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기완 시인의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는 시인의 정신성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첫 시집은 시인의 시적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첫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는 김기완 시인의 시의 향방을 보여준다. 그의 정신성이 바라보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많은 시인들의 첫 시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유년의 삶과 가족사를 통해 지난한 삶과 순수했던 시인들을 반추함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생의 서사와 주변의 에피소드에 깃든 슬픔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사색들이 이번 시집의 주요 질문이다. 또한 그의 시가 지향하는 한편에는 자연을 시인의 사색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성을 노래하거나 완전한 존재로서의 표본으로 삼은 자연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키고 있다. 김기완 시인의 또다른 시적 관심사는 중심으로부터 이탈되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며 따스한 눈길로 살피는 이른바 휴머니즘 구현의 시학을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리뷰
김기완 시인의 맑고 향기로운 시심(詩心)의 시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금언이 하나 있다.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는 비린내가 난다는 금언이 그것이다. 또한 김 시인의 시에는 실존(實存)의 슬픔과 외로움이 풀잎 끝에서 반짝이는 이슬처럼 맺혀 있는 것 같고, 영산강의 노을로 핏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김 시인은 실존의 슬픔과 외로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다. 슬플 때는 슬픔 속으로, 외로울 때는 외로움 속으로 더 들어가 그것들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 중 하나인 한(恨)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의 한은 꺾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김 시인이 ‘슬픔을 헤아리며’라고 사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김 시인의 시들은 우리 모두에게 보배의 숲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정찬주(소설가)
김기완 시인의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의 정신성이 바라보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많은 시인들의 첫 시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유년의 삶과 가족사를 통해 지난한 삶과 순수했던 시인들을 반추함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생의 서사와 주변의 에피소드에 깃든 슬픔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사색들이 이번 시집의 주요 질문이다. 또한 그의 시가 지향하는 한편에는 자연을 시인의 사색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성을 노래하거나 완전한 존재로서의 표본으로 삼은 자연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키고 있다. 김기완 시인의 또다른 시적 관심사는 중심으로부터 이탈되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며 따스한 눈길로 살피는 이른바 휴머니즘 구현의 시학을 보여주고 있다.
- 강경호(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 작품론
슬픔을 건너는 방식과 자연과의 교감방식
- 김기완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
강경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서정시는 시인의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현한다. 그러므로 시인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시는 말하는 방식의 새로움으로 언어를 직조하기 때문에 형식 또한 새로워야 한다. 그런 까닭에 시를 언어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언어를 통해 형상화시키는 것이 시이기 때문에 정신성과 언어가 조화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김기완 시인의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는 시인의 정신성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첫 시집은 시인의 시적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첫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는 김기완 시인의 시의 향방을 보여준다. 그의 정신성이 바라보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많은 시인들의 첫 시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유년의 삶과 가족사를 통해 지난한 삶과 순수했던 시인들을 반추함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생의 서사와 주변의 에피소드에 깃든 슬픔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사색들이 이번 시집의 주요 질문이다. 또한 그의 시가 지향하는 한편에는 자연을 시인의 사색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성을 노래하거나 완전한 존재로서의 표본으로 삼은 자연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키고 있다. 김기완 시인의 또다른 시적 관심사는 중심으로부터 이탈되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며 따스한 눈길로 살피는 이른바 휴머니즘 구현의 시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김기완 시인의 『슬픔을 헤아리며』는 시인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해 있는 슬픔을 극복하고 자연을 거울삼아 보다 나은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드러내어 그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 대답을 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김기완 시인의 정신적 지향을 극명하게 형상화시킨 이번 시집은 앞으로 그의 시세계를 이끌어가는 에너지가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휴머니즘 구현을 통해 유토피아에 이르고자 하는 과정을 위한 출발이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
앞에서 밝혔듯이 첫 시집에서는 대부분의 시인이 가족사를 통해 자신의 유년과 가족사를 형상화시킨다. 이것으로 볼 때 가족사는 시의 출발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 간 함께 했던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시인의 마음속에서 중심 심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혈연으로 맺어지고 함께 삶을 보냈기에 정서적 공동체로 많은 시적 자양분이 된 까닭이다. 김기완 시인의 가족애를 보여주는 작품은 시인 자신이 처음 가족을 떠나 살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10대에서 출발한다.
엄마는 기다림이 몸에 밴 걸까?
광주의 기숙사시절 중학교 2학년 때쯤
가끔 집에 오는 막둥이를 위했던지
비좁은 마당에다가 한 뼘 화단을 일구셨다
봉선화가 흐린 내 눈을 맑혀주고
땅꼬마 채송화가 내 가슴을 환하게 해주며
덜익은 참외는 대파 옆에 숨어 있었다
여름 한 철, 불같이 햇볕 따가웠을 때
주말 휴가를 얻어 영산강가 집에 들어서자
엄마가 마당 두어 걸음 가볍게 가시더니
화단에서 주먹만한 참외를 하나 따 오시며
훌쩍 자란 막둥이가 무척 장한 모양이다
“얼릉 묵어라, 우린 다 묵었응께” 라며
참외를 깎아주시면서 내 얼굴을 보신다
엄마는 그렇게 나를 보고 또 보셨다.
