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남과 북, 그리고 카자흐스탄으로 흩어진 한 예술가 가문의 비극과 영광을 복원한 『카자흐스탄 망명음악가 정추 평전』이 출간되었다. 저자 정철훈은 3년에 걸친 추적과 탐사 끝에 광주 출신 음악가 정추(1923~2013)의 90년 인생을 원고지 3500매 분량으로 기록했다. 『백석을 찾아서』, 『김알렉산드라 평전』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2024년 ‘박인환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탐사작가다.
이 책은 『북한 영화의 대부 정준채 평전』과 『정근 전집』에 이어 분단과 이산의 가족사를 예술사로 복원한 대서사다. 정추의 형 정준채는 북한 영화의 선구자로, 동생 정근은 「둥글게 둥글게」, 「우체부 아저씨」 등 국민동요를 남긴 작곡가였다. 예술로 이어진 형제의 삶은 곧 한국 근현대사의 또 다른 초상이다.
정추는 일제강점기 광주고보에서 일본어 사용을 거부하다 퇴학당했고, 일본 유학 중 징병되었다가 귀국 후 ‘국자개정동맹’ 활동과 ‘민족음악협회’ 결성에 참여했다. 이후 월북해 평양음대 교수로 일하며 정율성, 김순남 등과 교류했고, 1957년 ‘김일성 우상화 반대’를 주장하다 소련으로 망명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정착한 그는 고려인 민요 1천여 곡을 채록하며 ‘공훈예술인’ 칭호를 받았고, 대한민국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정철훈 작가는 남·북·러·카자흐스탄을 넘나들며 방대한 자료와 증언으로 정추의 예술혼을 되살려냈다.
출판사 리뷰
시인이자 소설가, 탐사작가 정철훈의 필생의 역작!
카자흐스탄 망명음악가 ‘정추’의 삶과 예술 세계를 분단과 이산의 가족사를 넘어 민족사 전체의 차원으로 복원해내다.
남과 북, 그리고 카자흐스탄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선대 예술가, 3형제의 파란만장한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한 정철훈 작가의 필생의 역작이 출간되었다. 『카자흐스탄 망명음악가 정추 평전』(작가 간)은 광주광역시 출신의 음악인 정추(1923~2013)의 90년 인생역정을 추적, 탐사한 평전으로 저자는 3년간 노고 끝에 원고지 3500매 분량의 평전을 완성했다. 2024년 ‘박인환상’ 수상자인 정철훈 시인은 그동안 다수의 시집과 소설집을 출간했으며, 탐사작가로서 『백석을 찾아서』, 『김알렉산드라 평전』, 『오빠 이상 누이 옥희』, 『내가 만난 손창섭』등을 펴낸 바 있다.
『카자흐스탄 망명음악가 정추 평전』은 2022년 6월과 7월에 각각 출간된『북한 영화의 대부 정준채 평전』(선인 간)과『정근 전집』(전3권, 작가 간)에 이어 분단과 이산의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민족사 차원으로 복원한 저작이기도 하다. 정준채는 저자의 부친 정근의 큰형이며, 정추는 둘째 형이다.
정근(1930∼2015)은 국민동요 <텔레비전>, <둥글게 둥글게>, <구름>, <우체부 아저씨> 등을 작사 작곡했으며, KBS방송국 어린이합창단 지휘자, KBS <모이자 노래하자>, <TV유치원 하나둘셋>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활동한 우리 동요의 선구자였다.
정준채(1917∼1980 추정)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도쿄에 유학, 일영영화사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해방 후인 1945년 11월 서울에서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의 서기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조선영화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민족전선>을 제작하기 위해 월북했다. 그 후 평양의 ‘국립 영화촬영소’ 제작부장 겸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북한 영화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북한 최초의 기록영화 <우리의 건설>, <민주선거>, <국제여성절> 등을 연출했고, 1950년 체코슬로바키아 ‘카를로비바라 국제영화축전’에 출품한 <친선의 노래>로 ‘최고기록영화상’을 수상했다. 또 1956년 무용가 최승희 주연의 북한 최초의 컬러 극영화 <사도성의 이야기>의 연출가로도 활동했다.
