국엔 아버지가 파산하자, 어머니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집을 빌려 학교를 열어서 먹고 살 방편을 모색한다. 입구에는 놋쇠로 명패를 걸고 이웃에는 안내장을 보냈다. 하지만 “학생을 받을 준비도 안 되고 누가 입학할 기미도 없었다.” 채권자들이 툭하면 찾아와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독기를 내뿜을 뿐이었다. 이윽고 집 안에 있던 가구를 하나씩 팔고, 어린 디킨스는 운반 가능한 물품을 전당포로 가져가는 역할을 맡았다. 디킨스가 애독하던 책까지 중고서점으로 한 권씩 팔려나가, 이윽고 온 가족은 텅 빈 방 두 칸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니,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그대로 나타난다.
구두약 공장 지배인을 하던 친척은 어린 디킨스에게 공장에서 일할 걸 제안하고 부모는 받아들이니, 디킨스는 열세 살 생일이 이틀 지난 후에 구두약 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한다. 공장은 강기슭이고 쥐는 우글거렸다. 거칠고 무식한 아이들이 함께 일하는데, 디킨스를 “꼬마 신사”라고 부르며 친절하게 대했다. 하지만 디킨스는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정신적으로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때 만나던 친구들과 비교했다. 많이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 느꼈다.”
디킨스는 공장에서 일하는 현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토록 가볍게 버림받다니…….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재능은 뛰어나고 머리는 팍팍 돌고 의욕은 넘치고 감성은 섬세한데, 부모는 나를 학교에 보낼 고민은커녕 동정하는 마음조차 없었다.” 디킨스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공장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일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할 정도니, 그 심정은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주류 공장에서 일하며 느끼던 좌절감에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버지는 채권자 고발로 ‘채무자 감옥’에 갇히고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가족도 함께 들어가니, 감옥 생활에 적응하다 못해 단조롭고 평온 무사한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며 기뻐했다. 하지만 어린 디킨스는 혼자 공장에 다니며 무서운 노부인 집에서 하숙했다. 생활비를 하루 단위로 쪼개서 싸구려 빵과 치즈로 살았다. “돈이 조금 있을 때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랑 버터 바른 빵을 먹고, 돈이 없을 때는 청과시장에서 파인애플 따위를 구경했다.” 일요일에 10㎞를 걸어서 부모 및 형제자매와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 유산으로 빚을 일부 청산한 덕분에 ‘지급불능 채무자 조례’를 적용받아 풀려나니, 조그만 셋집을 전전하며 불안하게 살아가면서도 가계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는 어린 디킨스가 구두약 공장에 계속 다니길 원했으나, 아버지는 장남이 힘들게 살아가는 게 마음 아팠는지, 구두약 공장 지배인 친척과 심하게 다투고 아들을 공장에서 빼내,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Wellington House Academy)에 2년 동안 보낸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장에서 돈이나 벌라”며 끊임없이 반대하고 디킨스는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를 평생 유지하니, 나중에 “나는 원한과 분노를 담아서 글을 쓰지 않는다. 모든 환경과 경험이 하나로 모여서 현재의 나로 완성되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나를 공장으로 돌려보내려고 애쓴 사실만큼은 지금도 못 잊고 앞으로도 못 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디킨스는 어린 시절에 구두약 공장에 다니며 고생한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처음 언급할 정도로 디킨스에게는 커다란 상처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은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어린아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묘사가 모든 작품에 다양하게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비판에 민감하며, 한 번 꺼낸 말은 거두지 않는 완고한 성격도 여기에서 나왔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어린애가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겪는 좌절과 고통 역시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잘 나타나니, 아버지는 ‘미코버’, 어머니는 법률사무소 대표의 딸로 허영심 많은 ‘도라’를 대변한다.
2년 동안 다닌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는 인근에서 평이 좋았으나 찰스 디킨스에게는 그렇지 않으니,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묘사한 ‘세일럼 기숙학교’처럼 “교장은 내가 만난 누구보다도 특별나게 무식한 사람으로 전제군주처럼 선생과 학생을 지배”했다. 그래도 어린 디킨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처럼 학교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당시에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은 찰스 디킨스가 잘생기고, 옷은 낡아도 세련된 느낌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머리가 빨리 돌고, 책을 많이 읽고, 아마추어 연극에 몰두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책상 서랍에다 흰쥐를 몰래 키우고, 장난도 잘 치고, 스포츠에 열심히 참여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빈곤에 빠져드니, 디킨스는 생활 전선에 다시 뛰어든다.
