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오랫동안 몸담았던 학교를 떠나, 곧바로 우리 땅 여러 곳을 걸었다. 낙동강, 동해안, 섬진강, 금강, 영산강을 따라 걷다 보니,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나머지 남해안과 서해안 그리고 내륙의 동부와 중부 및 서부는 죽 이어 걷지를 못하고 띄엄띄엄 걸었다. 걷고 난 뒤에는 미루지 않고 그날그날의 일정을 기록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완성된 글로 정리했다.
정리된 글을 토대로 책을 내기로 하면서 약간의 고민이 따랐다. 우리 땅 걷기를 일지 형식으로 내는 것은,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식상할 것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그래서 걸으면서 만났던 생명들 특히 동식물을 간추려, 그것들을 다룬 시인과 생물학자의 저술에 결부시켜 서술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다.(『걷는 자의 대지-길에서 만난 생명들』) 이어 그 책에 담지 못한, 걸으면서 찾아본 역사적 인물의 자취나 일상 인간의 모습 그리고 마주쳤던 사물의 의미를 살피니 또 한 권의 책이 되었다.(『걷는 자의 대지 2-길과 글 사이에서』)
그런데 그 두 권 책의 바탕이 되었던, 실제 우리 땅 걷기 과정은 고스란히 남았다. 너무 뻔한 것이라 치부하여 버리기에는 아까웠다. 더구나 앞의 두 책을 읽은 이들이 걷기 자체의 구체적인 과정을 물어오는 상황에서는. 이 두 가지 핑계에다 걷기를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순서가 뒤바뀐 모양새가 되었지만, 일지 형식으로 된 우리 땅 도보여행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저자 책소개 글)첫째 날. 호포에서 삼랑진까지-2013년 4월 24일자주 오르내리던, 부산 을숙도 하구언에서 양산시 호포까지의 길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낙동강 거슬러 걷기를 위해 호포마을로 향한다. 낙동강의 수원지에서 시작하여 강을 따라 걷지 않고 거슬러 오르는 것은, 내가 거주하는 곳이 낙동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 가까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호포마을과 황산공원을 잇는 다리를 건너니,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양산천의 끝자락에는 낚시꾼들이 보이고, 생태공원 조성을 위해 마련해 놓은 벌판에는 여자들이 삼삼오오 나물을 캐느라 여념이 없다. 일단 을숙도 하구언에서 안동댐까지 385킬로미터는 낙동강 종주 자전거 길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길가에는 냉이 흰 꽃과 씀바귀 노란 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보라색 자운영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남해로 나들이 갔을 때, 물건리 방조림/방풍림 안쪽의 논을 덮고 있던 자운영을 한 포기 캐어 와서 화분에 심었지만, 키우는 데 실패한 경험이 떠오르고, 공선옥의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자운영이 농지에서 자라 거름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 도로와 공원에 편입된 곳에 자라, 지나는 사람의 구경거리가 된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자운영은 본디 인간의 쓰임새와 무관하게 한 생을 살고 가겠지만.풀 사이로 기어 다니는 무당벌레도 그 독특한 무늬와 색깔로 눈에 들어온다. 어젯밤 내린 빗물을 피해 길로 나온 조그만 달팽이들이 햇볕에 말라가고 있다. 눈에 띄는 족족 집어서 풀 속으로 던져준다. 뒤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사람이 뭘 줍느냐고 묻는다. 그의 눈에는 달팽이가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의 귀에는 달팽이라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 속도는 관계 맺기의 최대의 방해꾼이니까.