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손힘찬 작가 강력 추천!
논문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제적 의사’ 이낙원,
생사를 가름하는 숙명의 무게를 버티며
자신과 타인을 지켜나가는 이야기
“바이러스 행성에서 다정한 의사로 산다는 것”
글 잘 쓰는 의사 이낙원이 전하는
위드 코로나판 ‘슬기로운 의사생활’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는 2019년 12월부터 오미크론 대유행을 지나는 현재까지 이 지구가 다시 한 번 ‘바이러스 행성’임을 실감케 했다. 인천 나은병원 호흡기내과 의사이자 중환자실 실장인 이낙원은 선별진료소부터 병동 진료실까지 현장 의사로 분투하며 환자들의 삶을 더 밝은 곳으로 끌어내고자 작금의 의료 현실과 싸우고 있는 내과 의사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로 침투했을 때 의료진의 대응과 갖가지 감정들을 현장감 있는 글로 담아내며 특별한 기록물을 남기기도 했던 그가 이번에는 그간의 묵직함은 조금 덜어내고, ‘의사로 산다는 것’에 대한 말쑥한 에세이로 다시 돌아왔다.
『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는 “두 번은 못할 것” 같은 코로나 시대 의사라는 생업을 수행중인 저자의 일, 관계,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위트와 경외를 담아 완성한 업(業) 에세이다. 때론 생사의 현장에서 오롯이 견뎌야 하는 적막감과 혼란의 감정, 시끌벅적한 환자와의 교감 속에 피어오르는 인정과 감동, 특별하지 않아 소중한 의사의 일상, 타인의 생사를 가름하기도 하는 숙명의 무게, 그럼에도 슬기롭게 자기와 타인의 삶을 지켜나가는 벅찬 신념 등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현실판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21세기북스의 책들
▶ 하오팅캘리의 슬기로운 기록생활: 사소한 일상도 특별해지는 나만의 작은 습관|이호정 지음|21세기북스|2022년 1월 12일 출간|18,000원
▶ 유일한, 평범|최현정 지음|21세기북스|2021년 11월 17일 출간|16,000원
▶ 사실은 이 말이 듣고 싶었어: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위한 다정한 말 한마디 | 윤정은 지음|21세기북스|2021년 4월 14일 출간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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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의학을 이해하기 위한 진지함,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을 책임지기 위한 측은함,
삶의 쓸쓸함과 처연함을 막기 위한 장난기,
의사에게는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논문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제적 의사’ 이낙원,
생사를 가름하는 숙명의 무게를 버티며 자신과 타인을 지켜나가는 이야기“선생님!!”
세 글자만으로도 충분했다. 굳이 응급이라고 얘기 안 해도 마음의 준비는 저절로 된다. 나는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음식을 음식물 수거통에 통째로 뒤집어버리고 중환자실로 뛰어 내려갔다. 나와 간호사 서너 명이 달려들어 십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하니 환자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한 폐렴이 의심되어 음압실에 입원한 환자여서 보호복을 갖추고 들어와야 하는 공간인데, 모두가 마스크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심장이 멎은 환자 앞에서 입는 데만 몇 분이 소요되는 보호복이란 얼마나 사치인가. 그 와중에 나는 마스크 두 개를 겹쳐 끼는 노련함을 발휘했지만, 심폐소생술 중에 마스크가 고정이 안 되어 시야를 가리는 통에 하나를 벗어버리고 말았다. 간호사들의 머리는 땀에 젖어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멋있었다. 땀이 때로는 가장 멋진 액세서리가 될 수 있다. 그나저나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감염병 환자에게 모두가 노출된 상황이니, 환자의 검사결과가 양성으로 보고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간호사 한 명이 물었다.
“선생님, 우리 다 격리되는 건가요?”
“격리 정도가 아니고, 우린 이미 다 걸린 거야.”
-본문 중에서
똑같은 삶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처연한 생존기’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발랄한 예술’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될지는 삶의 주체인 당사자의 결정이다. 가운, 방호복, 병동 등 차가운 ‘흰 색’으로 점철된 장소에 발랄한 의연함을 가득 채운 기록, 이 책 『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에는 코로나19가 지나간 의료 현장의 선득한 풍경과 스펙터클한 분투의 전경이 진지함과 측은함만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의사’라는 전문가인 동시에 공통의 일상 생활자로서 삶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 터져 나오는 낙담과 절망과 매너리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자신이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고 위로해줄 누군가가 또는 무언가가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끝없이 질문하며 삶을 돌보고 지켜나가는 이야기들을 따뜻하고 편안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이 환자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만난 것이 나쁜 우연’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될 때가 의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필 나를 만나 병세가 나빠진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급습하는데, 매번 그 책임감을 능히 당해낼 수 없어 귀퉁이 닳은 전공서를 다시 뒤적이게 되고 다른 선택지는 과연 없었을지 반추를 거듭한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하지만 아무리 지식으로 무장한 ‘자신감’이 있더라도 사람의 몸이 기계가 아니듯 고장 나면 설명서대로 갈아 끼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약제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예상 밖의 사건으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책임감을 져야 하는 사건들의 집합이 의사의 숙명을 결정 짓는다.
