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담담한 언어로 자연과 인생, 사랑과 회한의 정서를 그려낸 박무성 시인의 시조집 『저 푸른 바람 소리』(열린출판)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한국 시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섬세한 서정성과 현대적 감각을 조화롭게 아우른 작품집으로, 시조사랑시인선 62번째 권으로 선보인다.총 7부로 구성된 이 시조집은 ‘푸른 천년’, ‘백설 축제’, ‘물레방아’, ‘초록의 날’, ‘바람의 향기’, ‘달빛 속에 피는 꽃’, ‘유랑자’라는 주제로 140편 이상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계절의 흐름, 자연의 사색, 인생의 굴곡, 그리고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이 시인의 낮은 목소리로 그려지며, 독자는 그 안에서 자신의 추억과 감정을 되새기게 된다.김태균 시인은 해설에서 “이 시조집은 회상의 따뜻함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지닌 서정시의 품격을 온전히 보여주는 성취”라고 평했다. 특히 “시인의 침묵은 곧 독자의 울림으로 번져간다”는 말처럼, 시인의 절제된 언어는 더 큰 공명을 남긴다.
출판사 리뷰
박무성 시인의 시조집 『저 푸른 바람 소리』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정서의 결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전통 시조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언어 감각을 결합한 그의 작품들은, 푸른 바람처럼 잔잔히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거울로 삼아, 민들레나 대나무, 밤바다, 초승달에까지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입힌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상처 입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어쩌면 조금은 치유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대나무」나 「민들레」 같은 작품은 견디는 삶에 대한 애정을 절절히 드러내며,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들을 상기시킨다.
한편, 그의 시 속에는 따뜻한 유머와 해학도 숨어 있다. 「간고등어의 변론」이나 「김장 날」 같은 시편에서는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통해 인간사의 아이러니와 삶의 씁쓸한 진실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이는 시조가 갖고 있는 형식적 제약을 오히려 유머와 풍자로 역전시켜, 독자로 하여금 한 편의 시 안에서 웃음과 울림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은 것은, 그의 시조가 ‘그리움’과 ‘기억’이라는 감정의 파편을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는가이다. 어머니의 장독간, 추억의 간이역, 할미꽃 같은 시들은 독자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어쩌면 누군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시조라는 정형시는 박무성에게 있어 형식이 아니라 정서를 담아내는 그릇이며, 그 그릇 안엔 삶의 희로애락이 진하게 우려져 있다.
『저 푸른 바람 소리』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풍부하면서도 단정한 언어로,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인생의 골목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따뜻한 시집이다.
말 없는 실존의 풍경
-감각적 정서와 존재론적 언어가 교차하는 박무성의 시조 세계
1. 들어가며
“인생의 절반은 기억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 기억을 가꾸어가는 일이다.” 누군가의 이 말처럼, 박무성 시인의 시조집 『저 푸른 바람 소리』는 기억과 현재, 감정과 사유, 일상과 초월 사이의 내밀한 경계 위에서 피어난 한 권의 시학적 일기다. 시조라는 정형의 틀을 빌리되, 그 안에 담긴 세계는 끊임없이 넓게 펼쳐지고 깊게 침잠한다. 박무성은 시편마다 되묻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존재는 어디에 남는가. 시간은 무엇을 데려가고, 무엇을 남기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물음으로 머물지 않고, 꽃피는 계절과 스치는 바람, 적요한 새벽과 어두운 골목길을 통과하며 삶의 구체적 결로 번역된다.