열여섯 살 나이에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이 년간 심부름꾼으로 일하는데 법조타운 중심부에 있는 사무실은 “정말 좁은 세계, 정말 따분한 세계”였다. 서류를 베끼거나 잔심부름하다가 시간이 나면 “세속적인 냄새와 곰팡내 솔솔 풍기는” 법정이나 주변을 탐색했다. 한가한 오후에는 장난도 치고 흉내 내는 실력을 발휘하며 동료들과 즐겁게 지냈다. 그런 동료 가운데 하나는 “디킨스는 거리를 오가는 서민들 모습을 그대로 흉내 냈다. 과일 장수든 채소장수든 건달이든 정말 그럴싸했다”고 기억한다.
디킨스는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도 좀 더 바람직한 일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그리고 대영박물관 도서 열람증을 손에 넣어, 독학으로 다양한 지식을 쌓고 속기도 배운다.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인데, 야심만만한 청년들이 선호하던 직업으로 수입도 좋았다. 속기를 일 년 정도 혼자서 공부한 디킨스는 결국 ‘민법 박사회관’에서 진술을 기록하는 속기사로 새롭게 출발한다. 하지만 너무나 따분하고 지루한 분위기에, 연극배우로 직업을 바꾸는 고민에 몰두한다. 그래서 밤마다 극장을 찾아가 좋은 연기를 연구하다, 스무 살에는 연극 오디션까지 신청한다. 하지만 감기에 걸려서 불참하고, 다시 신청할 용기를 못 낸다. (디킨스는 소설을 쓸 때마다 혼자 등장인물을 연기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살려낸 거로 유명하다.)
디킨스는 결국 스물한 살 나이에 의회 출입기자가 된다. 그래서 신속하고 정확한 기사로 이름을 얻는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문제가 안 됐다. “낡은 하원 건물 뒷좌석에서 책상 삼아 필기하느라 무릎이 다 닳고, 낡고 비좁은 울타리에서 양 떼처럼 바싹 달라붙은 기자들과 함께 선 채로 기록하느라 신발 밑창이 다 닳았다.” 선거법 개정안과 공장법과 구빈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는데, “광대 노릇이 돋보이는 정치 연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니, 당시 심정을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한 번도 적중한 적이 없는 예언과 한 번도 실행하지 않은 선언과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해명을 밤이면 밤마다 기록한다. 다양한 말 잔치에 빠져든다.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불행한 나라 영국이 쇠꼬챙이에 꿰인 통닭처럼 펜대에 찔리고 또 찔리며 관료주의에 손발을 묶인다. 나는 정계 이면에도 정통해, 정치인의 실상을 충분히 파악한다. 정치에 관한 한 나는 완벽한 이단이며, 개종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디킨스는 여기에서 의회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부정부패, 빈부 격차 등 다양한 사회현상에 눈을 뜬다. 하지만 말년에 고백한 바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신문사에서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딘 게 내가 성공한 첫 번째 원인”이기도 하다.
이즈음에 은행가 딸과 첫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까만 머리칼에 몸집은 자그마한 미인, 마리아였다. 디킨스는 4년 동안 마리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다른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 마리아 역시 처음에는 디킨스를 좋아했으나, 경쟁자는 사방에 가득하고, 마리아 부모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디킨스 집안을 인정할 수 없고, 마리아 역시 싸늘하게 변했다. 디킨스는 “박정하고 무관심한 취급을 여러 차례 당하며” 괴로워하고 실의에 빠진 채,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그 집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마음을 정리하나, 그 충격은 오랫동안 이어지고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곱슬머리에 올려놓은 밀짚모자와 파란 리본을 우리 집에 걸어놓을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소중하게 간직할 것 같았다!”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디킨스는 한층 더 열심히 일하는 식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성공하고 싶다는 결의도 더욱 강하게 다진다. 그해 여름 의회 휴회 기간에는 저술활동을 시작하고 그해 말에는 ‘A Dinner at Poplar Walk’를 월간지 ‘Monthly Magazine’에 발표한다. 자신이 쓴 글이 활자로 나온 걸 보고, 디킨스는 “국회의사당까지 걸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30분 정도를 보냈다.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운 나머지 두 눈에 가득 맺힌 눈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어서 비슷한 단편을 익명으로 몇 번 발표하다 34년 8월에 ‘보즈Boz’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한다. 가족이 막냇동생 오거스터스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스물세 살에는 “글솜씨도 훌륭하고 보도기자로도 탁월하다”는 이유로 ‘모닝 크로니클’ 기자에 발탁되어, 풍속 전문 스케치를 기고한다. 중요한 모임이나 선거운동 등을 전국 규모로 취재할 권한도 생기니, 디킨스는 마차를 타고 밤새도록 달리는 쾌감을 마음껏 즐겼다. 흔들리는 등불에 의지하며 원고를 갈겨쓸 때는 열린 창문에서 진흙이 튀어들었다. 그래서 파란 천에 까만 벨벳을 테두리에 둘러친 망토를 사서 스페인식으로 한쪽 어깨에 걸치며 멋을 냈다. 머리도 기르고, 조끼도 멋있게 차려입었다. 아버지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때는 빚도 일부 갚아주었다. 스물네 살에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건 물론 유능한 기자로 이름도 높였다. ‘픽위크 페이퍼스’를 20회 연재하자고 제안받아, 전문작가로 나아가는 길도 열렸다.
