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조선 후기(17~18세기)를 중심으로 한 사법제도 개혁의 배경과 형정 운영의 메커니즘을 심도깊게 탐구한 역작이 나온다. 저자는 계량화와 사례조사를 교차시켜 국왕권과 민간사회의 상호작용 결과 이루어진 일련의 제도개혁을 다각도로 고찰한다. 유가적 통치 이상과 실제 관행 사이의 모순을 추적하는 저자의 역동적인 앵글은 조선시대 형정의 거대한 흐름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출판사 리뷰
유교국가에서 형사법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추국기록 일체의 계량화와 통시적 시야로 조선조 형정 운영을 종람하다
조선 후기(17~18세기)를 중심으로 한 사법제도 개혁의 배경과 형정 운영의 메커니즘을 심도깊게 탐구한 역작이 나온다. 저자는 계량화와 사례조사를 교차시켜 국왕권과 민간사회의 상호작용 결과 이루어진 일련의 제도개혁을 다각도로 고찰한다. 유가적 통치 이상과 실제 관행 사이의 모순을 추적하는 저자의 역동적인 앵글은 조선시대 형정의 거대한 흐름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통계 및 사례분석의 연구방법
이 책의 초점은 조선 후기 형정개혁에 맞춰져 있지만, 기본적인 시야는 조선시대 형·사법 전반에 두루 미쳐 있다. 저자는 우선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선의 중앙집권적 통치구조 아래 의금부, 형조 중심의 추국과 경국대전 체제, 자백과 결안 중시의 형사제도 등 조선시대 형정의 기본틀을 소개한다. 그다음 조선 후기 사법개혁이 추진되는 배경과 진행 과정을 추적한다. 양란 이후 사회경제적 변동으로 갈등이 심화되어 법치 운영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민의식이 성장하면서 기존의 법체제 개편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러한 거시적 조망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추안급국안》(1601년〔선조 34〕~1892년〔고종 29〕) 전체에 실린 약 300년 동안의 방대한 형사 정보와 개인 정보를 모두 추출하여 계량화하였던 데에 기인한다. 저자는 이 데이터를 최대한 다루되, 《추안급국안》에 누락된 사건과 판례는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관찬사료와 다른 공초기록으로 보완함으로써 통계분석과 사례분석을 동시에 활용하였다. 이로써 조선조 형정체제 안에서 탕평기 사법개혁의 성격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 책이 18세기 형정개혁에 대한 기존 견해 –개혁긍정론, 개혁부정론, 개혁이면론-를 넘어서 종합적이고도 입체적인 관점을 확보할 수 있는 이유도 이에 연유한다.
왕조시기 형사법제도의 개혁 과정
사법제도 개혁에는 선 문제점 발생 - 후 제도 변경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바, 저자는 그 과정을 복합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탕평정치기 형사사법 개혁의 단계를 숙종 대의 “형정 문제 대두기”, 영조 대 “형정개혁 모색기”, 정조 대 “형정개혁 정립기”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국왕의 법의식과 신료들의 형정론을 교차시켜 보여 줌과 동시에 각 왕대별 형정 운영의 변곡점을 짚어 서술한다. 숙종 대에는 경신, 기사, 갑술환국이라면, 영조 대에는 무신란이고, 정조 대에는 정유역변이 그 전환점이다. 학술서이면서도 왕권과 신권이 충돌하는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롭게 다뤄져 있다. 또한 이 책은 국가권력과 민간사회의 길항작용이 형정 변화를 추동해 나가는 데에도 주목한다. 숙종이 인현황후 폐비 반대 상소를 올린 박태보를 법외악형인 압슬형과 낙형으로 결국 물고(고문치사)시킨 사건(1689: 숙종15)이 부정적 여론을 일으켜 숙종 15~46년에는 악형이 거의 시행되지 않았던 것은, 국왕의 천단적 형사법 남용을 관료와 민간의 여론이 제약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로 보듯 이 책은 형정개혁에 대한 단선적 이해가 아닌 사건사와 제도사를 아우르는 입체적 접근을 돕는다.
