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인문,사회
팬데믹 시대에 읽는 동의보감 강의 이미지

팬데믹 시대에 읽는 동의보감 강의
북튜브 | 부모님 | 2021.07.08
  • 정가
  • 10,000원
  • 판매가
  • 9,000원 (10% 할인)
  • S포인트
  • 500P (5% 적립)
  • 상세정보
  • 18.2x11.2 | 0.144Kg | 144p
  • ISBN
  • 9791190351898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1~2일 안에 출고됩니다. (영업일 기준) ?
    출고일 안내
    출고일 이란
    출고일은 주문하신 상품이 밀크북 물류센터 또는 해당업체에서 포장을 완료하고 고객님의 배송지로 발송하는 날짜이며, 재고의 여유가 충분할 경우 단축될 수 있습니다.
    당일 출고 기준
    재고가 있는 상품에 한하여 평일 오후3시 이전에 결제를 완료하시면 당일에 출고됩니다.
    재고 미보유 상품
    영업일 기준 업체배송상품은 통상 2일, 당사 물류센터에서 발송되는 경우 통상 3일 이내 출고되며, 재고확보가 일찍되면 출고일자가 단축될 수 있습니다.
    배송일시
    택배사 영업일 기준으로 출고일로부터 1~2일 이내 받으실 수 있으며, 도서, 산간, 제주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묶음 배송 상품(부피가 작은 단품류)의 출고일
    상품페이지에 묶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은 당사 물류센터에서 출고가 되며, 이 때 출고일이 가장 늦은 상품을 기준으로 함께 출고됩니다.
  • 주문수량
  • ★★★★★
  • 0/5
리뷰 0
리뷰쓰기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 도서 소개
  • 출판사 리뷰
  • 작가 소개
  • 목차
  • 회원 리뷰

  도서 소개

전지구적 재난의 시대, 『동의보감』을 통해 만나는 건강한 삶과 세계를 위한 비전! 이 책은 팬데믹과 기후위기 등 전지구적 재난의 시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이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나아가 전지구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사상적 전환이 필요할지 그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서구적 지성이 현대의 풍요를 가지고 왔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분류하고 분석하면서 개개인의 삶을 파편화시켰고 지구의 전체적인 균형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는 것. 이에 지은이는 『동의보감』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유동적 지성을 지금의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학문적 지성으로 새롭게 구성해 내고, 그것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과 세계를 만들어 나가자고 이야기한다.

특히 이 책에서 지은이가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도가적 사유인 ‘황로학’(黃老學)과 ‘무위지치’(無爲之治)이다. ‘황로학’은 중국 한나라 초기의 정치적·사상적 사유 전통으로 『동의보감』 역시 이 사상의 지대한 영향 속에서 편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황로학의 핵심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위지치’인데, 이때의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유위’, 즉 ‘함’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지금까지 삶을 병들게 했던 상투적이고 반복적인 신체적·감정적 행위들을 멈추고, 거기에 소모되던 에너지를 창조의 방향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무위지치’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창조적인 방향 전환이 바로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양생’이며,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독자들에게 그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자 했다.

