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전 세계 석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의 자원 부국, 10여 개 이상의 민족이 살고 5개 이상의 언어가 쓰이는 다민족 국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라. 이란은 1979년 혁명으로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국을 수립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선출된 종교 지도자가 군 통수권을 가진 종교 국가이기도 하다. 실크로드의 한복판에 위치한 까닭에 오래전부터 상인 문화가 발달했지만, 식당 직원이 초대받은 손님의 돈을 거절하는 독특한 문화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이란은 어떤 나라일까?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란학자 유달승 교수가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에서 이란인의 독특한 가치관, 현대 이란을 형성한 역사, 이란을 이란이게 하는 핵심 정체성 등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내용을 간결하고 풍성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1979년 텔레비전에 비친 이슬람 혁명에 호기심을 느낀 뒤 이란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인 최초로 이란에 유학을 떠났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초의 외국인 박사가 되었으며, 그 직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방문학자로 초대받았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이란을 연구한 저자는 국내 최고의 이란학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숨겨진 미덕은 바로 '겸손'이다. 저자는 여전히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이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이란이 전부인 걸까?"
출판사 리뷰
순교의 역사에서 민주화 혁명까지
능청스런 흥정에서 진심 어린 환대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란의 진짜 얼굴
전 세계 석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의 자원 부국, 10여 개 이상의 민족이 살고 5개 이상의 언어가 쓰이는 다민족 국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라. 이란은 1979년 혁명으로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국을 수립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선출된 종교 지도자가 군 통수권을 가진 종교 국가이기도 하다. 실크로드의 한복판에 위치한 까닭에 오래전부터 상인 문화가 발달했지만, 식당 직원이 초대받은 손님의 돈을 거절하는 독특한 문화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이란은 어떤 나라일까?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국내 최고의 이란학자 유달승 교수가 신작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에서 이란인의 독특한 가치관, 현대 이란을 형성한 역사, 이란을 이란이게 하는 핵심 정체성 등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내용을 간결하고 풍성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1979년 텔레비전에 비친 이슬람 혁명에 호기심을 느낀 뒤 이란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인 최초로 이란에 유학을 떠났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초의 외국인 박사가 되었으며, 그 직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방문학자로 초대받았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이란을 연구한 저자는 국내 최고의 이란학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숨겨진 미덕은 바로 ‘겸손’이다. 저자는 여전히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이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이란이 전부인 걸까?”
이란을 이란이게 하는 힘
슬픔과 패배의 역사를 분노와 저항의 역사로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이란을 이란이게 하는 경험과 서사를 세심하게 살핀다. 10여 개 이상의 민족이 모인 다민족 국가, 5개 이상의 언어가 모국어로 쓰이는 나라에서, 어떻게 수천 년 동안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은 무엇일까?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시작으로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 로마와 전쟁, 7세기 아랍의 침략, 11세기 투르크의 지배, 13세기 몽골의 침략, 19~20세기 러시아, 영국, 미국의 개입까지, 이란의 역사는 외세의 침략으로 점철되었다. 이런 경험은 분노와 저항의 감정을 낳았고, 오랫동안 축적된 이 기억이 오늘날 이란인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란인이 믿는 종교가 이슬람 내 소수파로서 오랫동안 탄압받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중동에서 이슬람이 두 가지 종파로 분열된 계기는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계자 문제였다. 다수파인 수니파는 이슬람 공동체가 후계자를 정할 자격이 있다는 입장이었고, 소수파인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사촌인 알리와 그 자손이 신에게 선택받은 이맘(이슬람의 예배 인도자)이라고 여겼다. 시아파는 무함마드 사후 이맘 12명 중 대다수가 수니파에 의해 은밀히 살해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아파 무슬림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기희생’이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에서 가장 큰 종교 행사는 3대 이맘 후세인의 순교일을 기념하는 ‘아슈라’이고, 이란 국기의 붉은색은 순교를 상징한다. 오랜 세월 침략에 맞선 경험과 순교에 대한 기억이, 이란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침략과 순교의 경험 이외에도 또 다른 문화가 이란인을 하나로 묶어준다. 바로 페르시아어 시와 문학이다. 신비주의 시인 루미, 사디, 하페즈, 오마르 하이얌 같은 시인들이 페르시아어로 쓴 시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읽힌다.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의 입구에는 사디의 시 <아담의 후예>가 걸려 있다.(시 전문을 책 표지에 페르시아어로 실었다.)