정추의 가계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희곡작가인 고모부 김우진과 광주 양림동 외조부인 양파 정낙교, 그리고 그의 세 아들인 병호, 상호, 석호로 확장된다. 이 가운데 정석호는 1920년대 독일 베를린 음악원에서 공부한 성악가로 소년 정추에게 음악적 영향을 준 인물이다.
정추는 광주고보 재학시절, 일본어 상용을 거부해 15번이나 정학 처분을 받았고, 교련교육 반대와 일본인 교련 교관을 무시한 언행으로 퇴학 처분을 당했다. 이에 정추는 손기정을 배출한 양정고보로 편입해 졸업한 후 일본대학 예술학부 작곡과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1945년 1월, 오사카로 징병되어 노동부대원으로 복무하다가 일제패망 후인 1945년 8월 31일, 현해탄을 건너 귀향할 수 있었다. 광주로 돌아온 정추는 광주고교 국어 선생으로 부임해 1946년 ‘국자신론(國子新論)’이라는 한글 가로쓰기 운동을 펼친 송필수 선생 등과 ‘국자개정동맹’을 결성해 간사로도 활동했다.
1946년 정추는 작곡가 나운영과 함께 경성에서 <민족음악협회>를 결성했으며, 월북 이후 평양국립영화촬영소 음악과장, 평양음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월북음악인 김순남, 정율성 작곡가 등과 교류했다. 1952년 1월, 모스크바유학 7기생으로 선발되어 ‘차이코프스키 명칭 모스크바음악원’에 입학한 정추는 소련의 저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 박사를 지도교수로 6년간 작곡을 공부했다.
정추는 1956년 작곡한 첫 오케스트라 교향곡 <조선적 주제에 의한 교향조곡>(1956)을 통해 소련음악계에 그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1956년 2월, 스탈린 사후 3년 만에 열린 소련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흐루쇼프 제1서기가 스탈린의 독재와 개인숭배 청산을 위한 비판 발언을 함으로써 큰 파장이 일어났다. 이른바 흐루쇼프에 의해 찾아온 ‘모스크바의 봄’을 계기로 정추는 1957년 10월, ‘모스크바광산대학’에서 열린 재소 북한유학생동향회에서 ‘김일성 우상화 반대’ 발언을 주도하고 소련으로 망명했다.
이 와중에서도 그는 1958년 8월 모스크바음악원의 졸업작품 발표회에서 하차투랸 등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 만점을 받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해 9월 정추는 모스크바를 떠나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정치적 망명을 했다. 알마티에 정착한 1961년 4월, 그는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유리 가가린 쾌거 축하 공연>에서 자작곡 <뗏목의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했고, 이 장면은 소연방 전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또 1959년부터 1968년까지 10년간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노동가요와 민요 1천여 곡을 직접 녹음기에 담아 채록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정추는 카자흐스탄공화국에서 ‘공훈예술인’ 칭호를,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과 KBS의 ‘해외동포상(예술부문)’을 받았다. 저자는 남한, 북한,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4개국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사진을 통해 정추의 삶과 예술 세계를 심도 있게 복원해냈다. 가히 필생의 역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출판사 서평
광주 태생의 카자흐스탄 망명음악가 정추(TenChu·1923~2013)의 삶과 음악 세계를 실증적으로 접근한 『카자흐스탄 망명음악가 정추 평전』은 총 8부, 68개 항목으로 구성된 원고지 3500장 분량이다. 평전은 시인이자 전기 작가인 정추의 조카 정철훈(66)의 필생의 역작으로 꼽을 만한 방대하고도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정철훈은“선친인 동요작곡가『정근 전집』(전3권·작가출판사)과 백부(伯父)인『북한영화의 대부 정준채 평전』(선인출판사)을 2022년에 동시 출간한 데 이어 이번에 『카자흐스탄 망명 작곡가 정추 평전』을 펴냄으로써 남과 북, 그리고 카자흐스탄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선대(先代) 예술가 3형제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오랜 숙원을 마무리했다”라고 그 소회를 밝혔다.