- 「엄마」 전문
고향인 나주를 떠나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닌 시적 화자는 학교기숙사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날마다 집에 가지 못하고 가끔씩 집에 다녀가곤 했다. 막내를 객지에 보내놓고 엄마는 아들을 기다리곤 하였다. 어머니는 “가끔 집에 오는 막둥이를 위했던지/비좁은 마당에다가 한 뼘 화단을 일구셨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시적 화자인 막둥이는 꽃을 좋아했나보다. 화단을 일구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 꽃을 보며 시적 화자는 “봉선화가 흐린 내 눈을 맑혀주고/땅꼬마 채송화가 내 가슴을 환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주말 휴가를 얻어 집에 가면 엄마는 “화단에서 주먹만한 참외를 하나 따 오시며” “얼릉 묵어라, 우린 다 묵었응께” 하시며 훌쩍 자란 아들을 기특하게 바라보시곤 하였다.
인간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간다. 유년기, 또는 소년기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의 인상 깊은 서사는 잊혀지지 않으며 시시때때로 기억을 되살려 즐거운 에너지로 활용된다. 바로 이 지점에 ‘서정’의 힘이 있다. 서정抒情은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환기시키는 작용을 한다. 서정을 다르게 말하면 ‘좋은 감정’을 뜻한다. 시적 화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학교 다니던 시절의 따스한 모정을 가슴에 품고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을 통해 가슴이 훈훈해지고 삶이 어려울 때 보다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김기완 시인의 시편들에서는 중학교 시절과 어머니라는 시적 대상이 자주 출현한다. 「나는 무엇일까?」는 부제로 ‘체육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가 붙여져 있다.
중학생 때, 새벽길을 타닥타닥 달릴 때면
옆에 다가온 조무래기 시절도 나와 함께 달렸다
턱밑까지 헐떡헐떡 숨차던 달음박질
멈추고 싶은 유혹이 가득 채워질 즈음,
떠오르는 가난한 어머니 모습
이내 그마저도 헐떡이는 숨 가쁨으로
길가에 흩어져 버렸다
달음박질의 끝은 보이질 않고,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던 일상의 안개
모두 함께 헉헉대던 순간에 혼자라 느낀 건
나는 무엇이고 누구인가란 상념 때문이었다
결국, 평범함이 아름답고 행복할 거라는
순간순간 떠올랐던 힘든 중학생 시절
이제, 그 또한 지나버린 지 오래되었다.
- 「나는 무엇일까?」 전문
서정시에서 공간성은 특별한 감각을 지닌다. 이 작품에서 물리적인 시간 개념인 중학교 시절은 체육중학교라는 특수한 시공간이 전제된다. 짐작하건데 체력단련을 위해 열심히 달리기를 할 때면 “턱밑까지 헐떡헐떡 숨차던 달음박질”을 “멈추고 싶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는 일은 자신의 꿈을 놓아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순간 가난하게 살아가면서도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떠올리면 달음박질을 멈추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게 하였으니 어머니의 위대함과 어머니를 생각하는 어린 중학생의 마음이 아름답다. 중학생이라면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던 일상의 안개” 즉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야겠다는 의지가 꺾일 때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갖는 위대함이 시적 화자에게 희망의 메시지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즉 ‘중학생’ ‘어머니’ 그리고 그것들의 배경인 ‘가난’이라는 공간성이 시적 화자를 성장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말해 아직 중학생이라는 어린 시절의 공간성과 아들의 미래를 위해 온갖 궂은 현실을 극복하려 하는 ‘어머니’라는 신분의 공간성, 그리고 가난한 집안이라는 공간성이 서로 부딪치거나 서로 동화되면서 체육중학교 학생인 시적 화자에게 “나는 무엇이고 누구인가란” 무거운 상념에 빠지게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려운 시절이 지난 수십 년 후 시적 화자는 중학생 때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회의들이 마침내 자신을 성장시켰고 오늘의 자신을 키웠음을 회상하게 한다.
이밖에 어머니를 시적 주제나 제재로 삼은 작품으로는 「어머니의 등」, 「어머니의 달빛」 등이 있다. 이처럼 시인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보인 시편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시적 화자에게 특별한 존재였음을 상기시킨다.
「어머니의 등」은 세월이 많이 흐른 후 가족을 위해 헌신한 구부러진 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밭일, 집안 일 때문에 쪼그려 앉아있기만 하여 노년에 등이 굽은 것을 시적 화자가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시선에는 연민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어머니의 달빛」에서는 시적 정황으로 보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들이 사는 아파트를 보름달 달빛으로 나타나 엿보시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저 보름달이 비추는 것이지만 시적 화자는 “늦은 밤, 잘 쉬고 있을까 지켜려보려는/간절한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애틋함이 달빛조차 어머니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어 온기가 느껴진다.
아버지를 형상화시킨 작품들도 눈에 띈다. 「엄동설한에 피는 정」과 「아버지의 병실」이 그것들이다. 「엄동설한에 피는 정」은 유년의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병실」은 노년의 아버지이다.
