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대전에서 태어나 2004년 《시사사》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송은숙의 신작 시집 『열두 개의 심장이 있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19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신간은 『돌 속의 물고기』 『얼음의 역사』 『만 개의 손을 흔들다』 이후 삼 년 만에 묶어낸 네 번째 시집으로,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내면의 무한대와 마주하며 그 깊이를 견뎌내려는 시인의 충만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일상을 보내면서도 “시인이 하는 일”(「시인의 일」)에 대해 골몰하는 송은숙은 “열두 가지 색 안”에서 “열두 개의 심장”(「화분」)을 발견한다. 열두 개의 심장으로 열두 개의 삶을 살아내는 시인은 바람 든 무에서 “껍질과 칼의 경계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무(無) 안에 새겨진 죽음과 무한의 바람을 마주한다. “무의 실핏줄”(「무」)을 발견하는 것이나 황톳길에서 밟은 병뚜껑이나 사금파리에서 “날카로운 적의”(「새벽이 맨발로」)를 읽는 것은 시인의 직관이기에 가능하다. 직관의 힘으로 “멍”이 상처가 아니라 “전사의 후예”(「멍」)임을 명명하며 “틈을 빠져나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틈」)거나 “우리가 새를 사랑하는 것은 한 마을을 사랑한다는”(「조감도」) 지혜임을 깨치는 것이다.식당 창가에서 장대한 노을을 보았을 때저기 노을 좀 봐, 시인 친구한테 말했더니밥 먹을 때 일 얘기 좀 하지 말라고 하더라나이런 농담 너무 좋다고 다른 친구는 깔깔 웃었다나―「시인의 일」 부분
선물 상자 안엔 다시 상자가, 그 상자 안에 다른 상자가, 그 상자 안에 또 다른 상자가 있다그럴 수 있다열두 번째 상자를 꺼내다 잠이 든다화분 안에 아프리카봉선화가 심겨 있다아프리카봉선화꽃은 열두 가지 색이다열두 가지 색 안에는 열두 개의 심장이 있다백합나무 가지에 작은 새가, 작은 새 안에 연둣빛 벌레가, 벌레 안에 가느다란 노래가 숨어 있는 것처럼―「화분」 부분
그래, 지렁이가 있었지지렁이가 꽃잎에 둘러싸여 있었지갑자기 많은 꽃이 피고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고고장 난 계기판처럼 모두 빠르게 달리고그리고 지렁이가 이 미친 속도를 끝장내겠다는 듯문득 멈추어서몸을 쭈욱 펴며 최대한 늘이며오월의 저 속도를 막아서는 바리케이드를발끝에 툭, 던져 놓는 것이다—「오월은 너무 빠르게」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송은숙
대전에서 태어나 2004년 《시사사》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돌 속의 물고기』 『얼음의 역사』 『만 개의 손을 흔들다』, 산문집 『골목은 둥글다』 『십일월』 등을 냈으며 ‘화요문학’과 ‘봄시’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