‘모닝 크로니클’ 편집자 호가스는 젊은 기대주를 호가스 자택으로 초대하니, 결국 디킨스는 이곳에서 파티와 음악회가 열릴 때마다 참여해, 재미있는 노래와 익살로 모든 사람을 즐겁게 했다. 호가스는 세 딸이 있는데, 맏딸 캐서린은 열아홉 살, 메리는 열네 살, 조지나는 일곱 살이었다. 캐서린은 약간 통통하면서도 예쁜 얼굴에 표정이나 성격이 온화하고 상냥하며, 조용한 성품이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어, 디킨스와 연인으로 발전하고, 몇 개월 후에는 결혼을 약속한다.
디킨스는 캐서린과 사귀면서도 업무에 끊임없이 쫓기느라, 편지를 보내서 방문 약속을 취소하거나 늦출 때가 많았다. 하지만 화내거나 토라지거나 풀이 죽지 않도록 간청하며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나는 그대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강조한다.
이듬해 2월에는 그동안 발표한 풍속 스케치를 모아서첫 번째 단행본 《보즈 스케치Sketches by Boz》를 출간하고, 판매성적이 좋아서 8월에는 2판을 간행하고, 12월에는 단편소설과 스케치 20편을 모아서 속편으로 출간한다. 디킨스 자신은 “생각이 짧고 미숙한” 작품으로 규정하지만, 나중에 디킨스 전기를 집필한 포스터는 《보즈 스케치》를 “런던 일상을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즐거움과 기쁨, 괴로움과 죄악까지 또렷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독자는 “시대 상황을 비롯해 거리 풍경과 풍속을 정교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풍속학자는 당시 풍속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한다.
이즈음에 ‘Chapman & Hall’에서 화가 시모어가 그린 삽화를 곁들여서 단편소설을 연재하자고 제안한다. 디킨스는 오페라 대본 한 편과 희극 한 편을 집필하는 중인 데다 장편소설 집필까지 고려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캐서린과 결혼할 예정이라서 돈이 많이 필요할 때였다. 디킨스는 캐서린에게 보낸 편지에 밝혔듯이, “이 일은 마음에 안 들지만, 보수가 좋아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픽위크 클럽》 첫 호는 1836년 3월 31일 목요일에 나오고, 이틀 뒤인 4월 2일에 디킨스는 첼시 ‘성 루카’ 성당에서 캐서린과 결혼한다. 양쪽 집안 식구만 참석한 소박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부부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로 가서 신혼여행을 즐겼다.
《픽위크 클럽》은 판매가 부진한 데다 화가 시모어가 정신쇠약으로 자살하니, 디킨스는 중심인물로 부상해서 ‘해블롯 브라운’을 삽화가로 선택하고, 브라운은 ‘보즈’와 어울리도록 ‘피즈’로 필명을 정해, 두 사람은 20년 넘게 협업 관계를 유지한다.
《픽위크 클럽》은 4호부터 독자의 관심을 끌고, 선거를 재미있게 묘사한 5호가 나올 즈음에는 “보즈가 모든 사람의 이목은 물론 마음마저 사로잡아” 사람들이 서점 유리창에 딱 달라붙어서 최신호를 본다는 신문 기사까지 실리니, 그와 함께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디킨스는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보즈”로 명성을 떨친다.
새로운 성공에 힘입어 디킨스는 “집필 작업에 완전히 빠져든다.” 하지만 1836년 11월에 출판인 ‘리처드 벤틀리’가 월간지 편집주간을 제의하자, 디킨스는 소설 집필 계획을 잡아놓고도 제안을 받아들인다. 월급과 따로 원고료를 받는 조건이었다. 부인이 첫아이를 낳기 직전이라서 가장으로 책임감을 절실하게 느낄 때였다. 그리고 이듬해 1월 6일에는 첫 아이를 낳으니, 디킨스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 이름 ‘찰스’를 그대로 물려준다.