  출판사 리뷰

팬데믹 시대에 읽는 동의보감 강의
지은이 인터뷰


1.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책 『팬데믹 시대에 읽는 동의보감 강의』는 현대의학의 ‘분석적 지성’은 이런 전지구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전망하면서 그 대안으로 ‘유동적 지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분석적 지성’과 ‘유동적 지성’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일단 전제를 둬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책은 개인의 입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시대를 해석하고 체제를 평가하는 것은 개인이 시대의 무의식이나 사회체제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지, 거시정치적 차원에서 혹은 역사적 관점으로 이 시대를 이렇게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개인은 몸을 돌봐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어요. 그런데 그건 개인적인 문제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죠. 그래서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삶이란 게 몸, 마음, 관계성, 시대성 등이 섞여서 통째로 움직이거든요. 별일 없을 때는 그럭저럭 살 만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모든 것이 얽히기 시작하면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삶을 분절화시켜서 몸은 의사에게, 마음은 상담으로, 관계는 법으로, 시대의 문제는 제도에 맡기게 되고, 그 외, 기타 등등은 유튜브에서 찾아봅니다. 그 분절된 지식들의 해석이 자기 해석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거죠. 그러면 결국 내 삶의 주체가 그런 권력 장치들 안에 포획된 거 아닙니까? 그 절편된 분석을 가지고 잘 종합을 하면 될 것 같지만,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기엔 자기 해석의 틀이 너무 빈곤합니다. 그래서 또 다시 그런 힘들에 의존적으로 예속되고 자기 삶은 소외되어 버립니다. 자기 몸과 삶과 자기를 둘러싼 시대를 해석할 방법론이 없어요. 많은 학문적 해석에서 개인은 늘 거시적 해석의 대상인 집단 구성원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개인이 자기의 몸과 삶과 시대를 한꺼번에 놓고 해석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다른 개인이 시련을 극복하고 터득한 사적 덕담 말고, 뭔가 방법론으로서의 장치가 있느냐는 게 저의 질문입니다. 마침 팬데믹 시대가 왔고, 굳건하게 지켜오던 사회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도 생체권력도 갈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분석적 지성이 자기 영역 내에서 해석을 하고 방편을 도출하기도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어쩌면 팬데믹 상황은 분절될 수 없는 어떤 흐름으로 파악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 그 속에서 개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시대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까, 그런 것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기존의 분석적 학문체계로는 그게 좀 어렵다고 생각해요. 분석은 쪼개서 본다는 것이죠. 막연한 전체로 주어진 대상을 요소나 부분으로 나눠서 보겠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대상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시간도 분절시켜야 하니까 멈춰야 하겠죠. 그리고 분절된 것들로부터 분류가 일어날 테고 그걸 설명하는 개념어들이 생겨납니다. 대개의 학문은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분석의 기법이 더 고도화될수록 개념어들은 더욱 제한적으로만 사용됩니다. 한마디로 전문용어가 되는 거죠. 그러면서 분석적 사유는 자신이 만든 개념어 안으로 다시 구속되는데, 그 사용 방식이 엄밀할수록 학문은 더욱 폐쇄적이 되어 가죠. 그래서 하나의 학문 안에서 사용되는 특정 개념어는 다른 학문 체계에서 막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문의 분석적 엄밀함은 그 자체로 학문적 위상을 높이고 뭔가 일류 발전에 나름 기여를 하고 있는 반면, 전체를 아우르거나 시간과 함께 지속되는 총체적 흐름을 보긴 어려운 겁니다.
삶은 통째로 우리에게 지각되고 인식됩니다. 몸이 아픈 것 따로 있고 일과 관계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섞여서 때마다 밀도를 달리하며 우리에게 총체성으로 다가옵니다. 그 연계성과 총체성은 각각의 절편된 분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주로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하는 키를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석적 지성의 분절성을 넘어서는 지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전적으로 분석의 반대말은 종합입니다. 사실 하나의 학문 안에서 분석은 종합과 맞물려 있습니다. 분석된 것들은 분류를 통해 다시 종합을 하기도 하니까요. 제가 말하려고 하는 분석의 대척점에 있는 건 그런 종합이 아니고, 분절되기 이전의 막연한 전체를 통째로 볼 수 있다거나, 분절이 되더라도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엔 시간의 흐름이라는 전제와 직관의 능력이 요구됩니다. 고립된 개념어들을 넘어선 총체성으로서의 지성, 이걸 두고 유동적 지성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2. 이 책은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동양적 사유 전통에 흐르고 있는 ‘유동적 지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요. 유동적 지성을 살펴보기 위한 중심적인 텍스트로 『동의보감』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동의보감』의 이론적 뿌리는 역학(易學)과 황로학(黃老學)입니다. 황로학은 도가와 도교 사상의 원류예요. 도가사상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흐름 그대로를 추구합니다. 황로학은 이 도가적 무위자연에 위에 법가의 질서를 조화시켰어요. 황로학은 이 조화를 바탕으로 한나라 초기에 정치철학으로 응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정치사상은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과 통합니다.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 그러니까 인위적 정치력을 최소화시킨 통치술인 건데 여기에 조금 더 적극적인 법치적인 질서를 더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를 무위지치(無爲之治)라고 합니다. 