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미국에서의 사춘기 경험을 통해 저자는 개인과 집단의 트라우마, 구조적 배제, 폭력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고, 이를 신학적으로 사유한 결과물이 『정(情), 십자가의 심장』이다. 인간의 고통을 단순한 사건으로 환원하지 않고, 일상 속에 스며든 복합적 폭력의 양상을 탐색하며 ‘정’을 구원의 관계성으로 바라본다.
책은 ‘억압받는 자가 자발적 용서 없이도 온전히 살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니체가 말한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리는 위험”을 환기하며, 정을 수동이 아닌 주체적 회복의 힘으로 제시한다. 1장은 정체성과 장소의 정치에서, 2장은 한·정의 심리학과 영화 <공동경비구역>, <사이구> 분석을 통해 한국인의 정의식을 탐구한다. 3장은 포스트식민주의의 신학적 전유, 4·5장은 몰트만의 그리스도론과 페미니스트 비평을 연결해 가부장적 신학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포스트식민주의와 페미니스트 신학을 통합한 한국계 미국인 연구로는 드문 사례인 이 책은 정과 한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통해 신학적 탈식민화를 모색한다. 옮긴이 최유진은 이 책이 세계 신학계에 한국적 사유의 자원을 소개하고, 정의롭고 공존 가능한 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한다.
출판사 리뷰
페미니스트적 · 포스트식민주의적 정체성
― 정(情)을 향하여
미국에서의 사춘기 경험은 삶의 관점과 존재 방식을 형성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고, 꼬리표처럼 끝내 해소되지 않은 채 따라다니는 질문들로 남았다. 이 질문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은 개인·집단적 트라우마, 구조적 배제의 관행 그리고 묵인하는 폭력의 형태들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을 현실에서 분리하여 추상화하고 합리화하려 한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는 결코 단일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훨씬 더 복잡하며 분산되어 있고, 은폐되거나 일상에 스며들곤 한다. 『정(情), 십자가의 심장』(Heart of the Cross)은 역사·개인·집단적 폭력의 양상들과 씨름하던 분투였다. 이는 고통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행위성을 과소평가했던 십자가 신학과 얽혀있다.
민중신학은 이미 ‘한’에 대해 광범위하게 탐구해 왔다. 사회학자 한완상은 한을 “불의로 고통받는 것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분노이며, 자신이 완전히 버려졌다는 압도적 느낌으로 인한 무력감이며, 내장과 창자에서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비하면 ‘정’은 깊이 있게 연구되지 않았다. 정은 그 다양하고 변화하는 차원의 깊이를 놓치지 않고는 간결하게 정의할 수 없다. 최유진은 정을 “구원하는 관계성 안에 구현되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정은 우리를 삶으로 이끌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한과 정은 아직 신학적으로 정의되지 않았다. 이 책은 정이라는 개념의 미묘하지만 필연적으로 모호한 윤곽을 탐구하고 상상하며, 표현하도록 초대한다.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강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자발적인 용서와 화해 없이 자신을 훼손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해방과 투쟁의 선봉에 서서 남을 미워하는 것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가?”이다. 정의를 위해 적에 대항해 투쟁을 지속한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메마르고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되어 버릴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은 수동적이거나 주체성을 상실하는 행위가 아닌 능동적이고 주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장에서는 장소의 정치를 통해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반본질주의의 문제를 둘러싼 현재의 논의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정과 한에 대한 소개로 마무리된다. 2장에서는 이재훈의 심리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을 고찰하고, 포스트식민주의적 내용을 담은 두 편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사이구>(Sa-I-Gu)의 분석을 통한 한국인의 삶에 스며있는 정의 여러 차원을 탐구한다. 3장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 개념을 신학적 구성을 위해 부각시키고, 그 이론을 한국계 미국인의 시각으로 읽어낸 해석을 고찰한다. 이 장은 정이라는 관계적 개념이 차이를 오히려 장려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논지를 통해, 차이를 지워야 한다는 전통적 이해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 제안한다. 4장에서는 페미니스트 신학적 관점에서 한, 정, 아브젝트, 사랑의 개념으로 위르겐 몰트만의 그리스도론과 대화한다. 몰트만과 비판적 대화를 펼쳐 그의 해방적 정치 신학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부장적 흔적을 문제 삼는다. 5장에서는 페미니스트 비평에 비춰, 그리고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논의에 끌어들임으로써 추가된 심리적 차원으로 전통적 그리스도론을 계속해 분석한다. 결론에 가서는 과거에 십자가가 전통적으로 해석되어 온 억압적 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을 묻고 탐색한다.