「엄동설한에 피는 정」은 가난한 시절인 유년이 시적 공간이다. 일하러 객지에 간 아버지일까?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어 집을 떠난 아버지가 돌아오시려는지 마을 입구 삼거리를 시적 화자는 주시한다. 그때 가방을 든 어른이 나타나자 가슴이 뛴다. 가방을 든 어른이 아버지인지 작품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울 아부진가?” “마음은 벌써 그곳으로 달려가 버렸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시적 화자의 마음에서 훈훈한 가족애가 넘치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병실」은 시인의 실제 아버지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시적 화자의 인식 태도가 드러나 보이는 작품이다. 허리와 다리에 핀을 박은 아버지를 간호하는 시적 화자는 사흘째 잠들지 못하다가 병실 보호자 침상에서 잠이 든다. 파도치는 바다로 비유되는 세상을 견딘 위태로운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는 시적 화자는 “이승과 저승이 머무는 병실 공간에서/신음마저도 삼켜내며 견디고 있”는 아버지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모습에서 삶의 본질을 묘파하고 있다.
살펴보았듯이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시인의 가족애, 또는 애틋한 마음이 안타깝지만 삶의 에너지가 되고 있음을 잘 형상화시켰다.
3.
김기환 시인의 시편에서 쉽게 만나는 슬픔의 정서는 겉으로는 정신적 고통의 표지로 나타난다. 눈물, 고난, 가난, 눈시울, 작별, 어둠, 상흔, 한, 피눈물, 애환 등의 시어 구사가 말해주듯 고통스러운 감정들로 점철된다. 이렇듯 인간의 삶에서 슬픔의 정서는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하고 있다. 그러므로 존재의 실존 과정을 ‘생로병사’라고 한 것이리라.
그러나 슬픔의 정서는 인간의 삶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슬프다고 마냥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바탕으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기 때문이다. 김기완의 시편들에서 슬픔은 곧 에너지가 되어 자신을 이끄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밤하늘에 수놓아진 은하수 윤슬이
유성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군다
먹구름 아래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달도 숨은 적막한 길에서 한 나그네가
탐욕에 몸부림치는 세상 꼴을 보고 말았음이라
하늘, 삼천대천세계가 내려다보는 것도 모른 채,
어찌하여 손아귀를 쥐려고만 하는가
어두운 세상 속 유희를 찾는 너희는
타인의 슬픔은 알 수 없다고 하겠으나
별의 눈길은 피할 수 없음이라
실존의 슬픔이 쌓이다 보면 서로 힘이 되어
고난을 이겨내리란 걸, 모른다 하려는가?
슬픔을 직시하는 하늘, 인간이 알기엔 미약하기에
오늘도 부질없이 파도치는 가난한 마음의 나,
가만히 내려놓고 무심코 두고 보리라.
- 「슬픔을 헤아리며」 전문
이 작품에서 ‘나그네’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찰자이다. 나그네는 ‘먹구름’ ‘소용돌이바람’ ‘달도 숨은 적막한 길’ ‘탐욕에 몸부림치는 세상’ ‘어두운 세상 유희를 찾는’ ‘타인의 슬픔을 모르는’ 이러한 인간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나그네가 바라보는 세계는 탐욕으로 가득찼고, 세상을 손아귀에 쥐려고 하는 자들이 살고 있는 어두운 세상이다. 그러므로 “밤하늘에 수놓아진 은하수 윤슬이/유성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일게다. 이 작품에서 ‘은하수’와 ‘먹구름 낀 세상’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흔히 대중적 상징으로써 ‘천상’과 ‘지상’은 선계仙界와 인간세계로 나눈다. 선계인 하늘나라는 천국이며 지상은 세속적인 세계로 인간의 한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존재로 슬픈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늘, 삼천대천세계가 내려다보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시적 화자는 인식한다. 이는 불교적 관념에서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협소한 인간의 세계관을 시적 화자는 말하고 있다. 하늘이라는 넓은 세계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슬픔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알고 있는 나그네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을 직시하는 하늘, 인간이 알기엔 미약하기에/오늘도 부질없이 파도치는 가난한 마음의 나”라고 시적 화자는 성찰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위의 작품은 미약하고 아둔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관념을 시인의 시선으로 풀어헤치고 있다. 이에 반해 다음 작품 「슬픔은 힘이다」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의 슬픔을 묘파하고 있다.
영산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고향의 탯자리와 함께 해왔던
늙은 소나무를 그악스런 칡넝쿨이 감고 있다
솔향기 솔바람 다 내어준 수호신이었던 그대의 몸을
숨도 쉬지 못하게 옥죄는 압박으로 인해
세상과 작별하고야 마는 날이 왔음에도
원망하지 않는 의연한 모습이 아리게 한다
그대가 쓰러진 고갯길에 진눈깨비 흩날릴 때
그대를 기억하는 뭇 생명들은
어미 잃은 아이처럼 황량한 들녘을 헤맬 터
여름 폭풍우 장대비 몰아치면
숲은 발가벗겨진 벌건 알몸으로 드러나
어둠에 삼켜지는 그대의 사리를 보고 말 것이다
결국, 나는 흩어지는 상흔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이 일렁이는 가슴 안고
처연히 잠겨드는 영산강 노을 너머로 걸어가리라
슬픔이 켜켜이 쌓인 아리랑 고갯길
고난이 스스로 힘이 되는 고개를 넘는다
솔씨 같은 슬픔의 힘을 깨달으면서.
