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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밑줄을 긋고 간 날 이미지

고양이 밑줄을 긋고 간 날
실천 | 부모님 |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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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시와편견 서정시선 78권. 오영효 시집. 고요가 '아무 소리도 없음'으로 물리적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적막은 물리적 의미를 넘어 심리적 풍경과 관련된 단어이다. 오영효 시인의 시에는 고요가 있다. 온통 고요하다. "나지막이 읊는 독경" 소리가 있고 "저녁 예불 목탁 소리"가 있고 "찌찌찌찌 찌리릭," 우는 동박새 소리가 있지만, 이들은 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고요를 나타내는 소리다. 그 고요의 소리로 그려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은 끝 모를 깊이와 따스한 연민의 온도를 지녔다.

따라서 그의 시는 고요를 넘어선 적막의 언어로 직조되어 있다고 말해야 옳다. 그 적막은 심장 근처를 두드리는 파동과 오래 귓가를 울리는 파장이 있다. 그 파동과 파장을 따라 적막의 깊이를 헤아리고 그 온도를 측정하는 일이 오영효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길이다.

  출판사 리뷰

[시집해설]

적막과 교감으로 빚어내는 시적 아우라

복효근 시인

1. 정밀한 적막의 미학

고요가 ‘아무 소리도 없음’으로 물리적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적막은 물리적 의미를 넘어 심리적 풍경과 관련된 단어이다. 오영효 시인의 시에는 고요가 있다. 온통 고요하다. “나지막이 읊는 독경” 소리가 있고 “저녁 예불 목탁 소리”가 있고 “찌찌찌찌 찌리릭,” 우는 동박새 소리가 있지만, 이들은 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고요를 나타내는 소리다. 그 고요의 소리로 그려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은 끝 모를 깊이와 따스한 연민의 온도를 지녔다. 따라서 그의 시는 고요를 넘어선 적막의 언어로 직조되어 있다고 말해야 옳다. 그 적막은 심장 근처를 두드리는 파동과 오래 귓가를 울리는 파장이 있다. 그 파동과 파장을 따라 적막의 깊이를 헤아리고 그 온도를 측정하는 일이 오영효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길이다.
시인의 시 전편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시가 「꽃살」이다. 그가 적막으로 길어내는 시 세계의 깊이가 잘 드러난 시다.

맑은 그늘에 이끌려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섰습니다

꽃잎의 무구한 민낯은
나지막이 읊는 독경을 닮았고

안으로 걸어 잠근 향기는
사미니의 아껴둔 눈물 같아서,

두 손의 여린 기도
부처님 앞에 내려놓을 때

저녁 예불 목탁 소리에
아미타불 노을이 피어납니다

_ 「꽃살」 전문

여기서 꽃살은 사찰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을 가리킨다. 대웅전 큰 문의 나무문살이 온통 연꽃, 모란, 국화 등 꽃무늬로 새겨져 있다. 청정도량 부처의 세계를 장엄하는 것이다. 애초 단청이 입혀졌었는지는 모르나 낡고 퇴색하여 고색창연하고 고졸한 멋으로 유명한 문살이다. 그 꽃문살, 단청을 입지 않고 시간에 풍화되어가는 꽃잎의 무구한 민낯을 시인은 비유를 통해 청각적 심상으로 그려낸다. 즉 민낯의 ‘꽃살’이 “나지막이 읊는 독경”과 같다는 것이다. 꽃문살이 독경 같다니, 나지막이 읊는 독경 소리 같다니! 빼어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 독경은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눈을 통해 꽃의 형상으로 듣는다. 고요의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문은 안으로 잠겨있다. 걸어 잠근 문 안 대웅전엔 가득 향기가 차 있을진대 꽃문살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그 향기를 시인은 “사미니의 아껴둔 눈물 같”다고 표현한다. 역시 후각을 시각화시키는 놀라운 비유를 구사하고 있음을 본다. 향기를 시각으로 맡는 것이다. 사미니는 출가를 하여 사미니 10계를 받았으나 아직 정식 비구니 구족계를 받지 아니한 예비 스님을 가리킨다. 세속과 절연하고 불도를 이루어 성불하겠다는 염원이 간절할수록 그 정진의 길은 고행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일까. 그러나 함부로 울 수도 없어 눈물을 아낄 수밖에 없다. 그 염원도 향기롭지만 그 인욕의 자세 또한 향기롭지 않을 수 없다. “안으로 걸어 잠근 향기”는 그래서 대웅보전에 가득한 향기와 함께 사미니의 내면 풍경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향기 = 눈물’의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두 손의 여린 기도”라는 표현을 보면 기도의 주체가 누구인지 모호하다. 사미니의 기도인지 혹은 시적 화자의 기도인 분명하지 않다. 아니 구분할 필요가 없다.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시인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부처로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구원불이다. 사미니의 기도이든 시적 화자의 기도이든 이 고해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눈물의 기도가 아미타불에게 바쳐질 때 그 기도에 응답하듯 저녁 예불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울린다. 그와 함께 서해의 노을이 장엄하게 비친다.
꽃살을 통해 짧게 그려낸 한 폭의 풍경이지만 독자가 펼치는 상상 속의 풍경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서사가 그려진다. 그리고 “맑은 그늘”, “나지막이 읊는 독경”, “안으로 걸어 잠근”, “아껴둔 눈물”, “여린 기도”, “저녁 예불”과 같은 표현은 모두 차분하고 고요하며 정적이며 하강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표현들이다. 독경과 목탁 소리가 등장하지만, 이 시에서 ‘소리’는 오히려 고요보다 깊은 적막의 경지를 드러낸다 할 수 있다. 여기에 맞춰 ‘-습니다’체의 어미 처리가 더 시의 분위기를 적막으로 이끄는 데 이바지하고 있음을 본다. 이처럼 오영효 시인의 시는 적막의 언어로 그 시적 비의를 드러내는 데 하나의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다음에 인용되는 사도 같은 맥락에서 얘기할 수 있겠다.

