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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에 대한 묵상 이미지

비탈에 대한 묵상
창연출판사 | 부모님 | 202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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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경기도 의정부에서 활동하는 한성운 시인이 첫 시집 『비탈에 대한 묵상』을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시인의 말과 1부에는 「최후의 액자」 외 14편의 시, 2부에는 「아내가 ON 후」 외 13편의 시, 3부에는 「몽유夢遊」 외 13편의 시, 4부에는 「무소불위無所不爲」 외 15편 등 총 59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리고 임창연 문학평론가의 ‘기울기의 은총에 대한 시적 고찰’이라는 시집 해설이 실려 있다.

  출판사 리뷰

한성운의 시집 『비탈에 대한 묵상』은 제목에서부터 이러한 ‘기울기’를 감지케 한다. 비탈은 곧 경사이고, 경사는 삶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린 공간이다. 하지만 이 경사는 단순히 불안정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균형의 조건이며, 시적 사유의 시발점이다. 비탈은 곧 존재의 태도다.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꿇고, 다시 한번 중심을 되묻는 자세.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는 바로 그 ‘기울기의 시학’에 있다.
시란 결국 언어의 실험이며, 새로운 세계 인식을 위한 형식적 시도다. 한성운의 시는 그 형식 실험을 경건한 언어로 치환하며, 독자에게 삶의 내밀한 균형을 재조정할 것을 요청한다. 그의 시에는 형식적 과시나 수사의 번잡함이 없다. 대신 단정한 문장, 조용한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본 자’의 말이 있다. 그의 문장은 언어의 끝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자리, 즉 고요한 삶의 저편에서 건너온 목소리처럼 들린다.
『비탈에 대한 묵상』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의 시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생애가 경사진 삶을 어떻게 견디고, 그것을 어떻게 문장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시적 기록이자 존재론적 고백이다.

[시집 해설]

기울기의 은총에 대한 시적 고찰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시란 무엇인가, 혹은 기울기의 언어

시는 언제나 ‘경계’의 언어였다. 시는 산문과 구분되는 문학의 형식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와 나, 타자와 자아, 현실과 이상 사이에 놓인 ‘틈’에서 자라나는 문장이다. 한 줄의 시는 의미의 안정된 구획이 아니라, 불확실한 삶의 진동이 언어로 옮겨온 흔들림이며, 그 떨림 자체가 하나의 진실이 되는 예술적 실천이다. 이 시적 실천은 종종 사회적 언어의 질서와는 어긋난다. 시는 문장의 질서를 재배치하고, 의미의 고정된 구조를 해체하면서, 독자에게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던진다.
그러한 점에서 시는 늘 ‘기울어 있음’의 예술이었다. 균형을 가장한 허위의 중심이 아니라, 기울어진 언어의 중력에서 시작된 어떤 형식. 한성운의 시집 『비탈에 대한 묵상』은 제목에서부터 이러한 ‘기울기’를 감지케 한다. 비탈은 곧 경사이고, 경사는 삶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린 공간이다. 하지만 이 경사는 단순히 불안정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균형의 조건이며, 시적 사유의 시발점이다. 비탈은 곧 존재의 태도다.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꿇고, 다시 한번 중심을 되묻는 자세.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는 바로 그 ‘기울기의 시학’에 있다.
기울어진 세계는 무너짐을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성운은 비탈에서 ‘붙잡는 몸’을 본다. 산비탈에서 나무들이 무릎을 꿇듯 붙잡고 버티는 자세, 그 자세는 곧 기도하는 몸의 형상이다. 시인은 이 기도하는 몸이 서로를 지탱하며 하나의 ‘산’을 형성해 간다고 본다. 시집의 중심 이미지인 비탈은, 그리하여 무너짐이 아니라 ‘서 있는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시적 구조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론으로서의 이 시집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시는 자주 신학이나 철학, 혹은 일상의 감성에 종속되어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시란 결국 언어의 실험이며, 새로운 세계 인식을 위한 형식적 시도다. 한성운의 시는 그 형식 실험을 경건한 언어로 치환하며, 독자에게 삶의 내밀한 균형을 재조정할 것을 요청한다. 그의 시에는 형식적 과시나 수사의 번잡함이 없다. 대신 단정한 문장, 조용한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본 자’의 말이 있다. 그의 문장은 언어의 끝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자리, 즉 고요한 삶의 저편에서 건너온 목소리처럼 들린다.
『비탈에 대한 묵상』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의 시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생애가 경사진 삶을 어떻게 견디고, 그것을 어떻게 문장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시적 기록이자 존재론적 고백이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대신, 문학이 어떻게 ‘버티는가’를 보게 된다. 무너짐의 가능성 앞에서 언어가 발화될 수 있는가. 한성운은 말한다. 발화할 수 있다고. 그것이 기울어진 자의 말이며,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자의 시라고.
이 도입부에서는 먼저 ‘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서 시작하여, ‘비탈’이라는 이미지가 한성운의 시 안에서 어떤 시적 구조로 기능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의 시가 단순한 서정이나 감상의 문학을 넘어, 어떻게 존재론적 질문과 윤리적 실천을 담아내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시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선언이며, 이 시집은 그 선언의 본보기로서 오늘 우리에게 다시금 시의 가능성을 묻고 있다.