달팽이를 주워 풀 속에 던져주는 동안, 전에 부산에서 진해로 가는 길에 있는 용원에서 본 게들의 모습이, 밀양 대촌리 저수지 가는 길에서 본 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밤의 가로등 불빛을 보고 나온 게들이 그곳을 지나는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져 있었고, 도로를 횡단하는 뱀들이 밤낚시 하러 가는 사람들의 자동차 바퀴에 납작해져 땅에 붙어 있었다. 문명과 자연의 조화는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걷고 있는 자전거 도로 오른쪽에는 호포에서 물금 가는 작은 자동차도로가 있고, 그 뒤쪽은 경전선 철로가 놓여 있다. 왼쪽은 공원으로 조성해 놓은 넓은 벌판이 있고, 거기에 면해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강 너머로는 김해 대동 쪽에서 생림을 지나 삼랑진으로 가는 작은 자동차 도로와, 그 뒤쪽으로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고속도로가 보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제트기 한 대가 하늘에 하얀 선을 만들며 날고 있다.한 시간 정도 걸었더니 물금에 다다른다. 조금 더 걸어가니 물금취수장이 나온다. 입구 팻말에는 취수장의 역할이 끝나고, 이제는 학습관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안내를 해놓았다. 아마 건너편의 매리취수장으로 그 역할을 넘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을숙도에 하구언이 생기기 전에는, 강물의 갈수기에 바다의 만조 때가 겹치면, 바닷물이 물금취수장까지 올라와 수돗물에 소금기가 심해져, 안동댐을 열어 바닷물을 밀어내야 하는데, 안동댐 물이 물금취수장까지 흘러오는 데 2주가 걸린다든가, 물 값을 두고 부산시와 경북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조금 나아가니 앉을 자리가 마련된 쉼터 비슷한 곳이 나온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세워 놓고 쉬고 있다가, 걸어서 지나가는 나를 보고는, ‘저렇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도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고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연세도 연세이려니와, 내가 가는 길은 내리막이고, 할아버지가 자전거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데, 왜 그런 혼잣말을 했을까? 혹시 같이 쉬면서 얘기라도 나누길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혼잣말을 하면서도 내 귀에 들리도록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헤아려보는 것도 그 할아버지를 여러 걸음 지나친 뒤였다. 그렇다고 돌아가서 말을 붙이는 것도 어색할 듯하다.취수장 구역을 지나니 물박물관이 나온다. 이제 물금을 지나 원동으로 가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왼편의 벌판이 사라지고, 철도 밑으로는 바로 강물이다. 그래서 강바닥에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데크를 얹어 자전거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데크 한 부분에 안내판이 있는데, 읽어 보니 ‘잔도’에 관한 것이다. 옛 영남대로의 한 부분으로, 벼랑 비탈에 돌을 쌓아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황산잔도와 작원잔도 두 곳의 흔적을 발견하여 그 존재를 알려 놓은 것인데, 안내판 맞은편에 그 잔도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그 전의 나들이 때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최치원과 관련된 임경대 부근에 차를 세우고 임경대에 올라 그 밑의 강과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은 그 임경대 밑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임경대 위쪽 요산 김정한 선생의 「수라도」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을 지나다 차를 세우고, 마을의 오래된 나무를 카메라에 담으며 오봉산을 바라보았는데, 오늘은 그 오봉산을 더 멀리서 한눈에 바라보고 있다. 