『저 푸른 바람 소리』는 단순히 개인적 회상의 언어를 엮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이 걸어온 시간의 깊이와 감정의 결을 응축한, 존재의 ‘증류된 풍경’에 가깝다. 특히 이 시조집의 제목을 구성하는 ‘푸르다’라는 형용사는 시조집을 관통하는 정서적 온도를 섬세히 드러낸다. 그 푸름은 단지 젊음이나 생동감의 표상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묵은 사유와 내면의 침잠이 언어로 증류되었을 때 드러나는 깊고도 밝은 정감의 빛깔이다. 시인의 말처럼 “세상은 변하여도 사랑은 늘 푸르게 존재하는 것”이며, “내가 보내지 않는 한, 떠나도 가슴에 남는 것”이라는 문장은 시조집 전체를 아우르는 고백이자 선언처럼 다가온다. 시조가 단순한 정념의 표출이 아닌, 감각의 기억을 정직하게 붙잡는 행위라는 그의 태도가 이 문장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박무성 시인의 시조는 격렬하지 않다. 그는 장대한 상징이나 수사적 과시보다는, 오히려 말의 최소 단위 속에 감정을 응축시키고, 그 안에서 조용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의 언어는 마치 오래된 우물에서 퍼 올린 물처럼 맑고 깊다. 독자는 그의 시조를 읽으며 그 감정의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어떤 시조는 자전적 시편처럼 느껴지고, 또 다른 시조는 당신과 나의 감정의 조각을 담은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이 시조집은 ‘감정의 지도’가 된다. 하나의 정서에서 다른 정서로 조심스럽게 건너가는 통로이자, 내면의 파장을 외부 세계에 번역하는 사유의 매개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조집을 이루는 언어들의 빈도 분석에서도 박무성 시조의 주제와 정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바람’(31회)이다. 바람은 이 시조집의 상징이자 분위기를 형성하는 핵심 어휘로, 무형이지만 감각 가능한 존재로서의 감정을 대표한다. 이어서 ‘길’(30회), ‘시간’(25회), ‘기억’(22회), ‘하늘’(21회), ‘꽃’(19회), ‘사랑’(18회), ‘달’(17회), ‘파도’(15회), ‘별’(14회) 등이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시어들은 시인의 내면적 사유가 어떤 자연적 기호를 통해 외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길’과 ‘시간’은 삶의 여정과 기억의 층위를, ‘하늘’과 ‘별’은 사유의 고양과 고독을, ‘파도’와 ‘바람’은 감정의 흐름과 반복을 은유한다.
단어 하나, 이미지 하나가 시인의 사유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하며, 그러한 언어의 배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화 방식임을 시인은 반복적으로 증명한다. 자연과 존재, 감정과 시간의 요소가 하나의 시에서 교차하는 순간들, 그때 비로소 독자는 이 시조집이 그저 예쁜 언어의 나열이 아니라, 감정의 내밀한 형상화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형식적으로 박무성은 시조의 3장 6구라는 정형을 견지하면서도, 각 시조의 종장에서 감정의 종결이 아닌, 또 다른 질문과 울림을 던진다. 그 울림은 밤바다의 적막처럼 낮게 깔려오기도 하고, 봄날의 바람처럼 부드럽게 스쳐 가기도 한다. 삶의 균열과 흔들림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정수, 그것이 바로 박무성 시조의 미덕이다.
나는 이 시조집의 발문을 대신하여 박무성 시조의 태도에 대해 한 가지 정의를 덧붙이고 싶다. 그는 자연의 찰나를 감정의 필터에 투과시키되 결코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그 감정을 정직한 언어로 정련하며, 삶이라는 결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 보인다. 『저 푸른 바람 소리』는 존재의 윤곽을 더듬어가는 한 인간의 내밀한 언어적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독자의 마음에도, 어느 날 푸른 바람처럼 가만히 스며든다.
2. 서정적 진실성과 감정의 층위
시는 감정의 파편이 아니다. 감정은 흘러야 시가 되고, 그 흐름이 언어로 구조화될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서정’이라 부를 수 있다. 박무성의 시조는 바로 그런 감정의 흐름을 천천히, 그러나 치밀하게 따라가는 시적 기록이다. 그는 감정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과 기억, 관계와 상실의 구도를 세워 그 안에 감정을 천천히 녹여낸다. 감정의 정직한 구조화를 통해 삶의 깊은 층위까지 더듬게 하는 시, 그것이 박무성 시조의 내면적 힘이다.
「빈손」이라는 시조는 그러한 정서적 층위의 전형이다.