디킨스는 자신이 편집주간으로 근무하는 ‘벤틀리 미셀러니’에서 장편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본격적으로 연재한다. 공리주의에 근거해서 ‘신 빈민구제법’을 제정해, 빈자와 고아를 교구 구빈원에 수용해서 무자비하게 다루는 비인간적인 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인데, 작품에 몰두할수록 디킨스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은 비참한 느낌과 굶주림과 소외감에 빠져들어, 폭력과 사기가 난무하는 런던 빈민가에서 어린애가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이야기에 온 힘을 쏟아부으니, 당시의 전형적인 소설기법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또렷하게 대비하면서도 ‘낸시’라는 독특한 인물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매춘부요 사기꾼 ‘낸시’를 연민이 가득한 눈길로 묘사하는 방식에 독자는 커다란 충격과 반감을 느낀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에 빠져드는 독자도 많으니, 디킨스는 월간지로 발행한 내용을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서 발행할 때 본인 이름을 사용할 걸 단호하게 주장하고,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작가 반열에 디킨스를 올려놓는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디킨스는 고급주택으로 이사해서 쾌적한 생활을 시작하고, 처제 메리(Mary)는 당시 영국 풍습에 따라 그 집에 함께 살면서 아기를 돌본다. 디킨스는 이런 처제에게서 이상적인 여인상을 발견하고 처제와 정신적으로 독특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에 처제가 병으로 죽자, 디킨스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설 연재를 중단한다. 처제 손가락에서 뺀 반지를 죽을 때까지 손가락에 낄 정도였다.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나중에 ‘골동품 가게’에서 ‘어린 넬’로 재현한다.
커다란 비극에 가정은 구멍이 뚫리고, 디킨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말을 타고 오후에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피난처로 삼는다. 그러면서 여유도 생기고 사고력도 풍부하게 변하니, “상상력을 자극하려면 몸을 꾸준히 움직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였다. 평생에 걸친 문학적 조언자로 나중에 ‘찰스 디킨스 전기’까지 집필하는 존 포스터(John Poster)를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디킨스는 포스터와 공통점이 많았다. 나이도 같고, 중하층 계급 출신도 같고, 법률을 공부하다 저널리즘과 문학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같고, 명랑한 성격에다 연극과 파티를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포스터는 디킨스에게 평생 헌신하고, 디킨스는 포스터에게 평생 기대며 살았다.
1839년에는 《니콜라스 니클비》를 출간하고, 디킨스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올라선다. 런던 사교계에서 추앙받고, 특권 신사 클럽에 가입하고, 공공장소에서 연설하는 사례도 많았다. 1841년에는 에든버러 시민들이 디킨스에게 경의를 표하며 에든버러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20대 청년에게 “더없이 커다란 영광”으로 디킨스는 크게 감격했다.
집필활동에 왕성하던 디킨스는 서른세 살 나이에 견문을 넓히고자 아내 캐서린과 함께 미국 방문길에 나선다. 왕도 없고 계급도 없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잔뜩 기대하고, 뉴욕에서 3천 명이 넘는 독자가 환호하니, 디킨스는 미국과 미국인에게 감동한다. 뉴욕의 활기찬 분위기와 보스턴의 아름다우면서도 고상한 분위기에 감탄한다.
하지만 체류하는 나날이 늘어나면서 언제나 대중에게 드러나는 생활이 버겁게 다가왔다. 향수병에 시달리고 런던에 두고 온 아이들도 눈앞에 어른댔다. 남쪽으로는 필라델피아와 워싱턴과 리치먼드를 둘러보고, 서쪽으로는 루이빌과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하고, 북동쪽으로는 신시내티를 찾아가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변하는 기후가 고통스러웠다. 열차와 배를 타거나 역마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것도 힘에 겨웠다. 영국인이 흔히 그렇듯, 지나치게 잘된 난방도 싫고, 담배를 질겅질겅 씹어대다 퉤퉤 뱉어내는 습관도 싫었다. 노예제도를 목격한 순간에는 “인간으로 너무나 크나큰 굴욕감”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난 건 ‘국제저작권 협정’에 미국이 서명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러니 영국 작가는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심지어 미국 출판사와 계약까지 체결해도, 저작권 침해를 문제 삼을 수 없으니, 디킨스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작품에 대해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없었다.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고 환호하면서도 저작권 침해를 묵인하는 자세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문제 삼으면 신문에서는 “문학적 명성보다 달러”를, “월계관보다 화려한 조끼”를 좋아하는 “속물”이라며 비판했다.
귀국길에 오른 디킨스는 “상상 속 공화국”에 실망하고 “배고픈 40년대”로 신음하는 영국 사회에 더욱 커다란 관심을 보이며 사회 운동에 동참한다. 여성과 아동이 땅속에서 노동하는 걸 금지하는 ‘탄광노동자 법안’을 지지하며 열정적인 글을 써서 신문에 투고하고, 대여섯 살 어린애를 공장에서 부려먹는 현실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맹세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페이긴 영감이 은신하던 빈민가와 빈민학교를 찾아간다. 굶주림에 허덕이느라 선악조차 구별할 수 없는 아이들을 보고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모색한다. 그리고 1843년에 작심하고 불과 보름이란 짧은 시기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집필해서 발표한다. 디킨스는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몇 날 밤이고 캄캄한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상력을 끌어올렸다.
