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자식 마음을 이렇게 후비는 부모가 어디 있냐고.” 딸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혼자 되뇌었다. 그후 시간이 흘러 딸은 어머니가 되었고,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엄마의 어린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기로 했다.『죽이고 싶은 엄마에게』는 27년간 ‘알코올중독자의 딸’로 살아온 저자가 지나간 시간을 열심히 곱씹은 기록이다. 나와 가장 오랫동안 살을 맞대었던 엄마가 나를 가장 외롭게 만든다는 것이 서러워 어린 저자는 다이어리에 빨간 크레파스로 ‘이영숙 죽어라’라고 적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엄마를 성실히 사랑했다. 그렇다면 엄마는, 엄마는 어땠을까?저자는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를 통해 술 냄새 나는 시간들을 용감하게 풀어헤쳤다. 그러고는 머리를 땋아주던 엄마의 손길에서, 그녀가 퇴근길에 사온 뜨거운 치킨봉투에서, 그녀가 접어준 전교임원선거 ‘출마의 변’ 전지에서, 그리고 미처 딸인 자신조차 잊고 있던 모든 순간에 분명히 자리했던 사랑을 찾아낸다.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의 돌봄이 되었든 나를 키워낸 엄마”가 있다. 엄마를 죽일 듯이 미워해보고, 또 누구보다도 성실히 사랑해본 우리 모두는 이 책에서 결국 사랑의 증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죽이고 싶은데 사랑하고 싶다. 아니, 사실 같이 살고 싶다.
보통의 모녀처럼 살고 싶다.”_김민철(작가, 『모든 요일의 기록』)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길 바랐던
그 모든 감정이 죄책감으로 남지 않길
“내가 엄마한테 배운 건 그래도 사랑이잖아”
『인생의 역사』에서 신형철 교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이에게 가해자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시점으로 보자면 저자에게 ‘영숙씨’는 보호자이자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 알코올중독자는 타인에게 폭력적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폭력적이다. 온몸의 장기가 알코올을 더이상 받아들이지 못해 수없이 구토하고 손발이 덜덜 떨리지만, 술이 깨면서 나타나는 섬망이 두렵고 그후 마주해야 할 현실이 두려워 계속 술을 마시고 마는 행위를 자기 파괴 말고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문제는 그 행위의 주체가 나의 부모라면, 비단 고함을 지르고 손을 휘두르지 않아도 그는 나에게 가해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보호자가 나를 두고 어딘가로 가버리는 걸 수긍하며 바라보는 아이는 없으니까.『죽이고 싶은 엄마에게』의 저자 역시 한 달에 한두 번, 일주일씩 장취(長醉)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이 그리 흘렀다.
“어릴 적부터 해오던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가 술을 마신다’는 생각은 늘 ‘내가 사랑받을 만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곤 했다. … 엄마의 음주와 나에 대한 애정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중독으로 겪는 고통이 실재였듯, 딸인 내가 겪어야 할 일들도 실재였기에 그 의사의 말은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224쪽)
내가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어서, 내가 엄마의 사랑이 되지 못해서 엄마가 술을 마시는 건 아닐까. 가장 의지하는 존재가 나를 가장 외롭게 만든다는 걸 깨달아도 부모를 놓는 아이는 없다. 그렇게 27년간 저자는 엄마를 붙들어왔고, 끝내 엄마를 술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술 냄새 배인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 두려웠던