그 사람
손을 잡고
걸어가면 좋으련만,
봄꽃이 흐드러진
들길을 홀로 걷다
서먹한
아름다움을
뿌리치고 갑니다
— 박무성 「빈손」 전문
이 작품은 감정이 단순히 ‘있다’라고 말하지 않고,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축한다. 초장에서는 실현되지 못한 관계에 대한 바람이 ‘그 사람’과 ‘손을 잡고’라는 시어로 은근하게 드러나고, 이어지는 행에서 ‘봄꽃이 흐드러진 들길’을 홀로 걷는 장면은 아름다움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외로움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종장의 ‘서먹한 아름다움’은 과거의 관계가 여전히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돌이킬 수 없음을 직설적 언어 없이 함축적으로 말한다. 감정은 여기서 명시되지 않고, 풍경과 행동 속에 배어 흐른다. 이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이 시조의 진정한 독법이다.
또 하나의 예인 「모정의 그림자」는 그 감정이 어떻게 기억과 맞물려 더 복합적인 층위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낳은 정 기른 정은 활화산 불꽃인데
보은은 무슨 보은, 번갯불 세월인데
웃음을 베고 누워도
베갯잇이 젖는다
달빛에 어룽대는 모정의 옛 그림자
말없이 젖어 드는 회한의 계곡에는
풀벌레 울음소리만
까만 밤을 달래네
— 박무성 「모정의 그림자」 전문
이 시조는 모성에 대한 회상의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시적 형상화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초장의 ‘활화산 불꽃’이라는 비유는 사랑의 격렬함을 넘어서, 그것이 억제되지 못할 정도로 생생했음을 보여주는 강렬한 시적 장치다. 중장에서 ‘웃음을 베고 누워도 / 베갯잇이 젖는다’라는 구절은 감정의 겹침, 즉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내면에서는 끝없이 솟구치는 슬픔과 회한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조는 모정에 대한 미화도, 단순한 그리움도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라는 ‘시간의 층’ 위에 덧입혀진 감정의 구조이며, 그 구조는 독자에게 감정의 무게를 함께 느끼도록 한다.
이처럼 박무성의 시조는 감정을 일차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감정을 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로 설정한다. 감정은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이미지와 함께 흐르고, 그 흐름이 언어로 형상화되면서 감정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하나의 ‘정서적 구조물’로 완성된다.
이러한 시도는 시조라는 정형시의 형식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시조는 긴 호흡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제한이 감정을 농축하게 만들며, 그 농축된 감정이 독자에게 더욱 강한 정서적 파동으로 다가온다. 박무성은 그 정형 속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그 절제 속에서 더욱 강한 진실을 끌어낸다. 이것이 바로 ‘서정의 진실성’이다.
결국 박무성의 시조는 감정이 억눌리거나 과장되지 않는 지점에서 피어난다. 감정은 언제나 자연 속에서, 관계 속에서 조심스럽게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시조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를 조용히 보여준다. 독자는 그 자리에 머물며, 자신의 감정을 조심스레 꺼내 보게 된다. 이것이 박무성 시조의 진짜 서정이다. 감정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가장 정확히 전하는 언어. 바로 그 언어가 박무성의 시조에서 조용히, 그러나 깊게 울린다.
3. 자연 이미지와 상징 구조 분석
자연은 시인의 마음을 투영하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다. 박무성의 시조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을 탐문하는 도구이자, 감정을 투사하고 정서를 응축하는 심상의 거처다. 그의 시어 속 자연은 늘 움직인다. 그것은 머물지 않고 흐르며, 때로는 불현듯 흔들리고, 어떤 때는 잔잔히 고요하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생의 본질과 정서의 중층적 흐름이다.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산중일락(山中逸樂)」은 시인의 자연관과 존재론이 집약된 시편이다.
