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주목받는 성서학자 김선용 박사가 헬라어 수업을 통해 성서 읽기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단순한 어휘 풀이를 넘어, 당대의 일상과 문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헬라어가 사용되던 세계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최신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이 책은 학술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담백한 문체로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 익숙한 성서 단어들 뒤에 숨은 뉘앙스의 차이를 드러내며, 성서를 낯설고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출판사 리뷰
오랫동안 기다려 온, 성서학자 김선용 박사의 헬라어 수업
“방대한 고전 문헌 연구와 치열한 사유로
생생하게 복원해 낸 헬라어의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다!”
—권연경, 박영호, 송민원, 조재천 추천
처음 헬라어를 만난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습니다. 제가 익힌 여러 언어들 중 가장 완고한 언어였습니다. 오랜 시간 문을 두드린 끝에야 간신히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신약성서를 읽기 시작하자, 의미가 더 분명해지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더 많은 질문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선물이었습니다.
헬라어 공부는 저를 신약성서 27권 너머의 세계로 데려갔습니다. 2000년 전 누군가 파피루스에 쓴 편지, 무덤에 새긴 추모의 말, 시장에서 오간 계약서, 당대 철학자들의 글 등 수많은 고대 문헌을 읽으며, 신약성서 저자들이 걸었던 거리의 공기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기록한 문장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AI가 무엇이든 번역해 주는 시대에 굳이 헬라어를 배워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어는 방대한 데이터로 학습되는 반면, 고대 헬라어 문헌과 연구 자료는 그 양이 매우 적습니다. AI는 이 맥락의 빈틈에서 유독 자주 넘어집니다. 그럴듯하게 말하면서도 없는 것을 지어내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 AI 시대이기에 헬라어 기본기가 더 중요해진 셈입니다. 알고리즘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텍스트를 직접 읽어 내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있습니다.
『헬라어의 시간』은 신약성서와 그리스도교 문헌은 물론 고대 철학과 수사학, 그리스-로마 종교 문헌을 헬라어 원문으로 읽어 온 제 공부의 작은 결실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쓰였고 오늘날도 쓰이는 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은 의미와 뉘앙스에서 적지 않은 간극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단어를 읽으면서도 고대인과는 전혀 다른 심상을 떠올립니다. 이 책은 바로 그 간극을 비춤으로써, 번역에 가려진 풍경을 드러냅니다. 원문을 공들여 읽는 여정이 어떤 선물을 안겨 주는지, 이 책과 함께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징
- 주목받는 성서학자 김선용 박사의 헬라어 수업
- 단순한 어휘 풀이를 넘어, 당대의 일상과 문화 연구를 통해 헬라어의 세계를 복원한다.
- 학술적 토대 위에 단단히 선 에세이: 최신 연구 성과를 담백한 문체에 담아, 읽는 즐거움과 전문성을 동시에 충족한다.
- 성서를 보는 ‘새로운 눈’: 익숙한 단어들 뒤에 숨은 뉘앙스의 차이를 드러내며 성서를 낯설고 깊게 바라보게 한다.
대상 독자
-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충실한 성서 해석 및 설교를 지향하는 목회자와 신학생
- 성서를 더 깊이 있게 읽고 이해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 고전문헌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읽고 싶은 인문 독자
이 책은 한 가지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당대의 문화적 산물이며, 비그리스도인의 용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한편, 후대 신학(특히 개신교 신학)에서 핵심 개념으로 부각된 단어들은 가급적 다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 책은 이미 여럿 나와 있고, 무엇보다 이 책이 또 하나의 신학 입문서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_ 들어가며
기원전 1세기, 로마 제국의 심장부 포룸Forum의 아침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눈부신 지중해의 햇살 아래, 하얀 토가를 걸친 어느 원로원 의원이 대리석 바닥을 딱딱 울리며 군중 사이를 가로질러 갑니다. 그의 당당한 걸음걸이, 수많은 수행원들을 거느린 위세, 지나가는 시민들과 나누는 은근한 눈빛 교환, 청원자들의 인사를 받을 때 고개를 숙이는 각도까지, 이 모든 행동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의 ‘명예로움’을 세상에 전시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한 편의 연극입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명예, 곧 헬라어로 티메(τιμή)는 단순한 체면치레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숨 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소와 같았으며, 명예를 잃는다는 것은 곧 사회적 생명이 끝나는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 최고의 가치로 떠받쳐지는 것처럼 로마 시대는 ‘명예와 수치’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_ 존재의 전복
하나님에 의해 먼저 알려진 바 된 사람은, 이상하기 짝이 없고 무의미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서성거리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됩니다. 이 기다림의 바탕에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아셨고” 온전히 아신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 그리고 그 사실에 토대를 둔 기이한 희망 말입니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놓으신 튼튼한 토대는 든든히 서 있네. 그 토대에는 이런 인증 글이 새겨져 있네. ‘주님이 자기 사람들을 아셨다’”(딤후 2:19, 새한글성경).
_ 존재의 전복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선용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한 뒤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으나, 공부할수록 깊어지는 학문적 갈증에 이끌려 전문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문헌학과 역사비평을 중심으로 철저한 학문 훈련을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은 독일 모어 지벡(Mohr Siebeck) 출판사의 WUNT II 시리즈로 출간되었고, New Testament Studies, Novum Testamentum, Zeitschrift fu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신약논단」 등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문헌을 공부하며, 종교학·헬레니즘 철학·고전 수사학·그리스-로마 종교 등 인접 분야와의 학제간 연구에 힘쓰고 있다. 한국신약학회 「신약논단」 편집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저서로는 『갈라디아서』(비아토르)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N. T. 라이트 갈라디아서 주석』(복 있는 사람), 『초기 유대교』『바울에 관한 새관점』(감은사),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예수의 마지막 날들』(비아)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1. 존재의 전복
명예τιμ: 남을 깎아내려야만 내가 산다?
하나님에 의해 알려진 바γνωσθντε π θεο: 그분이 나를 먼저 아셨다
클레토스κλητ와 아가페토스γαπητ: 신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름표
어린이παιδον: 사회적 죽음을 껴안은 예수
케팔레 고니아스κεφαλ γωνα: 머릿돌인가 이맛돌인가
2. 관계와 윤리
우정φιλα: 목숨을 걸고 진실을 말하다
용서φημι, φεσι: 감정이 아닌 법적 탕감
피스티스πστι: 충성과 신뢰
자족ατρκεια: 파도 속에서 중심을 잡는 판단력
도키마제인δοκιμζειν: 분별하는 지성의 탄생
3. 하나님과 예수의 ‘감정’
혐오μσο: 존재의 소멸을 바라는 것
분노ργ: 하나님의 분노, 그 오해된 감정에 관하여
스플랑코니조마이σπλαγχνζομαι: 애끊는 자비
4. 종말과 시간
십자가에 달려 계신 자Χριστ σταυρωμνο: 결코 멈추지 않는 완료 분사
희망λπ: 희망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구원
프뉴마적인 몸σμα πνευματικν: 천상의 물질?
카이로스καιρ: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타이밍으로
구원σωτηρα: 멸망에서 보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