Ⅰ. 경사 위의 존재론 —“비탈”이라는 시적 은유

『비탈에 대한 묵상』은 단순한 제목이 아니다. 한성운 시의 사유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은유이며, 시집의 철학적 좌표이자 존재론적 선언이다. 이 시집의 표제작 「비탈에 대한 묵상」에서 그는 말한다. “비탈과 비탈이 만나 / 산으로 오르는 길을 만들고” 있다고. 두 개의 기울어진 존재가 서로를 지탱하며 길이 된다는 이 시구는 단순한 자연 관찰을 넘어 인간의 삶, 신앙,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를 상징하는 풍부한 시적 도식이다.
한성운의 시는 비탈을 ‘기울어짐’ 혹은 ‘균형 상실’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울어짐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신앙의 자세로 본다. 그는 비탈을 견디는 나무의 자세를 통해 기도하는 몸의 형상을 투영하고, 이 기도하는 몸이 모여 산이 되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는 곧 시인의 문장이 어떻게 형성되고, 언어가 어떻게 하나의 신앙 고백으로 자리잡는 지를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겨울 산을 바라보다 알게 되었네
비탈과 비탈이 만나
산으로 오르는 길을 만들고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산등성에 선 나무들이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지지 않게
온몸을 뒤로 젖혀
단단히 붙들고 있다는 것을
산의 가파름만큼 기울어진 그의 몸이
사실은 무릎을 꿇고 낮게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라는 것을
산을 오르다 포기하고 돌아가고 있는 비탈에게
잠시 바람에 기대어 쉬고 있던 비탈이
먼저 손을 내밀어 산의 계단을 쌓고
산 주변을 서성이는 것들의 발걸음을
산정(山頂) 가까이 옮기고 저물어
별들이 뜨게 하는 것을
창가에 서서 오래 산을 바라보다 알게 되었네
산이 시작되는 곳에 비탈이 있고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누구나 비탈에 서야 한다는 것을
비탈에 서면
비탈이 우리를 데리고
먼 산을 함께 오른다는 것을
- 「비탈에 대한 묵상」 전문

이 비탈의 상징은 시집 전체에 걸쳐 변주된다. 「가족」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칫솔들이 같은 통 안에 머무는 장면을 통해 다양한 삶의 형태와 충돌들이 결국 하나의 묵음된 연대 속에 포개진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잡는다는 건」에서는 부부의 손을 맞잡는 순간이 바로 ‘기울어짐을 지탱하는 행위’로 그려진다. 한성운의 시에는 ‘평평한’ 세계는 없다. 모든 존재는 기울어져 있으며, 이 기울어짐은 시적 사유의 출발점이자 삶의 깊이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Ⅱ. 사소함의 신학 —일상에 감겨든 영원의 언어

이 시집에서 독자가 곧잘 숨을 멈추게 되는 순간은 특별히 거대한 사건이나 격정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사소하고 일상적인 장면이 문득 심장을 건드릴 때이다. 한성운은 주유소, 세탁기, 칫솔, 밥, 엘리베이터, 심지어는 병원 센서등까지를 시적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이 이미지들은 사물로서 머무르지 않고, 모두 ‘의미화된 존재’로 재탄생된다.

