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선사들께서는 “어떤 대상을 취하여 관하든,
물질만 관찰하든, 느낌만 관찰하든, 정신과 물질을 번갈아 관하든…
앞 대상과 뒤따르는 대상의 다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대상이 끊어지는 자리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대상이 연결되어 보인다면 진짜 멸이 아니다.
낱낱이 끊어지는 것이 멸이다.
대상을 따라 쫓기만 하면 위빠사나와는 다른 길을 달려가는 것이다.
때가 무르익어 찰나의 생멸을 보는 그 순간 위빠사나가 시작된다.”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직접 보고 체험한 진리만 말하겠다.
첫 번째 도와 두 번째 도에 들어가자, 마음이 천지개벽했기 때문에 내가 특별한 지혜를 얻었음을 알게 됐다. 마치 모태 맹인이 개안 수술을 받고 붕대를 풀자, 맹인 때의 추측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을 보는 충격이었다.
‘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웠다. 검정과 흰색의 대비처럼, 지혜를 얻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달랐다. 첫 번째 도를 증득하자 모든 대상이 ‘느낌’의 성품 하나로만 보이고 들렸다. 냄새, 맛, 접촉도 느낌을 통해 알았다. 예전에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 등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느끼는 성품 하나로만 대상을 알게 됐다.
어떤 이가 ‘대상을 느낌으로 본다면 어떻게 여자, 남자, 개, 돼지…등을 구별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사야도께서 답하시길, 관념(빤띠)과 실재(빠라맛타) 둘을 섞어서 본다. 여자를 볼 때 앞마음은 느낌만 알고 뒷마음은 ‘오, 여자!’라고 안다. 이처럼 관념과 실재를 섞어서 안다. 듣고, 냄새 맡고, 먹고, 접촉하고,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느낌으로만 인지한다. 도를 증득한 수다원 성자에게는 대상의 느낌만 보인다. 그렇게 보고 알 때 사견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범부는 더미, 관념(명칭), 형상, 연속성 등 관념(빤띠)을 대상으로 살아왔다. 관념으로 실재(빠라맛타)를 분석하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특히 ‘관념에 실재가 들어있고, 실재에도 관념이 있다’며 관념과 실재를 뒤섞는 것도 오류다. 실재 위빠사나(빠라맛타)가 될 수 없다. 실재 위빠사나에는 관념이 한 톨도 들어갈 수 없다. 관념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하면 실재하는 진리를 볼 수가 없다. ‘나’라는 유신견’에 묶여있는 상태이다. 유신견을 벗지 못하면 절대로 도·과에 들 수 없다. 유신견을 제거하려면 (관념이 섞이지 않은) 현재 실재만 관찰해야 한다.
목차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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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인구 사야도
레디 사야도의 법통 제자,
위빠사나빠라구 사야찌
순룬 사야도
웨부 사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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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담마란시 사야도
모곡 사야도
옥포 사야도
아누룻다 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