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아침마다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공립 고등학교의 한 젊은 교사가 있다. 그는 호떡을 구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어묵꼬치를 국물과 함께 따뜻하게 내밀기도 한다. 모두에게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한다. 학생부장인 그는 아이들이 입은 옷을 살핀다. 누군가를 단속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에 따르면,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는 건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일이다. 그는 말한다. “제대로 보살핌받을 수 없어 구겨진 교복을 입고 올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체육복을 입죠. 그 마음을 읽어주는 게 학생부장인 저의 일이고요”
이 책은 이원재 교사가 읽어낸 학생들의 마음을 담았다. 그는 네 학교의 학생부에 있는 동안 많은 학생들과 만났다. 각종 범죄에 연루된, 배달 일을 하다 세상을 등진, 영어는커녕 한글도 제대로 잘 못 쓰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계획도 희망도 갖지 않은, 그런 아이들을. 그들과 만나온 시간들은 한 사람이 가진 교사로서의 정체성뿐 아니라 좋은 어른의 모습이라는 것을 뒤흔들게 된다.
이 책은 한 젊은 교사가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이들로부터 돌려받으며 조금씩 성장해 온 이야기이면서, 우리가 희망을 찾을 곳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씨앗임을 그래서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해 온 기록이다.
출판사 리뷰
아침 등굣길에 음악을 틀고, 호떡을 굽고, 어묵을 삶고, 코코아를 나누는
‘이상한’ 학생부장이 전하는 뜨끈한 위로
첫 발령지, 특성화 고등학교
처음 발령받은 곳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8시간이 걸리는 특성화 고등학교였다. 흔히 대학 입시, 특히 ‘인서울’ 진입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고등학생이라고 여겨지는 보통의 인식을 깨부수는 경계의 학생들이 다니는 곳. 국어라는 지식을 어떻게든 가르쳐보려 하지만 인생의 쓴맛을 벌써 다 알아버린 것만 같은 아이들에게 교사의 말은 잔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진심은 결국 닿는 법. 지각을 줄이고 금연을 지키자는 규칙을 매일 외치고, 성인이 되어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도록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보자는 담임 교사의 고군분투는 학생들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한 학생의 죽음 또한 한 교사를 변화시킨다. 장지로 향하는 그의 마지막 등교에 ‘천국에서도 행복하라’며 오열하는 마음은 그때 그가 지닌 첫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게 만들어 준다.
살아 있어야 그다음도 있는 것이다. 삶의 지속, 그것을 위해 선생이 학생에게 해줄 말은 무엇일까.
살아있기만 하면 괜찮아.
조금 힘들어도 괜찮아.
지금 남들이 너보고 뭐라고 하든 괜찮아.
그래, 너니까 괜찮아.
이 문장들의 앞 성분을 다 빼고, ‘괜찮아’만 남겨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마지막 종례의 전달사항)
두 번째 발령지도, 특성화 고등학교.
30살 젊은 교사는 두 번째 학교에서 학생부장이 된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학생들과 직접 부딪히고 깨지는 자리인 만큼 여러 학생을 만난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도벽이 생긴 아이나 갑작스러운 임신과 중절 수술로 불안한 정신 상태를 감당할 수 없었던 아이. 환경이나 상황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이나 분노, 냉담함과 같은 감정의 덩어리들 앞에 설 때도 있다. 과한 업무량과 개인의 무거운 책임감에 도망치고 싶다는 본능적 욕망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꾸준히 성실하다. 힘들고 바쁘면 조금 외면할 만도 한데, 교사와 학생의 만남이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이 맺는 유의미한 관계라는 자신의 신념에 끝까지 떳떳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교사가 수십, 수백 명의 학생 가운데 그 한 명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일은 단순한 명사 하나를 기억해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유일한 ‘자기’라는 존재를 세계가 인식하고 있다는 무척 효과적인 증명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에게 있어서도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일은 내 마음의 한켠에 그의 방을 내어준다는 뜻이고, 그 입주자를 위해서 수업에서도, 만남에서도, 대화에서도 집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인 것이다.(그대 이름은 장미)
비단잉어 코이는 어항에서 살면 10cm도 안 되는 크기로 살지만, 연못이나 강에서는 사람 크기까지도 자란다고 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영향 주는 것은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믿을 만한 어른이 자신을 뭐라고 불러 주느냐에 따라, 그 이름에 맞게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 가슴속에 어떤 이상을 품느냐에 따라 성장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나는 아직 믿는다. 우스꽝스러운 명칭일지라도, 내가 그가 그리되리라는 믿음과 함께라면, 그것이 그의 가슴속에 자그마한 희망의 씨앗으로 심길 것을 함께 믿는다.(된다고 말하게)
처음에는 누구나 잘 하고 싶고, 그 일에 열정과 열성을 쏟는다. 또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일에 익숙해지고, 그런 만큼의 나태함과 느슨함에 몸과 마음을 맡기기 쉽다. 그 역시 마찬가지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는 학생들 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일에 있어서는 마음을 거두지 않는다. 그의 변함없는 모습은 그가 뱃사공의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닐까.
