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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골(木骨) 이미지

목골(木骨)
신생(전망) | 부모님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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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최경숙 작가의 두 번째 수필집이다. 민화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하여 자연이 선사하는 말들을 언어로 풀어내고자 한다. 또한 그 속에 무궁한 깨달음과 세상살이의 이치가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글은 사물에 대한 인식과 삶에 대한 관조가 완숙하게 무르익어 맛깔스런 문향을 느끼게 한다. 주변과 이웃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보다 성숙한 변화를 바라는 애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설중매 핀 나무 아래 잔설이 누웠다. 햇살이 선을 긋는다. 하트 모양으로 녹이는 것을 보니 이 세상 어딘가에 아직은 사랑이 있나 보다. 볕살에 춤추는 아지랑이를 보니 세상 어딘가에 아직은 세레나데가 있는가 보다. 춘몽이 난분분한다.봄비가 고인다. 서성이는 봄의 경이에 시인은 새싹 돋는 소리보다, 아물거리는 아지랑이보다, 햇살이 병아리 떼 불러내는 소리보다, 꽃잎이 벙그는 소리를 적으리라. 겨울이 지나갔음에도 풋풋한 풀 내음이 여태껏 없었는데, 입춘이 지나자마자 놀랍게도 풀싹들이 사그작사그작 몸을 비벼댄다. 새잎들도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순서를 잊지 않고 돋아난다. 나는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의 벌름거리는 환청을 빨아들여 해독의 시간을 누린다. 홀사랑 맞이다.조매早梅는 꽃 그 이상이다. 선구자의 영혼에서 피어오르는 꽃이랄까. 먼저 꽃을 열어 봄을 깨운다. 겨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새 생명의 상징이다. 나무가 움츠린 채로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즈음, 아무도 꽃을 찾을 리 없고, 생동을 부추기는 이도 없을 때, 눈을 맞으며 꽃을 피우는 녹악백매화. 쌓인 눈 속에서 낙화를 예견하는 홍만첩매화. 눈을 뒤집어쓴 처진 매화든 운용매화든 설중매는 청초하고 기품이 넘친다. 이런 고매한 인상을 주는 꽃은 다른 계절에는 보기 어렵다. 더구나 분재는 담담한 가운데 창연한 고전미가 청고해서 좋고도 좋다. 마음이 먼저 봄이 된다. 겨울 끝자락의 소극적인 몰락과 봄 첫 자락의 스멀거리는 기운을 감지하면서 먼 데서 휘몰려 오거나, 혹은 먼 데로 휘몰려 가는, 바람 소리와 함께 춘희는 배시시 꿈틀댄다. 태동하는 봄이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다할 수 없는 온정이 삼라만상과 은밀히 연정극을 펼치는 중이다. 봄의 서곡이 이들을 서둘러 포옹한다. 매화는 동양철학 성리학의 꽃이다. 일생을 추위 속에서 꽃을 피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를 유학자들이 칭송했다. 매화는 퇴계 이황이 평생 매달린 성리학의 3대 요체인 태극, 이기, 심성의 비밀을 간직한 꽃이기도 하다. 우주와 만물이 어떻게 생기고 변화하는지, 사람의 마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와 같은 근원적 물음에 답변이 막힐 때마다 그는 매화와 대화했다. 매화꽃 한 송이 안에 우주가 들어있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가치가 들어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매화에서 요절한 부인을 떠올려 옛 추억을 되새기며 사랑과 연민의 정 때문에 자병自炳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얼마나 그립고 애통했는지 칠언절구로 무려 사십 구절에 이르는 긴 매화시를 남겼다.봄 소리다. 연분홍 겹매 가지 사이로 향기가 퍼지나 싶더니 난데없이 설중매가 팡팡 터진다. 