자본주의 병폐를 처절하게 비판하는 책은 놀라운 파문을 일으켰다. 초판 6천 부가 며칠 만에 동나고,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책은 여름철에도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며 디킨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은 디킨스에게 엄청난 성공과 동시에 엄청난 좌절을 안긴다. 호화로운 표지와 금박 장식에다 삽화까지 천연색으로 넣으니, 독자에겐 책값이 비싸도 그 돈으론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디킨스는 출판사와 분쟁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다 결국엔 다른 출판사와 ‘크리스마스 캐럴 2탄’을 쓰기로 계약하고 선금으로 금화 이천팔백 냥을 받아서 낡은 대형마차에 모든 가족을 태우고 이탈리아 제노바로 떠난다.
메리가 사망한 후에 디킨스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을 돌보던 막내 처제 조지나는 활달하고 총명한 아가씨인 데다 언니 메리를 신기할 정도로 빼닮았다. 디킨스는 조지나를 “귀염둥이”라고 부르며 귀여워하는데, 아내가 열 번째 아이를 낳고 무기력증에 빠져서 방구석에 틀어박히니, 둘 사이는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연극도 함께 기획하고, 산책도 함께했다. 조지나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디킨스 집안에서 살림을 맡으니, 디킨스가 언니 캐서린과 이혼한 다음에도 디킨스가 임종하는 자리까지 지킨다.
디킨스는 1845년 7월에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와, 아마추어 연극을 준비한다. 곱슬곱슬하고 까만 수염에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겁많은 허풍쟁이 군인 역할로 출연하니, 연극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자선공연까지 이어진다. 디킨스는 의상과 배경과 조명과 광고 포스터까지 전담하는 건 물론 무대감독처럼 총연습까지 지휘하고, 이후 10년 동안 간헐적으로 공연하니, 디킨스에겐 불행한 가정생활의 도피처며 기분전환이며 “동료들과 함께 책을 쓰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나친 스위스가 계속 떠올라, 디킨스는 가족 모두를 데리고 스위스로 건너가서 로잔 호숫가 조용한 집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한다.
서른여덟 살에는 뉴게이트 감옥을 방문한다. 디킨스는 감옥에서 젊은 여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고 어린 나이에 거리를 떠돌다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매춘으로 접어드는 악순환을 정확히 이해한다. 그래서 후원자를 모아 매춘부와 여성 노숙자를 위해 런던에 ‘집 없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설립한다. 일정한 규율 아래 포근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서 사회에 재편입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흔을 눈앞에 두고 디킨스는 자신이 살아온 길이 자주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별다른 보살핌도 못 받고 고생하던 어린 시절”이 유난히 많이 떠올랐다. 구두약 공장에 다니던 굴욕적인 어린 시절을 친구 포스터에게 처음 고백한 것도 이즈음이다. 얼마 후에는 사랑하는 누나 ‘프랜시스 엘리자베스’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디킨스는 자신이 보낸 어린 시절에 더욱 집착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자전적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쓰기 시작한 거다. 한겨울에 야머스에 가서 광활하게 뻗어 나간 해안을 보고 깊은 영감도 받는다. 디킨스 자신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첫사랑과 결혼, 40평생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과 느낌과 생각을 모두 정리한다. 작가 자신과 주변을 “사실과 허구로 복잡하게 뒤섞는” 작업에 얼마나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나중에는 “제일 좋아하는 자식은 ‘데이비드 코퍼필드’”라고 고백한다.
마흔한 살에는 ‘가정 이야기’라는 잡지를 창간해,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디킨스 자신은 아내와 끊임없는 불화를 겪으며 가정생활을 힘들게 이어간다.
1854년에는 런던에서 콜레라가 들끓고, 크림전쟁을 둘러싼 정부 실책은 잇따라 드러나고, 영국 북서부 프레스턴 면공업 지역에서 장기 파업이 일어나니, 디킨스는 사회 문제에 깊이 빠져들다가 사장과 노동자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에 몰두한다. 그래서 의회를 “국립 쓰레기장”이라며 비판하고, 노동자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면서도 의리를 지키는 순박함과 인간애에 집착하며 모든 열정을 쏟아부으니, 《어려운 시절》이란 작품이 나온다.