한적한 산골짝에 삶의 종이 울린다
빛 고인 양지녘에 초가삼간 틀고 앉아
문풍지/ 바람에 우니/ 시름 곡조 절창이다
-「산중일락(山中逸樂)」 2수 중 첫째 수
이 시조의 초장은 단순한 산골 묘사로 시작하지만, ‘삶의 종’이라는 시구를 통해 자연을 초월적 시간성과 존재의 지표로 변환시킨다. ‘양지녘에 고인 빛’, ‘문풍지 바람’, ‘시름 곡조 절창’이라는 표현들은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감정을 천천히 동요시키며, 자연과 인간 감정의 일체화를 실현하고 있다. 자연은 단순히 평화로운 공간이 아닌, 존재의 절정을 노래하는 ‘무대’이자 ‘청자’가 된다.
이러한 자연의 상징 구조는 「밤바다」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석양이 뉘엿뉘엿 밤바다에 눕는다
어제를 지키려다 오늘을 잃는대도
사랑아,/ 아프지 마라/ 출렁이는 삶이다
절정이 하도 높아 맴돌던 파도였다
이제야 돌아앉아 욕망을 삭히려니
오동통/ 배부른 달님/ 넉살스레 웃는다
-「밤바다」 3수 중 첫째 수와 둘째 수
이 시조에서 ‘밤바다’는 고통과 치유, 기억과 회한이 교차하는 상징의 공간이다. ‘석양’, ‘밤바다’, ‘파도’, ‘절정’ 등은 각각 시간의 흐름, 감정의 깊이, 인생의 무상함을 대변하는 기호로 기능한다. 특히 ‘파도’는 반복과 전환의 이미지로, 인생의 기복과 감정의 요동을 극명하게 상징한다. 바다라는 광대한 자연물은 박무성에게 있어 ‘사랑’과 ‘욕망’, ‘삶의 무게’까지도 수용하는 모성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처럼 그의 시조는 자연물의 감각적 형상을 빌려 추상적 정서를 시각화하고, 그로써 정형시의 제약 안에서도 깊은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물아일체’라는 고전적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자연을 통해 자아를 돌아보고, 세계를 읽으며, 존재의 윤회를 성찰하는 방식이다.
특히 박무성의 시조는 상징을 단지 꾸미는 장치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상징을 감정의 논리로 삼는다. 상징은 감정의 외피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 자체다. 바람은 늘 희망을 실어 나르며, 노을은 사랑의 퇴장을, 산은 존재의 묵직한 뿌리를 암시한다. 이러한 상징체계는 시인의 미적 언어가 얼마나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의 시조에 등장하는 자연물은 대개 익숙한 것들이다. 바람, 별, 바다, 산, 달, 꽃, 풀잎, 노을 같은 자연의 이미지들은 누구에게나 친근한 상징체다. 그러나 박무성은 이 익숙함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끌어낸다. 감정의 깊이와 시적 긴장이 익숙한 상징 속에서 빛을 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그의 시조가 단순한 자연 찬미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을 투시하는 미학으로 승화되는 이유이다.
요컨대, 박무성의 시조에서 자연은 사색의 매개이자, 정서의 감별기이다. 자연이 주는 평온 속에 인간의 갈등이 스며들고, 그 속에서 감정은 사유로 변환된다. 그리고 그 사유는 상징이라는 언어의 옷을 입고, 독자에게 천천히 침윤해 들어간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시조를 읽는 동안, 자연과 감정, 존재와 언어가 하나의 회화처럼 펼쳐지는 ‘상징의 경전’을 마주하게 된다. 이 점에서 박무성의 자연시는 동시대 시조 미학의 또 하나의 정점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탐색하게 하는 귀한 문학적 성취로 평가될 수 있다.
4. 형식과 리듬의 조화
시조는 말의 형식이 아니라 말의 질서를 가늠하는 구조다. 박무성의 시조는 이 정형의 구조 속에서 리듬과 정서를 한껏 긴장시키며, 언어의 축적과 생략이 동시에 작용하는 예술의 질서를 구현한다. 그의 시조에서 형식은 감정을 정리하는 구조가 되고, 리듬은 감정을 전달하는 채널이 된다. 시인의 내면이 리듬으로 번역되고, 정형이라는 미학 속에서 응결되는 방식. 그 긴장의 미학이 박무성 시조의 내면을 이룬다.
「단풍 교향곡」은 제목에서부터 계절과 음악이 교차하는 정서를 예고한다.
