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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조
신생(전망) | 부모님 |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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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김무숙 소설가의 첫 소설집이다. 단편 8편이 실려 있는 이 책은 작가가 등단 이후 23년 만에 처음 내는 소설집이다.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삶을 보면,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평범’이란 단어는 사전에 존재하는 단어일 뿐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평범한 일생을 사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모든 이들의 삶은 각기 특별하며, 누구에나 녹록치 않은 것이 삶이다. 삶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임을 소설은 보여준다.저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할 때 비로소 삶이 돌아간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자신만의 여정을 떠난다. 자신의 운명에 끌려다니는 인물이 아니라 좌절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지프스 신화처럼 ‘굴러 내려온 돌을 다시 산꼭대기로 올려야만 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돌을 굴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평생 아들만 바라보며 산 그녀가 아들에게 외면당한 채 죽어가고 있다. 내 감정은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른 채 엄동설한과 삼복더위를 넘나들었다. 그녀는 왜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을까. 딸은 둑의 무성한 잡초처럼 방치했던 그녀. 왜 그랬는지 꼭 알아야만 내 인생의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엄마, 당신은 누구신가요?나는 노인의 삶을 북돋우는 곳에서 근무한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자식 다 키워놓고 노년의 여유가 많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얼굴은 누렇게 뜨고 돈 자랑, 자식 자랑, 손녀·손자 자랑질만 온종일 해댄다.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 그들의 얼굴에서 답을 찾는다. 오 여사님은 편안하게 나이 든 얼굴인데 여기선 찾아보기 드물다. 손자가 국립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해서 회원들에게 모시송편을 돌렸다. 그녀는 난타반 반장인데 몸놀림도 재빠르고 활기차다.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선생님, 지금 많이 바쁘십니꺼?”함박꽃같이 싱글벙글 웃는 그녀의 얼굴은 곱고 생기가 있다.“괜찮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신지요?”“제 이야기 아시지예?”“그럼요. 손자가 국립대 건축과에 합격해서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오 여사님 살아온 사연도 풀면 한 보따리다. 딸이 시각장애고 사위도 시각장애다. 둘이 지압해서 밥 벌어 먹고산다. 딸이 아들을 낳은 후 지금까지 오 여사님이 다 키웠다.딸과 사위의 눈이 되어 평생을 살았고 손자를 키워낸 엄마의 일생이라니 숨이 콱 막히고, 가슴 한구석이 다리미 온도처럼 서서히 올라간다. 오 여사님은 친정에서 5남 1녀로 귀하디귀하게 자라 결혼해 딸을 낳았다. 이쁜 딸이 자신에게 왔는데도 하늘이 무너졌다고 했다. 딸이 앞이 안 보이는 걸 알고 그때부터 인생이 내리막이었다. 내 인생이 왜 이런가 싶어 원망도 많이 하고 죽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 사람이다. 근데, 어느 순간 딸과 사위의 등불이 되고 손자를 잘 키우리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다. 자신이 사람 되라고 이런 시련이 왔다며 마음을 바꾸어 먹었고 지금은 주어진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한 명의 엄마가 말없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말한다. 엄마, 엄마가 도대체 뭐길래….해방의 날을 맞은 엄마절친 정이 아버지가 평생 지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떴다. 집에서 폐 기능이 멈추기 직전까지 있다 응급실로 가셨다. 나는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일찍 도착했다. 정이와 엄마는 서로 냉랭한 채 말 한마디 않고 돌아앉아 있었다. 느낌이 싸하다 못해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모녀는 5년 동안 서로 얼굴 한 번 안 보고 살다 마침내 장례식장에서 데면데면한 채로 만났다. 