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 9권. 「금오신화」는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의 한문 소설집이다. 한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문소설을 쉽게 접하게 할지 고민하며, 낯설고 어려운 어휘는 쉽게, 긴 문장은 짧게 다듬고, 갖가지 유래는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글 한 편이 끝날 때마다 펼쳐지는 ‘이야기 속 이야기’에서는 동양 귀신과 서양 귀신의 차이, 김시습 가상 인터뷰, 이승과 저승, 돌고 도는 윤회 이야기, 환상 특급의 세계인 전기소설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정보들을 담았다. 김시습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금오신화> 깊이 읽기’와 읽는이가 작가가 되어 보는 ‘나도 이야기꾼!’ 꼭지도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출판사 리뷰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가 왕위에 오른 불온한 시대,
불의에 타협할 수도, 맞서 싸울 힘도 없던 김시습이 선택한 생육신의 삶
불운한 삶이 빚어낸 다섯 편의 기묘한 이야기 세계로 들어가 보자!
귀신 씻나락 까먹는(?) 기묘한 이야기 다섯 편!
<금오신화>는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의 한문 소설집입니다. 귀신 이야기나 사후 세계처럼 기이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우리나라 전기(傳奇)체 소설의 효시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금오신화>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는 저마다 두 주인공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에서는 인간과 귀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극적인 사랑을 그려 내었고, 「취유부벽정기」에서는 인간과 선녀의 만남을 통해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인간 삶을 담아냈습니다.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에서는 인간과 염라대왕, 인간과 용왕을 모두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워 김시습의 인생관과 정치관을 드러냅니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무슨 명예를 누릴까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자를 알고, 어린 시절 세종의 총애를 받을 만큼 영특했으며, 조선 초기 대표 문인으로 평가받던 김시습이 왜 귀신이나 선녀, 염라대왕이나 용왕 이야기 같은 비현실적인 세계를 쓰게 되었을까요?
1455년, 김시습은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아 세조가 왕이 된, 말 그대로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세조를 차마 왕으로 섬길 수 없었던 청년 시습은 당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좌절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불의에 타협할 수도, 맞서 싸울 힘도 없던 시습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를 쓰게 된 까닭은 따지고 보면, 불온한 시대를 견디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작가가 그려 낸 이 기괴한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쩌면 김시습의 다른 모습인 동시에 그가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향을 말해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전의 맛을 더해 주는 말하는 그림과 정보 쌈지!
<금오신화>는 원전의 맛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쓴 〈국어시간에 고전읽기〉의 아홉 번째 책입니다. 한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문소설을 쉽게 접하게 할지 고민하며, 낯설고 어려운 어휘는 쉽게, 긴 문장은 짧게 다듬고, 갖가지 유래는 맛깔스럽게 풀어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글 한 편이 끝날 때마다 펼쳐지는 ‘이야기 속 이야기’에서는 동양 귀신과 서양 귀신의 차이, 김시습 가상 인터뷰, 이승과 저승, 돌고 도는 윤회 이야기, 환상 특급의 세계인 전기소설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정보들을 담았습니다. 김시습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금오신화> 깊이 읽기’와 읽는이가 작가가 되어 보는 ‘나도 이야기꾼!’ 꼭지도 알차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읽는 그림, 말하는 그림,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가치로 장식에 머무는 그림을 넘어서서, 본문과 함께 숨쉬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도 이 책의 백미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폭력으로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되지요. 백성이 겉으로는 흘깃흘깃 눈치를 보며 복종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반역할 뜻을 품는 법이오. 그러니 언젠가는 꽁꽁 얼음이 얼듯이, 날이 가고 달이 차서 때가 무르익으면 백성이 반역을 꾀하는 재앙이 닥칠 것이오. 덕이 있는 사람이라도 힘만으로 임금이 될 수는 없소. 하늘이 비록 임금이 되라고 간곡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일하는 모습을 백성에게 보여서 백성의 뜻에 따라 임금이 되게 한다오. 그러니 옥황상제의 명은 참으로 준엄한 것이오.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명은 하늘의 명이니, 하늘의 명이 떠나가고 백성의 마음이 외면해 버리면, 임금이 제 한 몸 지키려 한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염라대왕의 말을 받아 선비는 역대 제왕들이 올바르지 않은 길을 걷다가 재앙을 겪은 일을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염라대왕은 줄곧 이맛살을 찌푸렸다.
“백성이 임금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는데도 홍수나 가뭄이 닥치는 것은 하늘이 임금에게 거듭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이오. 또한 백성이 임금을 원망하는데도 나라에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요괴가 임금에게 더욱 교만하고 방탕하라고 부추기기 때문이오. 역대 제왕에게 좋은 일이 일어난 날이라고 해서, 백성이 편안해하였소, 아니면 원통함을 하소연하였소?”