국적이 네 번이나 바뀐 망명음악가 정추의 생애
정추는 90년 생애 중 22년은 남한 공민으로, 13년은 북한 공민으로, 17년은 무국적자로, 16년은 소련 공민으로, 22년은 카자흐스탄 공민으로 떠도는 삶을 살았다. 국적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에서 냉전의 20세기 현대사가 낳은 비극적인 디아스포라의 형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추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교향시 <극적 조곡>(1972)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공동체의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매개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1944년 일본대학 예술학부 작곡과를 수료한 정추는 1946년 월북해 평양음대 교수로 재직했고, 1952년 북한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차이코프스키 명칭 국립모스크바음악원’에서 수학했다. 이후 1957년 모스크바에서 북한 유학생들이 전개한‘김일성 우상화 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58년에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망명했다. 이로 인해 북한에서는 정추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했고,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정추의 망명으로 북한 영화의 대부 정준채는 1960년대 초반 북한에서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마티에 정착한 지 3년 만인 1961년 4월, 보스토크 1호에 몸을 싣고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유리 가가린 쾌거 축하 공연>에서 정추는 자작곡 <뗏목의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했고, 이 장면은 소연방 전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그건 고려인사회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인 사건이었다. 만약 그가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면 김일성을 위한 작품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이고, 그는 그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2의 고향이 된 카자흐스탄은 서구 현대음악의 흔적을 거의 느낄 수 없는 변방이었다. 산업화과정이 더디게 진행되었던 알마티에서는 교향곡에 관한 수요보다 합창곡, 가곡, 민요 편곡, 연극을 위한 음악의 수요가 더 많았다. 알마티의 고려인극장이나 연극단의 작곡 의뢰가 그것이다. 정추는 망명으로 환경적 후진성에 놓이게 되고, 이를 만회하고자‘음악인류학자’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갔다. 정추는 1959년부터 1968년까지 10년 동안 <중앙아시아 거주 고려인 가요채록> 작업을 수행했다. 당시의 일화는「녹음기를 메고서 조선민요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수기로 1968년 6월 14일자『레닌기치』에 실렸다. 1000여 곡이 넘는 정추의 민요 채록 작업이 없었다면 150년 역사를 가진 고려인들의 가요는 아마 유실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의 민요 채록 작업은 노래의 원초적인 감수성을 상호 확인하는 일종의 집단제의였다. 오히려 동시대 한국인은 상실한 감수성을 그들은 더 오래 기억하며 과거의 조국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추의 채록 작업은 창작활동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실증적인 탐사 정신과 학술적인 탐구 정신으로 집필된 정추 평전
1) 사반세기 동안 정추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저자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프롤로그’― 1. 알마티에서 온 편지, 2. 첫 방문, 3. 모스크바의 밤, 4. 24시간만의 장례식, 5. 죽음의 징후, 6. 네 번째 희생양? 7. 서재 등으로 구성된 이 프롤로그’는 정추와의 극적인 상봉에서 타계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을 촘촘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2) 정추의 친형인 북한의 영화감독 정준채(1917~1980)의 서신을 통해 1950년대 북한 예술계의 동향과 두 형제의 예술을 향한 여정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긴장감 있게 진술하고 있다.
3)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기로 소련에서 한민족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정추는 전남 나주 출신의 월북 판소리 명인 정남희(1905~1984)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모스크바 방송에 출연해 <심청전>을 소개하고 있다.
