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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 웃고 너는 오래 운 울음 그치고
한국문연 | 부모님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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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남주희 시인은 이전의 시집 『눈부신 폭서』(2021)에서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추모의 정념에서 출발해서 타자 인식에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그 독창적 시각과 상상력을 더욱 역동적으로 밀고 나가 일상적 공간 내부에 생명의 기운이 움직이는 모습을 드러내고 고요한 정적 속에 은밀하게 생동하는 생의 기미를 포착하는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인이 개척한 또 하나의 경이로운 신세계다.장 구경덜 핀 매화꽃 사이로 장 구경을 다니다백두산 악극 쇼라는 천막집을 들여다본다난쟁이 가랑이에 낀 만신창이 된 각설이 몸뚱어리 앞니 빠진 잇몸이 온통 히죽거리면천장을 뚫는 풍악 소리 난데없다멀뚱한 8척 사내의품바 수염과 눈알아무렇게나 갈겨놓은 검은 화장법의 태연함앞서가는 꽹과리로 출렁대는 소리 낯가림이 없다 울려고 내가 왔냐고 생이 별거더냐고허공을 싸안는 중심이 버티려 해도 우울 몇 겹 좀체 깨어나지 않는다파장은 고단했고열창하는 홍도야 우지마라 박수 소리는 간간이다참빗과 치약을 팔려 댕기를 맨 여남은 살 아이에게쭈물쭈물 구겨진 지폐 한 장을 건네며몇 살이냐를 불쑥 물었다대책 없는 그것의 근원을 물은 불편함되고 싶어 되었겠나추스르지 못한 몰염치가 나를 딱하게 돌아봤다품바는 품바대로 덜 핀 매화꽃은 덜 핀대로늙은 각설이 그만큼의 한풀이로또 울컥거리며 날아오를 고단한 봄날
어떻게 하면 되겠니짤막하게 쥐여준 계절 끝물쯤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든 단풍잎 한 장찬 눈 굴리는적의에 찔렸다이미 눈자위는 짓물러너 외침은 들리지 않지만볕살 몸 벌려 양껏 들이마시고발치를 따라가며 멀찌감치가을 한 장 챙겨주려 별나게 울었던 적 있었으니부리가 닿을 때마다 촉감은 친절하여붉게 줄다리기한 숲의 위세를 동였는데어쩌자고 낯선 사각지대에서 황당한 조문을 구하려 들었을까돌아갈 십일월 늦게방목한 조랑말 해가 지면 꾸역꾸역 걸어 들어와숙면을 찾던 그때처럼나는 너를 무어라 불러줄까물 올려 꽃 돋우는 산, 목청이 헐 때까지당신의 붉음만은 고스란히 옳았다고 소리치면나는 잠깐 웃고너는 오래 운 울음 그치고빈손만큼 슬퍼해쌓인 시간 건너뛰고 배불리 위로하면 편안해질까
존재여름비가 흙을 적시는 모습물끄러미 바라보다더 이상 생각에 빠지지 않아도 되겠다내가 지켜보고 있지 않아도여름 내내 색을 얻지 못한나뭇잎들 방금처럼 다투며 멀어지면서 또 깊어져 더 먼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갈 텐데기억 밖으로 흩어진바람의 전령은불쑥불쑥 자라는 계절을 졸라 꽃으로 뒹굴 것이고어정대던 라벤더절정의 보랏빛 약속하라고 독촉받을 텐데괜스레내 울타리를 침범한 반쯤의 시간을정든 듯 떼밀며 눈 흘김 하면돌아보는 시간만 사소해질 테고폐활량을 키우던 인기척이 빠른 걸음으로저녁을 끌고 와핼쑥한 배경을 차단한다는 소문가볍게 출렁이는 풍경만을 고집하면좀은 둔탁해질 텐데일몰의 뒷자리에 비켜선 버즘나무 귀엣말이 심상치 않아서둘러 차분해지려는 7월돌아 나와야 되는 길골똘하게 염려하면서 다만 간격이 늦은 자리 몇비워놔야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남주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을 졸업했다. 2003년 『시인정신』에서 시로, 『현대수필』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시집 『둥근척하다』 『오래도록 늦고 싶다』 『길게 혹은 스타카토로』 『꽃잎호텔』 『제비꽃은 오지 않았다』 『눈부신 폭서』와 산문집 『조금씩 자라는 적막』이 있다. 지식경제부 장관상, 한국민족문학 본상, 김우종문학 본상, 백기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구문화방송 아나운서를 역임했으며, 2021년 대구문화재단 경력 예술인 활동 지원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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