그런데 이 의사의 숙명에 대한 저자의 응수는 기발하면서도 철학적이다. 저자는 의사라면 마땅히 질병과 의학을 이해하기 위한 진지함,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측은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하나, 유머와 장난기를 지녀야 한다고 제법 곧은 어조로 말하고 있다. 장난기 없는 진지함만 가지고서는, 장난기 없는 측은함만을 가지고서는 삶은 처연해질 수밖에 없기에 슬픔과 고통으로 삶이 뒤덮이기 전에 비어 있는 공간, 비어 있는 순간을 기어코 찾아내 사랑와 회복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가워진 가슴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진료실의 기쁨과 슬픔이 담긴 40편의 기록들저자가 역설하는 의사의 덕목 중 하나는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따뜻한 선생님’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다. 필요할 때 자가 냉각기를 가동시키고, 자신의 눈빛과 얼굴의 온도를 떨어뜨려 차가움을 만들어낼 줄 아는 것인데, 과정의 차가움이 더 따뜻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저자의 태도는 환자와 그들의 삶을 대하는 자신의 심성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얼마나 이성과 감정을 컨트롤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세 명의 사망진단서를 이렇게 편안히 앉아서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내려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라는 기묘한 성찰과 함께 마치 제조업체의 생산라인에 앉아서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처럼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의사가 정신을 다잡아야 두려움과 불안에 휘둘리는 가족들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소신으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환자와 한 배를 타고 있는 운명공동체임을 깨닫게 하고야 만다.
인간적 존중이 통계적 수치에 매몰되지 않도록, 쓸쓸한 병원 안팎의 풍경을 가능한 한 아름답고 다채로운 색깔로 칠할 수 있도록, 삶과 죽음의 고통스러운 흔적을 세세하게 듣고 근사하게 써내려갈 수 있도록 저자는 진료실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생존을 위한 호흡 같은 ‘진료실의 글쓰기’는 기쁨과 슬픔이 얽히고설킨 40편의 기록물이 되었고, 이 이야기들은 헛되고 허전하게 느껴지는 일상에 무엇보다 강력한 진동을 일으키고, 회복에의 의지를 생성케 하기엔 충분하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마스크 밖으로 청진기 밖으로 흘러넘친 사랑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위드 코로나 시대라는 공간과 사건 속에서 ‘의사’의 시선을 빌려 자신와 타인의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옮긴 이 책을 통해 힘들어서 곧 넘어질 것 같은 사람, 뭐라도 붙들고 일어나야 하는 사람, 직종에 관계 없이 ‘충분히 지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뜨거운 격려를 받아안을 수 있을 것이다.

외과의사들의 수술방은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곳이다. 의사가 이어놓은 뼈와 인공관절을 가지고 환자는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 뇌혈관 수술, 심장판막 또는 신장이식등 한 순간의 술기로 여생의 질이 결정될 수 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이 거하게 취한 어느 교수님이 의사들에게 한탄 섞인 부탁을 한 적이 있다. 평생 함께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짊어질 수 없다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몇 개월 전에 여섯 살 아이의 엄마를 병원 로비에서 만났다. 얼굴빛이 건강해 보였고, 퇴원할 때보다 살도 조금 더 찐 것 같았다. 그녀는 커피를 손에 들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가웠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한동안 책임감에 마음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치사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녀가 이제는 일곱 살이 된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에게는 책임감을 짊어질 눈에 보이지 않는 근력이 조금 더 생겨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하니까.
우리는 흔히 많이 생각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라고 착각하는 오류에 빠진다. 우리의 골통은 작아서 쉽게 사소한 생각들에 점령당해버리고 만다. 사소한 것들이 골을 반복적으로 치면 세상 중차대한 골칫거리로 둔갑한다. 사실 따져보면 별것 아닌 것들이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압도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가끔은 정신을 리셋해야 한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이 땅에 왔음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회진을 돌 때 환자들의 얼굴을 오롯이 쳐다보았다. 집중하니 느낌이 다르다. 다 내려놓고 그저 얼굴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할 말도 생기고 여유도 생기고 재미도 생긴다. 이참에 더 노력해보기로 한다. 좀 더 실존적 자세로 삶을 대하는 것이다. 여러 계산을 내려놓고 회진을 돌 것이며, 만나는 ‘얼굴’들에 집중할 것이며, 안경이 멋진 분 또는 손톱이 예쁜 분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