4) 정추의 첫 교향곡 <조선적 주제에 의한 교향조곡>(1956) 총보가 모스크바음악원을 졸업한 1958년, 모스크바국립음악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적 재능이 당대 러시아의 대가들과 견줄만한 것이었음을 입증해 준다.(윤신향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융합젠더연구센터 준회원)
5) 정추의 모스크바음악원 졸업작품 발표회 평가표와 성적표를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정추의「졸업을 위한 국가시험위원회 회의」(1958. 6. 10)에 따르면 심사위원 구성은 다음과 같다.
학생 성명: 텐추(이론 및 작곡학부)
지도교수: 알렉산드로프 A. N.
작곡시험 일자: 1958년 6월 10일
심사위원장: 스비리도프 G.V.
심사위원: 교수 스베쉬니코프 A.V., 골루예프 E.K., 알렉산드로프 A.N., 보가티료프 S.S., 하차투랸 A.I., 샤포린 YU.A., 쉐바린 В.YA., 조교수 투마니나 N.V.
정추는 졸업작품으로 교향시 <Корея(조국·1악장), 칸타타 <평양>, 바이올린을 위한 곡 <사색과 봄>, 첼로를 위한 곡 <농담>, 그리고 가곡 <산꽃>, <장미의 단추>, <봄의 노래>를 출품했으며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5점 만점’을 받았다.
6) 1958년 소련 망명을 결심한 정추가 당시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낸 편지와 소련 최고소비에트 의장 보로실로프에게 보낸 편지, 북조선노동당에 보낸 공개서한 등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7) 새로 발견된 악보 <발레 심포니>(1983)
정추 사후인 2015년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방문한 저자는 쿠르만가지 명칭 알마티국립음악원 도서관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발레 심포니> 악보를 발굴하였다. 악보 표지에 ‘ТЕН-Балетная Симфония’(텐-발레트나야 심포니야)라고 육필로 적혀 있었고 악보 첫장에‘1983년 입수’라는 도서관 직인이 찍혀 있었다. 이는 정추의 교향곡이 한 곡 더 추가됨을 의미한다. 그동안 정추가 남긴 교향곡은 모두 6개로 알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 악보가 수집된 것은 <조선적 주제에 의한 교향조곡>, <조국>, <극적 조곡> 등 3개이며 그나마 인쇄 악보로 출판된 것은 1958년 모스크바 국립음악출판사에서 출간된 <조선적 주제에 의한 교향조곡>이 유일하다. <조국>과 <극적 조곡>은 모두 친필악보 상태이며 나머지 <칸타타 고대수도>와 <교향시 향토>, <풍년절>은 악보가 유실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발견된 <발레 심포니>는 악보 양면을 한 페이지로 펼쳐 모두 23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도입부에 ‘미뉴에트 박자(Tempo di Menuette)’라고 적혀 있으며 G장조, 8/12박자의 춤곡이다. 베토벤의 <미뉴에트 G장조>를 예로 들면 발뒤꿈치를 들고 복도를 걷는 부드러운 템포가 특징이다. 정추의 <발레 심포니> 역시 미뉴에트 G장조라는 점에서 비슷한 정서를 자아낸다고 볼 수 있다. <발레 심포니>의 악기 편성은 다음과 같다.
바이올린 1, 2. 비올라 1, 2. 첼로. 퓰륫.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트럼본, 팀파니, 피아노.