장인/장모 묘소가 있는 양산 신불산 공원묘지에 들렀을 때, 그보다 위쪽에 잠들어 계신 선생의 산소를 찾았던 기억도 난다.물금에서 원동에 이르는 길은 호포에서 물금까지보다 두 배의 시간과 걸음이 걸린다. 강가에 뿌리를 내린 버들이 바람에 꽃술을 뿌리고 있다. 꽃술이 바람을 타고 얼굴에 날아들어 사람을 귀찮게 하고 앞길을 방해한다. 쉽사리 원동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자, 옛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아이들이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원동 나들이를 하면서, 객기를 부려 한 정거장 앞인 물금에서 내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그러니까 물금에서 원동까지 철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철길만 생각했지 터널은 생각하지 못했고,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이 열차를 타고 있을 때와 걸어서 지날 때와 얼마나 시간 차이가 나는지를 고려하지 않은 무모함을 저지른 것이다. 혼쭐이 나고 다시 시도해서는 안 될 교훈을 얻은 셈이었다. 그 뒤 진학을 하고 군역을 치르고 하는 사이에 가끔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연락이 두절되어 안타깝고 아쉬운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자전거 도로 밑으로 원동역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그 입구 왼쪽 강변에 파라솔로 햇빛을 가리고 낚싯대를 펼쳐놓은 사람이 보인다. 펼쳐놓은 대가 일고여덟 대는 되는 것 같다. 한두 대는 낚시꾼이고, 여러 대는 어부라고 규정하던, 낚시에 일가견이 있어 그를 따라 낚시를 하던, 직장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건너편 강가에는 낚시꾼이 치는 파라솔보다 훨씬 큰 천막이 쳐져 있어 궁금했는데, 위쪽에서 보트와 그 뒤에 매달린 수상스키가 내려오는 것을 보니, 궁금증이 풀린다.원동의 조그만 가게에 들러 빵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삼랑진을 향하는 길로 들어선다. 4대강 사업과 자전거 도로가 나기 전에는 농지로 쓰였을 들판을 지난다. 들판 왼쪽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한 마리가 정지 비행을 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올라 가는 길 앞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조금 걸어 나가니 왜가리가 수로에 발을 담그고 내 눈치를 살핀다. 다시 날아올라 자리를 옮길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버틸 것인지. 거리를 가늠해 보니 통상 날아오를 만한 거리다. 지나가며 곁눈으로 살피니 그대로 있다. 자신을 방해할 존재로 여기지 않는 눈치다.한참을 걸어 나가니, 강이 왼쪽으로 굽어 돌고, 멀리 교량이 두 개 눈에 들어온다. 앞쪽의 것이 대구로 가는 고속도로에 난 것이고, 뒤쪽의 것이 김해에서 삼랑진으로 이어지는 옛 다리 같아 보인다. 삼랑진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자전거 도로를 버리고 삼랑진역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철로와 도로의 경계 지대의 철망 사이로 쌓아 놓은 철도 침목 같은 것이 보인다. 물론 나무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든 것이다. 그곳을 지나니 삼랑진역의 급수탑이 보인다. 증기기관차 시절의 유물이다. 조성기의 소설 「통도사 가는 길」에도 묘사되어 있는, 감옥을 연상케 하는 그 급수탑인데, 역 광장에 급수탑을 철도 역사와 관련지어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부산으로 귀환하는 승차권을 사려고 전광판을 보니,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목이 말라 자판기에서 빼낸 음료수를 들고 광장 벤치에 앉아 마시며 쉬기도 하고, 대합실에 마련된 텔레비전 화면의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역 구내로 들어선다. 승차권을 보니, 내가 걸어온 6시간 가까운 시간이 열차로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열차나 자동차 또는 자전거로 다닐 때와는 다른 풍광과 사색을, 시간의 길이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열차에 오른다. 다리가 제법 뻐근하고 발가락이 아려온다.