- 「슬픔은 힘이다」 전문
시적 화자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고향 고갯길에 서 있는 늙은 소나무를 바라본다. 늙은 소나무는 오래 고향을 지켜보며 살아왔을 것인데, “그악스런 칡넝쿨이 감고 있”어 죽어가고 있다. 그동안 늙은 소나무는 “솔향기 솔바람 다 내어준 수호신”이었지만 죽음에 이르렀어도 “원망하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지닌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적 화자는 슬프다. 이제 늙은 소나무가 쓰러지고 고갯길에 진눈깨비 흩날리게 되면, 비바람과 눈보라를 지켜주던 늙은 소나무의 부재에 어린 생명들은 “어미 잃은 아이처럼 황량한 들녘을 헤맬” 것이기 때문이다. “폭풍우 장대비 몰아치면/숲은 발가벗겨진 벌건 알몸으로 드러나”고 말 것이고 그럴 때면 늙은 소나무의 부재가 절실하게 실감날 것이다. 이때쯤 시적 화자는 “흩어지는 상흔을 바라볼” 것이어서 “안타까이 일렁이는 가슴 안고” “처연히 잠겨 드는 영산강 노을 너머로 걸어가”겠다고 한다. 이러한 심정은 슬픔의 정서에 젖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시적 화자는 늙은 소나무가 있었던 고갯길을 “슬픔이 켜켜이 쌓인 아리랑 고갯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슬픔을 눈물짓지 않는다. “고난이 스스로 힘이 되는 고개를 넘는다”고 한다. 그것은 늙은 소나무가 남긴 솔씨가 틔어내는 생명력이 알몸의 숲을 늙은 소나무의 무성함 같은 생명력이 넘치는 숲으로 푸르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까닭이다.
이 작품은 늙은 소나무의 죽음이 그저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과 생명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노래하고 있다. 죽음이 다시 생명으로 부활하는 순환의 원리로 자연의 섭리를 파악하고 있다는 데에 이 작품이 가진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슬픔을 극복기제로 하여 시로 형상화시킨 작품 중 「연탄난로처럼」에서는 겨울 사무실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난로의 온기를 통해 몸이 따스해진 시적 화자의 뜨거운 마음을 그리고 있다. 난로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져 “내 가슴속 꿈 또한 타오르고/서로에게 따스한 눈빛 나눌 날을 꿈꾼다”며, 난로의 온기로 비롯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로 전이시키는 발상과 상상력이 예사롭지 않다. ‘냉기’를 ‘시련’ 또는 ‘슬픔’으로 의미화시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의지 또한 돋보인다.
「노을 속의 나」에서는 영산강의 저녁 무렵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철새들이 떼지어 둥지를 찾아 날아가는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가 대비를 이룬다. 즉 철새 떼와 혼자인 시적 화자의 간극에서 슬픔이 일어난다. 그 슬픔을 떨치고자 철새 떼와 함께 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슬픔의 동기가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단독자 인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오두막」에서의 시적 대상인 ‘나그네’의 슬픔은 아무도 없는 고향집에 찾은 회한이 묻어 있다. 대나무 납작, 키 낮은 돌담, 툇마루. 장독대 감나무, 햇살 밟히는 마당, 물동이 등은 나그네에게는 매우 낯익은 것이어서 더욱 슬프다. ‘외딴집 오두막’의 쓸쓸하고 고적한 풍경과 오랜만에 옛집을 찾은 나그네의 심사에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슬픔의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능소화」는 역사적 서사에서 슬픔의 정서를 이끌고 있는 작품이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함으로서 백성들이 겪은 치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켰다. 청나라로 끌려가 몸을 더럽힌 환향녀의 슬픔은 유교적 관념이 지배하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신분적 슬픔이 깃들어 있다. 여성들은 일부종사를 강요받고 강제적이지만 몸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고향의 부모 곁에 머물지 못하고 평생 죄인으로 사회적 규범이라는 감옥에서 살아가야 하는 슬픈 존재이다. 멀쩡하지만 뚝뚝 떨어지고 마는 능소화꽃의 이미지를 환향녀의 이미지에 오버랩시켜 슬픔의 정서를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4.
서정시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연속이어서 끊임없이 세계와 자아의 싸움이 계속된다. 이러한 법칙이 인간의 발전은 이루어져 왔는데, 시인은 시의 형식을 빌어 자신만의 방어기제로 대항하며 질문과 대답을 구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절망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왔다. 희망을 향한 도전은 자신 내면에서 발생할 수 있고, 우리 사회 외부로부터 비롯되기도 하는데 이는 시인의 실존적 방법론을 어떤 형식으로든 발현하기 마련이다. 도전에 대한 응전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의 관찰자 역할을 하는데, 삶은 늘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어서 자신과 치열한 갈등구조를 풀어가면서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다. 더불어 시인 자신의 주변에서 만나는 도전, 즉 절망적인 상황을 주시하며, 때로는 연민과 사랑으로 시적 대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공동체의 건강함을 위해 실천적인 시쓰기를 하기도 한다.
다음의 「어떤 사내」는 일상에서 우연히 만나 어떤 사내의 절망, 또는 슬픔을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다.
