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태동 순간부터 성숙한 매체로 등장한 영화는 사진과 다른 시간의 선형성과 감각적 착시를 바탕으로 현실을 움직임으로 포착하며 새로운 생명체처럼 세상에 나타났다. 뤼미에르 형제의 활동사진은 짧은 상영만으로도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며 영화가 지닌 형식적 완성도를 증명하였고, 이는 이후 영화 정신의 급격한 성장을 예고하는 기반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과학문명은 전기, 통신,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정점을 향했고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기계적 메커니즘의 총아로 태어났다. 물질성의 결정체인 영화는 금속성과 기계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무한한 정신세계를 펼치는 매체로 자리 잡으며 인간 감각과 세계 인식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을 드러냈다.
출판사 리뷰
영화, 출생의 물질성
너무나 갑자기, 어느새 슬그머니 옆자리에 다가와 앉아 있는 존재를 본 적이 있는가? 요즘처럼 한 방에 떠오르는 K-POP 스타를 생각하면 유사한 비유가 될까?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는데 왠지 그냥 친숙하여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 그런 깜짝 스타처럼 영화라는 매체가 세상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비록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그 탄생은 예고되었지만 모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신생아처럼 영화라는 생명체의 특성은 사진과 전혀 다른 기반으로 응집되었다. 그 기반의 핵심은 바로 선형으로 진행되어 앞으로만 흘러가는 이 세상의 시간을 담아내는 방식에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눈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을 전격 활용하여 현실처럼 보이게끔 꾸민 감각적 속임수에 놓여 있었다. 한 장의 사진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일상의 모습이 실제처럼 그대로 펼쳐지는 것이다.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 카페 안의 한 공간에서 루이 뤼미에르와 오귀스트 뤼미에르 형제는 약 1분 정도 되는 움직이는 사진 묶음을 10여 편 상영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상영처럼 보였지만 뤼미에르 형제의 활동사진에 대한 입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세상의 뜨거운 관심을 끌게 되었다. 사람들은 줄지어 활동사진을 보려고 몰려들었고, 하루 20여 차례로 한 달을 넘게 상영해도 관객들의 반응은 식을 줄 몰랐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열차의 도착>,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물 뿌리는 사람> 등 최초의 영화들을 떠올려 보면 요즘 영화와 내용적인 원숙함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영화의 몸체, 즉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어떠한 내용물이라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이 탄탄하게 구비되어 있는 완제품이었다. 이를 테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성인이 되어 있었던 셈이다. 몸이 완연히 성숙하므로 곧 그 속에 담기는 정신 또한 마법의 콩나무처럼 한순간에 성장을 이룬다. 뤼미에르 형제의 뒤를 곧바로 이은 조르주 멜리에스가 그의 영화 작업 속에서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영화 기법들을 거의 다 선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멜리에스의 스크린에 펼쳐지는 환상적, 마술적인 세계는 영화만의 독특한 정신세계가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예고하였다. 다시 돌아보면 1분짜리 원 씬 원 컷 영화를 만들면서 뤼미에르 형제가 오늘날과 같은 영화를 예측하고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들은 단지 연속 사진 속에서 살아 있는 현실과 그 리얼한 느낌의 움직이는 대상을 구현했을 뿐이다. 그 결과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여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질 줄은 몰랐다.
19세기는 사상 유례가 없는 과학의 시대였다. 유럽의 산업혁명은 마치 정점에 도달한 것처럼 미래의 물질적 풍요를 낙관적으로 보장하는 듯했다. 생활 전반에 걸쳐 도구에서 기계로의 변화를 적극 수용하여 대량 생산에 따른 사회구조적 패러다임 또한 유사 이래 전혀 볼 수 없었던 급격한 조정의 길로 들어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었다. 특히 에너지원으로써 전기를 손에 넣은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며 사용하는 세상은 이전과 전혀 별개의 생활상을 확립하였다. 전구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발명은 에디슨이 해냈지만 패러데이와 맥스웰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노력 하에 발전(發電)의 원리를 터득하고 전자기파를 실생활에 활용한 업적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왕정이 무너지고 시민 계급이 부상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자가 생겨났고, 다량의 신종 철학과 이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다이내믹한 시대가 바로 19세기 후반이었다.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를 상영한 1895년은 마치 유럽 과학 문명의 정점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그해에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여 물리학뿐만 아니라 의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성과를 보았으니 이미 전화(1876년), 전신(1877년), 자동차(1880년대) 등을 손에 넣은 유럽인들은 지구상에서 이제 더 이상 모르는 것이 없다고 당연히 큰 소리를 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영화는 19세기 유럽의 과학문명이 꽃 피운 물질문명의 총아(寵兒)로 탄생했다. 철저한 기계적 메커니즘, 기계가 집약된 가장 물질다운 금속 바디(Body), 기계 아닌 조직이 단 하나도 없는 외형을 하고서는 물질 중심으로 향하는 세상의 정수(精髓)로서 태어난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손현석
경남 통영 출생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영국 본머스대학교 MA Sound Design㈜제일기획 Audio PD㈜중앙방송 Q채널 편성팀 PD동서대학교 영화과 교수부산문인협회 회원✥ 저 서『예술영화』, 『사과와 오렌지』, 『이웃나라 영화 문화』
목차
제1장. 영화의 예술성과 영화시의 가능성 3
제2장. 영화는, 노래를 부른다 11
제3장. <프로메테우스>와 인류의 기원 고찰 21
제4장. 라스 폰 트리에 영화의 우울증과 소멸의식 43
제5장.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영화의 사운드 내러티브 분석 61
제6장. <옥희의 영화>의 인물과 시간 구조 85
제7장. 테렌스 맬릭 영화의 앙각 내레이션 디자인 101
제8장. <잊혀진 꿈의 동굴>의 의문과 의의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