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감우의 시는 공연 마지막까지 쏟아부은 열정을 잠시 내려두고 커튼콜을 기다리는 순수한 무대다. 그녀는 비워야 채워지는 여백의 미학을 기다릴 줄 아는 시인이다. <타조 소년들(연출가: 토니 그레이엄)>은 ‘무대 위의 시’라고 불리는 청소년극이다. 삶의 여정을 풀어낸 이 연극이 요동치며 흘러가는 청소년기의 비움과 스며듦으로 관객을 사로잡듯, 김감우 시 또한 비움과 스며듦의 무대 연출로 독자를 설득한다.
출판사 리뷰
김감우의 시는 공연 마지막까지 쏟아부은 열정을 잠시 내려두고 커튼콜을 기다리는 순수한 무대다. 그녀는 비워야 채워지는 여백의 미학을 기다릴 줄 아는 시인이다. <타조 소년들(연출가: 토니 그레이엄)>은 ‘무대 위의 시’라고 불리는 청소년극이다. 삶의 여정을 풀어낸 이 연극이 요동치며 흘러가는 청소년기의 비움과 스며듦으로 관객을 사로잡듯, 김감우 시 또한 비움과 스며듦의 무대 연출로 독자를 설득한다. 자기중심의 해체를 통해 자기비허(Kenosis)의 시문(詩門)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김감우는 첫 시집 『바람을 만지며 놀다(2018, 고요아침)』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고백했고(전해수), 이번 시집 『잔과 바다(2024, 현대시)』에서는 무주심(無住心)의 탈중심적 사유를 견인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무(無)와 공(空)을 태워 없애는 비움과 채움의 중심에 있다. ‘길’과 ‘소리’와 ‘말’을 통해 스스로를 열고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 김감우 시세계에 초청된 관객은 스스로를 낮추고 물러나는 여백의 무대를 맘껏 즐길 수 있다.
구멍
하늘에 구멍이 났나,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퍼부었다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던 오후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스물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 구름의 입장은 단지 좀 가벼워지고 싶다는 것, 어딘가를 뚫어 몸 줄이는 일이었는데
어젯밤 잠시 누군가의 가슴 숭숭 뚫린 소리를 들었다면 그것은 중심을 향하는 열망
구멍이 아니면 지나갈 수 없는 암흑의 시간을 몸을 기대고 지나가는 중인 것
어딘가를 위태롭게 가는 외나무다리 같은
시계에 숫자를 잘 보면 작은 구멍들 줄지어 가고 있지
석남사 엄나무 구유가 소임을 다하고 저리 오래 항해하는 것도 바닥에 물을 빼던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별도 우주의 작은 구멍이고
찌개가 끓어오를 때 보글거리는 소리도
구멍이 생겨나는 중인 것 제 온도를 견뎌내는 방식
그러니까 당신이 한밤중 단톡방에 올린 뜬금없는 한마디도 구멍의 일, 괜찮아 그 소리에 우리 잠 좀 깼어도
시인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잔 물줄기 같다
자주 드러눕는 몸을 닮았다
데미샘에서 나서는
고향의 강 상류처럼
굽이마다 휘돌아 나오며 우는 법이
그의 시다
그 시의 통점에서 나는
쉬어 갈 수밖에 없다
강은 흐르면서 노래가 되고
역사가 된다
내 울음소리를
어디쯤 배치할까를 고민하는 사이
시인의 노래는 이미 바다 물목에 들었다
가장 느린 노래가 가장 멀리까지 닿는다
그래서 시인의 노래는 귀를 바짝 대야 들린다
잔과 바다
잔 속에 물이 차오를 때
잔은
제 몸을 낮추고 또 낮추며
물을 받든다
그래서 잔 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
말의 바닥이 길고 묵직해지는
종소리 같은 신뢰가 있다
반쯤 차면
반은 비워둔 채 가득해지는
수평선의 저녁처럼
바다도
여울의 낙차를
오롯이 받고 싶어 바닥을 낮추고
굽은 겨울 강 아프게 안아
반을 채웠다
나머지 반은
허공의 몫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감우
2016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람을 만지며 놀다』가 있다. 현재 울산문인협회, 울산펜문학 회원이며, 봄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탑 12
오후 14
구멍 16
낙하 18
너머로 뭉근하게 20
우리 22
붉다는 말 24
자리 25
숲 26
소국이 선 채로 28
월평로 30
가령 32
시작 34
고수 36
제2부
들리냐? 38
길 위의 시간 40
벽 뒤로 42
낯선 파랑 44
낡은 첼로의 봄 46
별 48
흥덕왕릉 가는 길 50
올가을 비가 짧아, 차암 짧아 51
너는, 52
立夏 54
방 56
항구 58
틈 59
분홍 60
제3부
숲 62
배추의 얼굴 64
즐거운 명절 66
저녁의 게임 67
슬도가 그를 찾는다 68
편지 70
편지 72
승부 73
그녀가 내게 74
PRESTO, 75
독 76
고비의 시간으로 꽃물 번지네 78
시인 80
과거형 말은 슬프다 81
제4부
소금 목걸이 84
끓다 85
건양다경 86
풍경이 철들었다 88
들,이 모여 90
꽃꽂이 상담실 92
고래, 크로키 94
급한 볼일 95
별사別辭 96
바다낚시 98
열일곱 100
섬진강 102
병목 104
잔과 바다 106
▨ 김감우의 시세계 | 배옥주 107