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엄마, 엄마는 나의 숲이고 세계고 사랑이에요
얘야, 너는 나의 숲이고 세계고 자랑이란다
검은 숲이 하얀 숲이 되기까지,
'엄마'라는 시공간에 대한 문학적 상상
엄마라는 숲으로의 초대이 숲은 나의 안전한 오두막, 나의 세계, 나의 전부. 마음을 잠재우는 포근하고 달큰한 바람이 부는 곳,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두 손에 쥐여 주는 곳. 바깥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에도 언제나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따뜻한 품이 두 팔 활짝 벌려 기다리는 곳. 태어나 첫 울음을 울던 그 순간부터 ‘나의 가장 좋은 놀이터이자, 끝없는 모험의 세계’였던 곳··· 그곳은 물리적인 장소라기보다 언제나 지지 않는 마음의 고향, 바로 ‘엄마’라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엄마를 통해 보고 느끼는 세상, 거듭하여 성장해 나가는 세상,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운명에 따라 변화하는 세상을 ‘숲’이라는 공간으로 형상화시킨 그림책, 『하얀 숲』의 이야기가 가을바람을 타고 우리 품에 와 안겼습니다.
흔들리는 잎새 사이로 바람을 느끼듯,
엄마의 손길 사이로 세상을 느껴요숲에 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는 흔들리는 나뭇잎, 그 나뭇잎 사이로 어른거리는 햇살의 그림자, 그리고 바람이 실어오는 숲의 향기 등을 통해서 ‘아,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그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눈부신 반짝임들을 놓치지 않고 우리 안에 담아 볼 수 있도록 일깨우는 세상의 작은 선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나’와 ‘삶’ 사이에도 바로 그와 같은 숲 하나가 둥글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엄마’라는 숲입니다. 세상에 갓 태어난 우리는 엄마의 두 눈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나를 보고, 엄마의 두 손에 어루만져지는 하루의 모양으로 세상의 움직임을 느낍니다. 엄마의 인도에 따라 한 발 한 발 내딛는 낯선 길 위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고 감각하며 성장해 나갑니다. 이 세계는 너무도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따뜻해서, 나는 언제까지라도 세상은 이와 같을 거라고 믿게 됩니다.
돋아난 하얀 잎새,
불현듯 뒤집힌 세상그런데 어느 날, 영원히 푸르를 것만 같았던 그 숲에 한 가지 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에 본 적 없던 하얀 잎새 한 줄기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낯선 변화를 마주하고선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잎새가 자라나는 것을 막아 보려 합니다. 막을 수 없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에 기대어서요. 하지만 그런 내게, 엄마는 가만 속삭입니다.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 그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란다.”
바로 그때, 우리는 인생의 한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무구하고 순진하게 ‘영원’을 믿었던 어린아이에서, 하얀 잎새라는 ‘변화의 시간’을 인지하는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어른’이라 부르는 단계입니다.
시간의 안과 밖에서
새로이 발견하는 풍경우리는 모두 경계가 있는 시간의 집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우리는 집 안은 안전하다 느끼고, 집 바깥은 위험하다 여기지요. 하지만 바로 여기, 『하얀 숲』의 이현영 작가는 그 경계에 ‘숲’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새로운 영역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해줍니다. 보통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간의 속성은 젊고 건강한 검은 머리가 실처럼 가느다랗고 눈처럼 새하얀 머리로 변화하는 시간입니다. 어린 내가 세상 속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줄 만큼 강했던 엄마가 천천히 걸음이 느려지고,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서 때때로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될 만큼 약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 어떤 시간과 운명의 부름에도 응답하고 나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이 내 안에 자리 잡았음을 인지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나와 당신의 세계,
서로가 서로의 숲인 장소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어머니가 내게 증명한 시간이며, 흐르고 변화해온 몸 안에 속속들이 깃들어 있는 견고한 추억과 사랑을 재발견하는 시간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인지하게 된 시간의 집 안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거스르기보다, 슬픔과 무력함 앞에 무너지기보다, 시간의 몸을 눈처럼 투명하고 가볍게 만들 만큼 힘이 세진 운명 안에서 새로운 초침 소리를 듣습니다. 나의 과거이자, 나의 현재이며, 나의 미래가 될 엄마라는 숲이 내 안에 심어 놓은 초침 소리입니다. 똑 딱 똑 딱, 한때는 보호받는 작은 존재였던 내가, 이제는 나를 지켜 준 숲에 내릴 햇살이자 비이자 바람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소리. 아니, 사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언제나 그런 존재였음을, 엄마가 나의 숲이자 나무이자 바람일 때에 나 역시도 엄마에겐 엄마만의 숲이자 나무이자 바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소리.
영원이라는 희망을
‘지금’으로 꽃피우는 사랑오래된 추억과 살아 있는 지금,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가 함께 숨을 쉬는 숲. 그 숲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박수 소리처럼 쏟아지는 별들의 축복 아래서 우리는 한때 우리를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게 했던 ‘영원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이 사실은 ‘모든 것은 영원하다’라는 자각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따뜻한 어머니의 품 안에서 세상은 ‘언제나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믿음은, 그와 같은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진실로 내 손 안에서 그렇게 이루어져 가리라는 것도요. 엄마의 품에 안겨 있었던 내가, 엄마를, 누군가를, 더 나아가 세상을 품는 사람이 되리라는 것도요. 어머니가 전해 준 그지없는 사랑 안에서라면, 그 얼마나 험하고 거친 세상일지라도 우리가 스스로 지어가는 세계는 너무도 안전하고, 믿을 수 있으며, 따뜻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와 같은 희망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영원의 다른 이름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