한의학의 가장 오래된 의서인 『황제내경』 역시 이런 황로학적 기반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정치철학과 의학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치국(治國)의 문제를 치신(治身)과 연결하는 겁니다. 황로학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몸은 우주자연의 시스템이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다시 몸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으로 확장되는데요. 몸의 원리와 자연의 원리 그리고 사회 체제의 원리를 연결시키는 거죠. 이렇게 ‘몸과 우주’라는 연결체가 만들어지고 이런 원리가 초기 황로학에서는 실제 거시정치의 이념으로 쓰이게 됩니다. 후기로 갈수록 이런 이념이 정치판에서 사라지면서 황로학은 개인의 수양을 위주로 한 도교적 수련법으로 전환됩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 초기 황로학의 정치적 성향이에요. 몸의 원리가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로 연결되는 이런 통치술을 삶을 관리하는 유동적 지성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거시정치가 아니라 개인의 미시정치 차원에서요. 그렇다면 몸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몸의 원리로부터 세상의 원리로 확장시키려면 말이죠. 그런데 황로학이 거시정치차원에서 사용될 때는 몸에 대한 구체적인 의학적 탐구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의학의 진단학적 구체성보다는 몸과 연결된 사회 현상과 우주의 원리를 통해 고도의 통치술로 활용되는 쪽에 방점을 둡니다. 의학의 구체적이고 세밀한 진단학은 개인의 차원에서만 적용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를 개인의 미시정치로 응용하려면 의학적 진단학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때는 개인이 거시정치의 맥락 속에 끼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체인 개인의 몸을 중심으로 대인관계와 시대성이 개인에게 현상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선 한의학의 황로학적 원류인 『황제내경』을 텍스트로 삼으면 되겠지만, 저는 『동의보감』을 선택했습니다. 『동의보감』 안에는 『황제내경』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고, 또 후대 의가들이 의학적이고 사상적으로 확장한 내용도 풍부하게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3. 이 책에서는 『동의보감』의 여러 면모들 중에서도 특히 도가적인 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합니다. ‘황로사상’과 ‘무위지치’ 등 이 책에서 소개하고 계신 도가적 사유들이 어떻게 오늘날의 양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몸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괜찮은 방법이죠. 자기 몸의 상태는 마음과 관계 그리고 삶 전체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의 진단을 통해 어떤 무위지치적인 삶의 처방을 내릴 것인가를 궁구하면 좋습니다. 그건 <도담학당>(https://cafe.naver.com/dodamsmap)에서 배우시면 됩니다. 물론 그런 과정을 꼭 거치지 않더라도 응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황로학의 무위지치는 무위(無爲) 사상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법가적 질서인 유위(有爲)를 얹었습니다. 무위는 뭘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유위는 ‘인위적인 함’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표면적이고 공유되고 있는 세상은 유위의 세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질서가 필요하죠. 이 세상에서 생존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그런 일들이 유위입니다. 그런데 그 바탕이 무위적이라는 것은 모든 유위는 수명이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거시정치 차원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통일된 천하를 잘 경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치국의 문제로서 무위지치를 다루었다면, 개인 삶을 다스리는 통치술로서의 무위지치는 이런 깨달음의 차원에서 응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허무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실패와 좌절, 이별과 배신을 경험합니다. 이런 삶의 위기에서 우리는 무력감과 허무함을 느낍니다. 이 허무는 소유한 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허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극복이라는 게 잠시 눈을 가리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유위의 세계 안에서만 경험되는 것일 뿐, 더 깊은 무위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허무가 극복이 아니라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번뇌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많은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무위는 그런 유위적 의미를 허구로 무화시킵니다. 허무의 전략이란 이런 겁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던 소중한 그 무엇이 없어져서 허무한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과연 소유할 수 있는 것인가, 소유 자체가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근원적 허무를 발견하는 거죠. 그럼으로써 소유냐 비소유냐의 정지된 상태가 아닌 흐름의 관계망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리게 되는 전략입니다. 이것이 허무의 전략인 겁니다. 그런 시야가 열리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어떤 추동력이랄까, 희열 같은 게 일어나는데, 이것은 무위지치에서 매우 중요한 유위적 가치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혼돈과 무위의 세계를 볼 수 있다 해도 결국 우리는 유위의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위지치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양생이란 게 도가 혹은 황로학적 이론을 베이스로 깔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활용도 일종의 양생적 응용법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몸에 대해서 더 잘 살피는 것이겠지만요.