둘째 날. 삼랑진에서 수산까지 2013년 4월 26일호포에서 삼랑진까지 걸은 뒤 하루를 쉬고, 오늘은 삼랑진역에서 다시 출발하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구포역에서 내려 열차를 탄다. 물금역과 원동역을 지나 삼랑진역에 내리니 8시 30분이다. 역을 빠져나와 자전거길에 올라, 그제 찍지 못했던 삼랑진역 급수탑을 멀리서 찍는다. 눈앞에 보이는 다리를 보며 걷는다. 그저께 삼랑진역 쪽에서 바라볼 때는 다리가 두 개뿐인 줄 알았는데, 계속 걸어가면서 확인하니, 무려 다섯 개의 다리가 순차적으로 눈에 들어온다.두 개씩 엮어서 사진을 찍으려 자전거 둑길에서 밑으로 내려오니, 수심이 얕은 수로에서 잉어 두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키며 놀고 있고, 방금 내려온 둑길에는 아주머니가 누렁이를 앞세워 산책을 하고 있다. 다리가 많다 보니, 그 다리 밑을 전부 스쳐 지나가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린다. 세 번째 다리는 폐쇄되어 있는 것 같고, 네 번째 다리가 김해에서 삼랑진으로 연결된, 예전에 자동차로 건너곤 했던 다리다. 차량 두 대가 교행할 수 없어, 교대로 지났던 기억이 난다. 그 길을 배낭을 멘 여자가 걸어서 건너고 있다. 다섯 번째 다리는 철로 교량이다. 때마침 열차가 소리를 내며 그 다리를 지나간다.조금 더 걸어 나가니, 요산 선생의 소설에 등장하는 ‘뒷기미나루’라고 기억되는 곳이 나온다. 전에 아내와 같이 그 부근에 차를 세우고, 나루와 그 뒤편에 있는 고가를 둘러보았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나아가니, 앞쪽에 백구 한 마리가 낯선 이를 보고 골목으로 사라진다. 골목을 돌아 나아가니, 그 백구가 다시 돌아 나온다. 불러 세워 카메라로 그 녀석의 모습을 담는다. 아주 순한 녀석이다.교행이 거의 불가능한, 벼랑에 난 길과 횟집 간판이 붙은 가게 둘을 지나니, 낙동강 본류로 흘러드는 지류가 나온다. 본류를 따라 걷기 위해서는 그 지류를 따라 올라가, 지류에 있는 다리를 건너 다시 내려와야 할 것 같다. 자전거 도로는 지류의 둑을 따라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양편의 가로수를 거느리고 나아가는데, 바람이 몹시 불어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다. 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흘러내린다.마주쳐 지나가는 자전거족이 인사를 한다. 나도 답례를 한다. 언덕 밑의 오른쪽은 비닐하우스를 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밀양강’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밀양강을 가로지르는 자전거길을 따라 강을 건너, 다시 우회하는 길을 밟아 내려온다. 밀양강을 따라 올라가 다시 우회하여 내려오는 바람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다. 거의 두 시간이나 걸린 것 같다.내려오는 길에는 바람과 시간을 감안하여 둑의 자전거길을 걷지 않고, 둑 밑의 농로를 걷는다. 농로 양편으로는 보리를 많이 심어 놓았는데, 한창 보리가 패어 바람에 흔들리며 그 풍성함을 과시하고 있다. 길섶에는 엉겅퀴가 이제 막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바람에 울고 있는 비닐하우스에는 싱싱한 채소가 자라고 있는데, 잎을 보니 당근인 것 같다. 둑길에 비해 바람이 한결 나직하게 불어 마음이 다소 푸근해진다.한참을 걸어 나가니, 본류 쪽 가까운 곳에 자전거길 표시가 보인다. ‘오산교’라는 다리 이름을 확인하며 건너니, 길 왼쪽은 강과 허허벌판이고, 오른쪽은 마을과 비닐하우스 농지다. 밀양역에 가까운 외가가 있는 곳이 밀양 상남면의 평야라면, 이곳은 하남읍의 평야일 것이다. 