“라 일라하 일라 알라(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이슬람은 어떻게 신뢰를 얻었을까
이란 사람들이 강한 종교적인 열정을 갖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단지 이란 사람들이 독실한 종교인이기 때문일까? 진정한 원인은 이란 근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말 이란은 서구 유럽의 침탈을 경험하고 있었다. 1890년 이란에서 일어난 담배 불매 운동은 이란 사람들이 외세의 침탈에 저항한 첫 번째 대중 운동이었다. 이 운동에 성직자들이 어느 집단보다 앞장섰다.
1890년 왕 나세르 알딘 샤는 수익의 일부를 나누는 조건으로 영국인 기업가에게 이란의 담배를 50년간 재배, 판매, 수출하는 독점적인 권리를 주었다. 이에 이란 농민과 상인 그리고 성직자들이 거세게 저항했고, 1891년에는 이슬람 지도자인 미르자 모함마드 하산 쉬라지가 금연을 명령하는 파트와(종교법령)를 발표했다. 대다수 이란인이 이 파트와에 복종하고 담배 불매 운동이 확산되자, 결국 왕조는 영국인 기업가와 담배 전매권 계약을 철회했다.
저자는 이 운동을 통해 이란 사회에 세 가지 의식이 싹텄다고 설명한다. 첫째, 이란에서 절대 왕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확산되었다. 왕이 이란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침해한다면 왕권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 시아파 성직자들이 이란 민족주의 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되었다. 셋째, 이란인이 민족 정체성에 기반한 도시 중심의 대중운동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1921년 영국의 지원으로 쿠데타가 일어나, 외국 정부에 친화적인 팔레비 왕조가 탄생했다. 1953년에는 대규모 시위로 이탈리아에 망명했던 왕이 미국과 영국이 지원한 쿠데타로 복권했다(아작스 작전). 1960년대부터 성직자 호메이니가 저항 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했고, 1978년 호메이니를 음해하는 언론 기사에 이슬람 신학생들이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그해 9월 군대의 발포로 약 2000여 명이 사망했다. 12월 11일 아슈라 행사에 200만 명의 시민이 모여 ‘자유 자주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구호를 외치자, 1979년 1월 16일 팔레비 왕정의 마지막 왕 모함마드 레자 샤가 이란을 떠났다. 같은 해 2월에는 호메이니가 이란으로 귀국해 이슬람 혁명의 승리를 선언했다.
“불행한 사람들을 억압과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우리에게는 억압된 사람들을 지키고 억압자와 싸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알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다.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벗이 되어라. 억압자의 적이 되어라.’”(159쪽)
이란, 이슬람, 공화국
종교와 민주주의의 절묘한 공존
이란은 바다와 호수에 인접한 나라로 어류 자원이 풍성하다. 그런데 시아파는 무슬림이 비늘이 없는 물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철갑상어와 캐비어도 전통적으로 금지되어 왔다. 1979년 이후 사회의 보수화 분위기에 맞추어, 1981년 이란 정부는 철갑상어가 할랄 음식인지 즉 무슬림이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명확하게 판결해줄 것을 종교 기관에 요청했다. 수산청이 철갑상어 세 종의 샘플을 호메이니 최고지도자 사무국에 보냈고, 성직자들은 철갑상어를 면밀히 관찰한 끝에 꼬리 부근에 비늘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에 따라 호메이니가 “비늘이 꼬리 부분에만 있어도 할랄이다”라는 파트와를 발표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수립된 ‘이란이슬람공화국’의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지도자”다. 최고지도자는 국민이 선출한 고위 성직자 88명(임기 8년)으로 구성된 지도자전문가의회에서 정하는데, 이들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고 해임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시아파 무슬림은 12대 이맘이 종적을 감춘 뒤로 누가 시아파 사회를 인도해야 하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했고, 호메이니가 주장한 “이슬람법학자통치론”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즉 이슬람법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이슬람법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법학자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신임을 얻은 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이슬람법학자만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영역에 속한 일을 전부 인수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처럼 이슬람법학자는 법으로부터 일탈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으며, 이 세상의 행복에 무사무욕한 사람이어야 한다. (…) 공정한 이슬람법학자만이 신의 법을 실천에 옮기고 이슬람의 원칙을 확립하고 벌칙과 형벌을 내리고 무슬림 공동체의 국경을 방어하고 영토를 보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부의 최고행정관이 될 수 있는 것이다.”(165쪽)
동시에 이란 사회는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정권을 교체한다. 1979년 이후 지금까지 8년마다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했다. 이란에서 정치 세력이 나뉘는 이념적인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이슬람법학자통치론에 대한 입장이고 둘째는 사회·경제·외교 정책에 대한 입장이다. 하지만 모든 정치 세력이 공통적으로 이슬람의 권위를 인정한다. 이란의 정치 세력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정통 우파(보수파), 좌파(개혁파), 현대 우파(중도파), 신원리주의자(강경파)이다. 정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는 최고지도자를 이맘의 대리인으로 규정하고 신성한 권력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한다. 반면 좌파와 현대 우파는 최고지도자가 헌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고 국민의 뜻을 충실하게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왜 이란을 싫어할까?
