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인으로서의 삶에서 시는 시인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그려내는 최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어쩌면 시의 삶보다 시로 드러내고자 하는 문화와 역사를 더 사랑하는 듯하다. 시가 목적이 아니라 방편일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해외 교민들은 자신의 생업을 고민하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의 내력이나 역사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사공 경 시인은 여느 교민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전통과 문화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구분, 혹은 구별은 문화의 증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쓰는 인도네시아에 관한 시편들이 기획이 아닌 자연스러운 이유이다.
출판사 리뷰
시인으로서의 삶에서 시는 시인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그려내는 최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어쩌면 시의 삶보다 시로 드러내고자 하는 문화와 역사를 더 사랑하는 듯하다. 시가 목적이 아니라 방편일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해외 교민들은 자신의 생업을 고민하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의 내력이나 역사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사공 경 시인은 여느 교민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전통과 문화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구분, 혹은 구별은 문화의 증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쓰는 인도네시아에 관한 시편들이 기획이 아닌 자연스러운 이유이다.
문화가 꽃핀다는 말은 거짓이거나 가식이다. 문화는 어디에서도 꽃핀 적 없다. 여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는 문화를 말한다. 문명이 아니다. 문화다. 이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이다. 두께다. 시인은 삶으로 시를 쓴다. 바틱은 옷이지만 문화를 온전히 간직하고 유지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런 노력이 시집으로 집약되었다. 의미는 생성되는 게 아니라 이미 있었다. 시인의 시는 밝힘이 아니라 확인이다. 이 확인은 가치보다 더한 의미를 지닌다. 지향이다. 어제를 확인하는 일은 오늘을 내일로 가는 계기가 된다. 시인의 시집은 한 나라의 역사를 문화적으로 바라본 결과물이다. 이 가치에는 바다가 놓여 있지만 인류는 바다를 건넌다. 시인의 인도네시아가 곧 우리가 되는 이유이다. 문화를 통해 화해와 통섭을 소통하려는 시인의 노력이 이 시집을 낳았다. 이해가 아니라 동감이다. 이는 이 시집이 갖는 값진 이유이기도 하다.
불멸의 테이블
― 뚜구 라라종그랑*
붉은 등불 아래
천이백 년을 넘어 앉아 있다
부서진 전설 위에 놓인 식탁
나무의 숨결이 흔들린다
라라종그랑
사랑 때문에 석상이 된 공주
그녀가 다시 살아 천국에 오른다
왕은 먼 길을 돌며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음식에 문화를 넣었다
한 잔의 커피 속에서도
빛바랜 유물 속에서도
황금빛 전설 속에서도
보로부두르의 새벽이
쁘람바난의 노을이 붉게 피어난다
사진 속 수카르노의 미소
베자드의 그림이 벽을 채운다
와양은 끝없는 이야기를 품는다
라라종그랑의 꿈을 수저질한다
불멸이란
전설이 입안에서 퍼지는 순간임을
* 뚜구 라라종그랑(Tugu Lara Djonggrang): 예술품 수집가 안하르(Anhar Setjadibrata)가 설립한 뚜구 그룹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욕야카르타 쁘람바난 사원의 전설 ‘라라종그랑’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부티크 호텔·레스토랑 체인인 뚜구의 철학—“살아있는 박물관”—아래, 마자빠힛(Majapahit) 왕국의 전성기 하얌 우룩(Hayam Wuruk) 왕과 재상 가자 마다(Gajah Mada)가 누리던 향신료와 요리의 세계를 재현한 연회 같은 공간이다.
파타힐라 광장에서
옛 바타비아 한가운데
시간은 돌바퀴를 굴리며 흐르네
역사의 숨결 깃든 광장
돌길 위 자전거 바퀴 돌아가고
사람들은 웃으며 사진을 찍네
붉은 기와 아래 박물관은
과거를 품고 오늘을 맞이하네
네덜란드의 발자국 남은 시청
말라카에서 온 대포가 서 있고
그림 같은 거리엔
오래된 우체국과 무역회사
액자로 들어온 카페 바타비아
사형대가 서 있던 자리
지금은 노래와 춤이 흐르고
역사의 그림자 품고
문화의 빛으로 다시 피어나네
파타힐라, 그 이름 아래
과거와 현재가 손을 잡고
낡은 광장에 퍼지는
자유의 노래, 희망의 꿈
안쫄 바다
그 바다엔
달이 낳아 놓은 섬 하나
세월을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믐, 어두운 수평선 끝에서
섬 그림자 옛 이야기처럼 지워집니다
그대 홀로 앉아 있는
달맞이꽃 핀 언덕 능선이
바다보다 환해지는 것을 봅니다
아픈 일몰이 밀려오면
아득한 사랑은 잠들지 못합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사공경
시인, 한·인니문화연구원장, 문화예술기획자. 저서 『자카르타 박물관 노트』 『서부자바의 오래된 정원』과 공동 저서 11권이 있으며, 2023년 제17회 세계 한인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바틱연구자로서 한세예스24 초청전 등 다수의 전시를 했으며, 1999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교사 시절 ‘문화탐방반’을 시작으로 《한인니문화연구원》을 세워, 25년 넘게 인문·예술·역사를 잇는 현장형 교류를 실천해 오고 있다.
목차
● 시인의 말
제0장
서시 12
승리의 땅, 자카르타에서 14
자카르타 연가 16
여행에 부쳐 17
제1장 파타힐라 광장에서
바타비아의 오래된 항구 20
올라가지 않는 도개교 22
삐니시 1 23
삐니시 2 24
루아르 바땅 마을 26
뭍으로 올라온 지느러미들 28
순다 끌라빠 항의 전망대 30
해양 박물관 32
옛 조선소, VOC 갈랑안 34
빨간 상점 36
역사박물관 1 38
역사박물관 2 40
역사박물관 3 42
파타힐라 광장에서 43
카페 바타비아 44
제2장 반쪽 폐로 지킨 나라
슬라맛 다땅 48
꺼지지 않는 불꽃 50
반쪽 폐로 지킨 나라 52
시간이 멈춘 거리, 잘란 수라바야 54
수로빠띠의 이름으로 56
그늘진 기억, 스넨 시장 58
음표로 지은 배 60
묘비 박물관에서 62
이국에 묻힌 병사들의 영혼 64
깨달음의 자리, 스토비아 66
자바의 첫 망명객, 오랑 꼬레아 장윤원 68
독립 영웅, 양칠성 70
바리의 꿈, 버락 오바마 72
성 마리아 대성당 73
제3장 신의 그림자, 와양
바틱 1 76
바틱 2 78
바틱 3 80
앙끌룽 81
옛 노래, 두타 82
도예가, 위다얀토 84
하리 다르소노의 꿈 86
불멸의 테이블 88
보로부두르, 화려한 부활 90
사만가요 춤 92
신의 그림자, 와양 93
제4장 자카르타에서 생의 절반을 살다
뿐짝, 차밭에서 96
해변의 기도 98
안쫄 바다 99
자카르타의 우기 100
바타비아 마리나의 노래 101
쯔짝, 도마뱀 울퉁이 102
오후 3시의 공원 104
부치치 못한 편지 105
자카르타에서 생의 절반을 살다 106
중앙 우체국, 우정의 길 위에서 107
시간을 담은 바꿀 커피점 108
수카르노-하타 공항에서 110
옛 우체국의 시간 112
▨ 해설 | 최준 113
▨ 발문 | 도종환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