뜨겁지 않게 식힌 물을
쪼르르 마른 입술에
적셔주었는데

삼켰던 울음 꺼내듯
검푸른 부리를 조금씩
달싹거렸다

작고 여린 혀들이
따스한 찻종 속에
풀어놓은 노래는

참 맑았다

_ 「작설」 전문

작설은 ‘참새의 혀’라는 뜻으로 여린 찻잎의 형상을 가리킨다. 이 여린 잎으로 만든 차가 작설차다. 구증구포라 하여 여러 번 덖고 말려서 차를 제조한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차를 만드는 것이다. 시인은 찻잎을 다관에 넣고 조심스럽게 물을 붓는다. 너무 뜨겁지 않게 약간 그 열기를 다스려 물을 붓는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마른 입술을 적시는 것으로 표현한다. 작설차를 찻잎이면서 차의 입이면서 참새의 입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찻잎이 살아난다. 새가 살아난다. “삼켰던 울음 꺼내듯/ 검푸른 부리를 조금씩 /달싹거렸다” 그리고 새는 “작고 여린 혀”로 따스한 찻종 속에 노래를 풀어놓는다. 그 노래는 맑다. 찻물 따르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 물에 풀리는 찻잎이 새가 노래하듯 노래하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소리가 나지 않는 소리들이다. 적막의 소리다. 시인이 그려내는 소리는 이처럼 깊고 깊은 적막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다. 그 소리는 그래서 참 맑다. 이 맑음마저 적막의 깊이를 드러내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들리는 소리마저 적막으로 침잠시키고 들리지 않은 소리를 적막의 빛깔로 드러낸다. 찻잎은 삼켰던 울음을 참 맑은 노래로 풀어낸다. 그 찻잎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근본적 이유를 사유하며 삶의 의미를 음미한다.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하는 말도 있는 것처럼 차를 마시는 행위가 이 적막의 언어로 말미암아 선적인 명상의 경지로 승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동백이 웃다」라는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향긋한 심장을 달고/ 한 생을 건너와// 꽃봉오리에 내려놓는 노래/ 찌찌찌찌 찌리릭,// 부리 닿은 가지마다/ 꽃 문 여는 하얀 동백”에서 들리는 동박새의 노래도 차라리 적막에 가깝다. ‘향긋한’, ‘내려놓는’, ‘꽃문을 여는’ 이와 같은 표현은 적막을 그려내는 침묵의 언어다. 여기에 “찌찌찌찌 찌리릭‘하는 동박새 새소리는 소리가 될 수 없다. 적막의 깊이를 더해주는 소리 없는 소리로 한없이 풍경을 깊어지게 한다. 그 끝에 피는 하얀 동백이다. 개화이면서 개벽이면서 개안이다. 하나의 세계가 고요를 넘어서 적막 속에 펼쳐진다.
“상현달이 내려앉은 양평 단월/ 백동 저수지에서” “깊은 하늘에 닿을 만큼/봉돌을 던져놓고,”낚싯대를 폈다. 그러나 문맥으로 보아 물고기를 낚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시적 화자는 “여린 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낚시를 던지고 별을 기다리는 행위는 명상에 가깝다. 그 고요한 밤에 명상을 하는 시적 화자의 주위엔 “소쩍새는 간간히/ 멀리 울고 있었다.”(「흐르지 않는 밤」) 멀리서 우는 소쩍새 울음은 밤과 수심과 명상의 깊이를 돋구워 주는 적막의 소리이다.
다른 작품의 예를 들어본다. 시인은 어둠에 덮인 산을 오른다. “밤은/ 산을 삼키고/ 나는 한 걸음씩 번져갑니다” “축축한 바위에 앉아” 시인은 자문한다. “산 아래 아득히/ 깜박이는 불빛 거기/ 두고 온 나는/ 누구입니까” 자아성찰의 시간이다. 존재의 근원을 묻고 자아의 정체성을 묻는 시간이다. 그 행위의 절실함과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시인은 다시 적막을 동원한다. “부엉이가 먼 데서 깊숙이 울고/ 멈칫 돌아보지만 기척 없는,//먹물 같은 적막”(「수묵 산행」)이 바로 그것이다. 예에서 보듯이 오영효 시인의 시적 언어는 적막의 언어라 명명할 수 있으며 이는 그의 시가 갖고 있는 주제와 사유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확보해주고 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아들이 “저 큰 교회의 목사가 되었어요/ 어머니도 기쁘시지요/ 늘 바라시던 일이잖아요/ 스며들지 않는 말을/ 기도처럼 되뇌”인다. “소리 죽여 우는 아들”, “꺼져가는 불씨의 눈길”, “잦아드는 숨길”, 어룽거리는 “검은 그림자” 유리벽 넘어 눈 내리는 “목동병원 2층 중환자실”이 그려내는 것은 무엇인가? “아득히 먼 풍경”(「어느 모서리」)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적막을 마주하여 적막의 진면모를 그려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같이 오영효의 시는 고요하고 침묵에 가까운 적막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로 하여 시 전편엔 적막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시 세계의 깊이와 울림을 확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시인의 시에서 적막은 단순히 배경적 의미, 혹은 장식적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시에서 적막은 곧 주제, 시 세계와 같은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2. 내밀한 교감의 시학
시인의 시적 사유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명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읽다 보면 명상적 사유가 소리 없는 파동으로 가슴에 스미는 걸 알 수 있다. 이 명상적 사유를 교감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묵묵히 오래 견디면
구름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비를 맞고 숲 속에
꼼짝없이 서서
빗방울을 꽉 끌어안으면,