친구와 적의 조건
2020년 1월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은 모두 이란에서 터졌다. 1월 3일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가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암살당했고, 8일에는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란의 공격이 있고 네 시간 뒤,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추락하자 이란 정부는 기체 결함이 원인이라고 발표했다가 11일 자신들이 오인 격추했음을 인정했다. 전쟁 상태라고 봐도 될 정도의 무력 충돌이 이란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일어난다. 한때 ‘중동의 헌병’, ‘페르시아만의 경찰’이라 불릴 만큼 미국과 가까웠던 이란은 어떻게 해서 미국의 적이 되었을까?
불화의 근본 원인은 석유다. 이란은 전 세계 석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로 손꼽히는 자원 부국이다. 그 밖에 아연(세계 1위), 철광석(세계 4위), 우라늄(세계 10위), 납(세계 11위), 구리(세계 17위), 석탄(세계 26위) 등 광물 자원도 풍부하다. 게다가 이란은 페르시아만(세계 석유 매장량의 3분의 2)과 카스피해(세계 석유 매장량의 5분의 1)를 육로로 연결하는 유일한 국가이고, 세계 에너지의 생명줄이라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영해로 포함한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소련과 냉전기에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했다. 1953년에는 군부를 지원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 정부를 전복하게 하고 왕정을 복권시켰다. 이로 인해 이란에서 반미 감정이 싹텄고, 이 경험은 1979년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로 이어진다.
불화의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였다. 1979년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 모함마드 레자 샤가 미국으로 망명하고 왕조의 고위급 인사들이 미국으로 모여들자, 이란 시민들이 미국에 레자 샤와 주요 인사들을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이 요청을 거부하자,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담을 넘어 대사관을 점령하고 여성과 흑인을 제외한 남성 52명을 444일간 인질로 삼아 억류했다. 1980년 4월 7일 미국이 이란과 단교를 선언하면서 그로부터 41년 동안 적대 관계가 유지되었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란이 “세계 최대의 테러 지원국”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현재 중동과 전 세계에서 주요한 이슬람 테러리스트 단체는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탈레반 등으로 모두 수니파 극단주의 집단이다. 이란은 대표적인 시아파 국가로 이들과 강력하게 대립하고 있고, 중동에서 이슬람국가를 격퇴하는 데 미국과 공개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다.
“이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정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란은 한국과 매우 밀접한 나라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듯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서울로’가 있고, 2003년에 ‘서울공원’이 생기기도 했다. 게다가 2017년까지 한국은 이란의 4대 교역국이었고, 이란은 한국의 4대 원유 공급국이었다. 두바이를 거치는 한국의 수출 물량 중 40퍼센트 이상이 이란을 향하고, 해외 건설 수주 중 4분의 1 이상이 이란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인이 특히 이란에서 친숙함을 느끼는 문화가 있다. 바로 이란의 교육열이다. 이란에서 길을 걷다 보면 아이들 사진이 있는 휘장이나 포스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학원에서 걸어놓은 홍보 이미지다. 사진 속 아이들은 그 동네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들이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서 이란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문제도 교육 정책이었다. 교육 방송을 초·중·고 교과과정에 따라 개편해 학사 일정을 운영했고,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활용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교사들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서 학생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이란에는 독특한 환대의 문화가 있다. 이란인은 손님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당신을 위해 희생할 것이다.” “당신이 우리의 눈을 밝게 했다.” 이란에서는 손님이 ‘신의 친구’이기 때문에, 이란인은 손님을 환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저 사람은 내 손님이다”라고 말하면, 종업원은 그 사람의 돈을 받지 않는다. 이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면, “이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서 강제로 물건을 떠안기려고 한다. 그럴 때 물건의 값을 지불하지 않거나, 귀중품을 그냥 가져서는 안 된다. 겸손을 표현하는 이란 특유의 이런 문화를 ‘타아로프’라고 한다.