문을 열고 아내가 집에 들어서니
건망증이 심해진 현관 센서등이
생각난 듯 아내를 켠다
아내가 막내를 부르자 TV를 보며 꺼져 있던
나와 큰아들이 벌떡 켜지고
만성비염을 앓고 있는 빨래통이
시원하게 비워지며 세탁기가 켜진다
목감기로 종일 잠겨 있던 수도가 물소리를 켜고
부엌칼이 도마 소리를 후다닥 켜서
주방이 방주처럼 아내를 싣고 둥실 떠오른다
고기 굽는 냄새가 엊저녁부터
다이어트를 결심한 밥솥에 압력을 넣어
따듯한 밥이 밥그릇에 전등처럼 켜지면
빈 의자가 밥 먹자고 부르는 소리에
노래를 듣다 탯줄 같은 이어폰에 감겨
잠들었던 막내가 가장 뒤늦게 켜져
느낌표 같은 숟가락을 저마다 들고
식탁에서 함께 모이는
저녁이 왔다
- 「아내가 ON 후」 전문

「아내가 ON 후」라는 시는 그 대표적인 예다. 아내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 센서등이 켜지고, 빨래통이 비워지며, 수도꼭지가 목감기를 이겨내고 다시 물을 낸다. 이 평범한 가정의 저녁 풍경은 “주방이 방주처럼 아내를 싣고 둥실 떠오른다”는 구절에서 신학적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아내는 노아의 방주이고, 일상은 신의 구조선이다. 문명이 아니라 가정에서, 교회가 아니라 식탁에서 구원이 실현되고 있다는 이 시적 역전은 경이롭다.
「식사법」은 밥을 ‘읽는’ 행위로, 「마중」은 아내의 그림자가 노크도 없이 그림자로 들어오는 풍경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장면들은 시인의 존재론적 신앙과 삶 그 자체를 기도와 예배의 연속으로 보는 인식이 바탕이 된 것이다. 밥을 씹는 행위 하나에도 별의 기호가 스며 있고, 빨래를 개는 움직임 속에서도 창조적 리듬이 흐른다.
이런 시편들은 모두 ‘사소함의 신학’이다. 한성운은 언어를 통해 일상적 사물과 행위를 영성적 체험으로 끌어올린다. 그의 시는 말하자면, 기도보다 더 은밀한 기도이고, 설교보다 더 온유한 설교다. 이 점에서 그의 시는 단순한 서정시를 넘어선다. 그것은 자기 고백이면서도 타자에 대한 전언이며, 동시에 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중재의 문장들이다.

Ⅲ. 상실 이후의 회복 서사 —기억, 고백, 유산

『비탈에 대한 묵상』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주제는 ‘상실’이다. 그러나 그 상실은 절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상실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시인은 회복을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죽음, 병, 결핍, 이별, 빈자리들을 겪고도 끝내 “덮지 않은 시집”처럼 계속 열려 있는 생의 문장을 기록한다.

사람들은 천사의 날개가
그의 등 뒤에 있다 말하지만
사실 천사들은
그의 말속에 날개를 감추고 있지
내 안에 아직도
그 말이 날갯짓하는 소리가
분명히 들리고 있거든
- 「천사를 본 적이 있다」 중에서

「천사를 본 적이 있다」는 유년 시절 버스 안에서 어떤 어른이 해준 말이 훗날 자신의 말이 되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는 구조를 통해, 언어가 어떻게 기억되고, 또 다른 생명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는 상실이 아닌 ‘전이’에 대한 시편이며, 말이라는 천사의 날개를 통해 존재가 옮겨가는 여정을 시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시인은 이윽고 세상의 집을 버리고
시의 집인 시집으로 영원히 주소를 옮겼습니다
이사를 위해 더 이상 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 「시인은 죽지 않는다」 중에서

「시인은 죽지 않는다」에서는 “시인은 시의 집인 시집으로 주소를 옮겼다”고 쓴다. 죽음을 ‘거처의 이전’으로 은유한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동시에 시가 계속되는 가능성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시집이 베개 높이가 되었다”는 표현은 죽음마저 시의 안식으로 변모시킨 시적 조율이다. 그는 죽은 자를 애도하지 않는다. 대신, 남은 시들을 더 오래 펼쳐 읽으며 그 죽음을 언어의 깊이로 끌어들인다.

새는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아마 새를 부르는 한 아이가 있었을 거야
새는 그 아이에게로 내가 놀던
그 작은 방울 물고 갔을 거야
아이는 사다리도 없이 그 방에 올랐을 거야
캄캄한 밤 중에도 새가 노래하는
그 방은 마을에서 환했을 거야
새의 울음으로 빛났을 거야
- 「엘 콘도르 파사 El Condor Pasa」 중에서

「엘 콘도르 파사」는 가난한 유년의 공간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들며 생긴 ‘작은 공중의 방’을 회상한다. 새는 떠났지만, 그가 물고 온 공간은 독자 안에 살아남는다. 이 장면은 아련하면서도 치열한 회상의 복원이다. 사라진 것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생성된 ‘마음의 방’을 기억하는 것이다.
「무소불위」에서 고정문이 열리는 순간, 상실은 통과 가능한 문으로 전복된다. 이것은 곧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언어와 침묵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시적 실험이자 철학적 은유이다. 시인은 고통을 축소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정직하게 응시한다. 하지만 그 끝엔 반드시 언어의 문장이 자리한다. 이 시집은 그런 의미에서 시를 통한 ‘상실의 견디기’이며, 끝내 회복의 문장이 된다.