좁다란 언덕길 골목 맨 끝에
허름한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다
문은 오래되어 삐그덕대는 소리 요란하고
부엌 딸린 단칸방 하나가 서글퍼 보인다
노을이 마루를 감아 돌며 주홍빛 색칠할 때
한 사내가 붉게 물든 마루에 웅크려 누워 있다
머리 위쪽 가방은 옆으로 쓰러져 있고
뒷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지갑은
혼이 나가버린 것처럼
멀거니 입을 벌린 채 널부러져 있다
왼 양말 엄지발가락은 햇볕 좇아 기웃거리고
오른 양말 뒤꿈치는 굳은살이 내밀었다
고개 오르기 전, 탁주 한잔 마셨을까
헝클어진 머리로 쓰러져선 어깨만 가끔 들썩인다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새 직장을 구하지 못했을까.
- 「어떤 사내」 전문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절들을 살펴보면, ‘골목 맨 끝의 허름한 집 한 채’, ‘오래 된 문이 삐그덕 대는 소리’, ‘서글퍼 보이는 부엌 딸린 집 한 채’, ‘마루에 웅크려 누운 사내’, ‘쓰러진 가방’, ‘뒷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지갑’, ‘양말 밖으로 나온 엄지발가락’, ‘오른 양말 뒤꿈치에 보이는 굳은 살’, ‘헝크러진 머리’ 등이 누추한 집 마루에 쓰러져 있는 사내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여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내는 시적 화자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다. 시적 화자는 외딴 집 부근을 지나다가 마루에 누운 사내를 바라보고 있음인데, 우연히’, ‘지나다가’ 마루에 쓰러져 있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1인칭 시점으로 눈에 띄는 모습만 형상화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집안 내부와 사내의 사정을 알 수가 없다. 시적 화자가 앞에서 열거한 정황으로 보아 “탁주 한 잔 마셨을까”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새 직장을 구하지 못했을까.”라고 가늠해 볼 수밖에 없다. 사내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어떤 절망과 슬픔이 사내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머리 위쪽 가방”은 사내의 신분을 나름대로 짐작하게 한다. 물론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내의 직업을 말해주는 연장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 특히 “혼이 나가버린 것처럼/멀거니 입을 벌린 채 널부러져 있”는 것에서 그 사내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이 작품은 시적 화자가 좁다란 언덕길 골목을 지나다가 우연히 바라보게 된 풍경이지만, 그것들을 통해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소외된 사람의 절망과 슬픔, 그리고 연민의 정서를 전하고 있다.
「아버지 도시락」은 한 노동자의 삶을 통해 그가 처한 어려운 생활환경을 시적 화자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점심 무렵, 창고 안에서
한 사내가 짐을 정리하고 있다
창고 문 앞, 늦가을 찬비 속에 서 있는
트럭을 보던 사내는 어깨를 툭툭 털며
양은 사각도시락을 꺼내어
식은 뚜껑을 연다
쌀알보단 보리알이 더 많은 도시락에
대각으로 누워있는 젓가락을 집어
찬밥 한 덩이를 입에 넣고
총각무 한 쪽을 베어 문다
그는 화물 트럭에 있던 짐을 내리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 짐을 올리는
정기화물 회사에서 일을 하기에
식솔들은 따뜻한 밥을 먹는다
도시락 찬밥을 한 젓가락, 한 젓가락 넣을 때마다
비를 맞는 화물차와 가족 얼굴이 번갈아 스친다
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이 달려 나오겠고,
온 가족이 저녁상에 둥그렇게 둘러앉겠지.
- 「아버지 도시락」 전문
화물 노동자의 일상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지적 시점인 3인칭 전개방식은 시적 화자가 시적 대상의 일상은 물론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적 대상을 용이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관찰자로서 사내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사내가 처한 상황과 내면을 들춰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버지’라는 보통명사가 함의하는 ‘가장’으로서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다. 즉, 늦가을 찬비 속에서 트럭을 바라보던 사내는 점심을 집이나 식당에서 따뜻하게 먹지 못하고 차디찬 양은 도시락 속의 밥을 먹는다. 사내는 정기화물 회사에서 트럭에 짐을 내리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는 노동자이다. 몸이 무기이고 재산인 사내는 가족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기 위해 가장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살아가는 일이 버거울 것이다. 가족을 위해 트럭에 올리고 내리는 짐의 무게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지만 “도시락 찬밥을 한 젓가락, 한 젓가락 넣을 때마다/비를 맞는 화물차와 가족 얼굴이 번갈아 스”치지만 그것이 힘이 되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할 것이다. 그래서 “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이 달려 나”올 것이고, “온 가족이 저녁상에 둥그렇게 둘러앉”을 것을 머리 속에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사내의 생각을 시적 화자는 들여다본다.
이 작품에서 ‘사내’와 ‘아버지’는 같은 존재이다. 노동자로서의 사내는 남성성을 나타내지만 보통명사 ‘아버지’는 객관화된 대상으로 가족을 위해 자신의 고통스러움을 인내하는 가장의 지위를 가진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시제를 ‘아버지 도시락’이라고 한 것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현재의 시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모색한 김기완 시인의 시편들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남루한 家長」에서는 텔레비전에서 고급요리를 먹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적 화자는 그럴 수 없는 자신을 생각한다. “자식들 과외비, 전셋집 보증금”을 위해서는 내핍생활을 해야 한다며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사내」 역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현재는 상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산중에서 살고 있는 가장의 안타까움을 아프게 형상화시켰다.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주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들의 시련과 현실을 고통스럽게 그려낸 것들로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잘 그려내었다.