선비는 염라대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간신들이 벌떼처럼 들끓고, 큰 난리가 계속 터지는데도, 임금이 백성을 위협하며 스스로 잘했다 생각하고 거짓된 명예만 구하려 한다면, 그 나라가 어떻게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염라대왕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긴 한숨을 지었다.
“그대의 말씀이 참으로 옳소!”
잔치가 끝나고, 염라대왕은 선비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하여 손수 글을 지었다.
- 「천공의 섬, 염라국 이야기」가운데
작가 소개
저자 : 김시습
1435년 서울 성균관 북쪽에 있는 반궁리(泮宮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이다. 친가 외가 모두 대단한 집안이 아니었다. 외가에서 자라면서 말을 배울 무렵부터 외조부에게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김시습은 유년 시절 장안의 화제였다. 두 살 때 “난간 앞에 꽃 웃으나 소리 아니 들리고, 숲 아래 새 울지만 눈물 보기 어렵네(花笑檻前聲未聽, 鳥啼林下淚難看)” 구절을 듣고는 병풍의 꽃과 새를 가리켰다거나, 다섯 살 때 자기를 보러 온 정승 허조(許稠, 1369∼1439)를 두고 “고목에 꽃이 피니 마음 늙지 않았다오(老木開花心不老)”라는 시구를 지었다는 종류의 이야기가 여럿 전해 온다. 소년의 천재성은 궁궐 안에까지 들려왔고, 세종은 그를 불러 시험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년기의 천재성과 이로 인한 주변의 칭찬은 김시습의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성은 비정상성과 통하고, 유년기의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색하기 십상이며, 그 자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비례하지 않는다. 김시습은 내성적이며 부끄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뒷날 그는 친지와 이웃의 넘치는 칭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과거엔 실패했고 집안은 빈한했다. 유년기의 충만감은 일순 공허감으로 뒤바뀌었다. 15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오래도록 치유되기 어려운 내상을 입었다. 아버지는 곧 재취했다. 평생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계기가 되었다. 18세 즈음에 혼인을 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후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 단종의 선위와 세조의 즉위(1455), 단종 복위 운동의 실패와 사육신 등의 죽음(1456), 단종의 죽음(1457) 등 정치적 격변이 잇달아 일어났다. 여러 문헌에는 김시습이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458년, 24세의 김시습은 승려 행색으로 관서 여행을 떠났다. 평생의 방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관동과 호남을 유람하고, 서른 살 무렵에 경주에 안착한다. 37세(1471)에 경주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이주했다. 이듬해 수락산 동쪽에 집을 짓고 평생을 이곳에서 살려고 마음먹었다. 수락산 시절 김시습은 외부 활동과 교유를 자제하고 수행과 학문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등의 주요 불교 저술을 지었다. 이 시기 가장 가까이 지낸 사람은 남효온(1454∼1492)이었다. 후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생육신으로 묶어 일컬었다. 47세에는 잠시 환속해 다시 결혼하고 부친의 제사를 지냈다. 잠시 공부와 시작(詩作)의 방향이 유교로 급격하게 쏠렸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수락산에 터를 잡은 지 만 10년이 되는 1483년 봄, 49세의 김시습은 다시 짐을 꾸려 길을 떠났다. 남효온이 지은 시에 따르면, 김시습은 육경(六經)과 역사서 등을 싣고 관동의 산수를 돌아다니다가 농토를 얻어 생계를 꾸릴 것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이후 10년 그의 발걸음은 춘천, 홍천, 인제, 양양, 강릉 등지를 지났다. 오봉산과 오대산과 설악산에 머물렀다. 바닷가에서 한 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늙어 갔다. 1493년, 죽음을 직감한 코끼리가 깊은 동굴을 찾아들 듯이, 이승을 떠날 때가 된 김시습은 백제로 향했다. 무량사(無量寺), 지금은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아늑하고 포근하며 부드러운 절집에서 그는 평생 방랑에 지친 영혼을 안식한다.
목차
〈국어시간에 고전읽기〉를 펴내며
『금오신화』를 읽기 전에
만복사에서 저포 놀이를 하다 | 만복사저포기
●동양 귀신 vs 서양 귀신_ 삼라만상에 귀신들이 산다
이 선비, 담 안을 엿보다 | 이생규장전
●세상에는 세 종류의 신이 있다 _ 좋은 귀신, 나쁜 귀신, 이상한 귀신
부벽정에서 마신 술 | 취유부벽정기
●김시습 가상 인터뷰 _ 역사와 이야기의 만남, 평양
천공의 섬, 염라국 이야기 | 남염부주지
●사십구재와 죽음에 이르는 길 _ 이승과 저승, 돌고 도는 윤회 이야기
초대받은 용궁 잔치 | 용궁부연록
●전기소설, 그 환상 특급의 세계 _ 기묘한 이야기, 소설로 거듭나다
『금오신화』 깊이 읽기 _ 181
『금오신화』를 읽고 나서 _ 나도 이야기꾼! _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