왕법王法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저자는 조선 후기 형정개혁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가운데 국왕의 형벌권이 어떻게 법률원칙에 의해 점진적으로 제약되어 나가는지에 중점을 둔다. 박태보 사후 법외악형은 줄었지만 숙종은 법정고신을 늘려서 물고자 수를 증가시켰다. 그 폐해를 타개하고자 오히려 국왕 직단으로 결안생략 처형을 정착시켰다. 영조는 대대적인 형률개혁을 단행하고 소통의 정치를 지향하여 조보에 추국청 정보를 공개하였고 국왕의 전제적 형벌을 제한하려 하였다. 그러나 내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결안생략 처형을 인정하고 포도청의 악형을 활용하는 등 ‘비상 형정’을 가동하였다. 무신란 이후 정착된 추국청과 포도청의 이중 심문 구조는 피의자의 신체적 형벌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자 영조 후반기에는 추국청으로부터 포도청으로 이뤄지는 하향이송을 제한하였다. 정조는 영조의 흠휼정책을 계승하여 결안생략 처형을 금지하고, 피의자의 신체훼손을 최소화하여 추국청 물고 비율을 감소시켰으며, 지방사법기관의 역모 추국의 예비조사를 활성화시키는 등 법률에 의거한 절차적 효율을 증진시켰다. 이로써 왕권에 의한 신체폭력의 폐해는 점차 줄어들고 흠휼원칙이 실제 형정에 정착되어 나갔던 것이다. 17~19세기 추국의 물고자 비율이 낮아지고 국왕별 사형자 고신 강도가 약해지며 국왕별 물고자 비율은 낮아지는 현상을 수치화한 표와 그림들은 이 사실을 한눈에 입증시켜 준다.
왕권 강화와 피의자의 생명 보호, 공권력과 민간사회, 법률과 판례 등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전근대사회에서 더욱 첨예했다. 그렇기에 저자는 사법개혁의 순차적 발전과정 사이사이에 모순과 역행, 퇴보와 양면성들도 아울러 살펴봄으로써 “개혁이 비선형적으로 진전되고 현실화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 준다. 또한 저자는 왕권에 의한 폭력이 제약되고 개인의 신체적 생명을 중시하는 18세기 형정개혁의 방향성이 순조~고종 대에도 연속됨을 확인하여 ‘18세기 준법재판, 19세기 위법재판’이라는 기존 통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토록 복합적인 주제를 명쾌하고도 일목요연하게 분석한 이 책은 조선시대 법제사 연구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전후 법제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회정치사 심층 연구의 한 기준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행정부하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임시대책을 활용하였다. 기존 행정기관의 군사적 기능을 확대하는 동시에, 이들에게 수사권을 폭넓게 부여하여 추국청의 기능 부하를 상쇄하였다. 추국청의 역모 피의자를 포도청이 대신 심문하게 한 조치는 형사사법 관례에 대한 파격이었다. 원래 포도청은 형조, 의금부와 비교하여 낮은 수준의 범죄자를 심문하도록 되어 있었고, 만약 추국청과 연동하여 활동하더라도 그 기능은 체포 및 강상죄인 심문에 철저하게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포도청은 치도治盜라는 도적대응 기관으로서 역모 죄인과 같은 정치범에 대한 심문 권한은 지속적으로 차단되어 왔다.
그러나 영조는 무신란이라는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단 포도청의 심문 기능을 확대하는 파격적 조치를 취했다. 포도청에는 역모죄인을 심문하는 권한이 임시적으로 부여되었다. 추국청에서 자백하지 않는 죄인을 포도청으로 내려보내 심문을 위탁하는 사례들이 나타났고, 이들을 심문하기 위해 주리틀기라는 악형 방식이 국왕의 명령으로 허용되었다. 무신란 수습 이후 포도청의 활약은 높은 평가를 받아 포상의 대상이 되었고, 영조는 추국청의 심문대행 하위기관으로 포도청을 점차 활용하게 되었다. 영조 스스로의 발언에 빗대면 포도청이 추국청의 ‘막부화’가 되고 있었다.
정조 시기는 추국청에서의 물고 문제가 해소되기 시작한 전환기였다. 추국청에서의 물고는 지속적인 문제로 여겨져 왔다. 광해군에는 전체 추국대상자의 절반이 넘는 52.1%가 물고 당할 정도로 추국청은 혹독하기로 알려졌다. 인조, 효종, 숙종대까지 10~20% 내외를 유지하던 물고 비율은 포도청 악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영조 대 22.8%로 급격하게 높아졌다. 그러나 물고자 비율은 정조 대 10.9%대로 50% 이상 감소하였고, 이후 19세기 통틀어 9명에 불과할 만큼 추국청에서의 물고는 종식되어 갔다.