오색 빛
여린 선율
가을 악장 피날레
온 가슴 울긋불긋
환희로 적시다가
산바람
시린 변주에
출렁이는 황홀경
-「단풍 교향곡」 전문
초장의 ‘오색 빛 / 여린 선율 / 가을 악장 피날레’는 감각적 이미지와 음악적 은유가 어우러져 하나의 계절 정서를 조성한다. 이 음보 배열은 시조의 기본 리듬을 따르면서도 마디마다 호흡을 조절하게 한다. 중장의 ‘온 가슴 울긋불긋 / 환희로 적시다가’는 감정의 고조를, 종장의 ‘시린 변주’와 ‘황홀경’은 감정의 해소를 음악적 흐름처럼 배치한다. 박무성은 이처럼 시조의 3장 6구 구조를 활용하여 리듬을 서정의 파동으로 전환시키며, 감정의 상승과 침잠을 고르게 안배한다.
반면 「대나무」는 상징적 절제와 구조적 단단함으로 시조 형식의 전통미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풍진에 물들세라
댓바람에 솟구치네
비운 속 마디 맺어
올곧게 서 있음에
사시절
절조의 빛이
초록으로 번뜩이지
-「대나무」 전문
초장의 ‘풍진’과 ‘솟구치네’는 외부 세계의 혼탁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상징화하며, 음절 간의 간결한 절제는 시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중장의 ‘비운 속 마디 맺어’는 시조의 형식을 스스로 환유하면서 시인의 자의식을 대나무의 절조에 투영한다. 종장의 ‘절조의 빛이 / 초록으로 번뜩이지’라는 윤리적 상징성과 자연의 지속성이 어우러지는 시적 종결로서, 전통 시조의 정형미와 현대적 감각이 겹치는 지점이다.
이 두 작품은 박무성이 시조라는 형식 안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감정을 조직하고, 리듬을 정서로 전환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조의 음보율은 그의 시조에서 단지 형식이 아니라, 감정의 길이를 결정짓는 리듬의 단위가 된다. 그는 정형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정형을 버리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감정의 파형을 구성해낸다. 그것이 박무성 시조의 리듬이자, 형식의 내면이다.
이처럼 박무성의 시조는 시조의 형식성과 감정의 진실성을 함께 껴안으며, 고전 형식의 생명력을 현대 감각으로 되살려낸다. 이 점에서 그의 시조는 ‘형식의 절제’를 통한 ‘감정의 울림’이라는 현대 시조의 모범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시조는 형식미와 감정미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하나의 문학적 형상으로 우뚝 선다.
5. 기억과 회상의 서정적 재구성
기억은 흘러간 시간의 편린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감정의 뿌리이다. 박무성의 시조는 이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내어 감정의 온도로 다시 짜 맞춘다. 그 온도는 서늘하기보다 따뜻하고, 단절보다는 연속을 지향한다. 회상의 시학이란 결국 사라진 것을 다시 호명하는 일이며, 박무성의 시조는 그 호명의 순간들을 언어로 절묘하게 포착해낸다. 이때 시조의 형식은 기억의 시간적 질서를 구성하고, 감정의 잔향을 형상화하는 틀로 작동한다.
가장 먼저 주목할 작품은 「추억의 간이역」이다. 이 시조는 과거의 공간을 통해 기억과 감정의 흐름을 복원한다.
