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거대한 모래언덕에 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주름잡혀있다. 거센 모래폭풍이 불어와 언덕 하나를 지우고 새로 그린 주름들이 파도가 물결치듯 결을 따라 움직인다. 이쪽의 언덕이 사라지고 저쪽에 다른 사막언덕이 새로 생겼다. 사람들은 그 언덕에 발자국을 남기지만 또 다른 바람이 새로운 사막언덕을 만들어 간다. 바람은 이 광막한 우주 그 길 닿지 않는 데가 없다. 바람이 그린 무늬, 금세 사라지는 덧없는 흔적일지라도 자연은 그 모든 것을 다 품어 안는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바람의 속성이라지만 그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민들레 꽃씨 하나 솜털 달고 멀리멀리 가뭇없이 날아오르다 어딘가 살포시 내려앉는 곳이 끝이라면 바람은 생명을 실어 왔다. - 바람의 길 중에서
가끔은 이렇게 꽃이 피었다며, 비파가 익었다며 초대해주는 이가 있어 분망한 일상 중에도 뜻하지 않은 기쁨을 맛보고 있다. - 비파 중에서
나에게는 무명의 화가가 그려준 데생의 초상화 한 점이 있다. 연필로 빠르게 스케치하여 묘사가 정교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지난날의 나를 보게 된다. 어딘가에 시선을 둔 특별한 특징이 없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벌써 10여 년 전의 얼굴이기에 지금보다는 젊은 모습이다. 그때의 나의 감정이나 표정 변화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봐도 그저 무덤덤한 얼굴, 무표정한 얼굴이다. 당시의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마음은 어떤 상태였는지 그저 짐작으로 생각할 뿐이다. 세월의 연륜 따라 못생긴 얼굴이지만 지난날의 그 모습을 사랑한다. - 자화상 중에서
밀레는 가끔 사랑스러운 딸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고 했지만 어쩌면 이 소녀는 어느 가난한 집 양치기 소녀인 것만 같다.
액자의 먼지를 닦으면서 소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당시 소녀의 나이는 몇 살이며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나보다 100여 년 먼저 태어난 그녀는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은 언제였을까. - 양치기 소녀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신태순
대구 출생2002년 《한국문인》 신인상 등단수필집 『겨울나비』 『이마리에 내리는 비』『저녁 종소리』 『안녕, 조이!』 진해문학상, 큰창원 작가상 등 수상한국수필가협회, 경남수필문학협회, 진해문인협회 회원
목차
작가의 말 4
1 비파
바람의 길 14
첫걸음마 18
거울 22
그리움을 위한, 미셸 들라크루아의 파리 26
목어 30
둔한 붓이 총명을 이기다 34
모시 적삼 37
비파 41
어느 날의 기별 45
푸른 새벽 49
2 자화상
우체통 52
병풍 56
안녕, 조이! 60
자화상 63
눈물 67
영화, 거부할 수 없는 매혹 71
고디찜, 고향의 맛 74
양치기 소녀 77
기억에 대하여 81
오리나무꽃 85
3 돌
영혼이 깃든 집, 방우산장 90
꾀꼬리 우는 소리 기다리는 마음 94
절망에 빠진 자아, 98
인간 김해경 98
돌 102
기차, 사랑과 명작 106
첫사랑 110
삼거리 고모 113
올리버 트위스트 117
비 121
춘추벚꽃 125
4 지심도
노르망디의 풍경 속으로 130
무진정 낙화놀이 133
지심도只心島 136
남해 남자와 생미역 139
카페와 서점 142
나무 146
못생긴 아귀 150
친구 154
타인의 고통 157
봄날의 일기 161
해설
감성 수필의 너그러움이 빛나는 세계_이성모(문학평론가·창원시김달진문학관장)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