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국에서 근대적인 시간이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시계 없이 달력만으로도 충분히 ‘시간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인 세계는 달력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근대적인 세계는 시, 분, 초를 강박적으로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곳이다. 이 책은 근대적인 시간의 형성 과정에 참여한 달력, 종, 오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의 연대기를 복원하고 기록함으로써, 지금 우리의 시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의 연대기편의상 시간을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의 마음속에서 흐르는 과거, 현재, 미래로 구성되는 내면의 시간, 즉 인간적인 시간. 둘째, 천체의 운동이 형성하는 측정 가능한 천문학적인 시간. 셋째, 인위적으로 제작되어 유포되는 제3의 시간. 이 책은 제3의 시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태양력이 채용된 1896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 이 땅의 근대적인 시간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근대적인 시간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사회정치적으로 매우 힘겹게 구성된 엄청난 노고의 산물이다.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시간 관념은 그 강도를 달리하며 삶에 영향을 미쳤고, 시간 관념을 정치적으로 수정하고 조작하는 일도 빈번했다. 근대적인 시간은 부자연스럽고 엉성하게 조선의 공간을 침윤했다.
잊힌 시간의 연대기이 책은 시간이라는 감각할 수 없는 추상적인 대상을 포착하기 위해 아예 정반대로 구체적인 사물의 역사로 시선을 돌린다. 이 책은 근대적인 시간의 형성 과정에 참여한 종, 오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 달력 같은 사물들의 행로를 추적함으로써 각 사물들의 배치와 전위(轉位)가 어떤 시간 형태를 구성하고 있었는지, 어떤 목적의 시간에 동원되고 있었는지 살펴본다. 결국 이 책은 이들 사물에 새겨진 잊힌 시간 형태를 복원하고 기록하는 작업이다.
역사의 분위기를 치밀하게 묘사하는 ‘시간의 민속학’
혹은 역사가 없는 사물의 역사를 쓰는 인류학자의 작업이 책은 주로 일제강점기 자료에 근거하여 이 땅에서 근대적인 시간이 발아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 책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어떻게 시간을 악용하고 오용하고 남용했는지를 담담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서술한다. 근대적인 시간은 50년이라는 장기적인 시간 동안 매우 느린 속도로 조선의 공간에 스며들었고, 이 책은 그 모습을 ‘슬로 모션’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자료에 대한 과도한 해석 작업보다는 자료가 제시하는 현상을 좀 더 생생히 부조(浮彫)하는 데 온 힘을 모은다. 사실의 해석보다는 정확한 기록을 지향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근대적인 시간의 형성 과정에 참여한 사물들, 즉 종, 오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 달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근대적인 시간의 ‘연대기’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 책은 ‘역사 쓰기’보다는 ‘역사 만들기’를 지향한다. 그전에는 자체적인 역사가 거의 서술되지 않은 종, 오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 달력을 대상으로 소박한 연대기를 작성한다. 이 책은 역사 밖에 있는 사물들, 또는 파편적으로 역사에 잠시 참여하는 사물들의 온전한 역사적인 차원을 드러내고자, 역사가 없는 원시 부족의 역사를 쓰는 인류학자의 작업 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집필되었다.
시간 공유와 ‘소리 시계’근대 이전의 시대, 조선시대에는 시계의 보급이 아니라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시보가 중요했다. 조선시대에 표준시계인 물시계의 시간을 적절히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은 종소리밖에 없었다. 종은 일종의 ‘소리 시계’였다.
그런데 종은 모든 공간에 시간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꼭 필요한 한정된 장소에 하루 두 번 시간을 공급하면 그뿐이었다. 조선시대는 12지시법과 96각법으로 하루를 등분했지만, 분(分)과 초(秒)라는 시간 개념이 전혀 필요 없는 세상, 심지어 하루를 24등분으로 나눈 시(時) 개념에서도 압박감을 느끼는 느슨한 세상이었다.
근대적인 시간이 작동하려면 사람들의 팔목에 완시계가 감겨 있고, 모든 가정의 벽에 괘시계가 걸려 있고, 근대적인 건축물의 외벽이나 내벽에 전기시계가 설치되어야 했다. 시계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이전 시간의 연대기는 시간 측정의 연대기라기보다는 시간 공유의 연대기이다.