갈바람 휘청이는 녹슨 철길 위로
낙엽은 이리저리, 잠자리 떼 빙글빙글
쓸쓸히 손을 흔드네,
코스모스 하늘하늘
적막을 끌어안고 깊이 잠든 옛 간이역
한때는 북적이던 만남과 이별 자리
아련히 들리는 음성
잘 있으오, 잘 가오
그날의 정감들이 까맣게 묻은 역사
거미줄에 걸린 추억 보고도 못 본 듯이
마음은 여기에 두고
빈 몸만을 보내오
-「추억의 간이역」 전문
이 시조는 시간의 두께와 감정의 흔적을 ‘간이역’이라는 공간적 상징으로 압축해낸다. 초반부의 ‘녹슨 철길’, ‘코스모스’, ‘잠자리 떼’ 등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기억의 현실감을 강화하면서도, 그 감정은 절대 드러내지 않고 ‘쓸쓸히 손을 흔드는’ 묘사로 암묵화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기억은 서정의 영역으로 변환되며, ‘잘 있으오, 잘 가오’라는 대사는 회상의 감정이 단순한 아련함이 아니라, 명백한 이별과 그리움의 언어로 정립됨을 보여준다. 마지막 수의 ‘마음은 여기에 두고 / 빈 몸만을 보내오’라는 떠남의 육체성과 남음의 정서가 분리되는 순간으로, 회상의 정수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작품인 「말하는 거울」은 시간과 존재를 응시하는 도구로서 거울을 제시하며, 기억의 층위가 어떻게 정체성 일부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내 마음 거울 속엔 어제의 사람 있다
그리운 그 얼굴들 한사코 건네는 말
아들아, 미안하구나
다 해주지 못해서
내 마음 거울 속엔 오늘의 사람 있다
꽃 같은 그 얼굴들 웃으며 건네는 말
부모님,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누구나 마음속엔 말하는 거울 있다
담담히 속삭이는 진솔한 사랑 고백
이담에 나의 거울은
무슨 말을 해주려나
-「말하는 거울」 전문
이 작품은 과거(아버지), 현재(부모), 미래(자신)로 이어지는 기억의 연속성을 ‘거울’이라는 심상을 통해 감각화한다. 첫째 수에서는 부모에게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후회와 죄의식이 스며 있고, 두 번째 수에서는 지금 살아 있는 부모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다. 마지막 수에서는 미래의 자기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이는 회상의 감정이 단지 감상에 머물지 않고, 자기 응시와 존재 사유로 확장됨을 보여주는 사례다.
박무성의 시조는 회상이라는 감정이 지닌 구조적 복합성을 정형시의 틀 안에서 섬세하게 구현해낸다. 회상은 단선적이지 않다. 그것은 감정의 겹, 시간의 틈, 존재의 골짜기를 건너는 서정의 여행이다. 시조의 리듬은 그 여행의 발걸음을 조율하고, 형식은 감정을 가둬두기보다 천천히 퍼뜨리는 구조로 기능한다.
그래서 그의 회상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리움은 지금 여기에 있으며, 기억은 단지 지난 일이 아니라 오늘을 움직이는 감정의 근거다. 박무성은 시조라는 형식을 빌려 그 근거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그리고 그 언어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우리 모두의 기억 저편을 두드린다. 이 점에서 그의 시조는 회상의 감정을 정형시의 미학으로 전환해낸 귀중한 성과로 남을 것이다.
6. 삶과 죽음, 존재에 대한 물음
시란 삶의 지층을 따라 내려가는 언어의 채굴이다. 박무성의 시조는 그 지층의 가장 어두운 심연까지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내려가며 존재의 실존을 더듬는다. 그는 시조라는 정형의 그릇에 삶과 죽음, 시간과 초월의 문제를 담되,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시선은 끝내 침묵의 무게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침묵은 언어가 도달하는 마지막 형식이 된다.
그 대표적 예가 「푸른 천년」의 첫째 수이다.
천년은 푸르리다, 벼랑 위 작은 노송
선학이 날아들어 새하얀 꽃이 되니
저 세월
한눈팔다가
가는 길을 잃었다네
-「푸른 천년」 3수 중 첫째 수
이 시조는 시작부터 ‘천년’과 ‘푸르리다’라는 역설적 이미지로 시간과 생명에 대한 사유를 열어젖힌다. 벼랑이라는 한계의 공간 위에 선 ‘작은 노송’은 생의 고독한 자립성을 상징하고, 그 위에 날아든 ‘선학’은 인간 존재를 넘는 초월적 기운을 암시한다. 그러나 종장에서 그 시선은 다시 현실로, ‘한눈팔다가 / 가는 길을 잃었다’라는 고백으로 회귀한다. 이는 시간과 존재 사이의 간극, 생의 찬란함과 그 소멸 사이의 회한을 절제된 언어로 압축한 구절이다.
