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손자의 첫돌
자고로 사람은 관혼상제의 통과의례를 거친다. 사람의 일생은 나고 자라고 병들고 늙고 죽는다. 그런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태어나서부터 세 살이 될 때까지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일반 가축이나 동물들을 보면 그렇게 어렵게 삶을 시작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포유류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엄마의 자궁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울음을 울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손자가 태어나는 것을 보니 태어나서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였다. 눈을 뜨고 활동을 시작하고 사지를 버둥거리고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그런 연후에 일어서서 걸어가기까지 거의 1년이 걸린다.
지난달 말에 손자의 돌잔치가 있었다. 6개월 전에 예약을 했다고 하니 돌잔치를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듯하다. 우리 가족과 사돈네 가족이 참석해서 8명이 참석한 셈이다. 주인공은 당연히 손자였다. 며느리는 하얀 드레스로 성장盛裝을 했고 아들도 깔끔한 검정색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맸다. 며느리가 보낸 돌잔치의 식순은 가족 단체사진 촬영, 성장 동영상 감상, 인사말(아들), 생일 축하 노래 합창, 케이크 커팅 건배 순이었다. 가장 중요한 돌잡이는 식전 행사였다. 오후 늦은 시간에 전문 사진사가 와서 돌행사를 주관했다. 야외 촬영이 있었고 실내 촬영이 있었다. 천지분간을 못하는 손자를 어르고 달래가면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자를 집중시킬 장난감을 들고 요롱을 흔들 듯 그렇게 아이를 집중시키고 주의를 끌어서 겨우 한 차례씩 사진을 찍는 식이었다. 일반 테이블이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사진 촬영을 마친 후 야외 촬영을 했고 최종적으로는 돌상이 차려진 테이블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손자가 홀로 서기를 못하는 관계로 아들이 손자를 잡고 있고 자신은 보이지 않게 연출하는데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이는 사진작가였다. 각종 포즈로 돌사진을 촬영한 셈이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돌잡이였다. 예전의 돌잡이 용품은 활, 붓, 엽전, 판사봉, 청진기, 천자문 등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변모된 모양이다. 엽전대신 신사임당이 올랐다. 손자가 잡은 것은 활이었다. 두 번째 잡은 것은 청진기였다. 사진작가의 주문은 며느리에게 요청을 했다. 잡으면 좋을 것으로 희망하는 것을 손자 앞에 놔두라는 식이었다.
돌잔치가 벌어진 곳은 반얀트리 클럽앤 스파 페스타바이민구(식당)이었다. 호텔과 클럽 그리고 식당으로 세 개로 분류되었다. 식당 바로 옆에는 실외 수영장이 있었다. 호캉스를 즐기는 이들의 각광받는 곳으로 보였다. 그렇게 사진작가에 의해 능숙하게 주도된 돌잔치의 식전 행사는 1차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다음은 본격적인 본행사였다. 먼저 손자의 1년 삶에 관한 동영상의 감상 시간이 있었다. 손자가 태어나서 백일을 지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상으로 며느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5분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에 글자를 넣어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만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아들의 인사말이 있었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태서의 육아와 성장에 애를 쓴 양가 부모와 그리고 며느리에 대한 감사의 의사를 표명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음 식순으로 된 것은 음식을 주문해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먼저 손자의 이유식을 먹였다. 손자는 무더운 날씨에 하얀 양복에 베레모 같은 모자까지 썼고 신발까지 신었으니 엄청나게 답답했을 것으로 보였다. 머리에 땀이 나 모자를 내팽겨치기도 했다. 양복을 한복으로 갈아입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일반 사진 촬영을 마친 후 돌잡이를 하기 위해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색동저고리는 아니었지만 한복저고리를 입었고 풍차바지를 입고 복건을 머리에 썼다. 무엇이든 벗어던져버리는 손자는 복건도 벗어던지기도 했지만 용케도 머리에 썼고 잘 참아냈고 무난하게 돌잔치 행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중간에 한 차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돌잔치 중에는 짜증 내지 않고 잘 진행에 따라준 편이었다. 손자는 이유식을 먹은 후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녀석은 아빠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유모차를 태우고 산책을 하며 재워보려 했지만 잠을 자지는 않아 결국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돌 상에는 케이크가 3단으로 된 것이 놓여 있었는데 ‘축 태서 첫돌’이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었다. 돌상에는 떡 송편, 실꾸러미, 한과, 과일 등이 놓여져 있었다. 돌 상 위의 꽃은 조화로 보였고 잔치 상의 위에 장식된 꽃은 생화였다. 잔치가 끝나고 생화는 다 가족별로 가져가도록 배분되었고 떡류도 포장해서 각 가족 별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줬다.
