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선구자 윤호진 예술감독이 <명성황후> 30주년 기념공연을 맞아 지난 30년간의 열정과 도전을 담은 자전 에세이 『명성황후』를 내놓았다. 뮤지컬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딛고 1995년 무대에 첫선을 보인 뒤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 진출,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 입성, 200만 관객 돌파 등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 뮤지컬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된 <명성황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윤호진 감독의 자전적 에세이와 함께 뮤지컬 <명성황후> 30년을 총정리한 글도 실려 있다. 부록은 세 사람의 필자가 썼는데, 뮤지컬 <명성황후>의 탄생부터 20주년 기념공연까지를 다룬 1장부터 6장까지는 <명성황후> 공연사와 해외 공연 동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윤정 홍익대 교수가 썼고, 그 후부터 30주년 기념공연까지 지속 가능한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위한 10년간의 여정을 정리한 7장부터 9장까지는 <명성황후> 연출가 안재승이 썼다. 마지막으로 스펙터클한 무대로 찬사를 받는 <명성황후> 무대미술 30년사를 정리한 10장은 무대디자이너 박동우가 썼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여 줄 것으로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역대 포스터와 공연 연표, 수상 내역, 역대 명성황후, 30주년 기념공연 배우와 스태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다. 공연예술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 보길 권한다.
나는 독립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이 길을 걸었다. 실제로 <명성황후> 뉴욕 공연을 앞두고 무 자금이 쪼들려서 가니 마니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연기자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를 모아 놓고 처한 사정을 가감 없이 털어놓으며 “독립운동을 하는데 돈 받고 했다는 얘기 들어 봤냐?”는 말로 설득한 적이 있다. 하루하루 생계를 해결해야만 하는 피치 못할 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독립운동을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견뎠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일이 아니잖은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 길이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기꺼이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기록이 지금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 그 길을 걸으려는 젊은이들에게 비록 실낱만큼이더라도 희망의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폐허 같은 창고를 고스란히 재현한 스펙터클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대, 실제 고양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생생한 분장과 디테일한 안무, 거기에 기존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에비타>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감미로우면서도 다양한 음악까지 어느 것 하나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때까지 유신에 반대하던 사회성 짙고 진지한 연극만 하던 내게는 더 그렇게 다가왔다. 가장 먼저 내 안에서 나타난 반응은 방어였다. ‘이 뮤지컬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면….’ 스토리가 있고 다양한 노래와 춤이 있고 어떤 공연보다 이해하기 쉬운 본고장의 오페라가 들어온다면, 대답은 하나마나였다. 손 한번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우리 시장을 내어주는 일 말고는 달리 뾰족한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