4.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시대에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독자들이 할 수 있는 실천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적절한 경쟁은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로 쓰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 적절함의 정도를 넘어서지요. 극심한 경쟁에서 스트레스 강도는 매우 높습니다. 경쟁에서 밀리면 비교당하고 망신당하죠. 경쟁 우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하니까 스트레스 강도는 비슷할 겁니다. 그게 계속되다 보면 몸이 망가집니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조차도 몸을 해치는 경우가 많아요. 술, 담배로 스트레스를 풀다가 다음날 또 경쟁에 내몰리고. 그런 게 되풀이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경쟁시스템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여기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면, 뭔가 삶의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하겠죠. 우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을 바꾸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쓸데없이 버리는 시간, 특히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몸을 해치는 시간들을 줄여서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운동입니다.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이 패턴을 바꿀 동력도 생기지 않아요. 너무 격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운동을 해서 체력을 점차 올리세요. 다른 하나는 자기 삶에서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겁니다. 공부를 하건, 그림을 그리건, 일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취미 이상의 프로페셔널한 정도의 실력을 키워 가는 겁니다. 그게 무엇이건 이것저것 하는 게 아니라 하나를 공들여 파고드는 거죠. 그러면 새로 생성한 또 하나의 세계가 자기 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체력도 올라가고 자신감도 생길 테니 경쟁체제 안에서 좀 더 건강하게 버틸 수 있겠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영향력은 또 하나의 세계에서 체험하게 되는 생장소멸, 희로애락의 이치를 고스란히 자기 일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건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떤 밀도 높은 통찰력 같은 거죠. 그 통찰은 치열한 경쟁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를 놀라울 정도로 감쇠시킵니다.
제 지인 중에 금융기관에서 오래 동안 일하고 있는 간부가 한 분 있습니다. 거기도 경쟁이 치열했겠죠. 이 분도 그 경쟁 속에서 조급해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맨날 술, 담배를 달고 살았고요.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어서 그때부터 술, 담배 끊고 철학과 글쓰기에 빠져들었죠. 운동도 하고요. 그렇게 두 개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면서 묘한 자신감이 생기더랍니다. 이 경쟁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전처럼 종속관계에 놓여 있는 건 아닌 상태를 느낀 겁니다. 그의 표현으로는 “그 스트레스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지만 ‘관’(觀)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경쟁체제에서도 좀 여유를 갖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일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세번째 질문에서 답했던 내용과 연결됩니다. 그의 철학 공부가 경쟁체제라는 인위적이고 정지된 세계로부터 더 큰 흐름의 세계를 열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광활한 혼돈과 무위의 세계를 볼 수 있다 해도 결국 유위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삶의 희열과 추동력입니다. 이 분은 그 힘을 완전히 다른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얻게 되는 거죠. 그의 표현대로 “남에게 꼭 보여 줄 필요 없이 생산하면서 향유”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어렵다면, 그리고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라면, 극심한 경쟁체제로부터 과감하게 탈출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겠죠. 『오자병법』에 “강한 적군을 만났을 때는 피해야 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인 병법에 어긋나지 않다”고 했습니다. 때론 피하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자연’은 우리가 아는 자연, 즉 나무나 풀, 돌,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존재가 만나고 상응하는 모든 외부 대상을 말합니다. 이런 자연까지가 몸이라고 설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깥세상의 모든 것, 예를 들어 친구들, 내가 있는 공간의 분위기, 공기, 이 모든 것이 내 몸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겁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외부 자연과 동떨어진, 세계와 동떨어진 그런 존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혼자 방에 앉아 있을 때도 의자에 앉아 있고 벽을 마주하고 있죠. 잠을 잘 때도 베개와 이불, 방이라는 공간과 항상 상응을 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몸은 없습니다. 이게 자연스러운 것이죠. 우리의 몸속을 들여다보더라도 장에만,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의 몇 배 정도 되는 세균이 살고 있다고 하죠. 그런데 그 세균이 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세균들이 없으면 우리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 세균이라는 타자와 함께 몸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약을 주고 침을 놓고 수술을 하는 것인데요. 가령 의사가 상처를 봉합하더라도 상처가 붙고 아무는 것은 내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이런 관점은 다시 병의 원인이 삶에 있다는 관점으로 이어집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삶의 주체가 ‘나’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방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운동을 하고…, 이런 것들을 다 내가 하는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소우주로서의 내가 주체로서 생명력을 고양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병원에서도 의사한테 모든 걸 맡기는 사람이랑, 이 병이 어디서 왔는지를 고민하고 치료의 주체가 나라는 마음가짐인 사람이랑 회복하는 정도가 굉장히 다르다고 합니다. 생명력이 고양되고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서겠지요.

