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우리가 뇌를 알아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
뇌과학의 현주소를 만나는, 단언컨대 최적의 안내서30여 년 전, AI 공동체는 분열됐다. 한쪽은 인간의 지능 중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능력, 곧 추론 능력, 언어 능력, 문제해결 능력, 논리력 등을 AI 시스템에 채워 넣으려고 했다. 반대편은 간단한 뇌에서 시작해 점점 복잡성을 키워가는 방식이야말로 AI 시스템이 먼저 연습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후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존재와 반응의 본질은 생명과 번식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수준으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면서 역동적인 환경에서 돌아다니는 능력이다. 진화는 이런 지능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적으로 시간을 쏟았다. 그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가정용 상업 로봇은 후자 진영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이 상업용 로봇 청소기 룸바(Roomba)는 최초의 좌우대칭동물과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센서가 단순했다. 최초의 룸바는 벽에 부딪혔을 때, 충전 스테이션에 가까워졌을 때 등 몇 가지 상황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둘 다 뇌가 단순했다. 또한 보잘것없는 감각 입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주변 지형을 그리거나 사물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둘 다 좌우대칭이었다. 룸바의 바퀴는 전진과 후진만 가능했다. 방향을 바꾸려면 일단 멈춰서 방향을 바꾼 다음 전진 운동을 계속해야 했다. _2. 좋음과 나쁨의 탄생
조종이 다른 지적 업적처럼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진화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로봇에게 최초의 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능이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뇌의 일부가 어떤 특정 알고리즘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알고리즘을 기계로 구현해보니 작동하지 않는다면 뇌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반대로 AI에게 잘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찾아냈는데 그 속성과 동물 뇌의 속성 사이에서 유사점을 발견한다면 뇌가 실제 그런 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이후의 연이은 AI의 혁신은 생물학적 발견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뇌를 안다는 것은 나를 안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뇌과학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세상의 최전선에서 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헬스케어, 챗GPT, 가전제품, 자율주행자동차 등 산업 전반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AI가 그 증거다. AI는 진화적 관점과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이 통합해 만들어낸 산물이다.
《지능의 기원》은 뇌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를 누구나 체감할 수 있도록 AI 발전과 뇌과학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약 50~60년 동안 펼쳐진 두 분야의 만남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AI가 주도하고 있는 변화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조종, 강화, 시뮬레이션, 정신화, 언어ㅡ
생각 이전의 ‘5가지 혁신’이 지금의 뇌를 만들었다최초의 지능이 탄생한 순간부터 인간의 지능이 출현하기까지 그리고 인간이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요약하면 딱 다섯 번의 혁신이 누적된 결과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지능의 기원》의 중심 뼈대다.
#1 조종(Steering)
5억 5,000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뇌를 갖춘 좌우대칭동물로 바뀌면서 단 하나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신경학적 변화를 이뤘다. 바로 조종을 통한 탐색이라는 혁신이다.
#2 강화(Reinforcing)
약 5억 년 전 등장한 물고기처럼 생긴 척추동물은 강화학습이 가능해지면서 미래의 보상을 예측하고 호기심이 생겼으며 패턴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3 시뮬레이션(Simulating)
초기 포유류에서 새롭게 등장한 뇌 구조는 새겉질이다. 그중 감각새겉질이 바깥세상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이마엽새겉질이 자기 모델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만든 결과 초기 포유류는 대리 시행착오, 반사실적 학습, 일화기억 등을 통해 포식자를 따돌리며 시뮬레이션을 무기화해갔다.
#4 정신화(Mentalizing)
초기 영장류에게서는 마음이론, 모방학습, 미래의 필요예측이라는 큰 세 가지 축이 등장하면서 성공적으로 과일을 채집하면서도 정치공작을 벌이는 능력을 동시에 촉발시켰다.
#5 언어(Language)
초기 인류는 아프리카 사바나 숲이 사라지면서 도구를 만들고, 육식을 하는 생태적 지위로 내몰렸다. 이런 생태적 지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거쳐 도구 사용법을 정확하게 전파할 수 있어야 했다. 그 결과 원시언어가 등장했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뇌의 오래된 구조물들이 재조정되면서 뒷담화, 이타주의, 처벌의 되먹임고리를 바탕으로 한 퍼펙트 스톰이 야기됐다.