그녀의 엄마는 가난한 집 팔 남매의 장녀로 돈에 팔려 가듯 시집을 갔다. 쌀장사를 해 돈을 많이 모아 작은 빌딩을 두 채나 샀는데, 아들 둘에게만 상속할 예정이고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은 맏딸로 자랐어도 딸에 대한 배려는 1도 없는 엄마였다.“정이야, 네 엄마랑 아버지 너무 하셔. 딸은 사람 아니야? 유류분 청구 소송도 있는데 해야 하는 것 아니야?”“아니, 난 소송은 안 할래.”“양성평등을 말하는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왜 딸만 희생하고 손해 보고 살아야 해?”정이는 소송으로 재산 받아내려는 마음은 접었다고 했다. 나는 정이가 평소에도 친정 일에 힘겨워하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 남매가 돈 때문에 평생 물고 뜯고 싸웠다 했다. 삼촌은 부엌에 있는 칼 들고 와서 할머니 돈 혼자 다 처먹지 말고 내놓으라고 난리 쳤다. 고모는 돈 내놓을 때까지 안 나간다고 버티고 살면서 엄마를 괴롭혔다 한다. 고래 심줄보다 더 질기게 버티며 한집에서 살았다. 가족이 돈 때문에 원수처럼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는 걸 보며 자란 정이. 유산분배를 말도 안 되게 해놓은 부모들. 그래서인지 정이는 어린 나이에 못 볼걸 다 보고 자라 일찍 어른이 되었다.정이는 아버지 남매들이 돈으로 평생 싸우는 걸 보고 자라 몸서리쳐진다고 했다.“고모는 엄마와 아버지한테 돈 내놓으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악담을 퍼붓고, 나까지 잡았어. 고모가 어린 내 뺨을 이리 찰싹, 저리 찰싹 때리는데 엄마는 가만히 보고만 있더라. 그때 나는 왜 맞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울고 서 있었어.”정이의 피딱지들이 아물지도 못한 채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동백꽃처럼 붉은 핏물이 정이의 가슴에서 뚝뚝 흘렀다.“그게 엄마야? ‘가시나가 어디서 소리를 내고 우노. 못 그치나.’ 어린 딸이 자기들 화풀이 대상으로 뺨맞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는 사람이 내 엄마였고 아버지였어.”정이가 갑자기 입을 다물며 표정이 굳어졌다. 뱁새처럼 찢어진 눈을 한 할머니 한 분이 탱크 지나가는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오빠, 오빠…. 이래 가면 우야노. 평생 아파서 고생한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쩌누.”요새 보기 힘든 곡을 하며 애써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정이는 가관인 듯 고모를 바라보았다. “이놈의 가시나, 고모가 오랜만에 왔는데 니는 인사도 안 하나? 하는 짓은 지 에미랑 똑 닮았다.”정이는 고개만 까딱했다. 귀찮은 존재인 고모는 정이 엄마에게 달려갔다. 정이 아버지는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결혼했다. 얼마 뒤 위암에 걸려 직장 생활도 못 하고 집에서 밥 받아먹는 삼식이 생활을 육십 년 동안 했다. 자그마치 60년 동안. 그녀의 엄마는 아버지 밥하느라 제대로 된 외출 한 번 못 하고 평생 옥살이하듯 살았다. 정이 어머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펄펄 끓던 마그마가 뿜어져 나왔다. 급기야 육십에 가열 찬 가출을 삼 년 동안 감행했다. 화산재가 여기저기 다 튀었고 자식들을 덮쳤다. 정이가 흠뻑 뒤집어썼다.“‘네 엄마 어디 있는지 빨리 말해라.’ 새벽부터 아버지가 우리 집에 불쑥 찾아와 엄마 찾아오라고 소리 지르고…. 내가 남편 보기 민망스러워 혼났어.”집에 돌아온 정이 엄마는 시집살이의 고달픈 분노를 자식들에게 하소연으로 풀었다.“내가 시집와서 아픈 네 아버지 병간호하느라 하루도 내 날이 없었고, 세끼 밥하느라 허리 펼 날 없이 살았다.”자식들은 그녀의 하소연을 듣다 지쳐 나가떨어졌고 더는 엄마를 보지 않으려 했다. 자식들이 찾아가지 않으니, 그녀의 가시 돋친 말은 자식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고 건물 두 채로 아들 둘을 제압했다. 정이 엄마가 건물을 내걸자, 아들 둘은 곧바로 무릎을 낮추었다. 어머니에 대한 저항은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졌다.나는 장례식장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엄마와 딸을 만났다. 엄마와 딸은 가까울 땐 온천수처럼 따뜻하다 멀어질 때는 북극의 얼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평생 병으로 앓던 남편이 죽고 해방의 날을 맞은 정이 엄마. 팔순이 넘어 해방의 날을 맞은 정이 엄마는 평생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쓰며 살았을까.―「진짜가 나타났다」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무숙
소설가, 문학평론가(국문학박사). 2001년 ≪문예사조≫에 소설 「레지던트의 아내들」로 등단. 2002년 「문학적 원효론」으로 평론가 등단, 단편소설 「상수와 변수를 넘어 무한수로」, 「그 여자, 그 남자」, 「삶, 연꽃으로 피어나다」, 「미사미사」, 「닫히다…열리다」, 「공명조」, 「얼공표류기Ⅰ」, 「얼공표류기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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