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대중이 주도하는 정치 문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프로이트, 마르크스, 그람시를 경유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의 대표작포퓰리즘은 ‘비이성의 정치’라는 통념을 넘어서‘포퓰리즘’은 오늘날 가장 자주 호출되면서도 가장 쉽게 오해되는 정치 용어다. 대중 선동, 감정 정치, 반지성주의, 민주주의의 위협이라는 이미지가 이 단어에 덧씌워져 왔다. 언론과 주류 정치 담론에서 포퓰리즘은 경계해야 할 병리적 현상, 혹은 성숙하지 못한 대중 정치의 일탈로 취급된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성》은 이러한 통념을 정면에서 문제 삼는다. 이 책은 포퓰리즘을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라클라우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 노선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좌파와 우파,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가로질러 나타나는 포퓰리즘을 하나의 실체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포퓰리즘 이성》은 이 실패 자체를 문제화하며, 포퓰리즘을 “무엇인가”가 아니라 정치가 작동하는 “하나의 논리”로 재정의한다. 포퓰리즘은 정치의 일탈이 아니라, 정치가 본래 지니는 갈등성과 불완전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포퓰리즘이 지닌 모호성과 불안정성을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특성이 정치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사회는 언제나 완결되지 않으며, 다양한 요구들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정치는 이 요구들을 완전히 조정하거나 해소하지 못한 채, 임시적이고 갈등적인 방식으로 묶어 낼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 이성》은 포퓰리즘을 비이성의 정치로 몰아내는 대신, 그 안에 내재한 고유한 합리성을 끝까지 사유한다.
인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포퓰리즘 이성》의 중심 질문은 ‘인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라클라우에게 인민은 이미 존재하는 사회 집단이나 통계적 다수가 아니다. 인민은 정치적 과정에서 구성되는 집합적 주체다. 그 출발점은 흩어져 있는 개별적 요구들이다. 노동, 차별, 지역, 생존과 관련된 요구들은 처음에는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기존 질서가 이 요구들을 흡수하지 못할 때 점차 공통의 좌절과 적대를 공유하게 된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등가의 논리다. 서로 다른 요구들은 ‘같이 무시당하고 있다’라는 인식을 통해 하나의 사슬로 연결된다. 정의, 자유, 민주주의, 인민과 같은 ‘비어 있는 기표’는 이러한 요구들을 하나로 묶는 상징적 중심이 된다. 라클라우는 이 기표들의 불확정성이 정치적 힘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대표는 이미 완성된 집단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 행위를 통해 그 집단 자체를 구성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표와 피대표의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대표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인민은 결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클라우에게 이 불완전성은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의 조건이다. 차이의 논리가 사회를 분절된 체계로 유지한다면, 포퓰리즘은 등가의 논리를 통해 적대적 경계를 설정하고 집합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포퓰리즘 이성》은 이 과정을 정치의 본질로 파악한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서이 책은 포퓰리즘 이론서이자, 동시에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서다. 라클라우는 자유주의 정치가 이상적으로 상정해 온 합리적 합의와 투명한 대표의 모델이 왜 반복적으로 실패하는지를 분석한다. 정치가 행정과 전문가 담론으로 대체될수록, 대표되지 못한 요구들은 오히려 더 강한 정동과 상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라클라우에게 포퓰리즘은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의 귀환이다. 관료적 통치가 정치적 갈등을 제거하려 할수록, 갈등은 다른 형태로 되돌아온다. 포퓰리즘은 이 배제된 갈등이 가시화되는 방식이며, 민주주의의 위기와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징후다. 《포퓰리즘 이성》은 포퓰리즘을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오히려 포퓰리즘이 제기하는 질문을 통해서만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사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스트 마르크주의 정치철학의 대표작《포퓰리즘 이성》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개인의 이론서를 넘어, 포스트 마르크주의 정치 이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저작이다. 이 책은 라클라우와 무페가 함께 쓴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 계급 중심 이론 이후 정치적 주체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포스트 마르크주의의 핵심 난제에 본격적으로 답한다.
라클라우는 사회적 갈등이 더 이상 단일한 계급 구조로 환원될 수 없다는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요구는 계급뿐 아니라 젠더, 인종, 문화, 지역 등 다양한 균열을 따라 형성된다. 《포퓰리즘 이성》은 이러한 요구들이 자동적으로 하나의 주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구성과 헤게모니 투쟁을 통해 결합된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즘은 바로 이 결합의 논리다.