나무처럼
마음의 여기저기 곁가지에
잎이 돋아날까요

솔바람이 찾아와
정수리에 고인 비의 소리를
읽어줄까요

자욱한 안갯속
잃어버린 노래를
찾아줄까요

빗소리를 틀어놓은 오후
나는 벌써 숲 속에 섭니다

_ 「빗소리 명상」 전문

화자는 빗소리를 틀어놓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잃어버린 노래를” 찾기 위해서다. 인간은 안갯속을 헤매듯 한 치 앞을 못 헤아리고 세속적 삶에 찌들어 가장 순수하고 맑고 향기로운 노래들을 잊고 산다. 잃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수행자처럼 숲에 들어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기엔 삶이 녹록치 않다. 그때 필요한 것이 명상인데 화자는 그 명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빗소리에서 찾는다. 시 곳곳에서 등장하는 빗소리는 시인을 어떤 영성으로 이끄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잃어버린 노래를 찾으려면 하늘을 가린, 내 마음을 가린 시커먼 구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묵묵히 오래 견뎌야” 함을 화자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 구름이 비가 되기까지 기다린다. 비를 피해서는 안 된다. 빗방울을 꼭 끌어안아야 한다. 빗방울을 그저 수동적으로 맞는 게 아님에 주의하자. 적극적인 자세로 빗방울을 기꺼이 끌어안는다.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명상이 앉아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역동적 사랑 행위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다음 비로소 “마음의 여기저기 곁가지에/ 잎이 돋아”난다. 빗물에 젖어 마른 신경에 새순이 돋고 살아있음의 감각이 생기는 것이다. 화자는 “솔바람이 찾아와/ 정수리에 고인 비의 소리를/ 읽어”주기를 기대한다. 여기서 솔바람은 자연의 기운, 대지의 정령, 우주의 에너지로 풀이해도 무방하다. 이는 그 자연의 에너지가 화자 내면에 고인 생명의 기운과 교감하는 순간을 꿈꾸는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옳겠다. 쉽게 요약하여 말하자.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명상)을 통해 활력을 되찾고 생명의 기운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매개체가 빗소리인 것이다.
“제 몸 부풀리며 겨우내/ 투명한 소리의 발을 묶어놓고/ 따스한 햇살을 기다렸던 겁니다// 얼음 건너온 물의 입김은/ 떨며 추위 견딘 마른 풀잎에게 /숨결 가만히 불어넣고 있었지요// 턱 밑에 받쳐 둔 조롱박 속에서/ 방울방울 퍼져오는 소리의 파장들/ 따끔 한 모금 삼월을 마십니다”(「한 모금의 삼월」 ) 구름산 약수터 봄이 오는 풍경이다. 이 풍경은 그저 고즈넉한 듯 보여도 들여다보면 매우 역동적이다. ‘따스한 햇살’에 ‘물의 입김’은 마른 풀잎에 ‘숨결을 불어넣고’ ‘방울방울 소리의 파장들이’ 퍼져온다. 화자는 그 물방울의 파장을 한 모금 마신다. 사물들이 연쇄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사물에게 건네준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인 자극의 전달이며 수용이 아니라 그 어떤 기운, 에너지, 심리적인 교감으로 이해해야 옳다.