질병을 일으키는 유위적인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것도 무위입니다. 질병이 대체로 어떻게 생기는지를 볼까요. 바로 특정한 ‘함’의 반복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가렵다고 긁으면 처음에는 상처가 생기지 않지만, 자꾸 한 곳만 긁으면 어떻게 되죠? 염증이 생기겠죠. ‘유위’, ‘함’이 병을 만든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살을 긁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지요. 보통 우리가 갖는 감정도 한 곳만 파기 때문에 탈이 생깁니다. 감정은 한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병의 원인입니다. 분노도 한 곳만 파고 슬픔도 한 곳만 파죠. 이때 겪는 분노와 슬픔이 그렇다고 창의적인 것도 아닙니다. 딱 고정되어 있는 회로를 따라 움직입니다. 이렇게 상투적인 상처를, 그것만 끊임없이 파면 결국 질병이 됩니다. 이게 바로 ‘유위’라는 겁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안도균
작가. 오랫동안 몸에 대해 탐구해 왔다. 전공은 서양의학(수의학)이지만 30년간 독학했던 한의학 공부가 그 탐구과정의 주류이다. 그 공부들이 밥벌이이자 삶의 향연이 되었다. 그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두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덕분이다. 팬데믹 시대 이후 온라인(zoom)에서 강의를 한다. 온라인 덕에 여러 나라에 수강생이 생겼다. 강의와 글을 통해 몸이 어떻게 삶의 전략적 주체가 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주로 <도담학당>에서 활동하고 있고, 인문여행네트워크 <여유당>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웃인 <감이당>, <남산강학원>, <문탁네트워크>와도 친하게 지낸다. 지은 책으로는 『동의보감,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작은길), 『운명의 해석, 사주명리』(북드라망)가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는 『고전 톡톡』(북드라망), 『인물 톡톡』(북드라망),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글쓰기』(북드라망)가 있다. 도담학당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dodamsmap여유당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yeoudang

  목차

머리말 4

첫번째 강의 _ 예측불능의 시대와 창조적 진화 15

몸에 대한 『동의보감』의 시선 16
서양의학, 분석적 지성 20
유동적 지성과 분석적 지성의 조화 25
예측불능의 시대 33
유동적 지성의 도구들, 그리고 창조적 진화 39
구심력과 원심력, 생명의 두 가지 힘 48
첫번째 강의 Q&A 54

두번째 강의 _ 『동의보감』에 숨겨진 무위의 통치술 65

『동의보감』 속의 유동적 지성 67
갈홍의 통치술과 무위지치 75
한나라 초기의 황로사상과 무위지치 82
몸의 통치술로서의 무위지치 86
두번째 강의 Q&A 100

세번째 강의 _ 양생과 치유의 실천들 107

블리스(Bliss)로서의 상화 109
무위의 통치술과 상화의 조절 114
양생과 상화의 조절 119
세번째 강의 Q&A 136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