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중국은 한족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현대 중국의 형성 과정에서 여러 소수민족이 사라지고 병합되는 과정을 거쳐 56개의 공인된 민족이 공존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지역 간 문화적, 언어적 차이 또한 매우 크다. ‘서발턴'은 안토니오 그람시에 의해 하층 계급 또는 억압받는 집단으로 지칭되었으며, 이후 비엘리트 집단, 역사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이 책에서는 한족 중심의 국가 만들기 과정에서 활용되고 소외되고 억압된 여러 소수민족을 의미한다. 이들은 공간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주변부에 위치하면서 중국의 중심성을 구성하고 정당화하는 데 상호 전략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따라서, 주변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나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결코 주변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연구는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으며, 이들에 대한 연구의 미래 역시 암울하고 불투명하다.『탈구된 중국』은 중국과 중국 문화를 불변하고 연속적인, 본질적인 ‘중국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저자 드루 글래드니는 학계에서 오랫동안 중국에 대해 전제해왔던 주류민족과 소수민족, 중심부와 주변부, 원시와 근대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비판적으로 도전한다. 그리고 중국 및 중국성에 대한 관념에 일반적으로 부합하지 않은 경계적 타자, 서발턴 주체들을 통해 중국을 알고자 한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중국에서 소수민족 형성의 정치경제적, 역사적 과정과 한족을 포함한 대부분 중국 민족들의 내적 이질성을 더 자세히 이해하도록 이끈다.소수민족의 ‘원시성’은 추정된 한족의 ‘근대성’과 대조된다. 소수민족은 관능미, 다채로움, 이국적인 관습으로 특징 지어진 범주가 되고, ‘표식이 없는’ 한족과 대비된다. 중국인에게 ‘한족스러움’은 시민성과 근대성을 의미하며, 아마도 이것이 만주족이나 조선족처럼 좀 더 ‘교육수준이 높은’ 소수민족을 관능적이거나 원시적이라고 이국화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조선족이 실제로 중국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한족보다도 높은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중화민족문화공원에서는 시골의 농경 민족으로 그려진다.
중국의 가장 보수적인 무슬림조차도 이슬람, 도교, 불교, 유교의 내용들을 표현하기 위해 아랍과 중국의 서체 양식을 결합시킨 독특한 예술 형식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중국 문화와 폭넓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중국 무슬림 자신들과 주변인들, 그리고 중국 정부는 그들을 56개 민족 중 하나인 후이족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이슬람과 중국 무슬림의 대화적 상호작용, 중국의 공식 및 민속 종교 전통,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문화 및 경제와의 연계는 그들을 어떤 범주에도 쉽게 넣을 수 없는 역동적인 문화적 정체성으로 만들어왔다.
민족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문화 정의를 고수하는 국가는 민족 지위에 대한 문화적 주장의 정당성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즉, 국가가 언어, 경제, 지역성,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 자체를 결정하는 것이다. 소수민족과 민족 신청 집단은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이 정치적 인정과 특권, 추가적 고려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정당하다는 것을 국가에 설득해야 한다. 따라서 논쟁은 계속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드루 C. 글래드니
글래드니 교수는 마노아 하와이대학에 이어 캘리포니아의 포모나대학에 재직하면서 <태평양 유역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시애틀 워싱턴대학교에서 사회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국의 위구르족 및 무슬림 소수민족에 대한 전문가로 중국, 중앙아시아, 튀르키예에 이르는 광범위한 현지조사를 수행하여 100편이 넘는 학술 문헌을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는 『Muslim Chinese: Ethnic Nationalism in the People’s Republic』(1991), 『Ethnic Identity in China: The Making of Muslim Minority Nationality』(1998), 『Making Majorities: Constituting the Nation in Japan, Korea, China, Malaysia, Fiji, Turkey, and the United States』(ed. 1998) 등이 있다. 오랜 기간 실크로드를 따라 국가의 경계를 오가며 사람과 정치, 문화를 연구하고 소수민족과 서발턴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그는 2022년 65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