손자 돌잔치의 식사는 순차적으로 나왔다. 전복죽, 랍소더, 소고기무국과 밥상, 스테이크, 도미회, 등이 엑기스로 나왔다. 마지막 디저트는 차와 아이스크림 마크롱이 나왔다. 사돈네는 전주에서 올라와 행사에 참석하고 곧바로 KTX 하행선을 타고 귀가했다. 아내는 손자의 돌잔치 참석을 위해 반휴를 냈다. 작은아들도 귀한 시간을 냈다. 며느리의 아이디어였는지 돌잡이를 맞추는 것이 있었다. 와인잔 같은 플라스틱 컵에 번호를 넣고 그것을 8개를 만들었다. 돌잡이의 개수에 맞춘 셈이었다. 안사돈과 내가 같은 유리잔에 번호를 넣어 첫 번째 잡은 활을 맞추지 못했고 두 번째 청진기는 아내가 맞췄다. 선물은 스타벅스 커피권이었다. 우리는 금일봉 봉투를 전했고 사돈네는 손자를 위해 돌반지, 돌팔찌, 금일봉, 등을 선물했다.
천금 같은 손자의 잉태 소식을 들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셈이었다. 1년 동안 태서의 성장을 위해 육아를 도맡은 며느리 안사돈님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아쉬운 점은 와인이라도 한 잔 하면서 건배를 해야 했는데 차를 가져갔으니 술을 마실 수 없는 부분에 아쉬움이 남았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렇게 손자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향후 손자가 무럭무럭 자라나 나라의 큰 동량이 되기를 기원한다.
하남 경정공원 봄소식
지난 목요일이었다. 나는 차를 끌고 경정공원 근처 벚꽃길을 찾았다. 지난 월요일에 헛걸음했던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나흘을 기다린 셈이었다. 지난번에는 경정공원 내의 개나리 길을 걸었었는데 오늘은 제대로 벚꽃길을 걸었다. 날씨는 낮 기온이 23도에 이를 정도로 무덥게 느껴질 정도의 날씨였다. 미세먼지도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꽃길을 걷기에는 최적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양호한 날씨였다. 하남의 최고 벚꽃 명소였다. 다른 곳으로는 덕풍 천변이 있기는 하지만 이곳만큼 많은 상춘객을 불러 모으지는 못하는 듯했다. 길 한쪽에 차를 주차해 두고 북쪽 끝으로 향했다. 차에서 비포장도로를 걸어서 먼저 도착한 곳은 둑방길이었다. 그리고 그 둑방길을 20분쯤 걷고 나자 곧 벚꽃길의 시작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벚꽃길을 즐기려는 인파는 평일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인파로 붐빌 정도로 북적이지는 않았다. 먼저 도착한 둑방길에서 내려다본 벚꽃길은 절로 감탄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 듯 비단길을 열어 주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그렇게 하얀 꽃길이 펼쳐져 있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났던 오작교처럼 그렇게 길게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꿈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장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촬영을 했다. 지난 월요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때는 꽃봉우리가 맺어져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개화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간간히 나무들 사이에는 아직 완전하게 개화하지 않은 나무들도 더러 있기는 했다. 그러나 올 벚꽃은 예년보다 2주일이나 앞당겨졌다는 것이 실감날 정도로 일찍 개화했다. 지난 3년간 제대로 꽃구경도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꽃구경을 더 신나게 만들었다. 둑방길의 한 노부인은 맨발로 산책을 하고 있기도 했다. 둑방길에서 벚꽃길로 내려가는 계단은 곳곳에 있었고 둑방길과 벚꽃길의 사이에는 군사용 방호시설인 벙커같은 구조물도 눈길을 끌었다. 남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끝자락쯤에는 유니콘 타워가 아스라이 보이기도 했다. 벚꽃길을 본격적으로 산책하기 시작했다. 왼쪽의 자전거 길에서는 간간히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거의 3~5킬로미터쯤으로 느껴졌고 내가 걸었던 길은 거의 절반쯤 걸은 것으로 보였다. 내가 걸었던 거리 등은 4.59Km 6,175걸음 227kcal 소모했다고 나왔다. 