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네오픽션 ON시리즈 31권으로 강민영 작가의 판타지 소설 『작별의 현』이 출간되었다. 『작별의 현』은 심해 속 미지의 생물과 육지의 인간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동안 여성의 연대와 자립을 주로 다루던 강민영 작가는 이번에도 전혀 다른 두 인물이 겹치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과 서사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심해라는 신비로운 배경을 토대로 이색적인 세계관에 독자를 한껏 몰입시킨다.누구보다 바다와 해양생물의 보존을 바라는 해양 과학자 ‘유진’과 깊은 바닷속에 서식하는 발라비 종족 ‘네하’. 원을 그리듯 영영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두 존재가 우연히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순간, 지독히 깊은 수심도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어도 환경도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더 오래 눈을 맞추고 머지않아 닥쳐올 위험으로부터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내던질 뿐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바다에서 서로를 알아본 두 존재의 눈부신 만남을 보고 나면, 누구라도 한 번쯤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존재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했던 존재들처럼 눈을 맞췄다.”
육지와 심해, 인간과 미지의 생명체
결코 닿을 수 없는 두 점을 잇다
해저 900미터 아래에서 보내온
낯선 생명체의 다정한 신호
어두컴컴한 심해에 터전을 잡은 발라비 종족의 일원 ‘네하’는 오늘도 마을 구성원들 몰래 ‘빛의 경계’로 향한다. 발라비 종족에게 금지구역으로 통하는 그곳은 육지의 빛이 희미하게나마 전달되는, 심해에 사는 네하에게는 신비하고도 낯선 공간이다. 여느 때처럼 마을을 빠져나온 네하가 소꿉친구인 ‘키라’의 도움 아래 빛의 경계를 탐험하던 그때, 난생처음 보는 작은 조각이 네하의 눈에 들어온다. 바닷속에 떠도는 물건을 숱하게 주워본 네하에게도 생경한 조각이다. 처음 보는 물건에 들뜬 네하는 그 조각을 마을로 가져가려고 조각을 담을 만한 자루를 찾는다. 그리고 그 순간, 조각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한편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심해 자원을 연구하는 ‘유진’은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회의감을 느끼던 차였다. 그런데 몇 년간 잠잠하던 유진의 핸드폰에 뜻밖의 알림 메시지가 온다. 인간이 감히 가 닿을 수 없는 수심 1600미터 지점에서 최근 분실한 측정기의 신호가 잡힌 것. 믿기지 않는 메시지 내용에 반신반의하는 유진은 혹시 모를 연구의 성과를 기대하며 측정기의 기록을 다운받고, 기록에 남은 사진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화면에는 유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의 모습이 떠 있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세 장 중 두 장에는 아주 작은 불빛과 비닐처럼 투명한 인간의 형상이 명백하게 찍혀 있었다. (50쪽)
네하는 빛나는 조각을 이상하게 여겨 키라와 함께 단서를 추적한다. 그러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금서에까지 손을 대게 되고, 우연히 인간에 대한 정보를 보게 된다. 절대 접촉하지 말라는 금서의 경고에도 네하는 발라비와 흡사하게 생긴 인간이라는 존재에 호기심을 거두지 못하고, 동시에 빛나는 조각이 육지에서 왔음을 직감한다. 결국 네하는 혹시 모를 인간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금지구역 너머 광원 근처까지 헤엄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심해까지 내려온 유진의 잠수정을 마주치게 된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찰나의 만남
그리고 종족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연대
『작별의 현』은 영영 마주칠 일 없는 공간에 살던 네하와 유진이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끝내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다. 처음 보는 낯선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반드시 만나고야 말겠다는 무모함으로 시작되는 두 인물의 관계는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낯선 물보라를 일으킨다. 종족이 다른 두 인물의 교집합은 우정과 사랑처럼 보편적인 감정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누군가를 소중히 하는 마음과 모든 걸 내려놓고서라도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마음은 바닷속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도 작은 파동을 불러일으킨다.
수천수만 번의 상상에서 빠져나와 실제로 벌어진 지금 이 순간의 일. 돌아가면 다시는 바다로 내려올 수 없는 징계를 당한다고 해도 좋았다. 이제는 기록도 정리도 필요 없었다.
오직 두 눈으로 확인하고 기억하자. (161쪽)
그런 마음 덕분일까. 경계와 두려움도 잠시 네하와 유진은 금방 서로를 알아본다. 마치 만나야 할 존재가 만나게 된 것처럼 둘은 다정히 눈을 맞춘다. 말을 전할 수도, 그렇다고 오래도록 서로를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그들에게 허락된 건 오로지 눈으로 나누는 대화가 전부다. 생전 처음, 어쩌면 모든 역사를 통틀어 처음일 만남은 그렇게 잠깐이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서로에게 남긴다.
하지만 발라비 종족도, 유진의 연구소도 그들의 만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욕심과 원한으로 얼룩진 두 종족의 과거가 네하와 유진의 발목을 잡는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만 자명해질 뿐이다. 연구 대상을 목도하고도 그 생명체를 지키려 하는 유진과 자신의 천적인 인간을 기꺼이 만나려는 네하의 외로운 유영이 그렇게 시작된다.
찰나의 만남이 만든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네하와 유진의 결말은 과연 작별일까. 그들처럼 낯선 누군가를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가. 그렇다면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작별의 현』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이기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다름을 이해하고 단단해지는 연대의 힘을 독자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저런 걸 본 적이 있던가. 네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저 알 수 없는 물체가 이 세계에 속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계속해서 파들거리던 등의 지느러미들도 일순 활동을 멈췄다. 가까이 다가가봐도 좋을까. 뭔가 위험한 생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네하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잡아야 해. 저걸 잡아서 확인해야 해. 그런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잠식했다.
“사, 사람인가?”
유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다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그럴 리는 당연히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서유진. 유진은 뺨을 가볍게 툭툭 치고 눈을 여러 번 비비고 난 후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건 꿈이 아니었다. 사진 속에는 인간의 형상이 분명 보였다. 그것도 아주 길쭉하게 인간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늘어놓은 듯한, 그러니까 마치 이건…….
‘인어?’
길쭉하고 가느다란 머리털, 사방으로 뻗은 팔과 다리 그리고 가장 위에 달린 얼굴까지 전부 발라비와 같았다. 네하는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고, 인간을 묘사한 그림 바로 옆에 붙은 설명을 또박또박 읽었다.
“육지 종족, 발라비의 천적 중 하나, 해양생태계를 비롯해 가장 위험한 종족 중 하나, 연구 자료 부족…….”
인간 챕터는 다른 생물들처럼 설명이나 묘사가 풍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설명이 전부 발라비들의 금지구역이 설정된 이유가 인간 때문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강민영
2020년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 『전력 질주』 『식물, 상점』 『작별의 현』, 산문집 『자전거를 타면 앞으로 간다』를 썼다. 영화 매거진 『CAST』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목차
빛나는 조각
신호
접촉
탐사
첫 번째 만남
해무
기록
두 번째 만남
경고
수면 위로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