변주되는 박자를 강조하기 위해 악보에 연필로 크게 썼거나 각 부를 구획하기 위해 악보 중간에 여러 번 선을 그은 점 등은 이 작품이 시연될 당시, 연주자에게 지시한 음악적 메시지로 보인다. 이로 미루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정추의 작품이 더 남아 있을 수 있으며 알마티 현지 조사 조사를 통해 그의 음악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8) 1948년 평양에서 만나 친형제처럼 교유한 광주 출신의 음악가 정율성(1914~1976)의 서신(4통)을 통해 두 사람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정율성과 정추의 음악은 각각 중국 조선족 사회, 또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를 매개한다. 정율성의 노랫말의 대부분이 중국어였고, 정추의 노랫말의 대부분이 한국어였던 것은 큰 차이지만 이들의 작곡 행위가 한인 이주민사회를 매개한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율성의 <망부운>과 정추의 <극적 조곡>은 한국과 중국 사이, 그리고 한국과 카자흐스탄 사이라는 유라시안 이주 무대에 올려진‘길 위의 공연’이다. 정율성과 정추가 이주지에 가져간 것은 물론 한국전통의 이야기와 노래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와 노래 기억은 광주시기에 움튼 식민지 근대의 감수성을 배경으로 평양, 중국, 카자흐스탄에서 체험한 총체성을 지닌다.”(윤신향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융합젠더연구센터 준회원)
9) 서신으로 본 망명지에서의 삶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기증된 정추 수신 편지는 한글 편지와 러시아어 편지를 합쳐 모두 300여 통에 이른다. 편지만 모아도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 될 것이다. 평전에서는 지면의 한계에 따라 그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 소개하고 있다.
여기엔 우크라이나 키예프(현재 키이우)협주단 단원으로 1966년 북한 공연에 참가한 모스크바음악원 동창생 수즈자의 편지, 모스크바음악원 지도교수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 카자흐스탄의 음악인류학자 보리스 예르자코비치, 소련작곡가동맹 산하 민속위원회,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시 작곡가동맹, 카자흐스탄 작곡가동맹 등 음악 관련 단체에서 보낸 서신과 엽서, 공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저자 소장본인 망명 동지와 고려인 지인들의 한글 편지, 그리고 특히 반김일성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리상조 전 소련주재 북한대사의 편지 등은 엄혹하고 고독했던 망명지에서의 삶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10) 저자와 함께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의 연구 프로젝트 「작곡가 정추 수증자료 목록화 및 연구」에 참여한 이경분 박사(서울대 일본연구소)의 논문「망명음악가 정추의 오케스트라 음악 연구―초기 교향악을 중심으로」와 김보희 박사(한양대학교 세계지역문화연구소)의 논문「정추 채록 소비에트 고려인 노래에 관한 연구」를 보유(補遺)로 재수록했다. 두 연구자의 논문은 냉전으로 말미암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작곡가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망명지에서의 음악적 서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철훈
1959년 광주 출생. 러시아 외무성 외교아카데미 역사학 박사. 1997년『창작과비평』에「백야」외 5편의 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살고 싶은 아침』,『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개 같은 신념』,『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빛나는 단도』,『만주만리』,『가만히 깨어나 혼자』,『어떤 말이 공기에 스미면』,『릴리와 들장미』를 출간했다. 장편소설로 『인간의 악보』,『카인의 정원』,『소설 김알렉산드라』,『모든 복은 소년에게』를 출간했으며, 평전 및 탐사기로『북한 영화의 대부 정준채 평전』, 『정근 전집』(전 3권), 『오빠 이상 누이 옥희』,『백석을 찾아서』,『내가 만난 손창섭』,『감각의 연금술』,『문학아, 밖에 나가서 다시 얼어오렴아』, 『김알렉산드라 평전』,『뒤집어져야 문학이다』,『소련은 살아있다』,『옐찐과 21세기 러시아』등을 출간했다. 2024년 시집『릴리와 들장미』(도서출판b)로 ‘박인환상’ 시부문을 수상했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1. 알마티에서 온 편지
2. 첫 방문
3. 모스크바의 밤
4. 24시간만의 장례식
5. 죽음의 징후
6. 네 번째 희생자?
