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면서 미국 현대문학을 이끌어온 조이스 캐럴 오츠는 ‘전미 도서상’, ‘페미나상’, ‘치노 델 두카 국제상’ 등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자신만의 문학성을 입증해왔다. ‘고딕 문학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는 《제로섬》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 고통, 욕망 등 여성의 내면을 마치 거울로 보듯 날카롭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열두 편의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여성 화자들은 각기 다른 서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경험하는 사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한 점에서 이 단편집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읽어볼 만하다. 이 책을 통해 ‘여성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의 내면을
강렬한 문체로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들조이스 캐럴 오츠는 단편집인 《제로섬》을 통해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감정을 흥미롭게 담아낸다. 특히 이번 단편집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여성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불안과 공포, 분노에 집중한다. 성매매, 스토킹 같은 범죄 행위를 비롯해 임신과 출산, 유산, 육아 등을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불안과 공포 등의 감정을 열두 편의 단편으로 담아냈다. 이 단편 모두 각기 다른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여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공포와 불안, 분노의 실체전작인 《카디프, 바이 더 시》에서 여성의 삶에 주목했던 조이스 캐럴 오츠는 독특한 색채를 지닌 이번 단편집을 통해 현실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감정적 모순과 부조리함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여아 성매매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끈적끈적 아저씨>는 강력한 성범죄 처벌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거주 지역에서 여아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접한 어느 여고생 무리가 성매수자를 직접 벌하기로 뜻을 모은다. 그들은 파리 끈끈이 같은 장치를 고안해 버려진 공장에 설치하고, 거짓 소문으로 성매수자를 유인한다. 그곳을 찾아온 남성들 중에는 누군가의 아버지와 삼촌, 사촌도 있었고, 여학생들은 이 사실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며 그들을 직접 벌한다.
여성 대상 스토킹 문제를 다룬 <상사병>에서 작가는 피해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회 분위기를 문제 삼는다. E는 화자에게 신원 미상의 남성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E는 협박적이고 노골적인 성적 내용의 협박 메시지를 받은 후 경찰에 신고하지만, 예상대로 경찰은 별 관심이 없고, 오히려 E에게 그녀가 바람을 피웠거나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추궁한다. E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화자에게 표현하고, 화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기>에서 작가는 유산(流産)을 겪은 여성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화자는 세 번째 아이를 유산한 후 날씨와 전혀 상관없이 추위를 느낀다.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녀는 유산된 딸을 떠올리며 사고임을 인지하면서도 자책과 슬픔에 잠긴다. 계속 극심한 불면증에 괴로워하던 그녀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남편이 자신을 실험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면서 불면증이 고문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더욱 악화되는 자신의 상태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남편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여행 가방을 챙겨 집을 떠난다.
가까운 관계가 도리어 상처를 입히는 삶의 아이러니표제작인 <제로섬>에서 작가는 교수인 ‘M’과 대학원생인 ‘K’를 통해 인간의 미성숙함을 보여주면서 관계에 대한 ‘자기 확신’이 어떤 대가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대학원생인 K는 학기 수업 중에 지도교수인 M에게 칭찬을 받은 후 자신이 그의 애제자라는 착각에 빠진다. K는 M 교수를 도와 함께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를 마음속으로 그리지만, 정작 M은 그녀의 질문이나 비평에 흥미를 잃는다. 학기 종료 후 M의 집에서 열리는 수업 뒤풀이에 참석해 반전을 노리던 K는 결국 자신이 M에게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한 학생일 뿐임을 확인하며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이를 지켜보는 딸의 모습을 그린 <참새>는 말 한마디로 깨져버리는 가족관계를 묘사한다. 카린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자 고향집으로 찾아간다. 오빠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독’과 같은 존재라고 경고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와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어머니는 지금의 ‘카린’은 가짜고 진짜 카린은 죽었다고 주장하고, 카린은 혼란스러워하며 큰 상처를 받는다.
엄마의 패륜적인 행동으로 고통받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저 데려가세요, 공짜예요>는 부모 자식 간의 올바른 애착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잠에서 일찍 깬 아이에게 화를 내던 엄마는 집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 쓰레기더미 옆에 그대로 방치한다. 아이는 수치심에 누구라도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지만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퇴근길에 아빠가 비를 맞고 있는 아이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오고, 아이는 눈물 맺힌 눈으로 저녁 식탁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지 찾는다.