이에 반해 다음의 작품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과 모순, 그리고 이를 타개하고자 하는 시인의 정신이 지향하는 방향성이 드러나 보인다. 이른바 사회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객체의 문제를 떠나 공동체의 과제를 다룬 것이다.
「추모」는 최근 교육현장 교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들에서 성찰과 집단 이성의 발현을 탐구하고 있다. “가슴 앓다가 젊디젊은 생을 놓아버리고 만” 서이초교, 호원초교 교사들을 폭력교사로 내몬 일그러진 일부 학부모들의 폭력성을 질타하고 있다.
「평온한 세상을 꿈꾸며」는 최근 온 국민을 절망과 불안의 도가니로 빠뜨린 정치지도자의 왜곡된 욕망과 광기에 저항하기 위해 광화문 등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의 불면이 지닌 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짧지만 선명하게 노래하고 있다.
5.
자연은 인간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절대적인 대상이다. 그것은 인간 역시 자연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문명을 발전시켜 먹이사슬 맨 위에서 정복자처럼 군림하지만 엄연한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거나 일탈할 수 없다. 오늘날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을 재화적 가치로 환산하여 무분별하게 개발한 결과 인간과 자연은 충돌하고 기후변화에 따라 전지구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폭염과 폭우·폭설이 나타나고 생명체들이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동양적 자연관은 자연친화적이어서 모두가 상생하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지향한다. 그런 까닭에 자연을 의인화시키고 숭배하며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 인식하였다. 이를테면 특정 생명체를 사군자라 하고, 특정 나무를 신목神木이라 하여 마을 수호신으로 여겼다. 이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아 자연을 인간보다 우월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였다. 특히 예술가들에게 자연은 늘 인간을 이끌고 가르치는 표지로 작용하였던 바 시·서·화를 통해 높은 경지의 인격을 지닌 대상으로 형상화하였다.
현대시에서도 자연은 교감의 대상으로 인간을 이끄는 여러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지상에 내려온 목련이
응달 속에서 날개를 겨우 펴니
여러 갈래 꽃잎으로 바람에 나부낀다
순결한 진실을 말하고자
추위와 어둠을 헤집고 찾아 왔건만
이제, 하늘로 돌아갈 때가 다가오고 있다
만약, 은하수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흰 새처럼 허공에 떠올라
꽃잎 하나 또 하나 대지에 내려놓으며
훌훌 날아갈 거야
쌓인 미련일랑 모두 떨쳐내고 가렴
지난 12월 초에 돋은 꽃눈 속에서
시린 겨울을 나와 함께 난 후,
눈부시게 부풀어 올랐던
피기 전 예뻤던 자취는 두고서 가려무나.
- 「목련」 전문
목련을 의인화하여 목련이 지닌 생태적 특징을 바탕으로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목련을 본래 하늘에서 지상으로 날아온 존재라고 한다. 꽃잎을 피우고 마침내 “여러 갈래 꽃잎으로 바람에 나부낀다”며 지는 목련꽃이 “이제, 하늘로 돌아갈 때가 다가”온다고 한다. 의인화법과 더불어 환타지적 상상력은 목련꽃이 “만약, 은하수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면/흰 새처럼 허공에 떠올라/꽃잎 하나 또 하나 대지에 내려놓으며/훌훌 날아갈” 거라고 한다. 목련이 피었다가 지는 모습을 이렇듯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활달하게 형상화시킴으로써 지금껏 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목련과는 사뭇 다른 미적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목련의 개화와 낙화를 “지난 12월 초에 돋은 꽃눈 속에서/시린 겨울을 나와 함께 난 후,/눈부시게 부풀어 올랐던” 아름다운 자취를 두고 가라고 함으로써 시적 화자가 목련과 교감을 시도한다. 즉 겨울이라는 시련의 시간을 견디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목련과 시적 화자의 동질성을 갖고자 한다.
「첼로」는 자연의 하나인 가문비나무가 첼로라는 악기로 태어남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남을 노래한 작품으로 죽음이 소멸이 아님을 표면하고 있다.
가문비나무는 오래전에 죽었는데
바람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 누웠다가
하늘의 생명으로 단풍나무와 어우러져
첼로는 새로이 태어났다
달빛을 품은 굵고 온화한 음으로
보듬어 안아 기쁨을 내어 주기 위함이리라
바짝 말라가던 나무가 볼로냐에서 새 생명을 얻어
은하수 별빛처럼 아련한 저음을
꿈에 안기듯 그대에게 전해 주련다
저음역의 자애로운 선율 되어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으로
꿈꾸는 영혼의 소리로 다시 태어났다
그대의 공허한 마음에 활기를 채워 넣는
새로운 심장 박동, 나지막이 전해 주고자
몸을 깎아내고 불에 달궈지는 고통을 이겨내었다
사랑의 울림을 내어놓고자 고통 속으로 몸을 던져
첼로로 다시 태어난 것이기에
그대 가슴에 단비가 되어 촉촉이 스며드리라.