이 책은 이란 사람들의 심성과 역사, 독특한 정치체제, 일상의 문화 등 이란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을 작은 분량이지만 알찬 내용으로 풀어낸다. 저자가 이란 유학 생활에 겪은 일화, 2019년 9월에 교환 교수로 방문해 경험한 각종 사건과 코로나19 사태 등 이란 현지의 분위기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우리가 아시아의 반대쪽 끝을 이해하려면,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보다 더 나은 이야기가 없을 것이다.
이란으로의 출발을 앞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거기 가도 되겠어?” “전쟁이 나지 않을까?”라고 묻기도 하고 “그런 위험한 곳에는 왜 가려고?”라고 만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성실하게 대답해주었지만 나중에는 반복되는 질문에 지쳐서 내가 전쟁을 막으러 가는 거라고 동문서답을 했다. 어쩌면 그들의 우려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이번에는 한 도서관 직원이 내 옆에 와서 잠시 얘기를 하자고 했다. 그는 뜬금없이 내가 가지고 다니는 우산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비슷한 우산은 테헤란 북부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서만 판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비용을 지불할 테니 하나 사달라고 했다. (…)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에게 이렇게 황당하고 당돌하게 요구하는 경우는 아마 다른 곳에서는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곳 이란에서는 정말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황당하고 당돌하다는 느낌을 넘어 예의가 없고 염치를 모르는 뻔뻔스러움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말문이 막히고 정말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양한 이란인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문화 자산은 페르시아의 시와 문학이다. 이러한 문화 유산은 이란인의 정치 유산을 기록하고 보급하는 매우 영향력 있는 수단이 되었다. (…) 이란 문화, 특히 페르시아어와 문학은 아랍어와 아랍 문학으로 동화된 중동의 다른 지역과 달리 이란의 정치적 독립을 유지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아랍을 비롯한 수많은 외세의 지배와 개입 속에서도 이란 문화는 지속되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유달승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 비친 이슬람 혁명을 보면서 ‘이란’이라는 국가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다른 길을 걷는 이란인들의 삶과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또한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전공하면 자리 잡기도 쉬울 것 같고 할 일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미개척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 이란학을 전공했다.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란어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중동정치를 공부한 후 이란 테헤란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에서 외국인이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1999~2000년에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중동연구센터Center for Middle Eastern Studies에서 초빙학자Visiting Scholar로 활동했고 2019~2020년에는 이란 알라메 타바타바이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교환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저서로 《시아파의 부활과 중동정치의 지각변동》, 《중동은 불타고 있다》,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예루살렘 전기》(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중동의 비극》(배리 루빈 지음),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 엿보기(로버트 스펜서 지음), 《팔레스타인/이스라엘》(마르완 비샤라 지음) 등이 있다. 또한 ‘이란의 정치문화와 정치발전’을 주제로 영국에서 《The Role of Political Culture in Iranian Political Development》를 출간하고 이란에서 《Farhang-e Siyasi va Touse’e-ye Siyasi》를 출간했다.
목차
머리말_ 전쟁을 막으러 간다
1장 천국은 어머니의 발아래에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느리지만 디테일에 강하다
한번 맺은 인연의 힘
황당하고도 당돌한
겸양의 예술, 타아로프Taarof
천국은 어머니의 발아래 있다
2장 페르시아는 작고 이란은 크다
고귀한 나라
나는 페르시아인이지 이란인이 아니다
꽃을 사랑하는 민족
영화 〈300〉과 페르시아
슬픔과 패배의 역사를 분노와 저항의 역사로
3장 친구와 적의 조건
미국은 왜 이란을 싫어하는가
세계 경제의 생명줄, 호르무즈 해협
중동의 영원한 숙적
‘이란국민저항위원회’의 정체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4장 이란, 이슬람, 공화국
한 번의 운동과 두 번의 혁명
공화국의 통수권자, 최고지도자
복잡하고도 다양한 정치 지형도
5장 손님은 신의 친구다
하늘의 선물
신이 허락한 음식
당신은 내 눈 안에 있다
더불어 차, 소통과 해방의 공간
바자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