종은 시간 공유를 가능하게 한 가장 오래된 형태의 사물이다. 조선시대에는 통금과 새벽을 알리던 밤의 종소리, 즉 시종(時鐘)이 있었다. 이 종들은 물시계가 폐지될 때까지 공식적인 ‘소리 시계’로 존재했다. 또한 범종도 ‘소리 시계’의 역할을 했다. 이들 시종과 범종은 일제강점기에 경종, 제야의 종 등으로 변질되다가 급기야 융해되어 대포와 탄환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종의 연대기 끝에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보신각 제야의 종이라는 근대적인 시간 의례가 있다.
일상의 시간과 비상의 시간한일병합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오포가 종을 대신하여 시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20년대 중반 무렵 사이렌이 오포를 대신했다. 오포와 사이렌은 종보다는 훨씬 더 넓은 공간에 시간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오포와 사이렌의 주목적은 사람들이 시보를 듣고 각자의 시계를 정확히 조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오포와 사이렌은 시계의 일치를 통해 시간의 힘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처럼 근대성은 동시성의 확보를 통해 공시적인 사회 구조를 강화하는 것을 지향했다.
사이렌의 또 다른 강점은 시보뿐만 아니라 경보의 용도로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보는 기상과 취침의 시각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고, 궁성요배나 정오묵도의 시각을 알리는 국민의례의 신호일 수도 있고, 적기의 내습을 알리는 방공경보일 수도 있고, 화재나 수재를 알리는 비상경보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황국신민을 양성하기 위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여러 경보가 ‘시간의 소리’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은 개인의 시간에서 국가의 시간으로 이동할 것을 재촉하는 경보였다. 다른 한편으로 방공경보는 언제든 일상의 시간이 전쟁의 시간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었다.
사이렌을 통해 공유되는 시간은 일상이 언제든 비상으로 추락할 수 있는 시간, 즉 일상의 시간과 비상의 시간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시보와 경보의 혼재와 동화를 촉진한 사이렌은 근대적인 시간의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시계를 통한 공간의 시간화1930년대가 되면 시계와 라디오의 대중적인 보급으로 인해 근대적인 시간이 일상화되기 시작한다. 특히 6월 10일 ‘시(時)의 기념일’은 시계의 보급과 시간관념의 확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근대적인 시간은 공간의 근대화가 전개되면서 그 지배력을 강화했다. 거리 시계로 인해 해당 공간을 통과하는 사람은 언제든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었고 손목시계의 시간도 조정할 수 있었다. 종, 오포, 사이렌과 달리 거리 시계는 언제든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각적인 시보 장치였다. 근대적인 건축물은 외벽에 대시계를 붙이고 있거나, 내부의 벽에 전기시계를 걸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관공서, 우편국, 철도역, 백화점, 은행, 병원, 학교 등의 근대적인 공간은 시계를 장착한 공간, 즉 시계 시간의 질서에 편입된 공간이었다.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라디오의 대중적 보급으로 가능해진 라디오 체조는 시보가 경보가 되는 가장 극적인 예다. 라디오 체조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매일 아침 학교, 공원, 신사 등에 모여 서로의 몸을 하나로 조율하는 모습, 즉 동시적인 무수한 신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라디오 체조는 신체의 소집, 일치, 접속을 통해 집합 의식을 비등시키는 용광로였다. 라디오 체조를 통해 사람들은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만나 신체의 속도와 동작을 하나로 통일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신체의 통일은 궁극적으로 정신의 통일을 겨냥하고 있었다. 또한 라디오 체조는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건강한 신체, 나아가 전장의 제물로 바칠 수 있는 미래의 신체를 준비하는 국민의례이기도 했다.
근대적인 시간은 정확한 시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일으키는 신체들에 기생하는 것이었다. 추상적으로 흘러가는 시계 시간이 아니라 신체의 동시성이 바로 근대적인 시간의 얼굴이었다.
달력의 시간과 시계의 시간/음력의 시간과 양력의 시간근대 이전의 시대, 조선시대의 시 개념은 양적 분할뿐만 아니라 질적 분할에 입각해 있었다. 시계는 분과 초라는 새로운 시간 개념을 유포시켰고, 사람들은 양적 차원만 존재하는 전혀 다른 ‘시간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시계의 보급으로 양적으로 ‘미시 분할’된 시간이 도입되긴 했지만, 시계 시간은 질적으로는 매우 밋밋했다. 조선시대의 시간이 질적으로 구조화된 양적 시간이었다면, 근대적인 시간은 양적으로 구조화된 텅 빈 시간이었다. 이처럼 근대적인 시간은 질이 사라지고 양만 남은 시간이었으므로 사라진 ‘시간의 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가 항상 문제로 남았다. 근대적인 시간은 인간이 자율적으로 ‘시간의 질’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시간의 질’을 결정한 것은 주로 사회와 국가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시간의 질’을 형성하기 위한 시간의 재료로 전락하고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계가 아니라 달력이 필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시간의 형태가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형태가 그에 적합한 시간을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달력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회는 근대적인 시간의 도입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달력 시간’이 아니라 ‘시계 시간’이 주도권을 쥐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삶의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 한 새로운 시간 형태는 여전히 삶을 겉도는 문명의 기호이자 장식품일 뿐이었다.