- 「첼로」 전문
가문비나무, 혹은 첼로가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고통을 이겨낸 생명의 찬가라고 할 수 있다. “가문비나무는 오래전에 죽었”다. 이제 숲에서 썩어 흙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몸을 깎아내고 불에 달궈지는 고통을 이겨내”어 마침내 첼로로 새 생명을 얻는다. 첼로는 현악기이기는 하지만 그 몸통이 없으면 악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가문비나무는 첼로의 몸통이어서 가문비나무가 죽어 첼로가 되었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가문비나무가 숲에서 보았던 바람과 달빛, 그리고 햇빛이 첼로가 되어 온몸으로 내는 악기소리는 온화한 음으로, “은하수 별빛처럼 아련한 저음”이 되어 “꿈에 안기듯 그대에게 전해 주”려는 것이다. 본래 음역대가 낮은 소리를 내는 첼로는 “자애로운 선율 되어/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으로/꿈꾸는 영혼의 소리로 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숲의 일원이었던 가문비나무가 죽어 사라지지 않고 첼로가 되어 ‘그대’로 지칭되는 첼로의 선율을 듣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울림” “꿈꾸는 영혼의 소리” “공허한 마음에 활기를” “새로운 심장박동”으로 되살아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과정을 형상화시킨 시인의 상상력이 신적 존재의 영역처럼 신묘하다.
이밖에 자연을 시적 주제나 제재로 삼은 작품 중에 「가을날 아침」은 시적 대상인 바람을 에로티즘적인 감각을 형상화시켰다. 이 작품 속의 ‘바람’을 벌거숭이로 의인화함으로써 옷을 입지 않은 인격체화 시킨다. 벌거벗었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것이고, 부끄러운 몸을 감추기 위해 바람은 구름 속에 숨어버린다. 그런데 숨어든 곳이 “숫처녀 속치마 같은 솜털구름”여서 “처녀 구름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통해 성애性愛적인 감각을 그려낸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이 상상력이 이채롭고 흥미롭다.
「느티나무 묵언」은 가을 서리 내릴 무렵 이파리를 모두 떨군 나목이 된 느티나무에서 말없음을 통해 말을 듣는 시적 화자의 언어소통 방식이 진중하다. 느티나무가 10월이 되어 낙엽을 모두 내려놓은 것은 자연의 섭리겠지만, 시적 화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노라는 것이요/출발역이 있으면, 종착역이 있노라는 것”이라는 벌거벗은 느티나무가 하는 묵언을 듣는다. 실은 시적 화자가 느티나무를 통해 스스로 나목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지만 ‘느티나무의 묵언’이라고 하는 재치가 엿보인다.
「달빛을 낚다」는 조월산방이라는 지리산 산자락에서 낚시질로 달빛을 낚아 허공에 걸어두었다는 시인의 상상력이 빼어나다. 그 달빛이 가끔 내려와 시적 화자를 따스하게 감싸 안아준다고 함으로써 달빛과 인간이 어떻게 교감하고 스미는지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귀뚜라미」에서는 보름달이 뜬 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시적 화자를 위로한다. 그러자 시적 화자는 겨울을 지낼 귀뚜라미를 걱정한다.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교감을 매우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6.
김기완 시인의 첫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는 기저에 슬픔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시적 발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유소년기 궁핍한 가정환경에서 연유한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은 그 원천이 슬픔의 감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슬픔의 정서는 순기능적으로 작동하여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기제가 되어 ‘나는 무엇이고 누구인가’라는 자기정체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서정’은 힘을 갖게 된다.
‘슬픔의 정서’는 가족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운 인간 존재들의 아둔함으로 인해 우주적 시야를 갖지 못해 협소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에 대해 근원적인 슬픔을 느낀다. 이는 태생적인 인간의 한계이기는 하지만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성찰의 태도를 보임으로써 시적 에너지를 획득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특히 「슬픔은 힘이다」에서 늙은 소나무의 죽음으로 유한한 생명성에 대한 슬픔을 인식하지만 그러나 늙은 소나무의 죽음이 소멸로 이어지지 않고 또 다른 생명을 얻는다는 생명의 연속성을 발견함으로써 서정시가 추구하는 효용성을 보여준다.
이번 시집 한편에서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시인의 위무가 주목된다. 절망에 빠져 마루에 쓰러져 누운 사내의 모습, 혼자 식은 도시락을 먹는 화물회사 사내, 병이 깊어 가족과 떨어져 산중에서 사는 사내, 교육현장에서 젊은 생을 마감한 교사, 절망과 불안의식으로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을 시로 형상화시켜 사회의 모순과 그늘을 그려내었다. 이들 작품들은 보다 살기 좋은 세계,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시인의 정신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김기완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교감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연을 다채롭게 바라보는 시인의 빼어난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목련’이 꽃을 피우고 지는 것을 단순한 생명활동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겨울이라는 시련의 시간 끝에 꽃피운 것에 주목함으로써 이러한 과정이 인간의 삶 또한 이와 같음으로 시적 동질성을 발견하고 있다. 생태적 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한 「첼로」는 가문비나무가 죽어 사라지지 않고 첼로라는 악기로 새생명을 얻는 과정에서 생명성에 대한 깊은 천착은 김기완 시의 방향성을 가늠하게 하여 이번 시집이 얻은 뜻깊은 소출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가을날 아침」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바람’을 에로티즘적 관점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도 김기완 시인의 다채롭고 풍요로운 시세계를 점쳐볼 수 있게 하여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달빛을 낚아 허공에 걸어두었다고 말하는 「달빛을 낚다」는 달빛과 인간이 어떻게 교감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기완 시인의 시는 슬픔을 절망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극복하는 기제로 작동시키는 능력이 그의 시적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더불어 자연친화적인 시인의 태도가 탐욕에 젖은 인간의 욕망을 버렸을 때 비로소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에 시적 신뢰가 가는 것은 김기완 시인의 시집이 거둔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는 독자친화적인 언어 형식을 견지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시인의 노력이 깃들어 있어 난삽하고 굴절된 언어로 독자들에게 시가 외면받는 시대에 안심이 된다.
