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20~30년대 일본 문학에서 가장 기묘하고 현대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유메노 규사쿠의 대표작 『소녀지옥』이 국내에 처음 정식 소개된다. 에도가와 란포와 함께 ‘에로·그로·난센스’ 문학을 대표해 온 그는 그간 일부 마니아층에만 알려졌으나, 이번 단편 세 편의 엮음으로 독자들은 왜 그의 작품이 독보적 평가를 받아왔는지 확인하게 된다. 신문 기사, 진술서, 편지 등 다양한 기록 형식을 교차시키는 기묘한 구성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며 소녀들이 빠져드는 ‘지옥’의 여러 얼굴을 드러낸다.
세 작품은 거짓말과 폭력, 욕망과 허영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결국 사회가 어떻게 여성들을 이용하고 믿지 않으며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를 집요하게 비춘다. ‘천재적인 거짓말쟁이’, 연쇄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화성의 여자’가 되기를 선택한 소녀까지, 각 인물이 남긴 기록과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지옥이 사건 현장인지, 신문 지면인지, 혹은 내면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당대 일본 사회를 지탱하던 규범과 위선을 비틀어 드러내는 독특한 구성 덕분에 공포나 스릴을 넘어선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작품집이다.
출판사 리뷰
“소녀의 지옥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유메노 규사쿠 걸작 단편집 『소녀지옥』 국내 정식 출간
1920~30년대 일본 문학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현대적인 작가로 꼽히는 유메노 규사쿠(夢野久作)의 대표작 『소녀지옥』이 국내에 정식 소개된다. 에도가와 란포와 함께 이른바 ‘에로·그로·난센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유메노 규사쿠는, 그동안 일부 마니아층 사이에서만 회자되어 온 이름이었다.
『소녀지옥』은 유메노 규사쿠의 단편 세 편을 한 권에 엮은 작품집으로, 제목 그대로 “소녀가 빠져 버리는 지옥”의 여러 얼굴을 보여 준다. 첫 번째 이야기 〈별 것 아니었다〉에는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부풀리고 연출하는 “천재적인 거짓말쟁이” 히메쿠사 유리코가 등장한다. 병원과 경찰, 지식인 남성들을 능수능란하게 속이며 ‘특별한 소녀’가 되려는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꾸며낸 것인지 점점 경계가 흐려진다. 그리고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과연 그녀가 마지막으로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인지, 독자는 끝까지 의심하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 〈살인 릴레이〉는 신문에 “무서운 색마의 살인 릴레이”로 보도된 남성 운전사의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린 한 여차장의 고백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전제로 시작되는 이 편지 속에서, 화자는 사랑과 공포, 연민과 자기혐오 사이를 끝없이 오가며 자신이 그 사건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되짚는다. 그녀가 친구에게 털어놓지 못한 마지막 말, 그리고 편지의 끝에서 선택하려는 결심이 무엇인지가 이 작품의 가장 큰 긴장이다.
마지막 이야기 〈화성의 여자〉는 비정상적으로 큰 키와 압도적인 체력을 지닌 여고생 화자가 중심이다. 운동장에서는 필요할 때만 ‘비밀 병기’처럼 떠받들어지고, 일상에서는 철저히 고립된 채 조롱의 대상이 되는 소녀. 그녀가 유일한 도피처로 삼아 온 폐창고, 그리고 존경받는 기독교인 교장과 얽히게 된 사건이 차츰 드러나면서, 독자는 한 소녀가 어떻게 “화성의 여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름을 걸고 어떤 계획을 세워 가는지 따라가게 된다. 신문 기사, 경찰 기록, 편지와 진술이 콜라주처럼 이어지는 이 작품은, 끝까지 읽고 나서도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이처럼 『소녀지옥』의 세 작품은 모두, 거짓말과 폭력, 욕망과 허영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에는 여성들이 어떻게 이용당하고, 믿어지지 않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유메노 규사쿠 특유의 과장된 설정과, 편지·보고서·신문 기사 형식을 섞어 놓은 기묘한 구성은 단순한 공포나 스릴을 넘어, 당시 일본 사회를 지탱하던 남성 중심의 규범과 위선을 비틀어 드러낸다. 독자는 각 편의 소녀들이 남긴 기록과 목소리를 따라가며, “지옥”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사건 현장인지, 신문 지면인지, 혹은 소녀들의 내면인지?스스로 답을 찾게 된다.