어디에서든 언제든 그저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끝까지 함께 걸어주지 못한 이 선생님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무슨 말을 더 붙일 수가 없구나.(그저. 잘. ‘살아’ 있기를)
그래. 교사는 뱃사공이다. 이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함께 갔다. 그리고 그곳에 내려다 주었다.(뱃사공이 널 떠난 이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지역 명문이라는 인문계 여고 학생부장으로 세 번째 발령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안 해도 아무 문제 없을 법한 일을 부러 찾아 만드는 학생부장으로.
서로 끌어안으면서 ‘사랑해’라고 외치는 미션을 수행해야만 빵을 나눠준다는 조건을 걸었다. 빵만 먹으면 목 막히니까 코코아도 한 잔씩 타서 따뜻하게 먹으라고 손에 함께 들려주기로 했다. 사랑한다는 말, 빵 그리고 따뜻한 음료. 이런 것들을 모두 집어넣어 우리가 만날 공간의 이름을 ‘사랑해 모닝카페’라고 지었다.(사랑한다고 말하면 빵 한 조각을 주지)
아침 등굣길에 음악을 틀고, 호떡을 굽고, 어묵을 삶고, 코코아를 타는 그를 학생들은 ‘이상한’ 선생님이라고 기억한다.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는 건 기본이고 작은 부탁 하나를 거절하는 일이 없다. 등교 시간이면 어김없이 정문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수업 시간엔 직접 수기로 만든 프린트를 내민다. 고등학생은 배가 든든해야 한다며 학교에 카페를 차려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어느 겨울날 등굣길엔 어묵 꼬치를 잔뜩 가져와 따뜻한 국물과 함께 내민다. 졸업하고 나서야, 그가 남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자 송현주)
신기하게도 인간은 타인이 나에게 호감 혹은 비호감이 있는지 쉽게 알아챈다. “어떻게 알았어?”라는 질문의 대답은 보통 “그냥 느낌이 그래.”가 많을 것이다. 예민할수록 더 잘 알아채는 것이 상대방의 감정이다. 인간의 일생 중 가장 예민한 한 때는 사춘기가 아닐까. 우리가 중, 고등학생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민감하게 관계에 반응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안다. 이 선생이 이상하다는 것을.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도. 그들 안에 섞여 들어가 함께 숨 쉬는 교사가 어색할 수밖엔 없다.
이 낯선 학생부장은 학교가 ‘어두운 바다’일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깊이도 막막함도 알고 있기에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함께 하는 존재가 있음을, 학생들의 가장 가까이에 서서 단단하게 사랑을 외친다.
학교가 너희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 너희들은 충분히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랐다.(사랑한다고 말하면 빵 한 조각을 주지)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부모로 함께 울고 웃는 그의 이야기는 교사가 학생에게 전하는 응원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학생은 아니지만, 때때로 나도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나도 그 위로를 받은 뜨끈한 마음이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결혼했는데 그 남편에게 형이 있으면 뭐라고 한다고요?”
“아주버님이요.”
“좋습니다. 그럼 아주버님의 부인, 그러니까 여러분의 손윗 동서는 여러분의 남편을 뭐라고 부르게 될까요?”
“서방님!”
“맞아요!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에겐 도련님, 결혼했으면 서방님이라고 부르지요.”
제일 앞줄에 앉은 두 명 정돈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제일 뒤에 앉아 열심히 화장하던 한 아이가 마스카라와 손거울을 탁 소리가 나게 책상에 내려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년은 죽여버릴 거야!”
아아, 그러니까 얘야,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 국가니까 그분은 네 남편을 자기 남편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옛날부터 정해진, 아니 미안하다. 어차피 못 알아듣겠지 싶어 적당한 말을 고르던 중 옆에 있던 그의 친구가 맞장구를 친다.
“그래! 같이 죽이자!” (‘내 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년은 죽여버릴 거야’ 중에서)
“여ㅤㄱㅣㅆ습니다, 선생님.”