슬픔은 힘이다
영산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고향의 탯자리와 함께 해왔던
늙은 소나무를 그악스런 칡넝쿨이 감고 있다
솔향기 솔바람 다 내어준 수호신이었던 그대의 몸을
숨도 쉬지 못하게 옥죄는 압박으로 인해
세상과 작별하고야 마는 날이 왔음에도
원망하지 않는 의연한 모습이 아리게 한다
그대가 쓰러진 고갯길에 진눈깨비 흩날릴 때
그대를 기억하는 뭇 생명들은
어미 잃은 아이처럼 황량한 들녘을 헤맬 터
여름 폭풍우 장대비 몰아치면
숲은 발가벗겨진 벌건 알몸으로 드러나
어둠에 삼켜지는 그대의 사리를 보고 말 것이다
결국, 나는 흩어지는 상흔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이 일렁이는 가슴 안고
처연히 잠겨드는 영산강 노을 너머로 걸어가리라
슬픔이 켜켜이 쌓인 아리랑 고갯길
고난이 스스로 힘이 되는 고개를 넘는다
솔씨 같은 슬픔의 힘을 깨달으면서.
나그네
깊은 산속 적적한 숨결이 스며든
숲의 정기로 길을 간다
솔가지 사이로 지나는 솔바람 안고서
산 아래에 건네주고자 길을 재촉한다
세속의 인연을 만나면 전해 주려는데
사람들은 서로 뒤엉킨 채
어깃장 속에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린다
어지러운 소음에 시달리는 뭇 생명은
순한 염소처럼 울면서 지쳐가고 만다
만약, 자신의 목소리만 내며 틈이 갈라진다면
모두가 무너지는 통곡을 듣고 말 것이다
노을에 잠기는 오솔길을 걷는 나그네는
허허롭기 그지없는 세상사 뒤로한 채,
홀로 옅은 미소 지으며 길을 간다.
슬픔을 헤아리며
밤하늘에 수놓아진 은하수 윤슬이
유성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군다
먹구름 아래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달도 숨은 적막한 길에서 한 나그네가
탐욕에 몸부림치는 세상 꼴을 보고 말았음이라
하늘, 삼천대천세계가 내려다보는 것도 모른 채,
어찌하여 손아귀를 쥐려고만 하는가
어두운 세상 속 유희를 찾는 너희는
타인의 슬픔은 알 수 없다고 하겠으나
별의 눈길은 피할 수 없음이라
실존의 슬픔이 쌓이다 보면 서로 힘이 되어
고난을 이겨내리란 걸, 모른다 하려는가?
슬픔을 직시하는 하늘, 인간이 알기엔 미약하기에
오늘도 부질없이 파도치는 가난한 마음의 나,
가만히 내려놓고 무심코 두고 보리라.
작가 소개
지은이 : 김기완
· 1961년 전남 나주 출생· 전남대학교 졸업· 2025년 《문예사조》 신인상 수상- 「파도라는 시」 외 2편· 광주광역시 중고등교사 2025년 2월 정년퇴임· 엔솔로지 《동천문학》 시 발표 등· 동천문학회 회원· 시집 『슬픔을 헤아리며』
목차
슬픔을 헤아리며 / 차례
7 시인의 말
제1부
슬픔은 힘이다
나그네
슬픔을 헤아리며
외롭지 않아야 해
소쇄원
능소화
소쩍새 울음
오두막
그뿐
가을날 아침
귀뚜라미
파도
님 1
님 2
님 3
노을 속의 나
느티나무 묵언
목련
제2부
조개의 노래
마음 노을
형님
세 번의 기도
평온한 세상을 꿈꾸며
산행
웃을 날
사과
석탑에 핀 귀꽃
안식
은혜
노을에 물든 나
겨울밤 나비의 꿈
남루한 家長
어머니 달빛
달빛을 낚다
기찻길
엄마
제3부
휘파람 소리
퉁소 부는 사내
순이
해안가 풍경
외가댁 마을 연밭
천사가 소풍을 왔다
나의 즉흥 환상곡
무작정 떠난 사람
외로울 때
까치밥
빗소리
신호등
해바라기
어머니 등
어둠이 내린다
집
아버지 도시락
엄동설한 피는 정
제4부
화형식
광대
사내
눈물방울
비 오는 날
연탄난로처럼
청춘
첼로
테이블 두 개
붉은 고추가 매달렸다
안경
가을이 익어가는 시간
골목
아버지 병실
어떤 사내
추모
마른 호박넝쿨
나는 무엇일까?
작품론
슬픔을 건너는 방식과 자연과의 교감방식 / 강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