그간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와 페미니스트 신학적 성찰을 통합한 한인들의 연구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신학 자체가 아닌, 이제 막 등장했거나 아직 표현되지 않은 많은 목소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책의 성찰이 신학적 대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번 한국어 번역이 신학적 성찰을 탈식민화하고, 두려움 없이 더 정의로운 삶과 공존의 방식을 희망하는 신학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옮긴 최유진은 한국 독자에게 이 글이 한국 신학의 좋은 자원인 ‘정’을 세계 신학계에 소개할 수 있는 좋은 참고도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포스트식민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개념들을 신학에 전유한 구체적인 예를 소개받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에 따르면 정체성은 통일되거나 단일한 것이 아니라 파편화되고 분열된 것이다. 정체성은 서로 다르고, 교차되어 있고, 상반된 입장들과 실천들을 가로질러서 구성된다. 따라서 혼종성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은 기원이나 뿌리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양한 경로의 중요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에게 집은 항상 여러 문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항상 여러 현실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집은 다양한 역학 관계에 따라 달라질 뿐만 아니라 항상 임시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고향’에서도 낯선 존재가 된다. 그 결과 익숙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불안한 느낌 때문에 우리는 정착에 대한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게 되는데, 이는 다양한 이유로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고립의 불안을 더 쉽게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1장_ 제자리에서 벗어난 정체성〉 중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양날의 검과 같은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정체성 범주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규범적이며, 따라서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는 민족주의, 젠더, 계급 등의 용어로 정체성이 구성될 때마다 페미니스트에게 이것을 경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버틀러는 정체성의 해체는 “정치의 해체가 아니라 정체성을 표현하는 바로 그 용어들을 정치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녀는 범주의 죽음이 아니라 범주/용어에 대한 전체화 경향을 넘어서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1장_ 제자리에서 벗어난 정체성〉 중에서
영화는 번역이고 영화 제작자는 번역가이다. 이 특별한 영화를 재번역하는 관객이자 작가로서 나는 오역과 오독을 예상하기 때문에 번역의 역할은 모호하고 불안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가장 내밀한 읽기 행위 중 하나이지만, 그 과정에서 번역가는 자아의 가장 가까운 곳을 ‘넘어설 수 있는 허락’을 얻게 된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모든 독서/번역 행위가 가장자리에서 의미가 흐트러질 위험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번역자로서 우리의 행위가 “사랑으로 이루어질 때, 그 흐트러짐을 최소화”할 수 있게 돕는다고 말한다. 번역가의 임무는 “원작과 그 그림자 사이의 이러한 사랑, 즉 의미의 흐트러짐을 허용하는 사랑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 점과 더불어 모든 번역은 어느 정도의 배신이 포함된다는 점도 잊지 않으면서….
〈2장_ 한(恨)과 정(情)〉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원희 앤 조
개렛 신학대학원(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의 기독교 신학 및 포스트식민주의 분야 해리 R. 켄덜(Harry R. Kendall) 석좌교수이다. 또한 노스웨스턴 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 종교학과와 아시아계 미국학과의 협력 교수진이며, 같은 대학 버펫 글로벌연구소(Buffett Institute for Global Studies)의 종교, 인종, 세계정치 연구 교수진 그룹의 일원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역학 석사학위(M.Div.)를 받았으며, 드루 대학교(Drew University) 종교대학원(Graduate Division of Religion)에서 철학 및 신학 연구(Philosophical and Theological Studies) 전공으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다수의 논문과 단행본에 수록된 논문 외에도, 공동 편집한 Critical Theology Against US Militarism in Asia: Decolonization and Deimperialization (아시아에서의 미국 군사주의에 맞선 비판신학: 탈식민화와 탈제국화)과 Feminist Praxis Against US Militarism (미국 군사주의에 맞선 페미니스트 실천)이 있다. 또한, 포담 대학교 출판부(Fordham University Press)에서 Trauma, Affect and Race (트라우마, 정동, 그리고 인종)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옮긴이의 글
감사의 말
서론
포스트식민주의 서문
뿌리 찾기
‘거주 외국인’(Resident Alien): 변위(들)(Displacement[s])
복잡한 경로(Route)/깊은 뿌리(Roots)
이 책의 주장
이 책의 개요
1장 제자리에서 벗어난 정체성(Identity Out of Place)
제자리에서 벗어난(Out of Place)
시험대에 오른 본질주의
집의 정치
페미니스트적· 포스트식민주의적 정체성 ― 정(情)을 향하여
2장 한(恨)과 정(情)
한(恨)과 정(情)에 대한 정신분석
정(情) 이야기
번역된 번역가
공동경비구역 JSA: 비무장지대(DMZ), 삶과 투쟁의 현장
사이구(Sa-I-Gu): LA 폭동, 삶과 투쟁의 현장
3장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한국계 미국 신학
소외(외국인Alien/국가nation)
‘영향력’으로서의 정체성
혼종성(Hybridity)
흉내내기(Mimicry)
틈새적 제3의 공간(Interstitial Third Space)
‘포스트식민주의’ 논쟁
4장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정(情)의 길
폭력적인 함의와 급진적 연대
위르겐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과 삼위일체 그리스도론
정(情)의 해방적 실천(Praxis)
5장 정(情) 그리스도론
가부장적 신 뒤흔들기
한(恨)/죄와 정(情)/구원
정(情)의 힘과 한(恨)의 공포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과 사랑
결론 십자가의 심장
찾아보기
주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