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감을 주고 외로운 인생에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해준 몽테뉴의 충고를 들어보자. 인생에 대한, 인간에 대한 몽테뉴의 통찰을 담았다. 프랑스 법관이었던 몽테뉴는 은퇴 후 인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에세(essai)’라는 독특한 문학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자신의 고찰과 견해, 통찰을 담아 펴낸 책이 바로 『수상록』이다. 본래 이 『수상록』은 총 3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그 중에 주옥같은 명문들을 뽑아, 주제별로 엮어 펴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몽테뉴의 사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매순간 다가오는 죽음의 모든 모습을 상상해보자. 말이 발을 헛디딜 때, 기와가 떨어질 때, 아주 작은 핀에 찔렸을 때, 즉시 “그래, 이것이 바로 죽음의 모습일 수도 있었어.” 하고 되새기자.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힘쓰자. 축제와 환희의 순간에도 언제나 이 구절을 떠올리며 우리의 처지를 기억함으로써 즐거움에 너무 빠져들지 않도록 하자. 가끔 우리는 이 구절을 떠올리지 못해 쾌락에 빠지곤 한다. 이로써 죽음의 표적이 되고 위협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연회와 같은 큰 잔치 도중에 망자의 마른 해골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곤 했다. 죽음이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은 곧 자유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죽는 법을 깨우치고 나면 반대로 죽음에 속절없이 당할 거라는 두려움을 잊게 된다. 죽음이 뭔지를 알면 모든 굴복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을 박탈당하는 것이 해악이 아님을 깨닫고 나면 삶에 해로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단 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도 그것이 내가 죽기 전에 마쳐야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짬을 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어떤 이가 내 수첩을 뒤적이다 내가 써놓은 ‘죽은 이후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의 목록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집에서 10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집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건강하고 활기가 있을 때 그것을 적고자 서둘렀노라고 그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이렇듯 나는 내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품고 스스로에게 새겨넣기 때문에 언제나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죽음이 갑자기 닥치더라도 놀랄 일이 전혀 없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을 신고 채비해야 한다.
사람들은 죽음의 실제 모습이 상상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한 검술도 죽음 앞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도록 내버려두어라. 미리 죽음에 대해 생각해두면 분명 굉장히 유익하니 말이다. 어떤 변화나 흥분 없이 적어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이미 작은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자연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용기를 준다. 죽음이 급작스럽고 통렬하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천천히 온다면 나는 병세가 심각해질수록 삶을 더욱 경멸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병들어 앓을 때보다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한 결의를 소화하기가 더 힘겹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삶의 매력을 더이상 누리지도, 추구하지도 않게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부쩍 줄어든다. 나는 그렇게 내가 삶에서 멀어지고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삶과 죽음의 교환을 더욱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미셸 에켐 드 몽테뉴
16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에세이’ 글쓰기 형식을 탄생시킨 모럴리스트.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법관을 지내다 38세의 나이에 은퇴한 후 몽테뉴 성에 은거하며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종교 내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가톨릭 신자이자 앙리 3세의 시종으로서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중재자로 활약했으며, 특히 개신교의 지도자이자 훗날 앙리 4세로 즉위한 앙리 드 나바르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1580년 『에세』의 초판을 발표한 후 죽기 전까지 수정과 추가 집필을 거듭했다.『에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 ‘크세주Que sais-je?’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뜻이다. 이 질문은 무신론적이며 파괴적인 자세가 아니라, 다음 단계인 성찰로 나아가기 위한 중립적이며 창조적인 자세다. 『에세』는 수많은 사상가, 철학자, 문필가, 교육자, 정치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철학자 니체는 “『에세』를 읽었더니 날개가 돋아났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