출판사 서평
“지옥”이라는 말은 흔히 사후 세계를 가리키지만, 유메노 규사쿠의 『소녀지옥』에서 지옥은 살아 있는 소녀들이 매일같이 서성이는 공간에 가깝다. 학교, 가정, 신문과 소문, 연애와 우정, 도덕과 교육 ? 이 모든 것들이 소녀를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옥죄고 밀어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별 것 아니었다〉에서 소녀는 “별 것 아닌 거짓말”이 켜켜이 쌓인 끝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로 걸어 들어간다. 〈살인 릴레이〉에서는 특정한 악인보다, 여럿이 나눠 든 가벼운 말들이 누군가를 구석 끝으로 몰아붙인다. 〈화성의 여자〉에서는 한 여학생의 시체가 “새까만 소녀”라는 이름의 소재로만 소비되고, 그 뒤에 숨은 진짜 목소리는 기사와 참고, 행정 문서와 ‘유서’의 틈새에서 겨우 새어나온다.
이번 한국어판은 이 세 가지 얼굴의 지옥을 한 권에 담아, 유메노 규사쿠라는 작가의 스펙트럼을 그대로 보여 주고자 했다. 연애 고백체, 유언장, 신문 기사, 참고 메모, 편지와 장광설이 뒤섞인 문장은 단순히 기괴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가”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어떤 단순한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읽고 난 뒤, 어쩌면 이런 질문을 남길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얼마나 쉽게 “별 것 아니다”라고 말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장난처럼 나눈 말이, 누군가에게는 ‘살인 릴레이’의 일부가 된 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화성의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종이 한 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 않은지.
100년 전의 기묘한 단편집 『소녀지옥』은, 그래서 지금 이곳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믿어 온 ‘정상’이라는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말 알고 있었나요?”
저는 지난번, 마루노우치 클럽의 경술회에서, 단시간 영광을 얻은 사람으로, 귀형과 마찬가지로 규슈 제국대학, 이비인후과 출신 후배입니다. 작년, 쇼와 8년 6월 초순부터, 이곳 요코하마시 미야자키초에, 우스키 이비인후과 간판을 내걸고 있는 자입니다만, 돌연 이와 같은 기괴한 편지를 올리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히메쿠사 유리코가 자살했습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여차장만큼은 정말로 안 돼요. 농부로 사는 것보다 훨씬 재미없고, 훨씬 더 무섭고, 싫은 일이에요. 여차장의 운명이라는 건, 길거리에 흩어진 종잇조각보다 훨씬 값싼 것이에요. 여차장이 되어 보면 곧 알게 돼요. 간단히 말하자면, 농부의 딸로 있으면 신랑감은 순박한 마을 청년들 중에서 부모님이 골라 주시잖아요. 운이 좋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여차장이 되면 그런 행복은 처음부터 포기해야 해요. 회사 중역이라든가 임원이라든가, 자동차 담당 순경님 같은 이들의 말은 아무리 부당하고 불쾌해도 얌전히 들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바로 해고돼요. 어떻게든 구실을 붙여서 쫓아내 버리니까요.
지난 3월 26일 새벽 2시경, 시내 오도리 지역 6번째 구역에 위치한 현립 여고 운동장 구석의 낡은 창고에서 불이 났다. 강풍이 불고 있었기에 자칫 큰 화재로 번질 뻔했지만, 시 소방서장을 비롯한 소방대의 신속한 대응으로 창고 한 채만 전소된 채 진화되었다. 다행히 교사 건물에는 피해가 없어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며칠 뒤인 같은 달 26일 새벽, 불이 난 자리를 정리하던 중,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탄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 현장은 다시 한 번 큰 소동에 휩싸였다. 이후 대학 부검 결과, 시신은 스무 살 안팎의 여성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허리 부분 주변에 불을 집중적으로 붙이기 위해 연료가 배치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에 경찰은 사건을 성적 동기가 얽힌 방화 살인 사건으로 보고, 보도를 일시 중단한 채 철저한 수사에 들어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유메노 규사쿠
일본의 소설가이자 아동 문학가, 그리고 일본 탐정 소설의 기틀을 다진 중요한 인물이다. 본명은 스기야마 나오키(杉山直樹)이며, '유메노 규사쿠'라는 필명은 후쿠오카 방언으로 “꿈꾸는 바보”를 뜻한다. 이는 그의 독특하고 기괴한 작품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부유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를 중퇴한 후, 승려 생활, 농업 경영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이러한 이색적인 이력은 그의 작품에 독특한 사상과 철학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특히 정신 의학, 불교,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러한 지식들은 그의 대표작 ‘도구라 마구라’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유메노 규사쿠는 1926년 ‘괴기’라는 작품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여러 단편 소설과 아동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의 탐정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하고 난해한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그는 단순한 범인 찾기를 넘어 인간의 심리, 무의식,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 그의 작품들은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도구라 마구라’는 그의 문학적 정수가 응축된 작품으로, 집필에 10년 이상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독자들을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의 작품은 평단에서 “가장 위험한 소설”, “미치광이의 작품”이라는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재평가를 받으며 일본 탐정 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유메노 규사쿠는 4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목차
별 것 아니었다 7
살인 릴레이 119
화성의 여자 149
옮긴이의 말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