“어젯밤 내린 비로/ 침엽의 이파리마다/ 맑은 새벽이 맺혔다// 톱밥 향기는 사륵사륵/ 걸음을 받으며 귓속말을 하고/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에게/ 스며들고 있다는 걸 안다// 새들은 젖은 새벽을 물고 날아갔다/” (「篇篇한 숲」)에서 보듯이 ‘교감’은 ‘맺히고’ ‘귓속말을 하고’ ‘스미는’ 방식으로 변용된다. “아끼는 인연처럼” 사물과 사물의 교감 속에서 인간 개체인 시적 화자도 그 일부가 되어 스미거나 동화되는 방식을 취한다.

보글보글
밤을 우는 개구리
몰래 와서 찔레꽃을 탐하는
눈썹달

작은 물목을 만들며
쏟아지는 소나기
토당토당 장독 위에 수를
놓는 빗방울

이런 것들을
백지 위에 베껴 쓰고는
제목 밑에 슬그머니 적는
이름 석 자

참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_ 「표절」 전문

‘개구리’, ‘찔레꽃’, ‘눈썹달’, ‘소나기’, ‘빗방울’ 들이 교감의 주체이다. 이들의 내밀한 교감으로 이루어낸 풍경, 생명 무생명이 넘나들며 그려내는 조화로운 한 폭 그림이다. 시에 쓰인 소재들은 생명, 무생명의 구분과 경계가 무색하다. 모두 생명의 중력장 안에 하나가 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원인과 결과이며 공존과 상생의 상호작용 관계에 놓인다. 앞서 말했듯이 생동감과 생명력이 주제를 이루고 있는 이 풍경은 소리가 있되 그 소리는 적막하고 정밀하여 아득한 깊이에서 울려나오는 듯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인(혹은 시적 화자)의 위치이다. 시인은 이 풍경 속에서 주체적 위치에 있지 아니하다. 개구리와 찔레꽃......들의 하나이다. 일부이다. 그러한 자신을 시인은 “이런 것들을/ 백지 위에 베껴 쓰고는/ 제목 밑에 슬그머니 적는” 표절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겸손의 표현이다. 인간이 자연의 주체라고 하는 오만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세라고 볼 수 있겠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풍경 속에 겸허한 자세로 자신의 위치를 낮은 자리에 설정한 것이다. 자신의 주도 하에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자연이 빚어놓은 것을 빌려왔을 뿐이다. 모방한 것이다. 나아가 그런 의미에서 겸손하게 표현하여 표절이라고 한 것이다. 인공을 포함한 자연의 일부로 참여하고 교감하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겠다.
시인은 대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간섭하며 통제하고 조작하는 대신에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다만 일부로 참여하고 있다. 시인은 조력자이거나 관찰자 내지는 관조자의 위치에 자신을 설정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감은 이렇게 대상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거품 같은 새벽을 게워놓고
눈을 감았다