긴장됐다. 반장에게 건네받은 밀대 걸레 자루는 영화에서처럼 나무가 아니었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사되는 알루미늄 자루의 차가움이 손 안 가득 느껴졌다. 그래도 속이 비어 있으니 한방에 모가지를 잘 노려서 밟으면 한 방에 멋지게 부서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단의 순간, 왼쪽 발에 힘을 단단히 주고 오른쪽 발 날로 더 정확할 수 없는 힘점을 노려 찼다.
하지만 자루는 깔끔하게 부러지는 대신 알파벳 L자에 가까운 형태로 힘없이 구부러지고 말았다. 갈등했다.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기어코 자루를 뽑아낼 것인가. 구부러졌지만 걸레를 밟고 양손으로 자루를 당기면 뽑힐 듯했다. 그러나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면서 자루를 당겼다. 서너 번 용을 써도 뽑히지 않았다. 이제는 이 밀대 걸레의 구조가 궁금해서 들어 올려 가까이서 보다가, 전날 교직원 회의의 환경부장 선생님의 그 말씀이 떠올라 힘없이 자루를 던져 버렸다.
“우리 아이들이 하도 밀대 걸레로 싸움을 하다 보니 많이 파손됩니다. 그래서 제가 일일이 자루랑 걸레를 나사로 고정해뒀어요. 하하하”
눈 감고 있으라고 했는데 실눈을 뜨고 그 모양을 보던 아이들은 웃음을 참느라 야단이었다. (‘건강한 빗자루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중에서)
장례식장에서 입관을 마치고 장지로 가는 길 중간에 학교가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졸업을 못 하고 죽으면 한이 맺히니 매장이나 화장을 하기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한 번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 주는 게 지역의 풍습이라고 했다. 화창하게 맑은 날 오전, 관을 실은 운구 차량과 버스가 학교 운동장에 들어왔고 효석이의 동생이 형의 영정 사진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3층 교실로 올라왔다. 그해 효석이의 담임은 자동차과의 박 부장 선생님이셨지만, 1, 2학년 내리 담임을 맡았던 내게 마지막 인사말을 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이미 교실에서 효석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실 뒷문으로 효석이는 천천히 들어와 제 자리에 앉았다.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이 최선을 다해 교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을 다독이는 가운데 나는 마지막 종례를 시작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덕분에 행복했다. 마지막 종례의 전달사항. 천국에 가서도 행복할 것.”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그렸던 말들은 음성이 되어 밖으로 채 다 나오지 못하고 울음 속에 묻히고 말았다. 검은 옷과 교복들이 남긴 긴 울음이 꼬리를 끌고 교문 밖으로 사라진 뒤 나는 학교에서 5분만 걸으면 닿는 바다로 향했다. 백사장까지 나가면 불어오는 바람에 버티고 서있지 못하고 쓰러질 것만 같아서 바다에 수직으로 잇닿은 골목의 끝에 서 있는 전봇대에 기대섰다. 그리곤 아마 내가 세상에 처음 나왔던 날 이후로 가장 많은 울음을 쏟아냈을 것이다. (‘마지막 종례의 전달사항’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원재
강원도의 학생들과 함께 글을 읽고 쓰는 국어교사입니다. 선생님으로서도 아빠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무척 서툴러서 미안하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무사히 건너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으로, 마지막까지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하는 걸 죽기 전에는 꼭 보고 싶습니다.인스타그램 ID : iweonjae375
목차
책을 만들며 5
글을 열며 8
1부 새로운 선생이 태어나는 시간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 19
내 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년은 죽여버릴 거야! 28
건강한 빗자루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38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고기를 부른다 43
경계에 있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49
오빠도 술이 웬수다 56
어두운 바다에 홀로 오징어 배를 띄워놓은 것 같던 그 시간은(1) 64
어두운 바다에 홀로 오징어 배를 띄워놓은 것 같던 그 시간은(2) 74
손이 졸라 고우시네요 90
마지막 종례의 전달 사항 99
담배가 준 상 112
2부 아이들을 내려두고, 다시
탈출, 그리고 125
학생부장을 하라고요? 134
아마도, 우리 사이는 비즈니스 140
된다고 말하게 146
그대 이름은 장미 155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162
흰자위가 슬픔을 불러오는 걸까 173
그저. 잘. ‘살아’ 있기를 186
뱃사공이 널 떠난 이유 203
3부 선생이라는 이름의 친구
세잎 클로버 행복이 세 장 217
안전 교육은 드웨인 존슨과 함께 222
4.12 급식대란 230
사랑한다고 말하면 빵 한 조각을 주지 238
B컬과 S컬의 각도 차이를 구하시오 250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260
당신에게 돋아 있는 가시는 273
마음 하나 젖지 않을 법한 우산 283
책 한 권을 마치며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