더 구체적으로 정조 시기에 물고가 발생한 사건들을 검토해 보면 물고 사건들이 대체로 병신옥사·정유역변 등 정조 초기 정변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관련 사건들인 정조 1년(1777) 이종악 추국, 전흥문 추국, 정조 2년(1778) 홍양해 추국에서 물고자 총 12명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정조 대 추국청 물고자 21명 중 57%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정조 대 물고자가 발생한 시기는 여전히 영조 대의 추국 폐습이 강하게 잔존하던 정조 초반기에 집중되어 있었고, 폐습을 정비해 간 나머지 시기에서는 점차 물고가 억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진혁
조선시대 법제사 전공,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부설 강진다산실학연구원 전문연구원을 역임했다. 조선의 법과 사회를 주제로 연구와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17~18세기 추국청의 혹형(압슬형, 낙형) 시행 추이〉, 〈숙종 대 부당 형벌 논란과 형정운영의 변화〉, 〈18세기 을해옥사 연좌인의 제주도 역모 사건과 연좌 통제 강화〉, 〈정조 대 흠휼전칙 시행과 인명 보호의 강화〉, 〈조선 초기 ‘연좌(緣坐)’ 법률 정비와 집행 추이〉 등이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_3
화보 _10
I. 머리말 _15
II. 숙종 대 탕평책의 대두와 국왕직단 추국 _29
1. 추국제도의 구축과 양란 이후 변동 _31
1) 《경국대전》의 편찬과 추국제도 구축 _31
2) 자백필수주의와 결안結案 원칙의 정립 _51
3) 양란 후 체제 동요와 형정 변동 _74
2. 탕평책의 대두와 형률 개수 _89
1) 환국의 출현과 탕평책의 대두 _89
2) ‘정왕법正王法’론과 형정정비론의 부상 _105
3) 형률 개수와 《전록통고典錄通考》의 편찬 _132
3. 환국의 심화와 국왕직단 추국 _142
1) 경신환국(1680)과 번옥反獄 _142
2) 기사환국(1689)과 악형 물고物故 _161
3) 갑술환국(1694)과 결안생략 처형 _177
III. 영조 대 형정개혁 모색과 비상 추국 _199
1. 형정개혁의 모색과 형률 재편 _201
1) 무신란(1728) 수습과 특령 조치 _201
2) ‘수법봉공守法奉公’론과 흠휼欽恤의식의 모색 _209
3) 형률 재편과 《속대전》의 편찬 _234
2. 국왕 주도적 관휼寬恤 추국 _250
1) 국왕 친림추국의 확대 _250
2) 악형惡刑·남형濫刑의 퇴조 _270
3) 추국실황의 조보朝報 반포 _281
3. 무신여당 창궐과 비상 추국 _298
1) 무신여당(1730~1763)과 특령 조치 심화 _298
2) 결안생략 처형의 증대 _309
3) 포도청 국문 도입과 물고의 증가 _323
IV. 정조 대 형정개혁 정착과 의법依法 추국 _353
1. 형정개혁의 정착과 형률 발전 _355
1) 정유역변(1777)과 특령 조치 폐습 _355
2) ‘신명구법申明舊法’론과 흠휼의식의 진전 _365
3) 형률 발전과 《대전통편》의 편찬 _388
2. 절차 중심적 의법 추국 _400
1) 국왕·위관 종합 추국으로의 개편 _400
2) 의법 절차 심문 확립 _410
3) 포도청 하송 금지와 물고의 감소 _422
3. 탕평정치기 형정개혁의 성과와 19세기 추국 _434
1) 추국청 전담 원칙의 완화와 상향식 추국 확대 _434
2) 자백필수주의의 이완과 심문편집 결안 판결 창출 _457
3) 19세기 흠휼형정의 제도화와 지속 _487
V. 맺음말 _503
국문 요약 _513
표와 그림 차례 _517
참고문헌 _519
찾아보기 _529
부록 _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