이 다섯 번의 혁신이 이 책을 구성하는 지도이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각각의 혁신은 뇌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거나 강력한 되먹임고리에 갇혔던 시기에 등장해 동물들을 새로운 지적 능력의 포트폴리오로 무장시켰다. 각각의 발전 단계에서 이뤄진 혁신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 뒤에 이뤄진 혁신에서 새롭게 나타난 점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나타난 뇌의 복잡성이 새롭게 보인다.
미래의 뇌는 결국 과거에서 만들어진다《지능의 기원》은 인간 지능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언어모델들에게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계속 크기를 키우다 보면 상식적인 질문과 마음이론 질문에 더 나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과정은 필연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깥세상에 대한 내적 모델이나 마음에 대한 다른 모델을 통합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시뮬레이션과 정신화라는 혁신을 통합하지 않는다면 LLM은 인간의 지능에 관한 본질적인 뭔가를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LLM을 더 빨리 도입하고 그 모델에 맡기는 결정이 많아질수록 이런 미묘한 차이가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_22. 챗GPT와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
그렇다면 AI와 인간의 상호작용이 완전해지면 결국 도래할 여섯 번째 혁신은 무엇이 될 것인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섯 번째 혁신은 인공초지능의 창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후손이 실리콘의 형태로 다시 등장하면서 우리의 형상을 본뜬 지능이 생물학적 매체에서 디지털 매체로 전환되는 것이다. (중략)실리콘 기반의 AI는 자신의 인지용량을 필요한 만큼 무한으로 확장할 수 있다. AI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복제하고 재구성할 수 있게 되면서 개체성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것이다. 짝짓기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쇠퇴하고, 새로운 지능적 존재를 창조하고 훈련하는 실리콘 기반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등장하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에도 새로운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심지어 진화 그 자체도 폐기될지 모른다. 적어도 우리에게 익숙한 진화의 과정은 사라질 것이다. _나가며. 여섯 번째 혁신
당신이 생각하는 우리 뇌의 마지막 혁신은 무엇인가? 어떤 혁신이 다가오든 분명한 것은 그 안에는 분명 그 뿌리가 되어준 인간 지능의 흔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인공초지능이 도래해 뇌에는 생물학적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더라도 그 뇌를 가진 존재들은 이전에 있었던 다섯 가지 혁신을 토대로 구축될 것이다. 인공초지능도 처음에는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설계될 것이고, 따라서 그 안에 인간 지능을 재현할 씨앗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인간 지능 이야기에서 여섯 번째 혁신이 일어나려는 시점에 서 있다.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뇌를 탄생시킨 40억 년의 이야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화의 과정에서 언제나 미래의 혁신은 과거의 혁신을 토대로 이루어졌듯이 우리 자신을 이해할수록 우리의 형상을 따라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낼 능력도 더욱 강해진다. 우리가 생겨난 과정을 이해할수록 지능의 특성 중 어느 것을 버리고 보존하며 개선할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진다. 결국 미래는 ‘뇌의 이해’에 달려 있다.
뇌의 작동방식을 역설계하고 싶다면, 로봇 로지를 만들고 싶다면, 인간 지능의 숨겨진 본성을 밝히고 싶다면 인간의 뇌는 가장 마지막으로 들여다봐야 할 대상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각 깊숙이 묻혀 있는 먼지투성이 화석, 동물계 곳곳의 세포에 박혀 있는 작디작은 유전자, 지구에 사는 다른 많은 동물의 뇌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다시 말해 해답은 현재가 아니라 오래전 과거가 숨겨놓은 잔재에 있을지도 모른다.
_들어가며. AI의 눈으로 인류 지능의 역사를 재구성하다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뇌를 조사하고 그 작동방식과 그로 인해 가능해진 기능들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나아가 인간으로 이어진 계통 안에서 뇌가 점점 복잡해진 과정을 추적해 각각의 물리적 변화와 그로 인해 가능해진 지적 능력을 관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 결과로 탄생한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생물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 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생물학에서는 진화의 관점으로 비춰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_들어가며. AI의 눈으로 인류 지능의 역사를 재구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