《어려운 시절》은 크게 성공하나 비평가들 역시 크게 당황해서 이 작품은 디킨스 작품 가운데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익 정치인 맥컬리는 “기분 나쁜 사회주의”라며 무시하지만, 유명한 비평가 존 러스킨은 디킨스 최대 작품이라고 극찬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정독해야 한다고 평가한다.
마흔여섯 살에는 윌키 콜린스의 통속극 ‘얼어붙은 골짜기’에서 연출을 맡고 배우로 출연하면서 열여덟 살 여배우 엘렌 터넌과 사랑에 빠지고, 이듬해에 아내와 이혼한다. 이후에 집필한 《두 도시 이야기》에서 엘렌 터넌을 여주인공 마네뜨 아가씨로 담아낸다. 잇따라 《위대한 유산》까지 집필하고 발표하니, 두 작품은 디킨스 문학의 백미라는 찬사를 얻는다. 그리고 전국을 순회하며 작품 낭독회를 시작한다. 극장에서 유료관객을 대상으로 작품 몇 장면을 골라 낭독하는 건데,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순회 낭독회를 통해 디킨스는 막대한 돈을 벌지만, 건강을 해친다.
1868년 6월 8일, 오십구 세 나이로 저택에서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온종일 쓰고 저녁 식사를 하다가 쓰러져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묘역’에 묻혀 묘비에 다음 같은 글을 새긴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사람을 동정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세상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노동자들은 주막에서 “우리 친구가 죽었다”며 울부짖고, 신문과 잡지는 찰스 디킨스 일대기를 며칠 동안 도배하고, 한 신문은 부고란에 이렇게 적었다. “디킨스가 발표한 소설은 언제나 화제를 불러모았다. 디킨스가 쓴 소설에는 현실정치와 사건이 그대로 담겼다. 디킨스가 소설에 담아낸 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 세계였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였다. 디킨스는 작가로 성공해 번듯한 마차를 타고 저명인사와 교류하면서도 대다수 서민이 진흙탕을 밟고 힘겹게 살아가며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영국 최고 전성기에 담긴 아픈 그림자를 직시하면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당시에는 다섯 살 어린애가 공장에서 열두 시간씩 일하고 겨우 동전 몇 닢을 손에 쥔 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고, 노동자 평균수명은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다.
디킨스는 가난한 사람을 깊이 동정하고, 사회적인 악습을 공격하고,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고 소설에 담았다. 카를 마르크스가 “정치 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해 전문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나 학자보다 많은 진실을 말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초기 소설은 풍자가 강하지만 후기 소설은 풍자 대신 치밀한 구성과 사회비평이 돋보인다.
디킨스 문학에서 가장 독특한 역할을 한 건 연극이다. 디킨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연극에 깊이 빠지고, 한때는 연극배우로 살아갈 염원까지 품었다면, 작가로 성공한 다음에는 아마추어 연극에 배우로 참여한 건 물론 총연출까지 맡을 정도였다. 그래서 원고를 집필할 때는 스스로 다양한 등장인물로 돌변해 직접 연기하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니,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대문호는 물론 수많은 독자가 감탄하는 캐릭터가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건이나 캐릭터를 중심으로 인물 성격을 잡아나가고, 사회현실을 대변하는 독특한 사건이 신문 기사에 실리면 그 내용을 자세히 조사해서 작품에 싣는 식으로 허구를 구성하니, 탁월한 현실감이 작품을 지배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2. 작품해설
찰스 디킨스는 캐릭터 묘사가 극히 뛰어나며 풍자가 대단하고 문장은 화려해, 지금까지 한국에서 번역물로 제대로 소개했다고 볼 수 없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그나마 유명한데 문장이 복잡한 나머지 이미지만 소개한 수준이고, 완역 시도는 엉터리라서 독자가 디킨스 문학을 맛보기엔 부족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을 든다면,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 《어려운 시절》, 《크리스마스 캐럴》 등이 있는데, 특히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디킨스는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는 등,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느라 정규교육을 받은 기간도 짧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건 2~3년에 불과하다. 이런 과거를 디킨스는 평생 외면하다 마흔을 앞두고 돌아본다. 그러면서 쓰기 시작한 작품이 《데이비드 코퍼필드》니, 인생의 황금기에 지난 삶을 솔직하게 돌아보며 집필한, 디킨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중산층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와 유모와 행복하게 살지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온갖 불행에 처한다. 혼자서 쓸쓸하게 역마차를 타고 찾아간 학교는 폭력이 난무하고,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좌절감에 시달린다. 극한 불행을 겪으면서도 미래를 포기할 수 없어, 코퍼필드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괴짜 고모할머니를 찾아 나서는데, 어렵게 마련한 여행 경비를 도적놈에게 빼앗기니, 옷을 팔고 거지 행각을 하며 머나먼 여행길을 겪어낸다. 극도의 불안감과 고통이 몰려들 때는 환하게 떠오르는 어머니 영상에 의지하며 극복한다.