어린 나에게 보내는 사랑의 증거들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자신과 아이 사이에서 재현되는 엄마와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침이 되면 언제나 자신을 쓰다듬으며 “자고 나면 예쁘고, 자고 나면 예쁘고”라고 말해주던 엄마처럼, 자신도 첫아이를 본 날 “자고 나면 예쁘고”라고 말한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저자는 술 냄새가 짙게 밴 지난 27년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다시금 들기도 했지만, 결국 공백 있는 돌봄이래도 틀림없이 존재했던 사랑의 편린을 마주하며 그 의문은 ‘어떻게 그런 사람이 엄마를 해냈을까’라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타박 듣던 ‘술 먹는 이혼녀’는 그들의 말마따나 소주 네댓 병을 품에 안고 안방으로 숨어들기도 했지만, 언제든 딸아이의 머리를 땋아주는 ‘엄마’의 역할로 돌아왔으니까.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며 술에 취해 나와 할머니에게 과도를 들이대던 모습과 집에 노트북을 두고 출근한 내게 노트북을 전달하기 위해 슬리퍼만 신은 채로 서울역까지 온 그 모습을 나는 동시에 기억한다. 술을 먹고 ‘네 애비랑 너도 결국엔 똑같구나’라고 말하는 모습과 첫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할 때 유선염으로 고생하던 날 위해 채소 반찬을 신경쓰며 밥을 차리던 모습을 나는 같이 기억한다. 그녀가 내게 남긴 비현실적인 삶의 감각.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엄마를 믿지 않을 수 없어서 괴로웠다. 그녀의 보살핌에는 불규칙한 공백들이 있었다. 하지만 듬성듬성이라도 내게 주어진, 양육자로서 그녀가 내게 남긴 편안했던 순간들 또한 분명 존재했다.”(284쪽)
나의 유년 시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어른과 아이로 시작해 어른과 어른이 되기까지 서로의 사랑스러움과 증오스러움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지내온 사람. 죽일 듯이 싸웠지만 영원히 승자와 패자로 나뉘지 않을 사람. 미워하고 이해할 수 없다가도 끝내 사랑이라는 수식어 말고는 붙이기 어려운 사람.
호칭은 다를지언정 우리는 누구나 그런 존재를 가져봤다. 그 말인즉슨 모두가 한 번쯤은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애써봤고, 그렇기에 그를 죽일 듯이 미워도 해봤으며 그를 이해하기 위해 온갖 애를 다 써봤다는 뜻이다. 그 과정도 결과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테지만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우리는 그에게서 ‘사랑’을 배웠다는 점이다.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는 지난한 시간들 속에 숨겨져 있던 단단한 사랑을 찾아낸 이야기다. 끝내 비극이 되지 못할 이야기다.
살갗과 내장이 부패할 틈도 없이 뜨거운 불길로 사라진 엄마지만, 엄마는 저를 떠나지 않았어요. 저는 절 둘러싼 모든 문장에서 엄마를 읽어낼 수 있어요. 빨간 크레파스로 엄마에게 죽으라고 했기에 엄마를 떠나지 못하는 주술이 제게 걸린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 「빨간 크레파스」중에서
‘엄마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이전의 물음은 이제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마라는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까’로 전환된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산다는 것이 때론 두렵고 불안해서 술로 도피했을 그 마음. 이젠 이해하려 애쓰거나 일부러 밀어내려 애쓰지 않는다. 전해져오는 그 마음을 그대로 느껴볼 뿐이다.
― 「그해 여름 오이지냉국」중에서
빛나던 시간 안에도 그늘은 존재하고, 유쾌한 웃음소리 안에도 글썽거리는 눈물이 있을 수 있다. 좋고 나쁨을 정확하게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삶은 어렵고 복잡하다.
― 「분홍색 나뭇잎」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한시영
1989년생. 회사에서는 노동자로, 집에서는 두 아이의 양육자로, 남는 시간에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삽니다.
목차
프롤로그 | 빨간 크레파스 6
1부
그해 여름 오이지냉국 18
엄마 없는 결혼식 23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32
분홍색 나뭇잎 44
이야기가 흐르는 침대 49
한시영, 알림장 가져와 60
홈 스위트 홈 73
삼종이 아저씨 84
닫힌 방문 95
송은옥 어머니 107
환승통로 위의 온기 121
글쓰기 연대기 131
머리 푸는 아이 143
2부
아저씨, 접니다 152
명동 아줌마 161
이모네 반찬 174
나의 할아버지 187
프로페셔널 금자 198
섬섬옥수 207
첫 외출 219
세모난 공간 227
예감 한 상자 236
벽제 추모공원 246
시작하는 마음 259
복강경수술 268
그 글은 저에 대한 배반이거든요 276
에필로그 | 엄마의 사과 편지 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