짧은 생의 흔적을 닦아주며
몇 방울의 기도가 위안이 될까

목줄만 잡으면 겅중거리며
저 먼저 대문을 나서던 솔솔이

서로의 교감으로
느슨해지기도 팽팽해지기도 했던 길

떠나고 보내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데,

오늘도 산책하기 좋은 아침
현관 벽걸이에 덩그러니 목줄만 걸렸다

_ 「줄」

죽은 반려견을 회고하며 그와의 교감의 시간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서로의 교감으로/ 느슨해지기도 팽팽해지기도 했던 길”을 함께 했던 반려견 솔솔이는 이제 여기에 없다. 함께 했던 시간 솔솔이가 앞서가려 할 때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하고 가까이 오게 하려고는 목줄을 당기면서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었다. 말없이도 교감은 이루어진다. 타생물과도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교감이다. 생물이 아니어도 우주 만물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교감이다. 어쩌면 솔솔이처럼 더 이상 교감이 가능하지 않을 때 그 지점을 죽음이라 이르는지도 모른다. “현관 벽걸이에 덩그러니 목줄만” 걸린 상황 앞에서 시인은 망연하다. 그 교감의 상대가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과 슬픔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타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이 없다면 교감은 이루어지지 않거나 가짜다. 내밀하고 정밀하고 진정성 있는 교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사랑이다.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 “눈도 못 뜨고/ 버둥대던 새끼 고양이/꽁이와 양이”를 소생시켜 놓으니 젖을 먹고는 “분홍빛 입 속을 보여주며/ 애옹 애에옹/ 물결 속에 흔들리는/ 햇살 같은 말” ‘옹알이’를 한다. 시인은 이를 일러 “햇살 같은 말”(「말을 트다」)이라 표현한다. 말은 소통의 소구이다. 그러나 소통을 넘어선 교감은 꼭 인간의 언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가 하는 옹알이로도 교감은 이루어진다. 그것을 연민과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교감 없이 어떻게 삶과 시가 가능할까? 오영효 시인의 시는 이처럼 생물, 무생물 모든 주변 세상과의 교감과 연민, 사랑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만물과 ‘교감’하는 일이며 그것의 기록이다.

사각사각 연필을 깎자니
종이 위에 소복이
숲의 속살이 쌓인다

향기로운 살내음
막힌 길의 행간에
물 길 트일 것 같아서,

촉을 나란히 세워놓으면
가늘게 흔들리는
각시붓꽃 이파리

휘어지는 바람 끝에
아슬아슬 흔들리는
보랏빛 꽃

_ 「새벽 詩」

온갖 만물이 깨어나는 시간, 어둠이 가시고 새 빛이 밝아오는 시간에 시인은 맨 먼저 연필을 깎는다. 연필은 숲에서 왔다. 숲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를 깎으며 촉을 세운다. 여기서 촉은 연필심의 날카로운 끝부분을 가리키는 말이겠으나 촉은 사물의 변화와 질감과 온도와 깊이와 높이를 감지하는 감각의 촉수를 가리키는 중의적 의미로 쓰였다. 촉이 서 있어야, 촉이 살아있어야 그 촉에 만물의 숨결이 포착되는 것이므로 시인이 일어나 맨 먼저 하는 일이 연필을 깎아 촉을 다듬는 일이다. 시인은 연필을 깎으며 그 향기의 안내로 숲에 든다. 그 향기로 시를 쓴다. 연필의 촉을, 의식과 감각의 촉을 세우면 “가늘게 흔들리는/ 각시붓꽃 이파리가/”그려진다. “휘어지는 바람 끝에/ 아슬아슬 흔들리는/ 보랏빛 꽃/”이 그려진다. 이 시에서 보듯이 숲과 각시붓꽃과 교감을 하는 일이 곧 시를 쓰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시를 쓰는 일이 세속적인 어떤 보상이 주어져서라기보다 세상과의 교감을 가능케 하는 일이라서 어쩌면 시인에게 주어진 영적인 선물인지도 모른다. 앞에서 보았듯이 교감은 연민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늘 깨어있음은 고통이로되 한편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 고통의 촉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며 더 높고 향기로운 곳으로 도약을 하게 한다.

