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주인공 마야 카슨은 시애틀을 기반으로 하는 주간지 ‘더페이퍼’ 소속 기자이다. 2020년 어느 날, 동료 기자 아론 코왈스키에게 발간 20주년 특별호에 실릴 자신의 기사를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 카슨은 예정에 없던 러시아로 간다. 그녀가 맡은 기사는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가 바렌츠해에서 훈련 도중 침몰한 사고였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이미 20년 전, 사고 원인을 ‘불량 어뢰의 폭발’로 손쉽게 결론지은 다음 조사를 끝맺은 상황. 카슨은 코왈스키에게 반쯤 떠밀려 취재하게 된 사건에 대해 큰 열의가 없었고, 러시아에서 만날 인터뷰이와의 약속은 그저 형식적일 거라 생각했는데.이 소설은 ‘쿠르스크 침몰 사고’라는 국내에는 생소한 재난을 미국 여성 기자의 인터뷰로 풀어내고 있다. 그녀가 만난 7명은 침몰 사고 당시의 고위층 장성부터 구조 작전에 참여한 남자, 남편을 잃은 부인까지 다양했다. 카슨은 사고를 둘러싼 이들의 침묵과 증언을 들으며 취재차 가볍게 왔다고 여겼던 이곳에서 뜻밖의 감정이 끌어 올랐다. ‘믿되 확인하라доверяй, но проверяй’작가 홍기훈의 치밀한 자료조사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다큐멘터리 이상의 현실 고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세밀한 묘사가 몰입감을 더한다. 특히 딱딱하게 느껴질 기술적 정보를 외부인과의 대화로 풀어가며 거부감을 없앤 것과 단순한 서술자로 여겨지던 주인공이 스스로 겪은 사건을 내보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들이닥쳤던 그간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속수무책으로 떠올리며 사실과 진실의 퍼즐을 함께 맞춰가기 시작한다.왜 침몰까지 했냐고? 뭐, 굳이 따져보자면 순전히 우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이런 비유밖에 못 해 미안하지만, 누군가 토카레프로 당신을 쐈다고 상상해 보시오. 팔이나 다리에 총알이 박혔다면 아마 99퍼센트 살 수 있을 거요. 물론 병원이 가깝다는 전제하에. 그런데 머리에 맞았다면 응급실이고 나발이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않겠소? 기계도 마찬가지지. 사람에게 급소가 있듯이 기계에도 약점이 있어.
며칠이 지나도록 함대에서 사고를 숨겼다는 걸 아세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폭발로 인한 침몰이 아니라 사소한 기술적 해프닝이 발생한 척을 차례로 해야 했어요. 그다음에는 최선을 다해 구조하는 흉내를 냈고요. 웃기는 일이죠. 폭탄 구덩이 위를 누더기 양탄자로 대충 덮으려는 것처럼…….
내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큰 실수예요.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에요. 사고에 휘말린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지. 지금이야 많은 게 드러났으니 당신 눈에는 내 행동이 아니꼽겠죠. 방금 이야기처럼 잘못된 정보로 내린 판단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 실수가 절대적일까요? 사고를 일으킨 것도, 승무원들이 산 채로 죽어간 것도 전부 내 책임으로 모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눈치를 보다 보고서를 조작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 다른 군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건가요?
작가 소개
지은이 : 홍기훈
97년 가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그저 잊힐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때로는 진심을 담는다. 쓰고자 마음먹었던 시간이 글이 되는 지금은 아직 군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