작고 하얀 것, 춤이라도 추듯 날아오르면서 화려하게 봄을 알린다. 아무런 예고도 기교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멋대로 데리고 논다. 햇살이 불꽃놀이 하는 소리, 바람이 어루만지는 소리, 새움이 고개 내민 소리와 꽃봉오리 벌름대는 소리. 그 리듬이 판타지아로 어우러져 어떤 비천도, 어떤 고독도, 어떤 속인도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눈을 감고도 꽃과 나무와 대화하고 비와 대지의 음성을 듣는 야성의 귀를 가졌다면 충분히 봄의 지음知音이 되리라.한매寒梅와 눈雪. 봄꽃이 눈을 만나니 백설이 더딘 봄빛이 못마땅했던지 수풀 사이로 짐짓 꽃잎인 양 하얀 눈발을 흩날리니 가지에 설중매가 송송 맺혔다. 흰 꽃 피운 매화나무가 숲속 오솔길 모퉁이에 서 있다. 꽃봉오리에 송골송골 하얗게 맺혀 있기에 서둘러 핀 춘희를 겨우내 녹지 않은 잔설로만 여겼다. 나뭇가지 살얼음 속에서 빙화 향이 살포시 열린다. 언 가지를 뚫고 불거진 연분홍 꽃봉오리. 그 위를 소복이 덮은 새하얀 눈. 봄을 서로 차지하려는 듯 홍매와 백매가 다툰다.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하여 꽃의 품격인 자태와 향기와 어우러짐을 가지고, 정신을 다잡아 깨끗한 기운으로 우열을 따져본다.‘흰 빛깔은 매화가 설화에 조금 뒤지나, 향기로는 아무래도 설화가 매화를 못 이기지….’ 홍매에 살짜기 속삭여 준다. 고상한 정취를 지닌 정갈함으로 차갑게 조각된 처연한 매화는 어찌 섣달에만 필까. 절개 있는 선비가 속된 얼굴을 꾸미지 않는 것처럼, 정숙한 여인이라면 어찌 화장한 얼굴로 요염을 떨겠는가. 언 가지에서 꽃을 틔우는 고결한 매화를 보면 사군자 중 으뜸인 것을 인정하게 된다. 고매枯梅. 잔설을 머금은 중년의 꽃.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묘한 향기, 어우러진 미묘한 색채는 본인만이 그려낸 작품이다. 비록 시들려고 하지만 중년의 꽃은 중후하고 매력적이고 안정적이다. 세상 풍파를 이겨내고 세월을 초월한 연륜에 피어나는 꽃은 여물어져 두텁고 깊은 향이 난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예쁜 속살을 보려면 눈이 녹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을 아는 꽃이다.합장하듯 꽃잎을 차곡차곡 모으는 사랑법은 정情이다. 오직 ‘낯빛’으로 표현되는 은근한 정이다. 삼라만상과 사랑놀이하는 중에 기회를 잡으면 활짝 반기는 낯빛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볼그스레한 눈빛과 볼과 입술로 사랑을 시작한다. 꽃살문이 지천에 흐드러지면 꽃분홍이 어떤 색인지, 하얀색이 어떤지, 초록은 또 어떤 색인지를 물어볼 수 없다. 그런 질문은 세월이 철새를 산 너머로 던지듯이, 유성이 밤하늘 아래로 떨어지듯이, 침묵이어야 한다. 봄바람이 만물을 받아들이고, 매화가 추위의 고통을 겪은 후에야 맑은 향기를 뿜는 것처럼. 봄이 미끄러진다. 봄기운이 다글다글 뭉쳐져 그 자락에 닿고자 열망을 비춘다. 솜털 투명한 떡잎, 줄기에서 뻗어나는 어린 가지, 그 가지에서 부푸는 망울들, 경이에 눈을 치뜨는 꽃술, 잎새를 말갛게 통과하는 햇살, 꽃부리에 유희하는 바람, 다시 씨방 안에 맺히는 씨앗들, 그 씨앗을 받은 그대, 그대 앞에 놓인 꽃길이 실개천만이 아니라 산등성이까지 어떤 희열이 기다리고 있다. 대답이 있고, 대지가 있고, 세상이 있음에. 춘희의 손길이 스쳐 간 언저리마다 어린 연두가 고개를 내민다.―「빙화氷花 향 열리니」

  작가 소개

지은이 : 최경숙
≪월간문학≫ 등단한국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부경수필문인협회회원제29회 신라문학수필부문 대상 「작살고래」2022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제12회 부산수필문예 「봉황, 날다」 올해의 작품상2023년 『와목』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제5회 『와목』 문정수필 문학상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 수혜수필집 『와목』, 『목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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