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동일의 소설집 『청춘의 소멸』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히려 자신에게 더 엄격해지기를 선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작 『불 꺼진 나의 집』에서 삶의 경계에 선 인물들의 내면을 절제된 문장으로 포착해 “낱낱의 사실보다 보편적 진실을 중시한다” “한 시대의 지도”라는 평가를 받았던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그 질문을 한층 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이 소설집에서 청춘은 열정이나 가능성의 이름이 아니다. 떠날 수 있었음에도 떠나지 않고, 저항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를 단속하는 태도 속에서 청춘은 서서히 소모되는 상태로 존재한다. 표제작 「청춘의 소멸」에서 도시는 탈출의 대상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무대이며, 고독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조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구류 3일」은 성범죄 사건이라는 첨예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진실의 판별이나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대신 한 인물이 여론과 제도, 윤리의 언어 속에서 소비되고 처벌되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판단을 유예한 채 책임을 감당하는 태도를 그린다. 또 다른 작품 「책」에서는 창작자가 세계를 통제하려는 욕망 끝에, 끝내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작업과 마주하며 스스로 붕괴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청춘의 소멸』은 위로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도망치지 않는 대신 스스로를 깎아 나가는 선택은 패배인가, 존엄인가. 이 소설집은 그 질문을 단정하지 않은 채, 오래 남겨두는 서사로 독자 앞에 놓인다.
출판사 리뷰
나민애 교수·이병률 시인 추천!
도망치지 않는 대신, 스스로를 깎아 나간 사람들
한동일 신작 소설집 『청춘의 소멸』한동일 작가의 신작 『청춘의 소멸』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전작 『불 꺼진 나의 집』에서 삶의 경계에 놓인 인물들과 개인의 기억이 남기는 잔상을 조용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포착한 바 있다. “낱낱의 사실(fact)보다 보편적 진실(truth)을 중시한다”는 평가와 함께, “한 시대의 지도(地圖)”가 되어 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청춘의 소멸』은 그 연장선에서, 기억 이후의 선택, 선택 이후의 책임이라는 질문을 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전작이 삶의 경계에 선 인물들의 정서를 응시했다면, 이번 신작 소설집은 그 경계 이후의 선택과 책임을 더욱 날카롭게 묻는다.
『청춘의 소멸』은 실패한 청춘의 이야기라기보다, 실패를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선택을 끝까지 따라가는 소설집이다. 이 책의 인물들은 무너지기 직전의 순간마다 도망치거나 저항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에게 더 엄격해지는 길을 택한다. 그 선택은 외부의 폭력보다 더 조용하고, 더 지속적인 방식으로 이들을 소모시킨다.
청춘이 사라지는 방식들표제작 「청춘의 소멸」에서 도시는 탈출해야 할 공간이 아니다. 떠날 수 있었음에도 주인공은 끝내 도시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도시는 인물을 가두는 감옥이기보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마지막까지 증명해야만 하는 무대에 가깝다. 떠나는 대신 남는 선택, 저항하는 대신 견디는 태도 속에서 고독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청춘은 이 작품에서 폭발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타 사라지기보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상태로 그려진다.
이러한 소진의 윤리는 「구류 3일」에서도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성범죄 사건이라는 첨예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소설은 진실을 판별하거나 결론을 내리는 데 도달하지 않는다. 대신 한 인물이 의혹과 여론, 제도와 도덕의 언어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처벌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끝까지 ‘그리지 않는 자’로 남는 화가의 반복되는 자화상은 타인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회피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서조차 빠져나오지 않겠다는 윤리적 고집으로 읽힌다. 여기서 청춘은 억울함을 외치거나 결백을 증명하는 대신, 판단을 유예한 채 그 자리에 남아 책임의 무게를 감당한다.
또 다른 소설 「책」에서는 통제의 욕망이 보다 내밀한 차원에서 파국으로 이어진다. 창작자는 세계를 정밀하게 설계하고 장악하려 하지만, 끝내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타인도 제도도 아닌 ‘자신의 책’이다. 출판과 편집, 정확성과 인정이라는 문제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소설은 창작자 내부의 윤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압박하고 붕괴시키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청춘은 더 이상 미완의 가능성이 아니라, 완벽을 요구하는 윤리 앞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는 태도로 나타난다.
소멸을 판단하지 않는 서사『청춘의 소멸』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모두 다른 사건과 인물을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질문을 향해 수렴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소설집에서 청춘은 열정이나 가능성의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과한 윤리를 끝까지 수행하려는 태도로 존재한다.
한동일의 소설은 언제나 쉽게 공감되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선택한 태도와 그 이후의 상태를 오래 응시하게 만든다. 그것은 독자에게 위로나 해답을 건네기보다, 판단을 유예한 채 같은 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방식의 서사다.
『청춘의 소멸』은 청춘을 잃은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떠날 수 있었음에도 떠나지 않기로 한 순간, 저항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를 더 엄격하게 다루기로 한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소멸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이 패배인지, 존엄인지, 혹은 그 둘이 분리될 수 없는 상태인지를 끝내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소설집이 청춘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그 소멸의 시간을 하나의 상태로 놓아두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도망치지 않는 대신 스스로를 깎아 나가는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도시의 요구에 적은 돈은 금세 바닥났다. 소소했던 일상마저 단조로워졌다. 쉽게 맺은 관계는 거리를 두었고, 소비는 줄였다. 어쩔 수 없이 도시 밖의 부모님에게 의지했다. 나와 부모님 양쪽을 동시에 갉아먹었다. 그럴수록 나의 조바심은 짙어졌고 부모님의 불안도 함께 커졌다.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을 뿐, 나는 여전히 부모님 아래에 서 있었다.
도시의 관계는 필요로 이루어졌다. 얕았고 잘라 내기 쉬웠다. 하지만 나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니 팔다리가 묶인 채 점점 그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그들과는 미소 가득한 도시광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한동일
대학에서 심리학과 국문학을 전공했다. 2024년 소설 『불 꺼진 나의 집』을 출간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목차
청춘의 소멸
구류 3일
책
작가 인터뷰
축하의 말―나태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