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이미지 개념에 관해 독특한 사유를 펼쳐온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이 그동안 천작했던 사진과 영화 같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언어적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파고든 작업이다. 2022년 메디시스상 에세이 부문을 수상한 이 책에서 디디-위베르만은 드레스덴의 한 문헌학자, 빅토르 클렘페러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비밀리에 쓴 일기를 읽으며 절망 속에서도 결코 파괴되지 않는 나눔의 언어를 발견한다.
출판사 리뷰
『끝까지 증언하는 사람』은 이미지 개념에 관해 독특한 사유를 펼쳐온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이 그동안 천작했던 사진과 영화 같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언어적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파고든 작업이다. 2022년 메디시스상 에세이 부문을 수상한 이 책에서 디디-위베르만은 드레스덴의 한 문헌학자, 빅토르 클렘페러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비밀리에 쓴 일기를 읽으며 절망 속에서도 결코 파괴되지 않는 나눔의 언어를 발견한다.
"나는 끝까지 증언하기를 원한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3개월이 지난 1933년 4월 25일, 빅토르 클렘페러는 자신이 가르치던 대학교 기숙사에 붙은 벽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발견한다. "유대인이 독일어로 글을 쓰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 랍비의 아들로 태어나 한평생 독일어로 쓰고 읽고 가르쳐온 그의 삶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로망스어와 프랑스 계몽주의 문학의 전문가였던 그는 곧 나치가 사용하는 언어에 깃든 파괴적인 격리의 정서를 간파하고 '언어 노트'라고 이름 붙인 일련의 기록에 착수했다. "학술 서적을 빼앗긴 문헌학자로서 그는 끊임없이 그의 시대를 읽었고 그를 추방시킨 공간을 읽었다. 상자 공장에서 노예처럼 하루에 10시간씩 노동을 해야 했던 특히 어려웠던 시기에도 그는 비밀 일기 쓰기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5천여 장의 일기가 일부분씩 차례차례 '아리아인' 친구에게 보내져 어느 이중벽 사이에 숨겨졌다."
이 특별한 일기로부터 출발한 그의 책 『LTI, 제3제국어: 한 문헌학자의 수첩』은 1947년 출간되어 이 시기 다른 중요한 증언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이고 문헌학적인 '기념비'의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1995년, 이 책의 바탕이 된 그의 『일기』가 출간된다. 가택 수사를 받던 중 게슈타포 요원에게 책으로 머리를 얻어맞으면서도 "기필코 일기를 써나갈 것이다. 나는 끝까지 증언하기를 원한다"(1942년 6월 11일 일기)라고 썼던 그의 일기, "놀라운 진실의 문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진정한 진리에의 용기의 기념비"는 그렇게 세상에 공개되었다.
"내 연필을 따라 기어올라 지옥에서 벗어나기"
"모든 실재적 독재의 기저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 독재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전체주의 언어의 주된 용법이자 목표다. 언어에 민감한 문헌학자로서 클렘페러는 나치의 온갖 슬로건과 발표문을 분석하며 "어떻게 전체주의가 개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각인되어 일상적인 언어에까지 스며들었는지" 기록한다. 그런데 디디-위베르만이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증언이나 정확성이 아닌, 일기에서 드러나는 클렘페러 본인의 감정이다.
재판에 불려 나온 증인은 정확할 것을 요구받는다. 사실을 진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목숨을 무릅쓰고 증언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취해야 하는 입장은 무엇인가. 그는 그의 감정까지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클렘페러의 일기가 비범한 이유다. 그의 증언은 복합적인 정서―절망, 공포, 불안, 분노, 수치, 무감각, 모욕, 욕지기, 그리고 '아주 약한 희망'―들을 향한 문학적 증언이며, 이 감정이 전제하는 윤리적 입장, 즉 나눔의 입장을 담은 증언이다. 디디-위베르만에 따르면 "감정들이 우리를 나눈다. 아마도 바로 이것-감정들, 나눔-이 우리가 그토록 자주 타인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어떤 감정이 차올라 표현되고 폭발할 때, 그 감정은 먼저 무슨 일을 하는가? '자아'의 단일성을 분열시키는 일이다." 감정은 우리를 둘로 나눠 안과 밖을 향하게 한다. 나 자신을 향해, 그리고 타인을 향해.