이 책에서 포퓰리즘은 계급을 폐기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계급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이 ‘인민’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으로 조직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포스트 마르크주의를 문화적 담론주의로 환원하는 경향과 거리를 두며, 대표와 조직, 권력의 문제를 정치 이론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 결과 이 책은 포스트 마르크주의를 ‘정치 없는 급진성’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헤게모니를 진지하게 사유하는 정치 이론으로 재정립한다. 《포퓰리즘 이성》은 계급 이후의 정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정치를 다시 정치로책의 마지막 장에서 라클라우는 슬라보예 지젝,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 자크 랑시에르 등 동시대 급진 정치 이론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비판의 핵심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정치적 대표와 헤게모니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제거함으로써, 정치를 충분히 사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급진적 단절의 순간을 강조하는 이론, 대표 없는 다중을 상정하는 구상, 정치를 예외적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관점은 모두 정치의 지속성과 구성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라클라우는 대표와 제도, 헤게모니를 정치의 타락으로 보는 시각에 맞서, 그것이야말로 정치가 가능해지는 조건임을 강조한다. 포퓰리즘은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흩어진 요구들이 ‘인민’이라는 이름 아래 결집되는 정치적 논리다.
이러한 라클라우의 문제 제기는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실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여전히 무책임한 대중 영합이나 선심 정책의 동의어로 사용되며, 논쟁을 종결시키는 낙인처럼 기능해 왔다. 그러나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정치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요구가 배제되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인민이 호명되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 한, 포퓰리즘 비판은 도덕적 판단에 머문다. 《포퓰리즘 이성》은 포퓰리즘을 제거함으로써 정치를 정화할 수 있다는 환상을 거부한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문제는 포퓰리즘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어떤 인민이 어떻게 구성되고, 그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으로 조직되는가다. 한국 정치가 다시 대표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묻고자 한다면, 이 책은 더 이상 우회할 수 없는 이론적 문제의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의 포퓰리즘 이해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포퓰리즘을 사회과학 담론(이 담론은 포퓰리즘을 비사유의 영역에 한정 짓고, 완전한 합리성의 지위를 부여받은 정치적 형태의 단순한 대립물로 여긴다)의 주변부에서 구출해 내야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포퓰리즘 운동을 고려할 때, 처음부터 윤리적 비난이라는 강한 요소가 있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격하가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포퓰리즘은 단순히 격하된 것이 아니라 비하되었다. 포퓰리즘의 폐기는 특정 정상성, 즉 위험한 논리들을 배제해야 하는 금욕적인 정치 세계를 담론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이 점에서 반포퓰리즘적 공세의 기본 전략은 19세기 사회과학의 ‘대공포(grande peur)’였던 더 넓은 논쟁, 즉 ‘집단심리학’에 관한 전체 논의에 새겨져 있다. 이 논의는 우리의 주제에서 전형적이며, 넓게는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구분하는 사회적 경계의 구성과 해체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이 논의 과정에서 ‘일탈적’ 정치 현상(포퓰리즘 포함)에 관한 전체 관점을 조직화한 모체로서 작동할 일련의 구분과 대립이 만들어졌다. 이 모체에 대한 고려가 내 출발점이 될 것이다.
텐에서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대중사회에 대한 성찰에 일관성을 제공하는 반복되는 주제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며, 그 주제는 사회적 동질성(또는 비차별성)과 사회적 차별화 사이의 이원성(duality)에 대한 점진적인 이론적 재검토 과정에서 발견된다. 이 과정의 시작점, 즉 우리가 대중 행동에 대한 실정적 평가의 ‘영도(zero degree)’라고 부른 지점에서 이 이중성은 사실상 이원론(dualism)으로 나타난다. 텐에게 사회는 내적 결속력을 희생하는 대가로만 동질화되는 세력에 문을 열 수 있다. 조건의 평등화는 모든 위계와 차별화의 붕괴, 즉 사회 질서의 붕괴를 의미할 뿐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에게 프랑스혁명이라는 피바다는 절대주의가 불러온 획일성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절대주의는 개인과 국가를 연결하는 모든 매개체를 제거해 버렸다. 그에게 사회적 동질성은 모든 종류의 사회조직의 붕괴와 동의어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포퓰리즘, 급진 민주주의 이론을 발전시킨 정치 이론가.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던 시절에 아르헨티나 사회당 중심의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의 탄압으로 대학 강사직에서 해직된 후 1970년대 초 에릭 홉스봄의 도움으로 옥스퍼드대학교에 머물렀다. 1973년 에섹스대학교 정치학과에서 강의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군부가 재집권하자 영국에 정착했다. 에섹스대학교에서 만난 샹탈 무페와 1975년 결혼했으며, 둘은 1985년 사실상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선언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출간했다. 이후 라클라우는 에섹스대학교에서 ‘이데올로기와 담론 분석’ 석박사 과정을 주도하면서 ‘에섹스학파’를 일구었다. 2000년대부터는 포퓰리즘, 마르크스주의, 신자유주의 통치 질서의 정치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그람시 사상, 정신분석학, 언어학과 수사학을 결합해 포퓰리즘, 헤게모니, 급진 민주주의 등 정치 개념과 담론 이론,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아르헨티나 키르츠네르 정부, 스페인 급진 좌파 정당 포데모스의 정치적 자문을 맡기도 했다. 주요 저작으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해방(들)》, 《포퓰리즘 이성》, 《사회의 수사학적 토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