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천재 과학자’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 감춰진,
과학을 지탱해온 수많은 ‘보통 과학자’ 이야기과학자는 빼어난 천재성을 지닌 이들의 일로 여겨지곤 한다. 과학자에 대한 이런 인식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과학은 주도권을 틀어쥔 하나의 이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 면이 있고, 몇몇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가 역사에 남아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소수의 천재가 이끌어가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냐 질문한다면, 그 답은 명백히 ‘아니오’다. 근대 과학이 자리 잡던 17세기부터 과학은 교류와 협업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었다. 게다가 현대로 오면서 과학은 갈래가 세세하게 나뉘고 전문화되어, 수많은 과학자가 서로의 전문성에 기대어 조율하고 협동하는 식으로 연구가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과학은 평범한 과학자의 협력을 통해 진보하는 체제로 변화 중이다.
《보통 과학자》는 유명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낸 ‘보통 과학자’들의 삶과 연구에 주목한다. ‘천재 과학자’, ‘위대한 연구’라는 화려한 포장 뒤에는 사실 이 발견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보통 과학자가 있다. 이 책은 이들의 역할을 조명하면서 여전히 엘리트 과학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과학계 전반의 불평등과 한국 과학 정책의 현실을 비판한다. 나아가 과학계가 어떻게 해야 생산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며 그 속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의 자부심과 행복을 담보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는 0.001%뿐,
‘보통 과학자’들의 협업과 네트워크가
과학을 작동시킨다!
과학계에 깊이 새겨진 영웅과 천재의 신화를 걷어내고
앞으로 만들어나갈 과학계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보다
‘천재 과학자’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 감춰진,
과학을 지탱해온 수많은 ‘보통 과학자’ 이야기과학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과학자의 이미지는 ‘천재’ 혹은 ‘괴짜’일 것이다. 우리는 과학자를 평범한 직업이 아니라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천재성을 지닌 이들의 일로 여기곤 한다. 과학자에 관한 이런 일반적인 인식은 일견 타당하다. 실제로 과학은 헤게모니를 틀어쥔 하나의 이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 면이 있다. 과학의 역사에서 특출난 개인이 놀라운 발견을 해낸 경우도 적지 않고, 경탄을 자아내는 ‘천재’의 이야기는 역사에 남아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소수의 천재가 이끌어가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냐 질문한다면, 그에 대한 답은 명백히 ‘아니오’다. 근대 과학이 자리 잡던 17세기부터 과학은 교류와 협업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었다. 과학은 그 특성상 이론의 보편성 검증이 필수적이고, 여러 동료 과학자들의 승인을 거쳐야만 합의된 지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과학에 기여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현대로 오면서 과학은 갈래가 세세하게 나뉘고 전문화되어, 단 한 명의 과학자가 전 분야를 휘어잡는 위대한 발견을 하기보다는 수많은 과학자가 서로의 전문성에 기대어 조율하고 협동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과학은 평범한 과학자의 협력을 통해 진보하는 체제로 변화 중이다.
《보통 과학자》는 유명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낸 ‘보통 과학자’들의 삶과 연구에 주목한다. 실제로 대부분 과학자는 천재가 아니다. 그들은 평범하게 과학을 직업으로 갖게 된 사람들로, 연구실에서 자신의 좁은 분야를 연구하며 살아간다. ‘천재 과학자’, ‘위대한 연구’라는 화려한 포장 뒤에는 사실 이 발견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보통 과학자가 있다. 이 책은 이들의 역할을 조명하면서, 여전히 엘리트 과학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과학계 전반의 불평등과 한국 과학 정책의 현실을 비판한다. 나아가 과학계가 어떻게 해야 생산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며 그 속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의 자부심과 행복을 담보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과학 공동체의 숨겨진 공로자를 찾아내
역사에 그들의 자리를 되돌려주기 근대 화학의 기초를 세운 로버트 보일은 실험을 바탕으로 한 자연과학의 기틀을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 그런데 보일의 실험실에는 ‘조수’로 일하며 보일의 실험을 수행하던 수많은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지시를 따른 것만이 아니라 실험 도구를 만들고 개량하고 유지보수 했으며, 각자의 판단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 이들의 이름은 남지 않았다.