또 다른 시조 「소쩍새」는 죽음과 부재, 그리고 존재의 감각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응시한다.
소쩍새
소리 높여
울어대는 구슬픈 밤
산 그림자 길어지고
저 하늘 무심하네
마음도
찬 기운에
조용히 젖어드네
-「소쩍새」 전문
이 시조는 고전 시가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소쩍새’를 전면에 내세우며, 밤이라는 정서적 시간대 안에서 고독과 상실의 정념을 자연의 형상으로 형상화한다. 초장의 반복과 고저장단은 리듬의 긴장을 만들고, 중장의 ‘산 그림자’와 ‘무심한 하늘’은 인간 감정과 자연의 간극을 은근히 암시한다. 종장의 ‘조용히 젖어드네’라는 절제의 미학 속에서 감정이 천천히 사위어감을 보여준다. 박무성은 이처럼 죽음을 노래하지 않고, 죽음의 기척을 조용히 감지하는 시적 태도를 유지한다.
두 작품은 모두 존재의 시간성과 그 끝에 대한 자각을 중심에 둔다. 그러나 박무성은 결코 비탄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조용히 묻고, 사유하며, 결국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시를 정리한다. 이 절제는 시조라는 형식과 절묘하게 조응한다. 3장 6구의 구조는 감정의 정점을 지양하고, 감정의 구조를 정돈하게 하며, 그 속에서 삶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의 시조는 결국 ‘말의 미학’을 넘어선 ‘침묵의 미학’이다. 죽음을 직면한 시인은 침묵으로 말하고, 그 침묵은 독자의 내면에서 울림이 된다. 이것이 박무성 시조의 존재론적 깊이이며, 우리가 그의 시조를 읽으며 비로소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박무성의 시조는 죽음을 노래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생생하게 생을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은 오늘도 우리 마음 한 켠을 조용히 두드린다.
7. 맺으며
시인은 말보다 침묵을 더 오래 지니는 존재다. 그 침묵을 언어로, 그리도 정갈한 형식 안에 담아내려는 고투 속에서 시조는 생명력을 얻는다. 박무성의 『저 푸른 바람 소리』는 바로 그 침묵의 언어를 정직하게 품어낸 시조집이다. 그는 시조라는 정형의 언어를 빌려, 자신의 감정과 기억, 존재와 풍경을 묵묵히 쌓아 올렸다. 마치 오래된 나이테가 그 해의 날씨와 시간, 숨결을 그대로 새기듯이.
이 시조집에서 우리는 유년의 향기와 자연의 빛깔, 인간적 고뇌와 정서의 떨림을 동시에 읽는다. 박무성은 감정의 깊이를 얕게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자연 속에서, 사랑 속에서, 기억의 굴곡 속에서 천천히 감정을 증류해낸다. 그래서 그의 시조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진실을 뚜렷하게 비춘다. 그리고 그 감정은 독자의 심연에 천천히 스며든다. 한 번의 낭독으로 남는 여운이 아니라, 며칠을 두고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감정의 결이다.
『저 푸른 바람 소리』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길을 찾은 시조다. 박무성은 고전적 미의식에 충실하면서도, 그 안에 현대적 삶의 감수성과 주제를 유려하게 끌어들인다. 삶의 사소한 장면들, 즉 노을이 내리는 강, 눈이 덮인 지붕, 바람이 스치는 담벼락을 통해 그는 인간 존재의 심연을 사유한다. 이러한 시선은 단지 감상을 끌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성찰’의 자리로 이끈다.
박무성은 시조의 음률적 구조와 상징의 언어를 통해 깊은 내면 풍경을 보여준다. 그가 노래하는 ‘사랑’, ‘기억’, ‘그리움’, ‘삶과 죽음’의 주제들은 전혀 무겁지 않으나, 오래도록 머문다. 그것은 형식의 힘이자, 언어의 절제에서 비롯된 감정의 정직함 때문이다. 그의 시조는 짧은 형식 안에서 말보다 많은 것을 건넨다. 이때 시조는 설명이 아니라 체험이 되고, 언어는 사유의 도구가 아니라 정서의 발화가 된다.