온갖 고통을 겪으며 찾아간 고모할머니는 괴팍한 성격이지만 원칙이 또렷하고, ‘데이비드’는 꿈에 그리던 중산층 생활을 시작하며 교육도 받는데, 이번에 들어간 학교는 극히 바람직하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성도 사귀고 실연도 겪으며 성장한다. 독자는 여기에서 디킨스가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과 간절한 희망이 실재와 허구로 묘하게 엮이는 걸 느낀다.
데이비드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 다양한 영향도 받는다. 어머니는 사랑스럽지만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나쁜 남자랑 재혼해서 죽음을 맞고, 머드스톤 남매는 주관적인 원칙과 종교관으로 주변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모할머니는 불행한 결혼생활과 이혼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괴팍하면서도 성실한 원칙을 추구하고, 패거티 유모는 순박한 성격과 무한한 사랑으로 데이비드를 어린 시절부터 감싸주며 지원하고, 패거티 아저씨는 순박한 어부로 살아가며 사내 특유의 우직한 사랑을 실천하고, 에밀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행복을 추구하다 좌절하고, ‘햄’은 자신을 배신한 약혼녀를 끝까지 사랑하며 죽음을 선택해서 하늘로 이어지는 사랑을 실천하고, 거미지 부인은 딱한 처지를 끝없이 한탄하나 다른 사람이 겪는 커다란 불행을 동정하며 새롭게 태어나고, 학교 선배 스티어포스는 탁월한 지도력과 지식으로 세상을 비웃으나 결국에는 순박한 처녀를 유혹에서 지옥에 빠뜨리고, 트래들스는 순박하면서도 성실한 우정으로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완성하고, 도라는 천진난만한 성격에 사랑스러운 여인이지만 극히 무능하고, 미코버 부부는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허풍을 늘어놓고, 유라이어 힙은 악마의 대변자로 극히 겸손한 척하면서 타인을 나락에 떨어뜨리고, 그 외에도 여러 인물이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데이비드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무엇보다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그네스’로 이상적인 여인상을 대변한다. 행간을 잘 살피면 디킨스 자신이 겪은 다양한 인물은 물론, 디킨스 자신이 겪은 불행과 그 속에서 갈망하던 희망이 겹치는 걸 느낄 수 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무엇보다도 탁월한 특징은, 무려 5,500매에 달하는 장편을 펼쳐나가느라 중간에 이야기가 느슨하게 변할 개연성이 충분한데도, 디킨스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배우처럼 직접 연기하는 식으로 집필해서 캐릭터를 일정하게 과장하면서도 현실성을 부여해, 처음부터 끝까지 탁월한 박진감으로 독자의 눈을 잡아끈다는 사실이다. ‘서머싯 몸’이 세계 10대 소설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말이다.
3. 편집자의 말
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
‘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어서 오시게, 머드스톤! 우리는 자네가 죽은 줄 알았네!”
“아직은 안 죽었네.”
머드스톤 아저씨가 대답하자, 신사 한 명이 나를 잡으며 물었다.
“애송이는 누군가?”
“데이비라고 하네.”
“데이비 누구? 존스?” 데이비 존스는 바다의 악령이다.
“코퍼필드.”
“맙소사! 매혹적인 코퍼필드 부인의 거추장스러운 아이 말인가? 아름답고 귀여운 과부의?”
한 신사가 말하자, 머드스톤 아저씨가 경고했다.
“퀴니언, 가능하다면 말을 조심하시게. 날카로운 사람이 있으니.”
“그게 누군데?”
신사가 다시 물으며 웃고 나 역시 궁금해서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는데, 머드스톤 아저씨가 대답했다.
“셰필드에 있는 개울 셰필드(Sheffield)는 영국 중부 공업지대로 강철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셰필드에 있는 개울’이란 개울물에 쇳가루가 녹아들어서 날카롭다는 뜻으로, 데이비를 의미한다.
이라네.”
나는 “셰필드에 있는 개울”이란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 처음에는 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셰필드에 있는 개울 아저씨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으로 유명한 것 같았다. 대답을 듣는 순간에 두 신사가 폭소를 터트리고 머드스톤 아저씨 역시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오랫동안 웃더니, 퀴니언이라는 신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셰필드에 있는 개울은 자네가 추진하는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장은 개울이 제대로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쪽은 대체로 아니네.”
머드스톤 아저씨가 대답하자 또다시 폭소가 일고, 퀴니언은 종을 울려서 백포도주를 주문해 개울을 위해 축배를 들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포도주가 도착하자, 나에게도 포도주를 조금 따라주고 비스킷까지 주더니 내가 그걸 마시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며 선언했다.