1941년 6월 23일, 클렘페러는 등화관제 지침을 어긴 죄로 일주일 동안 감옥에 갇힌다. 허리띠를 비롯한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한 그는 감옥에서 흘러내리는 바지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 안경과 책을 돌려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하는 그에게 처벌의 위협이 가해진다. 그리고 그가 대학교수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한 부사관이 그에게 종이 한 장과 연필을 가져다준다. 연필을 받은 그가 적은 첫 번째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 연필을 따라 기어올라 지옥에서 벗어난다." 그에게 글쓰기는 하루하루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써내려가는 '곤경의 글쓰기'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저항의 글쓰기'다. 무엇보다 '끝까지 증언하기'란 "증언하는 대상에 거침없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것이다." 아무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끝까지 증언하기로 결심한 드레스덴의 문헌학자, 빅토르 클렘페러의 일기를 읽으며 깨닫게 되는 것은, 언어 속에서 희망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삶이다.
감정들이 우리를 나눈다. 아마도 바로 이것-감정들, 나눔-이 우리가 그토록 자주 타인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어떤 감정이 차올라 표현되고 폭발할 때, 그 감정은 먼저 무슨 일을 하는가? '자아'의 단일성을 분열시키는 일이다. 자아의 모습을 조각내고 영혼과 신체의 온전한 체제를 깨뜨리는 일이다. 모든 것의 짜임새가-자기 안으로든, 자기 밖으로든-이쪽에서 저쪽까지 뒤흔들리게 된다. 그것은 미미할 수도 있고(단순한 균형의 흔들림), 과도할 수도 있다(거대한 미지의 분출). 감정은 세계의 조직에 뉘앙스나 주름을 가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애초에 몰두했던 것이 바로 모든 정신(psych?)의 분열이다. 균열들이 우리 안에서 열리는데-그리고 이로부터 징후들이 솟아나는데-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 갈등의 노리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를 구성하는 요건이다. 즉, 우리는 분리되어 탄생하고, 분리되어 성장하고, 분리되어 사유하고, 분리되어 행위한다.
프로이트가 이런 글을 쓰던 당시에 드레스덴의 한 남자가 홀로 이와 동일한 작업-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1933년부터 착수한-을 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조용히 저항하며, '징후들'에 시선을 두어 당대의 "역사적 진실"과 같은 것을 밝히고자. 이 남자가 빅토르 클렘페러다. 그는 정신분석가도 아니었고 철학자도 아니었다. 단지(물론 이는 잘못된 말이다) 문헌학자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철학자, 미술사학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연구하고 강의한다. 『히스테리의 발명: 샤르코와 살페트리에르의 사진 도상학』(1982)을 시작으로 50여 권의 책을 출간하며 이미지 개념에 관한 독특하고 풍부한 사유를 개진했다. 아비 바르부르크와 발터 벤야민의 충실하고 독창적인 독해를 통해, 르네상스부터 오늘날까지 회화, 조각, 사진, 영화 등 다양한 시대와 매체의 이미지를 감정, 시간, 역사, 기억, 정치 등 다각적 측면에서 이론화해 왔다. 주요 저작으로 『프라 안젤리코: 비유사성과 형상화』(1990), 『이미지 앞에서』(1990), 『시간 앞에서』(2000), 『잔존하는 이미지』(2002),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2004) 등이 있다. 또한 『장소의 우화』(2001), 『아틀라스』(2010), 『봉기』(2016) 등 그의 연구 주제와 관련한 여러 전시를 기획했다. 개념적 엄밀함과 시적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문체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아도르노상(2015), 바르부르크상(2020), 메디시스상(2022) 등을 수상했다.
목차
정서의 독재에 대하여: '하지만은 없다'
분열, 나눔, 격리
빅토르 클렘페러, 전체주의 언어의 문헌학자
나눔, 응시, 저항
비판적 결단: 추악한 언어를 듣기
민중의 목소리는 존재하는가?
잇따른 탄압
정서적 사실의 글쓰기
곤경과 욕지기가 분기할 수 있도록
윤리적 가능성에 대하여: '하지만 …은 있다'
"내 연필을 따라 기어올라 지옥에서 벗어나기"
희망의 시간을 찾아서
이야기가 자원이 될 수 있도록
옮긴이 해제: 감정의 증언, 징후의 몽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