이러한 성취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박무성은 시조의 고유한 형식미를 깊이 이해하고, 그 위에 자신만의 언어와 감정을 오롯이 얹는 데 성공했다. 전통이라는 ‘틀’을 억압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 틀 안에서 새로운 감정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마치 좁은 정원 안에서 한 그루의 소나무가 푸르게 우거지는 풍경과 닮았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생의 절정을 피워낸 시인의 시심이, 이 시조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저 푸른 바람 소리』는 단지 한 권의 시조집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이 살아낸 생애의 단면이며, 동시에 독자가 겪어낸 삶의 에코다. 이 시조집은 독자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가만히 곁에 앉아, 마음속 바람을 함께 느끼게 한다. 그것이 바로 박무성 시조의 따뜻함이며, 그의 문학이 지닌 조용한 울림이다.
향후 시조 시단에서 박무성의 이와 같은 시적 기조는 하나의 중요한 지향점이 될 수 있다. 전통의 계승에 그치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감각과 정서를 덧입히는 작업. 그것이 시조를 단순한 형식 문학이 아닌 살아있는 정서의 형식으로 되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박무성은 그 길을 지금도 묵묵히 걷고 있다. 『저 푸른 바람 소리』는 그러한 발걸음의 흔적이자, 시조 시단에 남긴 조용한 성취의 기록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무성
아호 목야(木野). 박무성 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종합문예지 『시와 창작』과 『계간 시조』를 통해 등단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협회, 한국문화예술저작권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인연의 향기』, 『달빛 속에 피는 꽃』 등의 시집을 펴낸 바 있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푸른 천년
소망
강
밤바다
향수鄕愁
푸른 천년
상감청자
행복을 줍는 사람
세월
단풍 교향곡
얼굴
노을 화가
대나무
임하호에서
여백의 미학
간고등어의 변론
동백꽃
산중일락山中逸樂
녹색지대(그린벨트)
소금
판소리
제2부 백설 축제
산촌의 아침
벚꽃 지다
어머니 별당
홍매화
그네뛰기
달
능소화
나비
천상의 사랑
어미 새
사랑 무상
메밀묵
만년 청춘
몸살 난 지구
봄날의 호수
담쟁이
그러다, 그러다가
안동 월영교
낙락장송
제3부 물레방아
빈손
겨울 갈대
모정의 그림자
복사꽃
청보리밭
노송의 세월
물레방아
풍경소리
첫눈
어중간 인생
능수버들
늦바람
실개천
죽향竹香
김장 날
철마의 탄식
바다의 호소
잡초
석양 길에서
호수에 잠든 전설
제4부 초록의 날
파도
눈먼 사랑
백목련
초록의 날
설중매
가을비
산촌의 봄
눈사람
산수유
장맛비
자비의 도량
신혼新婚
억새
미혼未婚
소쩍새
미루나무
무인도
임진강
마스크 시대
민들레
제5부 바람의 향기
초승달
인동초
봄 아가씨
낙일落日
밤 버들
옹이
진달래
은행나무
새참
접시꽃
삶의 진실
바람의 향기
탈놀이
만추의 고향 집
코스모스
묵죽화墨竹畵
추억의 간이역
둘만의 외식
말하는 거울
새벽 산경山景
제6부 달빛 속에 피는 꽃
만족
정情
호미
그림의 떡畵中之餠
할미꽃
회춘回春
낙엽 연서
시선 교정
달빛 속에 피는 꽃
물망초 사랑
그리움
조급증
뜬소문
그루터기
마당놀이
한복의 멋
이끼
아버지와 막걸리
헛바람
가로수 아래
제7부 유랑자
피에로
수양修養의 빛
유랑자
낙화
팽이
밤비
오월의 여인
갇힌 꽃
눈도장
물길
물결벽화
가랑잎 소리
부엉이
오솔길
이별 애상
김치
까만 봄날
마음
늙은 의자
허수아비
■해설: 말 없는 실존의 풍경__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