상남에 비하면 하남은 노지는 거의 안 보이고, 비닐하우스가 전체를 덮고 있다. 비닐하우스 사이로 가끔 지나가는 트럭이 거기에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자전거길 곁에 세워진 정자에서 빵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데, 간간이 빗방울이 얼굴을 적신다. 배낭에 우산을 챙겨올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출발할 때 빠뜨린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늘을 보니 옷을 흠뻑 적실 정도는 아닐 것 같지만,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둑 한편에 넓은 공원 같은 곳이 있어 안내판을 확인했더니 명례 오토캠핑장이다.둑길 밑의 집에서는 가끔 강아지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짖기도 하고, 담장에 기댄 황매가 눈부신 노란 꽃들로 나를 반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둑길 앞에서는, 샤이안족 인디언의 머리장식을 닮은 벼슬과, 날개 무늬가 화려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라, 둑길 아래의 어느 집 마당으로 내려앉는다. ‘후투티’라는 새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러나 아쉽게도 카메라를 꺼낼 사이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자주 걷던 김해 들판이나 우포늪에서 재두루미를 볼 때보다 가슴이 더 설지만, 너무나 순식간이라 설렘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해동과 명례, 신촌과 이촌 그리고 대평마을을 지나니, 저 멀리 오른쪽으로 밀집한 건물이 보이고, 왼쪽으로 다리가 보인다. 수산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표시다. 둑의 자전거길에서 내려와 앞으로 나아가니, 공원이 나온다. 수산강변공원이라는 안내판을 지나니, 저편에서 피구경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다시 자전거길로 돌아오니, 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 수산다리를 지나 건너편으로 나 있다. 오늘은 그 길로 들어설 여력이 없어, 다음 길의 참고 사항으로 남겨두고, 시외버스 정류소가 있는 옛날 다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장 쪽으로 걸어 매표소에 도착하여 시간을 확인하니 2시 40분, 오늘도 역시 6시간 정도를 걸은 셈이다. 부산행 버스는 3시 20분에 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구경하다가 밀양에서 들어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이 정류소는 학창시절 방학 때 부산에서 밀양 외가나, 창녕의 본가를 찾을 때 경유하던 곳이라 익숙한 곳이다. 초라해진 모습으로나마 교통의 한몫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오늘 같은 날 신세를 질 수 있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졸기도 하면서 귀환하는데, 차가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눈을 뜨고 밖을 보니 공사를 하고 있다. 어쨌든 서부산톨게이트를 지난 것 같으니, 곧 집에 도착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기며, 졸린 눈을 다시 감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하창수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문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무크지 ≪지평≫으로 평론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평론집 『삶의 양식과 소설의 양식』, 『암벽의 사상』, 『맞서지 않는 길』, 『집의 지형』, 『집의 지층』, 『길의 궤적』, 『길의 현존』 등과 산문집 『걷는 자의 대지-길에서 만난 생명들』, 『걷는 자의 대지 2-길과 글 사이에서』, 『책 속을 걷다』, 『책 속을 걷다 2』가 있다.