<괴물둥이>는 낯선 대상에 의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배제되어 가는 ‘나’의 불안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화자인 ‘나’는 뒤통수의 생긴 혹을 발견하고는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결국 의사의 진찰을 받은 후 그 혹이 일란성 쌍둥이의 흔적이며 제거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듣지만 아빠는 확답을 하지 않는다. 어느새 크게 자란 혹은 화자에게서 분리되어 마치 사람처럼 성장해가면서 그녀의 자리를 점점 잠식해간다. 어느 순간 가족들은 그 혹과 화자를 혼동하기 시작하고, 도리어 자신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화자의 불안은 점차 현실로 다가온다.
《제로섬》 실린 열두 편의 단편은 각각의 독특한 개성과 서사로 새로운 재미와 신선함을 안겨 준다. 동시에 조이스 캐럴 오츠가 그간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고단한 여성의 삶과 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예상을 비껴가는 내용 전개와 반전, 작가 특유의 음울한 위트가 돋보이는 이 단편집을 통해 소설을 읽는 재미와 더불어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중요 포인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탁월했고 오히려 전보다 자신감이 충만했다.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M의 도발적인 질문에 답했다. 한번은 다른 학생들은 알 가능성이 작고 심지어 M 교수조차 (어쩌면) 잊었을 수 있는 그의 예전 견해를 과감하게 언급한 적도 있었다. (…중략…) 하지만 얼마나 대담한 질문인지는 M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얘기해달라고 하더니 마치 못 들은 사람처럼,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광택이 거의 죽은 테이블 저쪽 끝에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가 다정했던 눈빛이 점점 해석할 수 없는 무표정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는 입가를 실룩였지만,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바위를 스치듯 흐르는 물처럼 그 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몇 주 동안 M은 K에게 매주 제출하는 서평 보고서를 다시는 낭독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M의 시선은 오크 테이블 이쪽, 저쪽을 가차 없이 움직였지만, 그의 눈에 K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제로섬> 중에서
우리 뱃속에 풀처럼 들러붙은 소문. 없어지지 않을 소문. 우리를 자극하고 뒷덜미 털을 솟게 만드는 소문.
그런 동요 속에서― 끈적끈적 아저씨가 등장했다.
우리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고개를 숙이고 너풀거리는 긴 머리를 한데 모았다. 뜨겁고 축축한 손바닥으로 끈적끈적한 테이블을 내리치며 울분을 터뜨렸다. 토 나올 것 같아! 변태들! 감정을 억누르고 격한 표현을 삼켰다.
우리 중 한 명이, 가장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가장 분개했고, 얼마 전에 아버지에게 온 가족이 버림당한 (“아빠는 그걸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확신해.”) 친구가 볼펜을 집더니 공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돼지들! 멱을 따도 할 말 없어.
고추가 잘려도 할 말 없어.
그러고는 배꼽을 잡고 미친 듯이 웃었다. ‘여성’스럽지도 ‘소녀’답지도 않게 천박하게 껄껄대며 웃었다.
-<끈적끈적 아저씨>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조이스 캐롤 오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소설가인 조이스 캐럴 오츠는 전미 인문학 훈장, 전미 도서상, 2019년 예루살렘 평생 공로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선정 아이반 산드로프 평생 공로상, 공포작가협회 선정 브램 스토커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또한 퓰리처상 후보로도 여러 차례 선정됐다.베스트셀러인 《카디프, 바이 더 시》, 《멀베이니 가족》, 《블론드》, 《저주받은 자들》 등을 비롯해 우리 시대에 가장 오래도록 기억될 여러 작품을 집필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폭포》로 2005년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2020년 치노 델 두카 국제상을 수상했다. 1978년부터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했고, 2016년에는 미국 철학회에 가입했다. 현재는 프린스턴대학교, 뉴욕대학교, 뉴브런즈윅 소재의 러트거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목차
I
제로섬
끈적끈적 아저씨
상사병
참새
한기
저 데려가세요, 공짜예요
II
자살자
III
베이비 모니터
괴물둥이
사망 전후 이론
실제 상황입니다
M A R T H E : 국민투표
감사의 말 •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