간간이 동영상을 앞으로 걸으면서 촬영하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벚꽃길의 광경을 사진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둑방길 쪽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거의 30미터쯤의 간격으로 계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에는 당정뜰이란 곳의 벚꽃이 아직 제대로 개화한 상황이 아니었다. 경정공원의 남쪽 끝에 차를 주차해 두고 둑방길로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 본 벚꽃길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10분쯤 걸었다가 다시 경정공원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차를 몰고 이번에는 개나리꽃길로 갔다. 그쪽 주차장쯤에 주차를 해 놓고 개나리길을 걸으며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 근처의 마을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하남시에서 텃밭용으로 조성하고 있는 용지가 나왔다. 그곳을 벗어나자 둑방길에 접근할 수 있었다. 봄을 맞아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영농철로 접어든 것으로 여겨졌다. 꽃들도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는 형국으로 보였다. 봄은 언제나 활력이 넘치고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힘을 가진 듯하다. 오랜 겨울의 추위를 벗어나고 만물이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되는 초입의 힘을 갖고 있는 듯하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매화 등 봄에 피는 꽃이 있고 가을에 피는 꽃도 있지만 우리가 힘차게 느끼는 부분은 봄의 역동성을 느껴 볼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박규환 수필가는 이제는 더 이상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라는 수필을 쓰면서 아내를 잃고 봄을 함께할 배우자가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봄은 자신에게 기다림과 희망을 품게 하는 역동성을 갖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주말에는 하남 경정공원을 찾아 봄마중을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하남 경정공원은 132만 제곱평방미터이고 중앙의 길이는 2,212m 폭 140m 평균수심 3m이고 수요일과 목요일에 경정경기가 펼쳐진다. 예전의 미사리 조정경기장이 경정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경정은 경마, 경륜과 함께 사행산업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6월 18일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미사리 경정장이 개장되어 경주사업본부에서 주관하는 국내 최초의 경기가 개최되었다.
경정은 6명의 선수들이 모터보트를 이용해 600m 코스를 3바퀴 돌아 순위를 가리는 경주로, 관람객은 우승 예상 선수에 내기를 걸어 맞힐 경우 배당금을 받는다.
경정의 특징 중 하나는 출발 방식인 플라잉 스타트이다. 같은 라인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경마나 경륜과는 달리 대기 수면에 있다가 1초 내에 스타트라인을 출발해야 경주가 성립되며 정해진 출발 시간(0∼1초) 내에 출발선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미리 지나치면 실격 처리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종수
1959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하였다.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강원도 화천에서 장교로 복무하여 육군중위로 전역하였다. 이후 농협중앙회에 입사하여 2010년 농협안성교육원 부원장을 거쳐 농협구미교육원 원장으로 근무하고 2017년에 퇴직하였다. 1987년 결혼하여 2남을 두고 있으며 서정문학, 지필문학, 문학광장으로 등단하였다. 수필집으로는 제1집 『푸른 노을』(2011, 화암출판), 제2집 『색다른 낯설음 저너머』(2013, 화암출판), 3집 『심향을 향한 여정』(2014, 서정문학), 4집 『홍진속 마음의 정화』(2016, 서정문학), 5집 『성찰의 향기』(2017, 서정문학)가 있다. E-mail: ljh132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