장비를 차고 바위에 붙었다

숨겼던 손톱을 꺼내
피멍의 필적을 새긴다

팽팽한 호흡으로
바위비늘 틈새에 발끝을 꽂는다
한 발짝 가벼워지는
지난 시간의 무게

심장 속에 새를 키우는 사람들,

추락의 공포를 건너고 나면
수직의 벽도
수평의 길이 되는 법

다 비워내고
정상에 발을 놓아야
바람의 날개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늘 한쪽 가슴에 품고
한 뼘씩 깃털을 얻기 위해
상승기류를 더듬는다

_ 「날개」

암벽등반을 하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여기서 암벽을 타고 바위를 기어오르는 사람에게 시를 쓰는 시인을 겹쳐놓아도 무방하다. 아니 여기서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은 시인 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는 일이 암벽등반과 같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필을 깎는 일로 숲에 들 듯이 장비를 차고 암벽에 자신을 밀착시킨다. “숨겼던 손톱을 꺼내/ 피멍의 필적을 새기”는 일은 촉을 세워 숲과 교감하여 한 줄 시를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시는 피멍의 필적이다. 자신의 내면과 싸워 피 흘린 흔적이다. 무엇을 위한 싸움일까? 시인은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을 “심장 속에 새를 키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시인에게 적용해도 아무 무리가 없다. 시인은, 암벽등반이 저 높은 하늘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듯 추락의 공포를 이겨내면서 “수직의 벽도/ 수평의 길이 되는 것처럼” 가파른 내면의 적들과 싸워 극복하고 비로소 안식과 평화의 한 줄 시를 얻는 것이다. 수직의 암벽이 가진 경사란 내면의 적, 인간에게 내재된 온갖 부조리한 것들, 위선과 허위와 탐욕 아닐까 싶다. 그것들을 비워내는 것이 자신에 대한 도전이고 그 작업이 시를 쓰는 일이다. 그러나 다 비워내고 바위의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최종 목적은 아니라고 시인은 말한다. 암벽을 타는 것은 결국 날개를 얻기 위한 것인데,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일은 저 푸른 하늘로의 비상이다. 자유를 향한 비상 의지가 그의 시 쓰기의 동력인 것이다. 암벽을 타듯 한 편의 시를 썼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겨우 한 뼘의 깃털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암벽등반가가 “팽팽한 호흡으로/ 바위비늘 틈새에 발끝을 꽂”듯이 시인이 세상과 대면하여 교감을 꿈꾸는 일은 수직의 가파른 경사를 극복하고 수평의 길을 찾는 일이며 비상을 위하여 날개를 키워나가는 일이다. 시인이 한땀 한땀 시를 쓰는 일은 그래서 상승기류를 더듬어 한 발짝씩 암벽을 기어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시인의 언어적 특성이 적막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것은 단순히 시적 분위기만이 아니라 오히려 시의 주제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살폈다. 그리고 내밀한 교감을 통하여 한 줄 시를 빚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 끝이 시인의 자유를 향한 비상 의지를 향해 있음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이 세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필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오영효
2014년 《문학사계》 신인상 한국문인협회 광명지부 회원시집 『박꽃』

  목차

1부 작은 물목을 만들며
꽃살
작설
한 모금의 삼월
파랑
동백이 웃다
篇篇한 숲
빗소리 명상
어디에 닿을까
표절
1호선 전철
투명한 편지
만취
말을 트다
새벽 詩
지우려 해도
닦지 마세요
한 권의 시집

2부 잠시 잠깐 개찰구가 열리는 계절
바람
빗소리 명상 2
수묵 산행
여백을 찾아
야옹이는 심심할 틈이 없어요
이름을 엮는 밤
꽃 단추
작은 별
저녁의 끝마디
가을 기차
해국
낮잠 속에 오셨네
알집을 놓는 순간
날개
길을 묻다
투명한 산책
떠나간 사람

3부 서로의 그늘
꽃 지다
곁으로
꽃이 없는 날들
꿈은 잠깐
느리게 가는 기차
어느 모서리
안개가 사라지듯
스무날의 일기
검은 비 한 가닥
스며들다
빗방울이 대신 울어요
이젠 여기 없어요

발효된 그 이름

어머니의 꽃 날
먼 길

4부 깜박이는 점멸등
아름다운 적멸
어제로 가는 기차
할머니의 시편
방전
종이 귀신
빈 집에 혼자
풍경이 다녀가다
앙숙과 친구 사이
소실점
허기
난감한 봄볕
남겨진 시간들
시 쓰는 고양이
출렁거리는 오후
흐르지 않는 밤
말言 무덤
詩를 묶으며
시집해설_ 복효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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