목차
머리말
1부_낙동강을 거슬러 걷다
첫째 날. 호포에서 삼랑진까지
둘째 날. 삼랑진에서 수산까지
셋째 날. 수산에서 남지까지
넷째 날. 남지에서 신반까지
다섯째 날. 경산리에서 적포리까지
여섯째 날. 적포에서 구지까지
일곱째 날. 현풍에서 옥포까지
여덟째 날. 옥포에서 성주대교까지
아홉째 날. 성주대교에서 왜관까지
열째 날. 왜관에서 구미까지
열한째 날. 구미/산호대교에서 선산/구미보까지
열두째 날. 선산에서 상주까지
열셋째 날. 상주에서 하회마을까지
열넷째 날. 하회마을에서 안동 영호대교까지
열다섯째 날. 안동댐에서 청량산공원까지
열여섯째 날. 청량산공원에서 현동리까지
열일곱째 날. 현동리에서 육송정까지
열여덞째 날. 육송정에서 황지까지
2부_동해안을 오르내리며 걷다
첫째 날. 송정에서 기장까지
둘째 날. 기장에서 월내까지
셋째 날. 월내에서 진하까지
넷째 날. 진하에서 남창까지
다섯째 날. 남창에서 태화강역까지
여섯째 날. 태화강역에서 방어진항까지
일곱째 날. 방어진항에서 정자항까지
여덟째 날. 정자항에서 문무대왕 수중릉까지
아홉째 날. 감포에서 구룡포까지
열째 날. 구룡포에서 호미곶을 돌아 동해면까지
열한 째 날. 포항 두호동에서 월포까지
열두째 날. 영덕에서 송라까지
열셋째 날. 영덕에서 영해까지
열넷째 날. 영해에서 후포까지
열다섯째 날. 후포에서 망양리까지
열여섯째 날. 울진에서 망양리까지
열일곱째 날. 울진에서 호산까지
열여덟째 날. 호산에서 신남항까지
열아홉째 날. 동해에서 삼척 광태리까지
스무째 날. 동해에서 주문진까지
스무 첫째 날. 주문진에서 하조대까지
스무 둘째 날. 속초에서 하조대까지, 강릉에서 정동진까지
스무 셋째 날. 정동진에서 묵호까지
스무 넷째 날. 거진에서 속초까지
스무 다섯째 날. 삼척 광태리에서 신남항까지
스무 여섯째 날. 송정에서 오륙도까지
3부_섬진강을 오르내리며 걷다
첫째 날. 하동읍에서 화개장터까지
둘째 날. 화개장터에서 구례읍까지
셋째 날. 구례읍에서 곡성읍까지
넷째 날. 곡성읍에서 순창 대강면까지
다섯째 날. 섬진댐에서 적성면 구미교까지
여섯째 날. 적성면에서 순창읍까지
일곱째 날. 하동읍에서 섬진강 하구까지
4부_영산강을 따라 걷다
첫째 날. 광주 극락교에서 나주대교까지
둘째 날. 목포 문화거리에서 삼학도와 영산호까지
셋째 날. 담양댐에서 광주까지
넷째 날. 나주역에서 몽탄대교까지
다섯째 날. 몽탄대교에서 목포 하구언까지
5부_금강을 따라 걷다
첫째 날. 대청댐에서 부강역까지
둘째 날. 부여에서 강경까지
셋째 날. 합강리에서 금암리까지
넷째 날. 공주 곰나루에서 부여 지석리까지
다섯째 날. 군산 금강하구언에서 웅포까지
여섯째 날. 강경역에서 함열까지
6부_남해안 이곳저곳을 걷다
첫째 날. 진해 용원에서 부산 하단까지
셋째 날. 진해구청에서 장복터널까지
넷째 날. 장복터널에서 신촌삼거리까지
다섯째 날. 가덕도
여섯째 날. 눌차도
일곱째 날. 해남 땅끝과 녹우당
여덟째 날. 목포 삼학도
아홉째 날. 강진과 장흥
열째 날. 사천과 삼천포
열한째 날. 함안 무진정과 함안향교
열두째 날. 완도/청해진
열셋째 날. 순천만
열넷째 날. 보성과 벌교
열다섯째 날. 고흥 금탑사
7부_서해안 여기저기를 걷다
첫째 날. 안면도
둘째 날. 태안 천리포수목원과 만리포해수욕장
셋째 날. 무안과 함평 그리고 고창
넷째 날. 고창 질마재와 정읍의 정읍사공원
다섯째 날. 김제 벽골제와 군산 채만식문학관
여섯째 날. 서산 해미읍성과 용현리 마애삼존불
일곱째 날. 수원 화성과 인천 검단
여덟째 날. 강화 고려궁지
아홉째 날. 부여 무량사와 김시습부도비
열째 날. 부여 부소산
8부_내륙 동부 몇 곳을 걷다
첫째 날. 영천 도계서원과 임고서원
둘째 날. 예천 회룡포와 의성 구봉공원 주변
셋째 날. 군위 위천
넷째 날. 원주 박경리문학공원과 제천 의림지
다섯째 날. 제천 배론성지와 단양 도담삼봉
여섯 째 날. 횡성 섬강과 홍천 홍천강
일곱째 날. 춘천 김유정문학촌과 공지천
여덟째 날. 남원 만복사지와 경주 용장사지
아홉째 날. 청도 청도천
9부_내륙 중부 몇 곳을 걷다
첫째 날. 의령 안희제생가와 곽재우생가
둘째 날. 함안 칠서 무산사
셋째 날. 충주 탄금대와 진천 백곡지
넷째 날. 진천 왜가리 번식지와 괴산 홍범식 고택
다섯째 날. 여주 영릉과 양평 두물머리
여섯째 날. 남양주 정다산 유적지와 다산 생태공원
일곱째 날. 청원 단재사당과 옥천 정지용생가
여덟째 날. 영동 난계사당
아홉째 날. 합천 홍류동천과 거창 박물관
열째 날. 합천 삼가 남명선생유적지
10부_내륙 서부 몇 군데를 걷다
첫째 날. 예산 추사고택과 아산 이충무공묘
둘째 날. 천안 홍대용생가지, 과학관, 묘소와 유관순열사사우
셋째 날. 공주 송산리고분과 마곡사
넷째 날. 공주 곰나루와 공산성
다섯째 날. 안양천과 마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