조선 최초의 양력 역서뿐만 아니라 한일병합 직전부터 발행된 음양합병역서는 음력과 양력을 상호 번역할 수 있도록 만든 임시적이고 과도기적인 달력이었다. 그리고 양력 역서든 음양합병역서든 궁극적인 지향점은 음력을 양력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와 달리 음력과 양력의 공존을 허용하는 과도기가 40년 이상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예외가 규칙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조선총독부는 1937년부터 조선 달력의 폐기와 일본 달력의 사용을 통해 전면적인 양력화를 시도했고, 1940년부터는 달력에서 아예 음력일을 삭제했다. 그러나 이미 44년 동안 지속된 음양력 공존 현상을 뒤늦게 타파하기는 힘들었다. 그리하여 음양력 공존 현상은 해방 후에도 지속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힘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고 있다.
근대화와 식민화의 혼효-‘문명 지연’의 시간시간의 식민화와 시간의 근대화가 가리키는 방향은 사실 비슷하다. 근대적인 시간이란 하나의 국가를 하나의 시간으로 균질하게 관리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만 식민화와 근대화는 그 과도함이나 폭력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국가를 형성하고 국민을 제작하는 일에서 시간의 통일은 중요하다. 가령, 일제는 식민지를 국가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 경도 차를 무시하고 조선, 중국, 대만, 만주 등에 일본의 중앙표준시를 강제했다. 하나의 시간으로 제국이라는 하나의 균질적인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보다 먼저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일제는 일본의 문화 발달을 기준으로 조선의 문화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물질적 근대화는 그러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예컨대 일제는 시간관념이나 시계의 정확성을 강조했지만, 식민지 조선에는 여전히 오포와 사이렌은 부족했고, 시계의 보급 속도는 너무 느렸고, 라디오 보급률은 단시간에 높아지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으로 한정할 경우, 일본인과 조선인의 물질적 조건은 더 큰 차이를 보였다. 따라서 일본과 식민지 조선이, 또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똑같은 근대 문화를 공유하거나 향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하자면, 식민지 조선에서는 문명이 문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근대 문화와 친숙해지고 있었지만, 제도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물질적으로 조선 사회는 근대 문화를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근대화되지 못한 것이다. 즉 일제의 제한적이고 선택적인 근대화로 인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문명이 문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문명 지연’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파괴된 시간’의 연대기이 땅에서 사회적인 시간, 정치적인 시간, 식민지의 시간은 내면의 시간을 압도하고 질식시켰다. 근대적인 시간이 구축되던 백여 년 전의 상황과 현재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지금 우리가 얼마나 내면의 시간을 강탈당하며 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종, 오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 달력의 연대기는, 근대적인 시간이 정치적으로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그 시간들의 연대기는 매번 ‘파괴된 시간’의 연대기였다. 지금 우리의 시간은 ‘파괴된 시간’의 유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의미를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고, 심지어는 시간의 틀 자체도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 우리는 절대적인 시간을 잠시 꺼 두는 ‘시간 소거’의 기술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이제 우리는 ‘시간 소거’를 넘어 새로운 시간 질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조금 더 구체적인 실험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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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공유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초 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확한 시간의 측정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시간 전달과 공유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해시계나 물시계의 존재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측정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종의 연대기는 시간 측정이 아니라 시간 공유의 연대기다. 조선시대에는 어느 정도 정밀한 시간 측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정밀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1장 종의 연대기> 중에서)
한일병합 무렵부터 시간을 알리는 대포, 즉 오포(午砲)가 본격적으로 시보에 동원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범종은 융해되어 탄환과 대포가 되었지만, 역으로 대포라는 강력한 무기는 일상으로 역류하여 종소리를 대신하는 강력한 시간의 소리를 분출했다.
(<2장 오포와 사이렌의 전성시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