“셰필드에 있는 개울이 혼란스럽길 바라며!”
그러자 환호성과 함께 폭소가 터져 나와서 나 역시 따라 웃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또 웃었다. 한 마디로, 우리 모두에게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음을 달랜 게 정말이오?”
패거티 유모가 웃다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바키스 아저씨는 자리에 앉은 그대로 옆으로 움직여서 유모에게 접근해,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찌르며 투박하게 물었다.
“정말로 진짜로 그런 거요? 정말로? 정말로 진짜로 마음을 달랜 거요? 정말로? 엉?”
한 번씩 물을 때마다 유모 쪽으로 몸을 밀어붙이며 옆구리를 찔러대니, 나와 유모는 결국 짐마차 왼쪽 모서리에 바싹 달라붙고, 나는 너무 짓눌려서 도저히 못 견딜 지경까지 이르렀다.
패거티 유모는 내가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바키스 아저씨는 곧바로 물러나서 숨 쉴 틈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바키스 아저씨는 힘들여서 대화 분위기를 끌어내지 않고도 말끔하고 편안하고 확실하게 자기 마음을 전달할 수단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혼자 가만히 웃으며 좋아하더니, 패거티 유모에게 몸을 다시 돌려서 “정말로 마음을 달랜 거요?” 하고 물으며 우리 두 사람을 다시 밀어붙였다. 나는 숨이 막히고 패거티 유모는 그 사실을 통보하고 바키스 아저씨는 다시 물러나더니, 그대로 되풀이했다. 결국 나는 바키스 아저씨가 다가올 때마다 벌떡 일어나 발판에 올라서서 주변 경치를 보는 척하며 숨 막히는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나는 창고 일꾼 모두와 친하게 지내도 행동거지는 차이가 엄청날 정도로 달랐다. 사람들이 나를 ‘꼬마 신사’나 ‘서퍽에서 온 꼬마 나리’라고 부를 정도였다. 짐 꾸리는 인부를 지휘하는 조장으로 이름을 ‘그레고리’라고 하는 사람과 짐마차를 끄는 마부로 빨간 윗도리를 주로 입는 ‘팁’이라는 사람은 가끔 나를 ‘데이비드’라고 부르곤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아주 가까울 때, 작업하는 도중에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치는) 소설책 내용을 재밌게 이야기해서 그들이 즐거울 때 주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특별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한번은 ‘감자녹말’이 들고 일어나서 반발했지만 믹 워커가 단번에 진정시켰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날 희망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극심하게 자포자기했다. 지금 확실하게 단언하는데, 나는 당시에 하던 일에 보람을 느낀 적이 한순간도 없으니 비참하고 불행한 느낌에 항상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견디어냈다. 그동안 패거티 유모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이런 사정을 말한 적은 없었다. 유모가 마음 아파할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창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찰스 디킨스
1812년 영국 포츠머스 교외에서 해군 경리국에서 일하던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디킨스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12세 때부터 공장 에서 일하며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고, 당시의 경험은 훗날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어려서 부터 사회의 모순을 직접 체험한 디킨스는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했고,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신문사 통신원이 되었다. 이후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 비판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1838년에 《올리버 트위스트》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고 그 후 《골동품 상점》, 《돔비와 아들》, 《황폐한 집》,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등을 발표했다. 건강이 나빠지는 중에도 작품 활동과 강연, 낭독회 등을 쉬지 않았고 1870년 6월 9일, 추리 소설풍의 《에드윈 드루드》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 상을 떠났다.
목차
CHAPTER 20. 스티어포스 선배네 집
CHAPTER 21. 꼬마 에밀리
CHAPTER 22. 오래된 장면, 새로운 사람들
CHAPTER 23. 수습사원
CHAPTER 24. 술이 어떤 건지 처음으로 느끼다!
CHAPTER 25. 수호천사와 사악한 천사
CHAPTER 26. 사랑에 빠지다
CHAPTER 27. 토미 트래들스
CHAPTER 28. 미코버 아저씨의 도전
CHAPTER 29. 스티어포스 선배네 집에 다시 방문하다
CHAPTER 30. 죽음
CHAPTER 31. 엄청난 손실
CHAPTER 32. 기나긴 여정에 나서다
CHAPTER 33. 황홀경
CHAPTER 34. 고모님이 나를 놀라게 하다
CHAPTER 35. 우울한 나날
CHAPTER 36. 열정
CHAPTER 37. 찬물을 살짝 끼얹다
CHAPTER 38. 동업자가 사망하다
CHAPTER 39. 위크필드 & 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