현대의 과학 연구실에도 1~2명의 테크니션(기술직)이 근무한다. 이들은 오랜 경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실험 수행에 관여하는데, 실력 있는 테크니션은 실험의 성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은 논문에 등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과학계는 여전히 이들을 일종의 조수처럼 여긴다. 국내에서 테크니션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테크니션뿐 아니라 과학 실험용 재료를 만드는 장인 등, 과학 공동체가 놓치고 있는 공로자를 돌아본다.
화려한 발견사 뒤에 가려진 과학자 개개인을 살피기도 한다.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최초 발견 이후 순도 높은 페니실린을 정제해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전장에서의 전염병 치료에 실제로 쓰일 수 있도록 동분서주한 월터 플로리와 언스트 보리스 체인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20세기 초 영국에 건너가 생화학을 배우며 피루브산의 생체 내 역할과 변화를 연구하는 데 집중한 중국 출신 여성 과학자 루구이전, 인간 염색체 수가 46개라는 것을 밝혀낸 인도네시아 출신의 조 힌 치오 등 우리가 놓쳤던 다양한 과학자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본다. 위인들만이 역사를 진보시키지 않듯,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다양한 과학자들이 합주하는 오케스트라에 가깝다. 이 책은 과학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이룬 숨겨진 이들의 노력을 기억하고자 한다.
누구보다 과학에 진심인 김우재,
동료 과학자들과 학계에 건네는 뜨거운 비판과 제언 이 책은 과학계의 문제를 고찰하는 데 있어 최신 연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참고한다. 예컨대 과학계를 대상으로 한 사회학 연구를 참고해 상위 10퍼센트의 연구자가 연구비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는 현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기관별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을 짚고, ‘과학을 위한 과학(Science of Science, SOS)’의 주요 연구를 인용해 연구실 규모가 지나치케 커지면 영향력 있는 논문을 출판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한다는 사실 등을 알린다.
과학계의 여러 구조적 문제 중 특히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출판된 논문 중심의 평가 시스템이 젊은 과학자들의 연구비 수주를 어렵게 하며 그들의 자리를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지위를 획득한 과학자들 중심으로만 연구비가 주어진다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가 사장된다는 점에서 이는 과학계의 중요한 문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기본소득과 비슷한 개념의 기본연구비를 제안한다. 더 많은 연구자에게 더 균등하게, 연구 주제 선정의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연구 주제가 아니라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 외에도 과학자들의 ‘화폐’라 할 만큼 과학자를 평가하는 핵심 기준인 논문이 출판되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고, 학술 출판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 과학계의 굵직한 문제에 관한 전방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런 비판들은 과학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다면 꺼내놓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과학계가 사회로부터 유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 전반에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가 심해지고 있다면 과학계 역시 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현실을 불평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치열하게 질문하자고 권한다. 보통 과학자들이 질문하기 시작한다면 ‘모두를 위한 과학’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이 책은 날카롭지만 뜨겁게 말을 건넨다.

지금처럼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근대 과학이 형성되는 17세기 유럽에서도, 이후 화학과 생물학이 근대 과학의 지위를 얻게 되는 18세기와 19세기에도, 과학자들은 언제나 협업을 중시했고 네트워크 속에서만 일했다. 17세기 로버트 보일은 ‘보이지 않는 대학Invisible college’이라는 과학자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했고, 이 모임은 훗날 영국왕립학회의 근간이 되었다. 과학은 인문학이나 철학보다 후발주자였으므로 17세기 과학자들은 학회를 통해 교류하고 단결을 도모했다. (…) 과학은 태생부터 지금까지 협업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학문이다. 천재들만이 과학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 과학은 처음부터 협동조합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과학에 기여할 수도, 발견을 인정받을 수도 없다.
과학사회학자 야든 카츠와 울리히 매터는 2019년 〈불평등의 척도: 미국 바이오메디컬 엘리트의 자원 집중〉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두 사회학자는 과학자 사회가 학술지 랭킹이나 특허 수 등의 정량적 지표를 동원해 과학자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전통을 만들었고, 이러한 지표들이 공정한 잣대처럼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척도들이 보편화되면서 과학자 사회의 연구비 분배에 심각한 불평등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상위 10퍼센트의 엘리트 과학자가 연구비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불평등의 지속은 하위에서 시작하는 과학자들이 상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동성 감소로 이어져, 기존의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잠재적으로 증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서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것처럼, 과학자 사회 또한 ‘개천 용’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