7. 서재
1부 출생과 성장 시기
1. 출생지 광주 양림동
2. 고모부 김우진 가家
3. 광주 양림동의 외가
4. 어릴 때 지켜본 광주학생운동
5. 영화광 정준채
6. 광주고교 퇴학과 양정고교 전학
7. 진헌식의 권유로 작곡가 지망
8. 형제의 도일
9. 일본대학 작곡과 입학
10. 오사카로 징병
2부 북한 체류 시기
11. 형제의 월북
12. 평양국립영화촬영소 음악과장
13. 김순남, 김동진, 한시형, 황학근 등과 교류
14. 동생 권의 월북과 음악가 정율성과의 교류
15. 한국전쟁의 발발
16. 의주유학생 강습소
17. 최석두 시인의 죽음
18. 정준채의 체코슬로바키아 국제영화축전 기록영화상 수상
19. 소설가 이태준과의 조우
20. 의주강습소 시절의 수첩
3부 모스크바음악원 시기
21. 모스크바의 금싸라기
22. 지도교수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
23. 모스크바 유학일지
24. 작곡가 김순남에 대한 기억
25. 정율성 서신 1
26. 정준채 서신
27. 정율성 서신 2
28. 음악원 휴학과 스탈린 생가 방문
29. 정율성 서신 3
30. 북한 최초의 컬러 영화 <사도성의 이야기>
31. 형제의 재회-모스크바 1956년
4부 흐루쇼프의 해빙기
32. 스탈린 격하와 그 여파
33. 8월 전원회의와 북한 유학생들의 동요
34. 수령과 싸우는 리상조 전 대사
35. 정준채의 당부
36.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37. 정준채의 애끓는 편지
38. 재소 조선인유학생 동향회
39. 허웅배의 북한 대사관 탈출
40. 10진의 망명과 이상구 사건
41. 결혼과 귀국 준비
42. 졸업작품 발표회와 소련 망명
5부 망명지 카자흐스탄 알마티
43. 정율성 서신 4
44. 형제의 마지막 편지
45. 망명지 알마티
46. 북한의 꾀꼬리 유은경과의 조우
47. 고려인 2세대 엘리트 그룹
48. 크즐오르다로 첫 출장
49. 녹색거주증
50. 카자흐 국립여성사범대 교수
51. 유리 가가린 쾌거 기념 음악회에서 <뗏목의 노래> 연주
52. 결혼과 득녀
53. 망명 동지들의 알마티 이주
54. 키예프협주단의 북한 공연
6부 조선민요 채록과 작곡 활동
55. 녹음기를 메고서 조선민요를 찾아서
56. 피바다 가극단장 김원균과의 조우
57. 광주민주화운동 소재 연극 <폭발> 음악 작곡
58. 쇼스타코비치 탄생 80주년 특별기고
59. 정추의 음악 세계
60. 정추의 악보
7부 서신으로 본 망명지에서의 삶
61. 아나톨리 니콜라예비치 알렉산드로프의 서신
62. 소련 지인들의 러시아어 서신
63. 망명동지와 고려인 지인들의 한글 서신
64. 전 소련 주재 북한대사 리상조의 서신
8부 경계인의 흔적
65. 조국 방문과 「한국-소련 작품교류회」(1990년)
66. 제1차 세계무속대회 참가(1991년)
67. 구국전선 마지막 의장(2011년)
68. 경계인의 흔적
1) 해외한국인 기록문화상 수상
2) 광주고보 제17회 명예졸업
3) 독립유공자후손협의회 초대 의장
4) 장흥 출신 최옥삼 작곡 <사도성의 이야기> 원본 기증
5) 국사편찬위원회에 고려인 민요 채록 악보와 녹음 기증
6) <극적 조곡>을 중앙아시아 고려인에게 헌정
7) 광주 남구 주민 오카리나 대합주 지휘
8) 2013년 6월 13일 알마티에서 타계
끝맺으며
정추 연보
참고문헌
보유(補遺)
보유1 북한의 망명음악가 정추 연구 - 이경분
보유2 정추 채록 소비에트 고려인 노래에 관한 연구 - 김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