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기완 시인의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는 시인의 정신성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첫 시집은 시인의 시적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첫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는 김기완 시인의 시의 향방을 보여준다. 그의 정신성이 바라보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많은 시인들의 첫 시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유년의 삶과 가족사를 통해 지난한 삶과 순수했던 시인들을 반추함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생의 서사와 주변의 에피소드에 깃든 슬픔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사색들이 이번 시집의 주요 질문이다. 또한 그의 시가 지향하는 한편에는 자연을 시인의 사색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성을 노래하거나 완전한 존재로서의 표본으로 삼은 자연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키고 있다. 김기완 시인의 또다른 시적 관심사는 중심으로부터 이탈되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며 따스한 눈길로 살피는 이른바 휴머니즘 구현의 시학을 보여주고 있다.슬픔은 힘이다영산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고향의 탯자리와 함께 해왔던늙은 소나무를 그악스런 칡넝쿨이 감고 있다솔향기 솔바람 다 내어준 수호신이었던 그대의 몸을숨도 쉬지 못하게 옥죄는 압박으로 인해세상과 작별하고야 마는 날이 왔음에도원망하지 않는 의연한 모습이 아리게 한다그대가 쓰러진 고갯길에 진눈깨비 흩날릴 때그대를 기억하는 뭇 생명들은어미 잃은 아이처럼 황량한 들녘을 헤맬 터여름 폭풍우 장대비 몰아치면숲은 발가벗겨진 벌건 알몸으로 드러나어둠에 삼켜지는 그대의 사리를 보고 말 것이다결국, 나는 흩어지는 상흔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안타까이 일렁이는 가슴 안고처연히 잠겨드는 영산강 노을 너머로 걸어가리라슬픔이 켜켜이 쌓인 아리랑 고갯길고난이 스스로 힘이 되는 고개를 넘는다솔씨 같은 슬픔의 힘을 깨달으면서.
나그네깊은 산속 적적한 숨결이 스며든숲의 정기로 길을 간다솔가지 사이로 지나는 솔바람 안고서산 아래에 건네주고자 길을 재촉한다세속의 인연을 만나면 전해 주려는데사람들은 서로 뒤엉킨 채어깃장 속에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린다어지러운 소음에 시달리는 뭇 생명은순한 염소처럼 울면서 지쳐가고 만다만약, 자신의 목소리만 내며 틈이 갈라진다면모두가 무너지는 통곡을 듣고 말 것이다노을에 잠기는 오솔길을 걷는 나그네는허허롭기 그지없는 세상사 뒤로한 채,홀로 옅은 미소 지으며 길을 간다.
슬픔을 헤아리며밤하늘에 수놓아진 은하수 윤슬이유성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군다먹구름 아래 바람이 소용돌이치고달도 숨은 적막한 길에서 한 나그네가탐욕에 몸부림치는 세상 꼴을 보고 말았음이라하늘, 삼천대천세계가 내려다보는 것도 모른 채,어찌하여 손아귀를 쥐려고만 하는가어두운 세상 속 유희를 찾는 너희는타인의 슬픔은 알 수 없다고 하겠으나별의 눈길은 피할 수 없음이라실존의 슬픔이 쌓이다 보면 서로 힘이 되어고난을 이겨내리란 걸, 모른다 하려는가?슬픔을 직시하는 하늘, 인간이 알기엔 미약하기에오늘도 부질없이 파도치는 가난한 마음의 나,가만히 내려놓고 무심코 두고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