Ⅳ. 언어의 윤리와 신앙의 문법 —말과 믿음 사이의 구원 문장들

여러 번의 제법 큰 충격에도 견디었던 갤럭시폰
낮은 곳에서 툭, 가볍게 떨어졌는데 액정에 금이 갔다

(오, 내가 사소하게 던진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쩌억 금이 가게 했을지)

다른 이상은 없나 갤럭시를 켜니
어두웠던 액정이 환해지고 금이 사라졌다
잠시 후 화면이 꺼지니 다시 보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덮이는 것이 아닐까
상처보다 조금 더 밝은 웃음 밑에 숨어 있다
웃음을 그친 어느 날엔가 불쑥 잊었던 얼굴을 내밀어
그 상처의 표정을 다시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 건 아닐까)

밤이 모든 사물을 잠시 꺼두고
낮에는 깊숙이 감추고 보여주지 않던
하늘의 상처인 별들을 꺼내어
바람에 닦고 있다
- 「별이 빛나는 밤」 전문

한성운의 시는 문장의 윤리를 내면화한 시다. 그는 말의 무게를 안다.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한 문장의 사소한 파열이 타인의 마음에 남긴 금을 묘사하며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덮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시인이 언어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시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으며, 침묵을 대체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침묵의 무게까지 문장에 담고자 한다.
그의 시에는 빈번하게 성서적 문맥과 신학적 이미지가 드러난다. 「하나님」이라는 시에서는 ‘초고가 바로 탈고다’라고 하며, 신의 창조 행위를 시의 창작으로 유비한다. 이 장면에서 시인은 말의 창세적 힘을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형상화가 아니라 실제적 믿음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시는 그에게 도덕이 아닌 신앙의 문법이다.
「21그램」에서는 영혼의 무게가 죽음 직전까지 놓지 못했던 존재의 집착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것이 허무주의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시가 궁극적으로 ‘붙드는 것’이 아닌 ‘내려놓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붙드는 것은 고통이 되고, 내려놓는 것은 승천이 된다. 이때의 시는 곧 존재의 해방이다.
「천국 영화관」이나 「마지막 한마디」 등 후기의 시들은 종말론적 상상력을 통해 시의 공간을 사후적 신앙의 영역까지 넓힌다. 이 세계는 끝나지만, 그 끝은 침묵이 아니라 ‘다 이루었다’라는 완성의 고백으로 남는다. 그의 시는 항상 인간의 언어와 신의 언어 사이, 즉 시와 기도 사이에 서 있다. 시인은 구원받은 말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그 언어는 읽는 이의 영혼에 깊게 닿는다.
한성운의 『비탈에 대한 묵상』은 기울어진 자들을 위한 시집이다. 이 시집은 경사면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낮은 곳에서부터 의미를 새기고, 가장 사소한 일상을 통해 가장 거룩한 언어로 나아간다. 그가 말한 것처럼,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누구나 비탈에 서야 한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는, 비탈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울기 속에서 언어가 어떻게 살아나고, 삶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함께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한성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녔고, 2020년 《월간문학》에 시 ‘날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비탈에 대한 묵상』이 있다. 현재 의정부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최후의 액자
심판관들
무인텔
수화手話
비탈에 대한 묵상
엘 콘도르 파사 El Condor Pasa
저녁의 문장文章
날개
주유원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잡는다는 건
연애의 시작
책벌레
미래자원 고물상
안검내반
반백斑白

제2부
아내가 ON 후
식사법
마중
구름의 본향本鄕
걸음마
장정裝幀
거짓 선지자
해체쇼
영주 누나
봄눈
오래된 시집詩集
골목
K문고로의 산책
독서讀書

제3부
몽유夢遊
지명 수배자
확성기
가족
생강차
이사
발치拔齒
숨바꼭질
나무
천사를 본 적이 있다
시인은 죽지 않는다
민방위훈련
조화造花
일요일

제4부
무소불위無所不爲
물, 비 그리고 구름의 현상학
에스컬레이터
대화對話
유산遺産
운동
노인들
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
변신變身
별이 빛나는 밤
마태복음 6장 34절
21그램
천국 영화관
하나님
마지막 한마디
승천昇天

시집 해설
기울기의 은총에 대한 시적 고찰
-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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